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념있다는 그 말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은 언제부턴가 ‘개념연예인’과 ‘무개념 연예인’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탈북자 북송반대? - 개념 〇, 종편행? - 개념 ⨉, 아프리카 봉사활동? - 개념 〇, 인종차별발언? - 개념 ⨉, 유기견 보호운동? -개념 〇, 본인사업 홍보? - 개념 ⨉...

 

 

남을 배려하고 올바른 태도를 보이면 생각은 (없을 것 같은데 ㅋ) 좀 있어 보이므로 ‘개념있다’고 한다. 반대로 주변에 민폐나 끼치고 생각 없이 행동하면 ‘개념없다’고 한다. 개념을 생각이 반영된 인식의 결과로 바라보는 태도다. 여기까진 원래 개념의 일차적 정의가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말하므로 수긍이 간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소신 있게 말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대중의 동참을 요구하는 (결과적으로)정치적인 행위도 ‘개념있다’고 보고 개념연예인으로 언급한다면? 이 심리는 이미 반대쪽 의견을 가진 상대가 ‘개념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집단동의의 공감을 배경으로 잣대를 선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대통령을 포함한 보수 여당 정치인,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일부 기독교 우파는 적들로 보고 그들의 개념은 인정하지 않겠다가 아닌 아예 없다고 규정해 놓는 것이다. 이 암묵적 동의가 하나의 대중적 이데올로기로 표출된 것이 ‘나꼼수빠’가 아닐까.

 

 

왜냐하면 김어준은 누가 뭐래도 ‘우리 편’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다. ‘우리 편’은 누구인가. 바로 ‘저들’을 뺀 나머지다. ‘저들’은 당연히 가카와 그 떨거지, 그리고 새누리당, 위선의 아이콘(종교인), 대기업, 보수 언론이다. 정재승은 이를 김어준의 ‘우리 편 철학’이라 했다. 나꼼수의 인기비결은 바로 저들을 뺀 우리 편 이야기, 우리끼리 하는, 우리가 제일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에 있는 것이다.

 

 

#2. 개념 좀 한다는 사람들

 

 

그렇다면 요즘 나꼼수에 독설을 날리고 있는 진중권은 이를 뭐라고 할까. 상상력을 통해 사실과 픽션이 자유롭게 결합하는 특성이 강하므로 파타피지컬(Pataphysical)한 태도가 밑바탕에 깔린 하나의 놀이라고 말한다. 진중권은 어떤 사회현상이 일어나면 자주 파타피지컬하다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허경영 신드롬인데 젊은이들이 허경영 콘서트에 열광하는 것은 허경영의 허구를 진실로 믿어서가 아니다. 모두 빤한 거짓말인지 알면서도 거짓말을 진짜인 것처럼 대우해주고 믿어주는 척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 마음속으로는 거짓말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자각을 하며 서로 의심없이 그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진중권은 디지털 세대의 상상력을 말할 때도 파타피직스를 적용한다. 가상현실 나아가 증강현실 기반의 디지털 세대는 어떤 것이 픽션인지 뻔히 알면서도 마치 사실인 척해주는 놀이에 익숙하고 그것은 디지털 문화의 일반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이 지적한 것은 픽션인지 알고서도 사실인척 믿어주고 즐기는 놀이가 정말로 사실로 받아들여질 때의 위험성이었다.(뭐 개인적으로는 더 짜릿했지만 ㅋ) 그냥 한바탕 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뒤돌아보니 믿으라고 선동하는 일이 될 때의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에 대한 경고였다.(그러니까 파타피지컬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 놀이는 놀이로 끝나야 한다는 속내를 담고 있는 건 아닐지 ㅠ,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가 되는 일은 지겨우니까)

 

 

그럼 여기서, 파타피직스(pataphysics)는 무엇일까? 작년 후반기에 출간된 진중권의 아이콘이 떠오른다. 그는 파타피직스 같은 ‘개념어’를 통하면 전문적 철학 지식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아도 철학적 수준의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 한 바 있다. ‘형이상학’(形以上學)이 ‘메타피직스’(metaphysics)임을 알고 있다면 우선 파타피직스는 형이상학에서 파생된 것일까, 싶기도 하다. ‘메타’(meta)는 ‘이후’라는 뜻이고 ‘파타’(pata)는 그리스어로 ‘이상’을 뜻한다. 물리학의 이상?? 철학 그 너머? 파타피직스는 온갖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로 가득 찬 사이비 철학(혹은 과학)을 가리킨다. 이른바 과학과 철학의 설명을 넘는 무엇이다. 파타피직스라는 개념어를 기준으로 진중권은 아주 자주 파타피지컬하다, 파타피지션이다, 파타포를 활용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작년 가을 철학의 38가지 개념을 소개한다고 해서 사실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쳐보았지만 칼럼연재를 모은 것이기에 깊이 면에서는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로 사회적 현상을 예로 들어 철학적 개념을 적용해 분석하므로 어디 가서 젠체하는 신조어 주력 사용자들에 주눅들진 않을 수 있다. 결국 미학과 철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자기 같은 사유의 틀을 제시하는 것인데 아무리 개념어를 쉽게 설명해주어도 우리 입에서 혹은 글에서 체화되어 사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 진중권은 개념의 사용법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범례들을 제시했고 우리는 하나의 사건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면 된다. 나꼼수를 바로 파타피지컬하다고 하는 것처럼.

 

 

철학에서의 개념은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 종합하여 얻은 하나의 보편적 관념을 말한다. 진중권의 <아이콘>이 개념이라기 보다는 용어 위주여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 책은 딱 그 지점을 보완했다고 할까. 조광제의《철학 라이더를 위한 개념어 사전》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현상학까지, 철학을 대표하는 80개의 개념어를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제가 ‘서양철학의 역사를 움직인 주요 개념’이므로 당연히 철학사의 개괄적 이해에 도움이 된다.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기본에 충실했다. 처음에 카오스와 코스모스로 시작하는 도입이 좋다. (결정적으로 두껍지도 않다)

 

 

개념어들은 단순한 용어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등을 둘러싼 모든 사유의 기초가 된다. 개념어를 많이 알고 있다면 그 사유의 폭과 해석의 틀이 풍부할 것이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주이상스’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주이상스는 불어로 고통스럽지만 멈출 수 없는 극치의 즐거움을 뜻한다. 그가 분석하는 대중은 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중간계급이다. 이들 중간계급은 사회구조적으로 금지된 억압을 방어하는 기제로서, 기존 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지적인)주이상스를 끊임없이 요청하는 주인공으로 근거한다. 통섭학자 최재천은 호모 사피엔스가 자연과 공생하는 종으로 거듭나야 된다며 ‘호모 심비우스’를 주장한다. 그리고 가끔은 에드워드 윌슨이 생물다양성의 보존을 호소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으로 주창한 ‘생명사랑biophilia'의 개념, ’바이오 필리아‘를 제안하기도 한다. 통섭의 시대, 공감의 시대를 맞아 우리에게 ’다윈 지능(Darwinian intelligence)‘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최근에 에세이를 펴낸 소설가 김형경은 훈련하여 몸에 베개 한다는 의미에서 ’훈습‘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훈습은 '정신분석 과정을 철저히 이행하는 작업(Working-through)'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불교에서 빌려온 용어이다. 하지만 개념적 수사적으로 그 우월한 뉘앙스가 듬뿍 실려오지 않는가.

 

 

글쓰는 입장에서 가장 짜증날 때가 사전을 찾았는데 더 짜증 날 경우다. 예를 들어 ‘대추나무’의 뜻이 뭘까 궁금해 사전을 뒤져봤더니 ‘대추가 열리는 나무’ 라고 적혀 있을 때. 이런 어이없고 민망할 때가 있나. 그런데 사전이 은근히 그런 식이 많다. 여기서 내가 대추도 모르고 나무도 몰랐다면 더 폭발할 것이 자명하다.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필히 다른 개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여러 다른 개념들로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식이 딸리거나 표현력이 부족하면 별수 없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개념으로 분석틀을 만들고 그 아래에서 책도 까고 사람도 욕하고 방송도 비난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주 가져와 자신 있게 쓰는 개념이 바로 그 사람의 지적수준이고 인격인 것이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것도 실은 어떤 떠오르는 생각을 자기만의 개념으로 구성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개념을 구체화하고 또 상상을 개념으로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책은 많다. 이외수의 <감성사전>은 사물과 감정을 관점을 바꾸어 보는데 아주 유용하다. 사회학자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은 인문학적 통찰이 돋보인다. 이어령의 <젊음의 탄생>은 개념 짝짓기에 그만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은 내가 아는 것이 무척이나 없구나를 알려주는데 기여한다.

 

 

 

 

 

 

 

 

 

 

 

 

 

 

 

 

 

 

#3. 개념 오가는 장소를 위하여

 

 

그렇다면,

여기 알라딘은 개념이 무엇일까. 아니 알라딘 서재는 개념이 있는 곳일까. 사회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개념은 구체적인 사실들이 귀납하여 일반화된 생각이다. 예를 들어 시청자 대다수가 출생의 비밀, 불륜이 근간이 되어 배신당한 여인이 상상할 수 없는 복수를 하는 형식을 막장 드라마라고 할 때 ‘막장 드라마’의 개념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알라딘 서재는 공개와 비공개가 사이좋게 조화를 이루는 지역이다. 투명과 자율이 비교적 우선시 되는 개방성을 지향한다. 선택과 추천을 중요가치로 인식하는 곳이다. 분명한 건 무슨 개념이라 규정지을 순 없지만 칸트 쪽이건 마르크스 쪽이건 둘 다 개념이 있는 쪽은 맞다. 그러나 자율적 가치는 필히 균형과 책임을 수반한다. 상생의 생태계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권력자이고 협력자이다. 권력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는 헤게모니가 발생할 때 반사적으로 상응하는 가치집단이 생기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저들과 우리 편이 나뉘어 진다. 그러다 보면 뒷담화가 주담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앞에서는 좋아요! 했다가 뒤돌아서 웃기네! 가 되는 것이다. 소박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구리동전이 되지 말고 유리구슬이 되었으면 한다. 앞과 뒷면이 구분되어 존재하지 않고 입체적이면서도 속이 투명했으면 한다. 던져지지 않고 굴러갔으면 한다. 유리는 깨지기 쉽고 구슬은 정착하지 않으니 잃어버리기도 쉽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품에 주의하고 취급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막돼먹은 서재씨는 곤란하다.

 

 

아침에 이어령 전 장관의 딸 이민아님의 부고를 들었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위암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얼마나 눈 감기가 어려웠을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책도 한권 안 사봤지만 마음이 아프다. 엊그제 화이트 데이라고 동네 마트 총각이 롤리팝 캔디를 두 개나 주었다. 달달한 주말이 될지 알았는데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작가님의 명복을 빈다. 3월이 가고 있다. 성당에서 왔다고 무공해 사과 쨈 드리러 왔다고 하는 걸 야박하게 문을 닫았다. 공짜는 싫어요, 이렇게 말했다.(총각이 줄 때 낼름 받은 건 뭐고 ㅠㅠ) 

 

 

좀 더 정중하게 거절 할 걸 그랬다. 개념이 별 건가. 그 여자 참 개념없네, 나라면 그랬을지 모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3-1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사람님, 이 글 참 좋다..
앞에서 좋아요! 했다가 뒤돌아서 웃기네! 가 눈에 확 들어오면서 드물게 쉬운 글인데 생각하게 해요.
예민하면 글쓰고 그림 그리고 하는 예술가로서는 도움 되지만 보통 사람으로 사회생활하기에 힘든 것 같아요. 느끼는 건 본능적이고 예민한 편인데 실생활에서 타인의 삶에는 무심한 편이라 딱히 주는 게 없으니 받는 것도 적어서 별로 상처로 돌아오지 않는 게 제 삶에서 스스로 평행을 맞추는 건지, 그래서 제가 좀 편하게 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참.. 먹먹했어요. 살아생전 내도록 아프고 자식마저도 잃으신 분인데, 삶이 참 누군가에게 야박하구나..

그나저나 잼은 그냥 잼이었을까요?

한사람 2012-03-19 10:51   좋아요 0 | URL

문 닫고 나서 잼의 잔상이 한참 남았어요.. 사과잼이 예쁜 병에 더 예쁜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었죠.
우리집은 일층이라 가끔 그런 분들이 오거든요 ㅠ

저는 감수성도 필요이상으로 예민하고 이성의 그물도 쓸데없이 촘촘해요.
그래서 사는게 엄청 피곤하죠 ㅠㅠㅠㅠㅠ

어제 날씨가 완전 봄날이더만 오늘은 다시 변덕이네요
(실은 오늘 제 생일이라 굉장히 우울해요 ㅠㅠㅠㅠ 엄마 생각이 나서리...)

cyrus 2012-03-16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요.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어라고요,
언뜻 들어보면 별 것도 아니고 그냥 쉽게 지나쳐버리는 말이지만,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개념을 알고 있었야한다는 것은 중요한 삶의 진리인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왜곡된 의미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다거나
정말로 '개념'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무개념한 사람들이 많은거 같아요.

한사람 2012-03-19 10:54   좋아요 0 | URL

생각이 많아도 다 개념있는 사람이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살고 행동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실 생활에서는요.
물론 생각을 안했고 고민도 없었으니 그런 개념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거겠지만요 ㅠ
그런데 요즘 저 같으면 생각은 많은데
막상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아요..
특히 책에서 얻은 지식들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죠 ㅋㅋㅋ

가연 2012-03-1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라이더를 위한 개념어 사전은 제법 괜찮아보이네요ㅎ 그러고보면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의 저서 중간에 개념어 사전을 끼워넣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고대로부터 개념은 참 중요했나봅니다, 풋. 사실 근데 요즘 일반적으로 쓰는 개념있다, 없다와 같은 말과 독서할 때 쓰는 개념의 정립과는 좀 차이가 있는 듯도 하네요.

화이트데이가 며칠 전인데 저는 밥먹으러 갔다가 사탕을 받았.. 그리고 그 다음날 길에 서있었는데 Bar오픈한다고 왠 여성이 사탕과 명함을 주더군요. 젠장, 난 또 갑자기 똑바로 쳐다보면서 다가오기에 신종헌팅인가 했네!ㅠㅠㅠ ㅋㅋㅋㅋㅋ

한사람 2012-03-19 10:57   좋아요 0 | URL

예, 생각보다 괜찮아요.
개념정리 한 책이 좀 보편적인게 있었으면 했어요-철학쪽에서는요, 제가 좀 지식이 짧아서 ㅋㅋㅋ-
철학 아카데미에서 강의한 내용이라 기본에 충실했어요.

빠 오픈한다고 준 사탕과 명함이라...ㅋㅋ
옛날 생각나네요.
만약 그 여성이 아주 예뻤다면 십중 팔구 그 여성은 빠에 없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