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알렉세이 유르착 지음, 김수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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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체제의 마지막 시기를 살았던 저자가 쓴 자가기술민족지.. 이론적인 틀은 그닥 새롭지 않지만, 구미의 소비에트학이 철저히 외면해왔던 후기 사회주의(late socialism) 시기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을 풍부한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흥미롭게 본 인류학 민족지.

 

라고.. 100자평을 쓴 다음, 조금 부족하다 싶어 이어 쓴다..

 

저자의 소개를 보더라도, 80년대 소비에트의 마지막 10년을 20대 청년기로 보내고.. 이후 미국으로.. 소비에트의 체제의 붕괴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구미 소비에트학의 참담한 상황에서..

(물론 예언이 학문의 몫은 아니다.. 학문은 항상 사건이 일어난 다음을 뒤따라가는 것일 뿐.. 생각해보면, IMF사태를 예언했던 한국의 사회과학이 있었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냉전체제 당시의 주적이었던 소비에트를 이해하기 위하여 천문학적 액수의 자본이 이 학문분과에 투입되었다는 점에서 아마 그들로서도 할 말은 없었을 것 같지만..)

 

알렉세이 유르착과 같은 저자의 입학은 그들로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만하다.. 그리고 유르착은 착실한 모범생처럼, 학위과정을 이수하면서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비밀의 집, 소비에트의 마지막 10년의 사회적 삶의 모순을 르포르의 역설을 비틀어서 멋지게 표현해낸다..

 

<이데올로기적 발화와 이데올로기적 통치 사이의 균열>.. 유토피아적 계몽의 이념에 기초한 근대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은 외부에 자리한 상상적 위치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며, 그러한 상상적 외부의 자리가 의문시되고 파괴될 때 그 정당성은 위기를 겪게 된다..

 

물론 이러한 역설은 프랑스혁명기 자코뱅의 자유의 역설에서 이미 명확히 드러난 바 있지만, 그러한 이상주의적 근대성의 또 다른 계승자인 소비에트 체제 역시 이러한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주의적 맥락에서 창조성의 독립과 창조적인 작업에 대한 당의 통제는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한다.. 확실한 외부의 적이 있을 경우, 이러한 모순은 생산적으로 봉합될 수 있다. 프랑스혁명기 외부의 반혁명 세력과 싸우면서 혁명전쟁을 수행해나갈 때도, 또 제 3제국의 침공에 의해 절대적 위기에 직면했던 소비에트 체제에서 이러한 모순들은 쉽게 봉합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지 30여년이 지나면서 누적된 모순으로 인한 제도적 피로가 사회에 드리워졌을 때, 그것을 걷어낼 수 있는 내적 역량이 이 사회에는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러한 모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간파하고, 또 봉합해가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종종 저자는 '스보이', '브녜'니 '스툐프'와 같은 러시아어를 그대로 쓰면서 이것이 번역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단어들이 진정 소비에트적/러시아적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왠지 이런 단어들을 이탤릭체로 쓰는 것이야말로 지역학의 일종의 존재 증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붕괴 전야의 어떤 사회나 이런 아이러니의 미학들이 발생하고.. 또 그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마치 중세의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처럼.

 

권위적 담론의 전 영역에서 발생했던 수행적 차원과 진술적 차원 간의 이런 널리 퍼진 전환에 의거한 다중적인 내적 전치와 시스템의 재해석은,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 사이에서 스툐프라는 은어로 불렸던 특별히 부조리한 아이러니의 미학이 발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아이러니 형식은 앞에서 살펴본 다중적인 전치의 결과로 생성된 역설적인 담론적, 사회적, 심리적 효과들에 종사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왜 소비에트 체제는 어느 순간 갑자기 붕괴되었는가.. 그러한 장의 전환을 가져온 힘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제공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국면의 전환이 가져온 어떤 역설을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언어를 빌린다면, 페레스트로이카란 권위적 담론이 일상 속에서 기능했던 원칙들에 관해 토론을 하는 새로운 장소, 즉 공론장의 도입이며, 이제 언어가 투명해지기 시작하면서 후기 사회주의를 작동시킨 수행적 전환의 원칙이 점점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이미 후기 사회주의 체제에서 계속 자라고 있던 종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언어와 의례를 비롯한 여타 행위들을 통해 시스템의 권위적 형식들이 주도면밀하게 만장일치로 더 많이 재생산될수록, 그것의 진술적 의미와 형식 사이의 연결은 더 많이 끝어지고, 이는 결국 더욱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허용하게 되므로."

 

이러한 시각은 분명 한국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데도 유용할 것 같다.. 500년간 조선왕조 체제를 지배해온 성리학적 담론질서가 왜 구한말 갑자기 붕괴하고 말았는가.. 이를 단순히 서세동점,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라는 외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혹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즉 군사파시즘, 권위주의 체제의 붕괴 역시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다시 프랑스혁명사를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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