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나 -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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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 아니어도 재차 옥수수와 닭의 의미를 해석하고 김영하의 작품세계로부터 감탄 혹은 비판을 할 것이다. 나 역시 지난 페이퍼에 이미 김영하만을 언급했기에 이번 리뷰에서는 우수상작만 모으고 싶었다. (하나로 모으자니 너무 길고 이미 쓴 걸 줄이자니 번거로와서...) 그런데 나는 나가수나 오디션 프로의 영향 때문인지 이 책에 실린 우수상 수상작에 순위를 매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편 심사위원들의 변을 보면 하나같이 마지막까지 김숨과 김영하를 놓고 고민을 했다고들 하는데 수록 순서는 그와는 상관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가나다 순도 아니고 서사의 흐름을 배려한 편집자의 순서도 아니고 무작위 제비뽑기 순서도 아닐 것이다. 읽을 땐 순서가 의미 없었는데 정작 우수상작만 따로 글을 써보려 하니 불현듯 순서의 의미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아마 등단연도 순인 듯한데 나는 내 맘대로 순위를 정해보았다. 순전 내 기준이고 내 기분 대로이므로 이야말로 의미는 없다.

 

 

 

 

1. 김숨 <국수>

 

 

 

   김숨은 작년에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소설엔 유난히도 국이나 탕을 끓이거나 생선을 튀기고 굽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풍성한 식탁이 아니고 가난과 질병, 죽음과 생계의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반복되는 일상의 편린 속에서. 그녀의 소설을 읽고 있다 보면 아무리 하찮은 생명도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는 삶의 의지가 살아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서늘하게 깨우치게 된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이 숨 막히는 현실과 숨 쉴 틈 없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 생명의 맥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끈질기고 더 위대한 것은 아닐까를 조용히 느끼게 된다. 이번엔 국수 밀가루 반죽을 하는 시간이 고통스럽게 전개되는 서사를 다루었다.

 

 

   마흔셋의 석녀가 재취로 들어와 자기 속으로 낳지 않은 의붓자식을 기르면서 수없이 치대던 밀가루 반죽의 의미는 이미 맏딸이었던 야박스런 화자가 계모의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비로소 원망의 국수가 아닌 화해의 국수로 변모한다. 화자는 밀가루를 양푼에 개고 간을 하고 반죽을 하고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양념장을 만들고 국숫발을 뽑고 끓여 국수 한 그릇을 완성하는 동안 한 많은 한 여인과 자신의 일생을 연결 지으며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을 가진다. 뽑아놓은 국수 한 가닥이 꼭 ‘저기 당신과 여기 나 사이에 놓인 연줄’만 같아서 도로 뭉쳐버리고 싶지만 시간을 견뎌내고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어머니 앞에 국수를 내놓는다. 이야기의 속도감이 부족하고 서사의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 하였지만 기껏해야 멀건 국수 한 그릇 만들어 내놓는 일을 이렇게 끔찍하고 디테일하게 그리고 서글프고 아프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어 가장 많은 공감이 갔던 작품이다. 아마 한번이라도 국수를 끓여 본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그러 할 것이다.

 

 

반죽의 시간이 당신에게는 혹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p244

 

 

   오래전 젊었을 때 생선을 갈아 어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 절대로 그 어떤 어묵도 안 드신다는 어르신이 생각난다. 어떤 한 가지 음식의 공정을 아주 긴 시간 반복해서 기술적으로 완성하는 세월을 가진 사람들은 달인처럼 아마도 그 음식의 자타공인 전문가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세월이 그 음식만을 하도록 만드는 시간이었다면 아니 그 음식만이 그 세월을 견디는 시간이었다면 그는 세월이 원망스러울까 음식이 원망스러울까...... 김숨은 세월도 음식도 소중한 자기 생의 일부분이었고 그렇기에 국수를 지겹게도 만들어준 그분의 일생도 소중했다고 회상한다. 늘 그렇듯 그 고마움을 느낄 때란 그를 잃고 나서이다. 아직 삼십대 후반인 그녀가 무에 그리 깨우친 삶의 이치가 많은 것인지 나는 그것이 소름끼친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번엔 당당한 대상의 수상 소식을 기다린다.

 

 

 

2. 조현 <그 순간 너와 나는>

 

 

 

   이 작가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소설집에서 아주 난해한 단편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찾아보니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라는 단편인데 현장비평가가 뽑은 2010 『올해의 좋은 소설』(2010, 현대문학)에 수록 되어 있다. 그때도 김숨, 박민규, 권여선, 김경욱 등과 같이 선정된 것이었는데 내 기억으로 그들 소설 중에서 전혀 서사자체가 기억이 나지 않는 소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어느 정도 작가의 어린 시절이 반영된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단연 이야기가 탄탄한 구성이 재미난 소설이구나를 느끼게 해주었다. 심사위원은 쓸데없는 에피소드가 많아 다소 구성이 산만하다 하였지만 분량도 그렇고 외려 장편으로 구성한다면 좋지 않았을까, 나름 상상을 해보았다. 나이 상으로도 같은 연배이고 나 역시 비슷한 시기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어린 시절에 처음 보았던 서울의 삼십년 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지라 공감도가 더 컸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시골에서 상경해 80년에 왕십리역 근처로 이사 온 화자가 삼십 년이 지난 오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 가겠다는 각오로 끝맺는다.

 

 

살아 남아야 생을 바꿀 수 있고, 정말로 간절한 무언가를 찾아 낼 수 있다.  - p367

 

 

   왕십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화자는 다 가진 것으로 보여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친구 민혁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에 가면서 당시 미래를 엿볼 줄 알았던 무당집 딸을 떠올린다. 이상하게도 무당집 딸과 친분이 있었던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불행의 사연을 간직하게 되는데 그중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나는 살아남는 것이야 말로 어떻게든 운명을 바꿀 기회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무당집 딸의 예언대로 내일 죽는 운명일 지라도 오늘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네 서글픈 운명이라고 들려왔다. 우수상 수상 작가들 중에는 가장 늦게 등단한(2008) 작가로서 아직 장편이 없는 듯 한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3. 김경욱 <스프레이>

 

 

 

   이 작품은 읽는 내내 하성란의 <곰팡이꽃>을 연상시켰다.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수집하며 소통 불가한 이웃들을 이해해보려는 한 남자의 집착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쓰레기 봉투가 이번엔 택배상자로 바뀌면서 단순한 실수가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사고와 연결되어 가는지 서사를 흥미롭게 구성하였다. 다만 그 구성이 흡사 기술자가 조립해 만든 레고 작품처럼 딱딱 들어맞도록 너무 완벽했다는 것이 주제가 약하다는 식의 심사평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이 백화점 구두잡화매장에서 일하는 점원이었다는 것. 단골가게의 점원이 하도 손님의 발을 만지면서 늘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다 보니 집에서도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으며 죄송합니다, 라고 했다는 일화가 기억났다. 화자이며 주인공인 구두점원은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스트레스의 탈출구로 남의 택배상자를 택했다.

 

 

잘못 들고 온 택배상자를 뜯을 때의 쾌감을 잊을 수 없었다. -p182

 

 

   이 작품의 매력은 도대체 끝이 어떻게 될지 결말을 향한 매순간마다의 긴장감인 듯하다. 김경욱은 다른 문학상 수상 후보에도 꾸준히 오르는 작가이다. 장편 <동화처럼>에서 실망한 기억이 있어 예리하다는 소설집을 아직 넘겨보지 않았던 터였다. 페이지의 가독력이야 김영하 못지 않았는데 결말이 좀 새롭지 않아서 였을까.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결말보다는 신선하지 않은 결말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거장들은 대부분 차라리 새로울 수 없다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도록 결말을 맺으라고 했던 것 같다. 독자들은 결말에서 만큼은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데 난 결말을 택하고 결론짓는 것은 모두 작가의 한계치를 상징하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새로움만을 지향할 수도 없고 또 새롭다 예상하여도 작가의 생각만큼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새로움은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보다는 이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둔 듯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어쩌면 조금 덜 소설적이지 않았나, 감히 판단해본다. 그런데 또 난 이런 짜 맞추어진 소설이 늘 즐겁고 짜릿한 독자였다. 기대한 대로 끝나주는 것도 좋더란 말이다. 어떤 이야기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결국 나는 어디서 생겼을지도 모를 작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김경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4. 최제훈 <미루의 초상화>

 

 

 

   김경욱과는 반대로 이야기의 구성은 퍽이나 흥미로와 좋았는데 너무 소설적이어서 좀 그랬던 작품이다. 최제훈은 어쩐지 이야기를 경영한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 그것도 굉장히 효율적으로. 결과적으로 높아 보이는 완성도가 소설의 신비감을 떨어트린다고나 할까.

 

 

   이야기는 기인의 풍모를 하고 대학로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어느 화가의 고백과 그 초상화에게 여자 친구의 그림을 부탁한 대학생의 사연이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지다가 마지막 초상화 그림에서 합쳐지는 구성이다. 화가의 궤변과도 같은 예술 사랑과 인간 사랑의 의미를 읽어가다 보면 예술과 사랑의 합일을 이루었다 생각하는 화가의 일생이 위대해보이기는 커녕 한없이 비루하고 이기적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마지막 여자 친구의 초상화에서 화가가 발견한 생의 진리(?)를 똑같이 발견해 내는 주인공의 착각은 왜 화가 나는 것일까......

 

 

   나는 솔직히 예술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예술 하는 것의 의미를 죽는 날까지 정립하고 그것을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든 못 벌 든 자기예술의 의미를 스스로 정립하고 그것을 자기 정체성으로 삶는 일은 생존만큼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생존의 이유일지 모른다. 최제훈은 자신이 글 쓰고 싶은 이유를 알고 싶어서 글을 쓴다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작가는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를 오래 생각해 온 것 같고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늦게 시작한)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가는 다름 아닌 이 소설을 쓰는 이유와 이 소설의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미루의 초상화'는 예술과 사랑, 이상과 현실이 모두 담겨있는 자기중심적인 예술의 총체, 즉 예술가의 인생이 응집 축약된 유기적인 결과물인 듯하다. 예술은 어쩌면 무언가를 죽여서 녹여낸 신비하고 야릇한 생명체 일지 모른다. 비록 생과 사라는 폭력을 녹여낸 것이지만 또 다른 생명을 위무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할 뿐인 것이다. 소설가 역시 어떤 말 안 되는 죽음과 기가 막힌 고통을 빚어낼 지언정 이야기로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려선 안 될 것이다. 최제훈은 그것이 자신에게 소설 쓰는 소설가임을 이해시키는 방편은 아닐까.

 

 

 

5. 조해진 <유리>

 

 

 

   이 작품은 이름이 한유리인 한 대학강사의 유리같은 인생을 위태롭게 조망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유리로 상징되는 상처의 표상을 너무나 강렬하게 묘사한 덕분이지 서사가 묻히는 느낌을 받았다. 즉,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기는 곤란한 심경이다. 남는 것은 상처의 내용이 아니고 상처의 외면, 즉 상처의 형상이 제시하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다만 읽는 내내 사방 유리에 찔리고 유리를 밟는 것과 같은 ‘통증의 촉수’를 세심하게 감지할 수 있어서 독서 후 불쾌한 느낌만은 최고로 생생했던 것 같다.

 

 

   K대에서 글쓰기 강의를 맡고 있는 강사 한유리에게는 열 네 살 이전의 기억이 모두 유리로만 이루어진 도시에서 살았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환경과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주인공이 유리도시에서 깨달은 삶의 진리는 아마도 ‘자신이 깨지지 않으려면 상대를 깨트려야’ 한다는 잔인한 현실인 듯하다. 그러나 유리에 짓밟히면서 얻은 교훈도 그녀를 유리보다 강하게 만들어주진 않은 듯했다. 그녀는 강의 전담 계약직 교수를 채용한다는 학교 공고에 불안을 느끼고 시답지도 않은 한참어린 제자와 도피의 여행을 떠나고 만다. 그녀에게 현실은 여전히 ‘입구도 출구도 없는 밀폐된 유리알 속’인 것이다.

 

 

짓밟히지도, 짓밟지도 않으면서 그 모든 곳들을 통과하려 했으나 돌이켜보니 세상은 늘 상처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유리일 뿐이었다. 상처가 남아 있는 한, 완벽한 망각은 불가능했다.    -p284

 

 

   이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소설 전반을 은밀하게 흐르던 여성의 피해의식이 지나치게 과하게 심층화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논리적으로 이해가지 않았던 것이 한유리의 어린시절 상처가 너무 특수화(?) 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유리의 아픔과 주인공의 아픔이 일체되지 않는 괴리감을 제공하기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는 한번 읽어보고 싶다. 중간 중간 ‘통증의 촉수’를 자극하는 문장들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6. 하성란 <오후, 가로지르다>

 

 

 

   이 작품은 거의 대상을 수상할 뻔(?) 하고도 마지막 서사의 한 자락에 어떤 작가의 고집 때문에 급격하게 서사가 흩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격으로 화가 나는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다. 심사위원 중에 여자가 뺨을 맞은 이유가 무엇인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은 것을 지적한 분이 있었는데 나 역시 그 이유를 왜 언급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가장 짜증이 났다. 무언가 대단한, 아니면 어이없는 이유는 있겠지 하고 끝나는 느낌이 배심의 클리세 처럼 느껴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하성란의 작품에서는 독자와의 소통, 이해보다는 자기만의 주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무언지 모르게 이 작품이 그랬다. 작가의 이유야 너무나 분명하게 있겠지만(큐비클은 원인 따위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 이유가 내게는 아픔이었네... 하듯 이번엔 그렇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80년대 상사의 분위기를 기억하는 사십대 중반의 미스 김, 이제는 갱년기를 앞두고 신입사원들과의 세대 차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말단 회사원이다. 작가는 신도시와 구도시의 경계를 확연하게 구분 짓는 이미지를 큐비클로 조형화하고 이를 삼면이 칸막이로 막힌 사무실내 구조와 동일시한다. 그리고 직원들이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자신을 알릴 유일한 방법으로 내세운다. 큐비클 속에서 싹트는 동지의식을 면밀히 투시한다. 그 비인간적이면서 별다를 것 없는 조직의 에피소드가 이 소설을 이루는 큐비클의 조각들이다.

 

 

맞습니다. 저는 길을 잃었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p220

 

 

   현실의 큐비클은 너무나 쉽고 너무나 분명하고 단순해서 삶의 길을 잃었다는 역설이다. 이는 바닷가에서 사람이 빠져서 찾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논리이다. 바닷속은 그 컴컴한 물길이 들여다보이지 않기라도 하는데 큐비클은 고개만 들면 훤히 속이 내다보이는데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초반, 중반의 기대감이 후반부에서 지속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일을 밀착 취재한 듯한 느낌의 하성란식 치밀 묘사는 소설은 결국 여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꿋꿋하게 알려준다. 올해는 제발, 에이와는 다른 소설을 만나고 싶다. (A도 독자를 배려하는 소설은 아니지 않나......)

 

 

 

7. 함정임 <저녁식사가 끝난 뒤>

 

 

 

   오래된 지인들을 초대해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의 소회를 담담히 적어 내려가는 류의 소설은 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교수나 의미 있는 직책에 오른 여성작가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식사를 준비하며 과거를 회상할 것이고 반드시 사연이 될 만한 누군가가 표면에 등장할 것이고 그와의 인연에 놓인 지인들이 하나둘 나타날 때 화자의 심경변화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불같은 청춘의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만한 지위에서 자신과 비슷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떠드는 자리는 누구를 위한 모임이며, 무엇을 위한 대화이며, 어떤 이를 위한 시간일 것인가.

 

 

   내 기억으로 이들은 대부분 이제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인들의 위선과 가식에 실망을 하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이 났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건 화자인 순남씨가 여행지에서의 사진이나 은촛대, 괘종시계, 색소폰 등의 소품과 관련된 자기 사연을 간간히 믹스하였다는 것인데 초반부 무언가 큰 비밀이 있을 것 같았던 은촛대가 나중에 힘을 받지 못하고 유야무야하게 사라진 것이 서운했다고 할까. 이야기는 갑자기 나만 몰랐던 이야기로 끝이 나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만 그렇다고 앞부분에서 페이크인척 하였던 자기 집중의 서사가 결말을 위한 설득을 가지진 못했다는 점에서 좀 뜬금없다는 기분이었다.

 

 

   또 하나 이 소설은 순번 상 마치 나가수 1번 가수의 노래가 7번 가수의 노래를 듣고 나면 대단치 않을 경우 기억에 가물가물한 이치와도 같았다. 무언가 진부하다는 느낌도 서사가 갈피를 못 잡았다는 느낌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우수상 수상작 중 꼴찌를 주었다. (아...어쩐지 인순이가 꼴지한 느낌은 무엇인가...)

 

 

 

 

 

    아쉬운 게 있다면 지난번까지 우수상 수상작도 (뒤편에)따로 평이 더해졌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 김영하에 치중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묘한건 평가식으로 글을 모두 적고 나니 또 대상은 김영하가 적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등은 일등의 실력 때문이 아니고 일등을 할만한 이유가 있을 뿐...) 나가수 식(자문위원식)으로 말하자면 함정임과 하성란은 주제를 상징화하는 무대의 관록을 엿볼 수 있었고 김경욱과 최제훈은 치밀한 구성으로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고, 조해진은 섬세한 감성의 표현이 돋보이는 묘사의 절정을 보여주었고, 조현은 서사에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든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었고, 김숨은 소름끼치는 가창력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감동을 선사했다. 모든 작가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마치 심사위원이나 된듯이 우쭐하구나 ㅋ) 좋은 소설, 좋은 작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분명한 건 내가 그들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고 그저 그런 오늘, 어제와 달라질 것 없는 오늘을 보내면서도 새로운 내일을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에겐 당신들이 피할 수 없는 문학의 ‘큐비클’이고 안 먹을 수 없는 ‘옥수수’이고 매번 기다려지는 ‘국수’이고  입출구 없는 ‘유리’알 속이고 30년 전 ‘왕십리’이고 기다려지는 ‘택배’상자이고 살아있는 ‘초상화’이고 일 년에 한번 있는 ‘만찬’이다. 이상으로 다소 빚진 심정이었던 이상문학상의 리뷰를 마친다. 나의 이상은 언제쯤 날개를 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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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1-2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잘 읽었습니다.
전 언제부턴가 더이상 김영하는 읽지 않지만, 이 페이퍼를 보니 김경욱은 끌리는 걸요.
근데 말이죠, 근데 말이죠~
김경욱 얼굴이 윤상 버젼으로 나왔어요.
이 말 들으면 김경욱이 승질 낼까요, 아님 윤상이 승질 낼까요?
옥수수 먹고 싶어요.
목욕 가야 하는데,
목욕 가면서 옥수수 파는데 없나 찾아보려구요~^^

노이에자이트 2012-01-2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의 초창기 화제작 '투견'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왠지 묘한 분위기...개도살하는 장면을 정말 실감나게 묘사했어요.

작가 나이 삼십대 후반이면 인생에 대해 충분히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닐 나이라고 봅니다.작가가 인생을 보는 통찰력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듯해요.

2012-01-30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2-01-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난 딱 김영하만 읽었어.
재밌더만. 허전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김영하답다~는 느낌이었어.

니가 매긴 순위에 따라 다음 작품을 한번 읽어볼까?
나도 우수상의 순서가 무엇일까.. 의아해 하다가 말았음. (난 요렇게 포기 잘함)
맨날 의전을 하다보니 순서가 중요하게 생각되기까진 해.

함정임을 인순이에 비유했네. 좋아했던 작가인데^^

그나마 난 요즘 조금 정신이 나는 시기야. 바쁜것 좀 끝났고...
이제서야 2012년을 시작하는 느낌^^
직장녀는 인생의 촛점이 그저 회사라우~ ㅋ


아이리시스 2012-01-31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도 공지영 만큼이나 어색하네요, 저 자리가ㅋㅋㅋ
저는 매번 욕심만 내고 문학상 수상집을 잘 못 읽어요.
사놓고 몇 년 된 것도 있고요. 이거 너무 재밌어요. 우수상 수상작들까지 분석해주시고^^
진짜 한 권 읽은 듯한 느낌이네요.
저는 문체가 좋은 작품이 좋더라고요. 내용까지는 아직 잘 못 보는 것 같아요.

여기도 함정임쌤이 계시네요. 제가 4학년 때 저희 학교로 오셔서 소설이론과 창작을 강의하셨어요.
바로 그 다음해에 졸업을 해서, 제 지도교수님은 강은교 쌤이라 잘은 모르지만요.
그래서 매번 반갑네요. 그런데 몇 번째 우수작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