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전쟁과 포르노, 패스트푸드가 빚어낸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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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은 인간을 선택 했나 기술을 선택 했나

 

 

1996년도에 아이네트라는 회사에서 인터넷을 처음 배웠다. 그땐 전화선으로 PC통신이 대중화된 시기였다. 브라우저도 익스플로러가 아니고 모자이크와 넷스케이프가 대세이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강사 중 한분이 인터넷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모든 건 미 국방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 말이다. 컴퓨터 끼리 데이터 통신이 가장 절실한 곳이 미 국방부였고 무언가를 주고받다가 어느 날 누드 사진도 주고받고 싶어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리하여 인터넷 기술의 정점은 포르노가 될 것이라 말했다. 생각해보라고 사진이 될수록 빨리 떨어지고 동영상이 빨리 전송되어야 할 것 아니냐고, 그것도 실시간의 고화질 화면으로. 가끔은 우리끼리 무언가를 찍어서 돈도 벌어야 할 것 아니냐고. 모두 회사원들이었고 당시 강의는 한 달에 오십 만원이나 하는 고액의 특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말하던 기술들은 거의 실현이 된 듯하다. 그리고 강사가 농담 반으로 부연하던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십 오년도 더 지나 나는 이 책에서 농담이 진담이 되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새삼 그때 넷스케이프를 띠우고 알타비스타에 검색문구를 쳐대던 모습이 떠올라 빙긋 웃음이 났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페이스 북에서 사진을 공유하며 네비게이션은 물론 쇼핑, 게임, 강의, 영화, 음악, 라디오, TV등의 다양한 손바닥네트워크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 모든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사실은 미 국방부에서 만들었고 포르노에 가장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이 그다지 놀랄만한 뉴스는 아니다.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본 뉴스에 속한다가 맞을 것이다. 허나 이 책은 그것이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문명의 기술은 나쁜 전쟁의 기술이 착한 일상의 기술로 전이된 것이므로 우리는 그동안 악의 축을 기둥삼아 열심히 개인의 욕망을 실현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란 전쟁, 포르노,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욕망의 삼위일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악덕과의 공존 전략을 세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모든 현대기술의 핵심은 20세기 중반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의 최대 수혜국은 미국이다. 자본주의 주권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저자의 논리는 ‘많은 기술을 가진 자가 많은 식량을 소유하고 많은 권력을 가진다’는 데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미국은 적보다 유리한 기술을 찾아 유능한 과학자를 대거 투입시켰다. 당시 천재들은 모두 비밀리에 군사기술에 투입되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전쟁이 끝나고도 미국은 군사기술에 쏟는 투자가 곧 과학연구의 중추로 자리 잡았고 신기술은 산업으로 빠르게 이전되어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 미군의 피나는 기술개발이 가전제품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식품가공의 혁명을 이끌었고 컴퓨터 산업의 혁신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성혁명이 상업화, 개인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 섹스, 음식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둘러싸고 거대산업이 발전한 것이고 이것은 결국 성욕, 경쟁, 식욕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대변하므로 3대 악의 축은 곧 3대 욕망의 뿌리이며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의 결과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혹 잘못이 있다 해도 그건 미국 탓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 탓이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순서대로라면 맞는 말이긴 하나 읽다보면 서서히 갑갑해지고 우울해지는 책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 의하면 이미 결과가 드러난 상태에서 모든 과거의 일은 사후에 얼마든지 편향적으로 해석될 수가 있다. 인간은 원인과 결과만 있으면 이성이 아닌 직관에 의해 개연성과 타당성, 합리성을 만들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과연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저자는 기술발명이라는 것이 늘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으로 이어진다고 했는데 과연 초창기 기술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것일까? 기술전이의 핵심이 된 사람들이 모두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로부터 자유롭다고 해도 그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알지 못해서 선택을 이어왔던 것일까. 예를 들어 새로운 전쟁기술을 개발하는 목적은 고귀한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함이라 떠들지만 기술이 개발된 시점엔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기술을 어디에 응용하게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일까.

 

 

젊은 시절 세계대전과 원자폭탄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살았던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은 이 책에 언급된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증인중 한 사람이다. 파인만은 그의 저서와 전기 등에서 폭탄을 제조해 실험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분명히 ‘사회적 책임’을 언급한 바 있다. 모두 천재수준의 과학자들로만 구성된 팀원들은 사막 한 가운데서 폭탄이 터질 때 성공의 환호성을 질렀지만 돌아올 때 침묵하였다. 원래는 독일의 위협으로 그들이 폭탄을 만들지도 몰랐기 때문에 폭탄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실험에 성공한 원자폭탄은 일본에 떨어졌다. 파인만은 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끝까지 염두에 못 둔 것이 도덕적인 면에서 실수였다고, 어떤 일을 할 때 끊임없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그 이후로 국가의 기밀작업엔 참여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파인만은 당시에 왜 우리가 그런 일을 했는지 생각해본 사람이 분명 있었다고 증언했다. 군은 단지 기술을 의뢰할 뿐이며 과학자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할 뿐이며 상인은 기술을 응용해 팔기만 할뿐이고 소비자는 그것을 이용만 할 뿐이라면 인간은 로봇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선택해온 사실들은 잊어버린 듯하다. 이 책은 지난 시절 미국이 해온 일들을 객관적인 통계자료와 결과지향적인 가치관으로 상당부분 합리화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문제는 지금 이후인 듯하다. 그래도 의미 있고 감사한 건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을 낱낱이 알려준 성실함이다. 현대문명에 있어 미국의 기여도와 과정을, 그 속내와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의 미래와 직결되는 일일 것이기에.

 

 

 

2. 미국 음식을 먹는 것은 미국식 삶을 먹는 것이다

 

 

독일의 폭격으로 자존심이 상한 영국은 미국과 합작으로 레이더 장치를 개발해 많은 인명을 살렸으나 마찬가지로 적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살인광선으로 레이더를 활용했다. 이 살인기술은 전쟁이 끝나고 전자파를 이용한 전자레인지로 거듭나 일반 가정의 부엌으로 위치를 이동했다. 테프론도 미국의 원자폭탄 프로젝트 과정에서 발견된 화학물질이 프라이팬으로 변신한 결과였다. 오늘날 식용유 없이도 계란 후라이가 가능한 테팔 프라이팬은 사실 폭발물 제조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신기술이었다. 전쟁덕분에 세상에 등장한 플라스틱은 다양한 밀폐용기로 널리 보급되었고 건강을 해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회용품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밤새워 공부하고 난 뒤에 또 밤새워 논다고 총력전 뒤에는 총력생활이 뒤따랐다. 잘 먹고 잘 사는 일, 번영과 사치, 즉각적인 쾌락이 더 중요했던 5,60년대는 환경이나 생태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시에 개발된 기술은 가정의 요리기술로 안착했고 사람들은 전쟁을 잊고 풍요를 꿈꾸었다.

 

 

우리 집 아이는 대표적인 정크 식품인 스팸과 햄, 소시지를 좋아한다. 이것저것 온갖 종류의 햄이 들어간 부대찌개도 유난히 좋아한다. 어린이 성장과정에서 특히 두뇌와 골격의 발달에 좋지 않다는 뉴스와 연구결과를 보고도 아이는 스팸의 맛을 잊지 못한다. 스팸은 알다시피 미군이 전시식량으로 택한 음식이었다. 전 세계 식품가공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와 동일하다. 아마 당시 미국의 군부대에 스팸을 납품한 업체는 떼돈을 벌었을 터이다. 그러나 오늘날 통계상으로 스팸을 즐겨먹는 나라에선 하나같이 당뇨병, 뇌졸중, 심장병 같은 성인병 발병이 높게 나타난다. 주부의 경험으로 보자면 식품 첨가물과 나트륨의 함유량도 대단한 중독성이 있는 듯하다. 그만한 맛과 그 정도의 간에 익숙해진 입맛은 꼭 일정량 이상 마셔야 술을 마셨다 생각하는 알코올 도수 및 주량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요즘은 감자튀김도 양파맛, 치즈맛 등의 화학조미료를 즉석에서 첨가해 더 강한 맛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화 되었다. 뉴스에선 하루가 지난 감자튀김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알려주지만 담배 피지 말라고 해서 알아듣는 성인이 드물듯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가끔 아이 따라 먹어보면 확실히 순간의 자극은 더 심화되었고 그 기억은 또 새로운 맛이 나타날 때 까지 유효할 듯하다. 나는 아직도 태어나 처음 롯데리아에서 감자튀김을 먹었을 때 그 맛을 기억하는데 한창 성장기에 인스턴트 식품과 화학조미료의 맛이 얼마나 맛날 것인가.

 

 

냉동감자의 시작도 알고 보면 고기와 채소를 냉동식품으로 팔아온 군납업체에서 비롯되었다. 인스턴트 커피도 마찬가지다. 군인이 지치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먹기 위해선 필히 탈수, 냉동, 건조 기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부지런히 전시에 오렌지주스, 감자, 우유, 달걀 등을 실험함으로써 음식맛을 가공하는 법을 알아내었다. 김연아가 광고하는 믹스커피는 전장에서 군인이 그토록 그리워한 커피 한 모금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질량분석기는 방부제와 첨가물을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식품가공기술의 발달은 대량생산 기술과 함께 패스트푸드의 발달을 가져왔다. 잠수함 주방을 설계하던 기술자는 맥도날드 주방을 표준화했고 맥도날드는 기술혁신과 품질관리로 엄청난 수익을 올려 물류공급의 표준모델이 되었다. 미국 전체 식품 생산 시스템은 맥도날드의 모델을 따랐고 별 대안 없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렇듯 미국은 60년대 이미 식품혁명이 완료 된 나라였다.

 

 

고등학생 때 처음 압구정동 한양쇼핑 맞은 편에 맥도널드가 문을 연 날을 기억한다. 한동안 줄을 서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90년대 맥도널드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면 반드시 유명 연예인을 볼 수 있었다. 맥도널드는 당시 압구정동의 젊은 소비문화를 리딩하던 대표적, 상징적인 브랜드였다. 강남역 뉴욕제과가 지하철을 매개로한 만남이었다면 압구정동 맥도날드는 자가용을 전제로 한 만남을 의미했다. 미국이 전수한 패스트푸드는 우리에게 단순히 식품혁명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대형할인점에 가면 프라이팬, 타파웨어, 감자튀김, 믹스커피, 일회용 식품들이 즐비하다. 군인을 위한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이 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먹어온 것이 우리자신이라 보았을 때 우린 미국식 풍요를 향해 삶의 궤도를 수정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그렇다. 왜냐하면 우린 미국을 알기 전엔 미국처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인류가 미국식 삶을 선택하도록 유도한 나라인 것이다.

 

 

 

3.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대상이 미래 산업의 핵심이다

 

 

식품 혁명 이후의 욕구는 성혁명으로 이어졌다. 저자에 의하면 중국, 한국, 일본이 포르노 매출이 가장 높은 3대국가라 하여 흠칫 놀랐다. 전쟁, 섹스, 음식 중 섹스의 발달이 제일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인간이란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은밀한 욕구를 떠올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전투장면을 찍어야 했던 필요성과 당위성이다. 미군은 훈련용 영화를 만들어 나중에 분석을 해야 했고 따라서 헐리우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카메라 작동법을 배운 군인들은 전쟁이 끝나자 무엇을 만들었을까. 영화계에도 혁명의 바람이 불어 닥쳤고 기술과 장비는 나날이 발전해 표준화되기 시작한다. 53년 <플레이보이>지의 창간은 소비 지상주의에 부합하는 사회적 욕구였을까. 남성용 영화제작도 활발해져 6,70년대엔 B 급 포르노 영화가 성행을 이루고 80년대엔 비디오테잎과 캠코더의 보급으로 개인 비디오 촬영이 가능해진다.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포르노는 더 이상 장롱 속에 숨겨둔 비밀이 되지 못했다. 군사기술은 장난감과 게임발전도 견인했으며 가상현실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역으로 전쟁이 게임화되기에 이르렀다. 종이인형이 관절이 꺾이는 바비인형이 되기까지 미사일 기술자가 미사일이 견뎌야하는 중력이나 속력, 항력을 계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인형은 로봇공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가정용 로봇, 섹스용 로봇으로 발전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군대에서 비롯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파인만과 함께 핵폭탄에 필요한 타이밍 회로를 만들었던 히긴 보덤은 같은 시기 연구소에서 간단한 비디오 테니스 게임을 고안했다. 하필 이 게임이 전신이 되어 전자오락산업의 길을 열었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회사들은 10년 간 군에서 쓰는 전자장치만 만들던 사람들이 주축이 된 회사였다.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인텔과 소니의 탄생에 기여했다. NASA 가 미국 산업계에 넘겨준 기술의 양은 곧 미래의 미국을 이끌어갈 첨단 기술과 동일하다. 구글의 위성 사진 서비스도 지상원격탐사를 위한 미군의 프로젝트가 상업화 된 것이다. 그러니까 바꾸어 말하면 미국이 무엇과 전쟁을 벌이고 있느냐가 곧 향후 산업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미국을 위협하는 무엇이 곧 적대적 대상이 될 터이다. 우주개발이든, 질병이든, 테러이든, 무역이든, 미국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자의 논리 전개에서 본의 아니게 발견하게 된 것은 미국의 전략적인 세계지배 구상이다. 현재 전 세계 유전자변형 농산물 생산량의 60퍼센트는 미국에서 나온다. 미국산 유전자 변형 농산물로 가공된 식품은 우리 대형마트에도 수두룩하다. 미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과학자들은 유전자 변형식품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교묘히 옹호한다. 꼭 월가와 관계를 맺은 경제전문가들이 미국의 은행을 비난하지 않는 이치와 같다. 미국이 고안한 논리는 가난한 나라에 보다 많은 식량을 분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하면 절망하고 절망하면 더욱 테러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전 세계가 테러와 전쟁을 하느니 아예 애초부터 원인을 없애자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기술을 가진 자가 많은 식량을 가지게 되고 많은 권력을 얻는다는 논리로 보았을 때 미국은 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할 수 있다. 여전히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전쟁기술을 연구하고 신 무기와 첨단 장치를 개발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군에서 나온 부산물이 모두 자기네 나라를 먹여 살리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이제 안다.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구하는 무기로 적이 되는 나라의 사람을 대량 살상해온 이력을 안다.

 

 

그렇다고 갑자기 환경과 생태를 위해 패스트푸드를 거부하고 편리한 디지털 문명의 이기를 버리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고 해도 그것이 삶의 복원이며 미래지향적인 방안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새겨야 할 사항은 저자의 주장처럼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류 문명의 자산이 ‘나쁜 것들’을 통해 발전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나쁜 것들이 좋은 것들을 창출했다고 해도 나쁜 것의 원래 나쁜 속성과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쁜 것들이라도 지금 좋은 것이 되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나쁜 것들은 분명 나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훗날 좋은 것들이 될 확률이 있다 하더라도 나쁜 것들을 택할 당시 그것들을 간과하거나 무시해야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지금 좋아진 사실과 결과가 나쁜 것을 택한 자들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될 것이다.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택했던 이유는 그것이 택하는 자에게 이롭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파인만이 한 말을 다시 떠올린다. 어떤 일을 할 때 끊임없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초에 폭탄을 제조했던 이유는 그 폭탄으로 사람을 살상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폭탄을 제조한 적군에 맞서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레이더를 만들 땐 야간폭격을 대비해 사람을 대피시키려 했던 것이지 역으로 야간에 목적물을 찾아 공격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는 패리스 힐턴의 섹스 비디오에 나오는 속살이 분홍색이 아닌 에메랄드빛임을 보고 조명 없이 어둠 속에서 야간 투시 기법으로 촬영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힐턴의 비디오와 1991년 걸프전 당시 CNN을 통해 중계된 야간폭격 장면이 같은 색이었다는 사실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했다. 인간은 대단히 실망스런 존재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생존을 위협해도 결국은 다 같이 진화하는 방향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존재임을 믿고 싶다. 선택의 기준이 오로지 욕망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인간으로 남게 되지 못할 것이다. 기왕이면 좋은 것을 택하여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인간과 나라가 더 자신들에게 떳떳한 일일 것이다. 불가피하게 나쁜 것을 택했다면 파인만처럼 최초의 그 불가피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인간의 선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존은 결국 수많은 인간들의 다양한 선택을 인정하고 손 잡는 일이다. 순간의 선택이 어떤 한쪽의 피해와 상처로 이어진다면 그것을 알고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선택은 궁극에 공멸에 이르는 과정일 뿐이다. 미국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유아독존이 아닌 서로를 위한 상존, 모두를 위한 공존을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계속하여 그들의 나쁜 선택을 미화하고 정당화하기에 지구촌은 더 이상 공멸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패리스 힐턴의 초록 비디오가 걸프전의 초록 영상이 부디 원래 초록이 의미하는 자연과 희망의 상징으로 변화하는 선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저자가 오랜 기간 준비 끝에 이 책을 발간한 이유는 미국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책임을 더 자각하기 위함이었다고 믿는다. 저자가 바라는 다음의 초록은 아마 우리가 모르는 초록은 아닐 것이다.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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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결론은 '악덕이 베푸는 미덕'이다.

이른바, 본능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논리다.

가장 거슬렸던 표현은 발전했다, 진화했다가 아닌 베풀었다는

내재된 우월감의 잔상이다.


앞으로 더욱,

공존을 위한 책임있는 '선택'이 본능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미덕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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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5-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고마워요 :)

계속 리뷰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요. 그리고 이제 취소. 발병 안 나실 거예요 히히히히히히히

차트랑 2012-05-0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워낙 적나나해서 관심밖이었는데...
한사람님의 리뷰를 읽으니 생각이 완전 달라지는데요??

저는 아직도 고리타분한 티를 벗지 못했나 봅니다 ㅠ.ㅠ
저 책을 어떻게 서재에 꼽아둔다?...생각 하면서 걱정부터 했거든요^^
저의 초등학교 동창생 이야기가 딱 맞나봅니다.
'너는 조선에서 왔냐??, 공간은 같되 시간은 왠지 다른 것만 같아...' ㅠ.ㅠ

2012-05-09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5-1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사람님,
고맙습니다

꽃도둑 2012-05-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흥미롭겠는데요?... 세 개의 단어로 현대과학의 기술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칼자루였던 거군요,,,
이 저자의 관점이 다분히 미국에 손을 들어준거라면 그 칼자루를 던져버리고 새로이
갈아 끼우는 방법을 모색하던가..아니면 미국의 손을 뿌리치는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너무 깊숙히 너무 광범위하게 손길이 뻗어 있어서 어렵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