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문학상, 이상하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가 읽어본 이상문학상 수상작중에서 가장 웃겼다.(우습다는 것이 아니고 정말 내용이 웃기다) 읽는 동안 자주 킬킬거리다가 설마 이렇게 끝나진 않겠다 싶을 즈음 ‘나는 옥수수가 아니’라니... 물론, 문학상 수상작이 늘 심각하고 어려워야 한다는 건 아니다.(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어려울 수도 있다) 이상문학상이 타 문학상보다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고급스럽게 펼친 작품에 돌아간다는 사실도 모르진 않는다. 우수상 수상작이 <옥수수와 나>보다 덜 문학적이어서 수상치 못하였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문학에 감동받는 것 또한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내 느낌이 일반적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가 읽어 본 문학상 수상작 중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김영하 식으로 말하자면, 문학상 수상작이 어렵든 쉽든 그게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육체적, 물질적 욕망이 삶의 진정성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환상적 기법으로 서사화’하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환상적 기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한 페이지 분량이었고 그것도 ‘기법의 서사화’라 보기엔 너무 큰 확대가 아닐까 싶다. 마치 대단히 예술적인 고견을 가지신 분들이 일반인은 이해하지도 감동받지도 못하는 어느 예술작품을 앞에 놓고 뷰티풀, 원더풀, 환타스틱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유명한 화가가 선을 하나 그리면 예술이고 찌질한 연습생이 선을 그리면 낙서인 것과 같다고 까지 말하면 너무 비약하는 것일까. 늘 익숙하던 김영하식의 블랙유머에 가까운 옥수수 개념이 갑자기 거창한 문학사적 의미로 발견된 것 같아 좀 웃겼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작품을 덮고 이상문학상은 1등을 선정하고 나서 확실한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작품을 결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평론가 장두영의 <옥수수와 나>의 작품세계야 말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문학상이다. 문학상은 작품집필이 아니고 작품해석이다. 훌륭한 해석을 할 수 있다면, 즉 문학적 성과가 높다기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문학적 성과라 칭할 수 있다면 그 작품이 수상작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정말이지 장두영의 해석을 보고서 미처 그렇게까지 심오하게 생각하지 못한 내 자신의 수준을 한심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물론 한국문단을 이끌어 가는 대가 심사위원들의 생각은 (내가 무어라고)일개 독자에 불과한 나와는 퍽이나 의견이 다르실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나와 꼭같은 생각을 하는 분도 있을 것이라는데 감히, 오백원을 건다. 그동안 문학적 성과라 칭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박민규나 공지영도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박민규의 <아침의 문>이나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에서는 웃다가 허탈하진 않았던 것 같다. 평론가의 해석과 심사평을 읽고 어느 정도 내가 엿본 공감의 요소를 발견하고는 했던 것 같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라 하여 불쾌하진 않았던 것 같다.

 

 

   또 하나 올해는 문학사상이 창사 40주년을 맞아 표지와 판본 디자인을 바꾸었다. ‘권위와 전통,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책이라는 느낌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고 대상 수상 작가와 그의 작품이 한눈에 들어오게 디자인’하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소설책이라는 느낌은 충분했고 전보다 더 젊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권위와 전통은 멀어졌다. 전에는 수상자의 자선대표작과 해설 등이 25프로 정도였는데 이번엔 <옥수수와 나> 자체 분량이 많은데다가 수상소감을 비롯해 중간에 자서전식의 소설과 염승숙 작가의 김영하 작가론까지 더해져 거뜬히 삼분의 일 분량을 넘어가는 구성이다. (만약 <옥수수와 나> 뒤에 수상소감이나 자선작, 자서전, 작가론, 평론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무척 화가 났을 것이긴 하지만) 이른바 김영하 특집이다. 앞의 표지사진까지 역시 이긴 자가 다가지는 건 맞다. (다른 분이어도 그랬을까? 마케팅적 요소에 치중한 덕인지 내가 받은 책은 벌써 1판 8쇄였다. 이상문학상이 뜬 날 바로 문자 받고 주문했으나 그랬다... 더 불쾌했던 건 소개된 19일 날 주문하고도 연휴 전에 택배사정 때문에 받지 못하였다는 것) 전에는 우수상도 수상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엔 김영하만 수상자고 나머진 후보작의 느낌이다.

 

 

 

   나는 김영하의 작품을 비하하거나 그가 이룬 성과를 폄하하거나 절대 이상문학상의 권위에 먹칠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저 내 느낌을 말하다보니 할 수 없이 이런 글이 되었다. 바로 전에 읽은 책에서 무언가를 비판하는 것은 모두 자기과시의 일환이라는 충언을 따끔하게 받았으면서도 또 내 자신을 이기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그저 이 불편한 마음을 나름 해소할 수 있는 건 소설을 한 번 더 읽고 내가 느낀 김영하와 옥수수를 차분하게 자근자근 씹어 보는 수 밖에 없을 듯하다.

 

 

 

#2. < 옥수수와 나 > 만 씹는다

 

 

 

   먼저 수지라는 출판사 편집자와 이혼한 ‘나’, 박만수는 쫑이라는 호승심 강한 딸아이가 이혼할 때 제 어미를 택한 것을 인생의 행운으로 생각하는 40대 작가이다. 계약금만 먹고 세월만 보내고 있던 나에게 월스트리트 출신의 출판사 사장은 수지를 시켜 원고독촉을 한다. 참,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소주와 삼겹살이 아닌 와인과 치즈를 즐겨, 마신다. 박만수의 딸 쫑이는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아 놓았단다. 그러니까 글이 안되어서 뉴욕으로 날아가는 수준이다. 나는 솔직히 김영하의 작품에서 어떤 주인공이 절망을 한다해도 어떠한 인생의 패배감은 느껴본 적이 없다. 그들은 늘 찌질하고 돈없어도 수준만은 강남파이다. (나중에 언급할지 모르겠는데 이것이 김숨의 작품이 미끄러진 결과를 더 아프게 한다. 그냥 개인적으로 김숨이 꼭 다음번에 수상하기를...)

 

 

 

1. 킬킬거린 웃음지대

 

 

 

   “비밀이라는 것 보니까 뭔가 괜찮은 거 쓰고 있나봐.”
   “뭐 다 써봐야 알지. 열심히 쓰고 있기는 해.”
   모든 작가는 편집자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뭔데 그래? 나한테만 살짝 알려줘.”
   모든 편집자는 이렇게 작가의 말을 믿는 척한다. 나는 그냥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일제시대의 유랑 곡마단 얘긴데, 이걸 라틴아메리카 풍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푸는 거야.”
   구상을 편집자에게 말할 때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초현실주의를 슬쩍 언급해주는 게 좋다. 그러면 편집자는 자기
 마음대로 스토리를 상상하기 시작
하고, 곧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한다.
   “재밌을 것 같은데?”
  전처까지도 이렇게 넘어가는 것을 보라. 이게 마술적 리얼리즘의 마술적이면서도 리얼한 힘이다.   -p19

 

   김영하의 단편은 술술 넘어가는 탓에 쉬운 생각이 들지만 이면에는 늘 아는 사람만 알고 이해하라는 식의 농담이나 대사가 포진되어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이렇게 상상해본다. 모든 심사위원들은 ‘자기 마음대로 스토리를 상상하기 시작하고, 곧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김영하는 서사에 마술적 리얼리즘을 마술적으로 리얼하게 구사했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옥수수로 변하는)이것도 마술적 리얼리즘이지 않느냐 반박했을 뿐인데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생각이다. 김영하 작가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마술적이면서도 리얼한 힘’을 믿었고 심사위원은 그 힘을 느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건 독자인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김영하는 절대 일부러 그럴 작가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무엇보다 기획력이 탁월한 듯하다.


 

2. 갸우뚱거린 물음지대

 

이상하게 수지를 만나면 나는 그 옛날의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응석을 부리고 어깃장을 놓고 위로를 구걸한다. 나는 이제 옥수수가 아닌데, 정말 옥수수가 아닌데, 그런데 수지가 그걸 모르고 있으니, 내가 이제 더 이상 옥수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   -p21

 

   작품 도입부에 ‘나’라고 추정되는 환자는 닭이 아직도 자신을 쫓아오는 것 같다고 그것이 무서워 죽겠다고 의사에게 말한다. 의사는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이제 아시지 않느냐 반문한다. 그러나 나로 추정되는 환자는 답한다.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슬라보예 지젝이 즐겨 인용하는 동유럽의 농담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나는 더 이상 옥수수가 아닌 걸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데 저 닭들은 그걸 모르니 아무 의미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건 ‘나’가 아니라 ‘당신’과 ‘닭’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나’로 추정되는 작가를 알고 있는 당신과 나이다. 내 생각에 심사위원 입장에서 ‘닭’은 우리이고 우리 입장에서 ‘닭’은 우리만큼 김영하를 모르는 나머지이다. 이 작품은 옥수수를 말하고 있지만 실은 옥수수가 옥수수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닭을 조롱하고 있다. 누가 되었건 ‘닭’을 상상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짜릿한 쾌락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내가 무엇인지 말하여도 상대가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 무엇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아무리 이렇다 떠들어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에겐 글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 뜻 아닐까. 상대가 아느냐 모르느냐의 여부가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 된다는 건 철저히 내 중심이 아니고 그걸 인지하는 상대에 맞추어져 있다. (작가가) 아무리 혼자 방구석에서 피터지게 떠들어 본들 세상에 글로 나오지 못한 생각은 (작가 독자 모두에게)의미가 없다는 말도 된다. 이 화두는 결국 작품 맨 마지막에 의식의 안개를 뚫고 서서히 드러나는 하나의 문장,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 란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게임으로 귀결된다.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 너는 그걸 아느냐는 최종질문이다. 안다면 내가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안다는 것이므로 퍽이나 다행이라는 말이고 설령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큰 의미는 없다는 뜻이다. 정말 웃다가 기분 묘해지는 의미심장한 결말인 것이다. 내가 모를까봐? 풋. 이정도도 모를까봐? 아니라는 거 안다구. 근데 뭐, 아니면 당신이 뭐가 좋은데? 내가 당신 아닌 거 안다는 거 그게 그리 중요한가? ......, 작가에게, 그것은 가장 중요하구나. 암것도 모른다면 공감은 커녕 반감만 들기 마련이지. 즉 자기가 아는 걸 독자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구나. 옥수수가 아닌 걸 알아달라는 건 반대로 옥수수였을 때도 이해해달라는 것이구나. 옥수수 아닌 나도 옥수수였던 나도 알아주길 바란 것이구나. 그러니 당신들이 닭이기를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구나...

 

 

   옥수수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도 이 작품을 읽어가는 재미의 하나인데 만약 옥수수를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의 총체라고 본다면 어떠할까. 알알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옥수수를 받아든 독자는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옥수수를 깨끗하게 먹어치울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거나 치아가 좋지 않거나 먹다가 맛이 없어진다면? 나는 작가가 의도한 바가 꼭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김영하의 고민을 슬쩍 엿보았다. 바로 월 스트리트 출신 출판사 사장이 작가의 데뷔작에서 최근작까지 모두 초판에 사들여 책 갈피마다 빼곡이 메모를 적어 놓은 것이다. 그 초판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내밀었을 때 작가 박만수는 자신의 옥수수가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다 소화된 것으로 기대한다. 사장은 동시대에 박선생 같은 작가가 있다는 게 삶의 위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나'는 그 말에 얼마나 감동했던가. (쎄씨봉 윤형주의 팬이 그랬다지, 나와 동시대에 살아주셔서 죽도록 감사하다고...) 여기서 김영하는 옥수수를 알아보고 먹지 못하는 상대(독자)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아니 상대의 태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사장은 자신이 읽은 내 책에 대해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작가라고 자기가 쓴 책의 내용을 전부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 역시 잊어버리거나 엉뚱하게 기억한다. 따라서 작가와 독자가 만나서 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제나 다소 뜨악한 분위기로 흘러가게 된다. 이렇게 어긋나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었지만 사장과의 대화는 유독 많이 엇갈렸다. 내 책의 여백에 자기 나름의 대안적 스토리를 자꾸 적어 넣다 보니 마치 그것이 원래 스토리였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나는 그런 일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독자가 어떻게 기억하고 있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8p

 

 

   내가 옥수수였던 것과 지금은 아닌 것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몰라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 부르짖는 것은 제발 이 작품을 읽는 사람만은 알아달라는 역설의 호소 인 것이다. 혼자서 대안적 스토리를 만들고 그것에 감동해 놓고 자기 작품에 칭찬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벌이엔 동물적 감각으로 일가견이 있는 월스트리트 출신 출판사 사장같이 굴지 말고.


 

 

3. 육체적 깨달음지대

 

 

   ‘나’에게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시를 쓰는 친구와 시를 쓰며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섹스 파트너가 있다는 것이고 나처럼 문학을 하는 것이다. 철학과 카페사이에 교집합을 시로 정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철학은 관념을 카페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보여 지며 ‘나’는 소설을 그들은 더 고결해 보이는 시를 쓴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 모두는 각자 자기 논리대로 불륜을 정당화하는 위선자로 느껴졌다. 철학은 카페의 아내를 만나고 카페는 여군장교를 만나고 ‘나’는 출판사 사장의 아내와 자게 된다. 아내였던 수지도 철학을 만난다. 어찌 보면 가장 부도덕할 줄 알았던 자본가, 출판사 사장만 깨끗하다. 왜? 단순하고 정확하고 효율적이니까. 그에 반해 시쓰는 친구나 평론을 자처하는 수지나 모두 자기 해석을 덧붙이며 자신을 변호하는데 여념이 없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며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p23

 

   이 대답이 잠시나마 뭉클했던 건 소설가는 머리나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그리고 갸우뚱 했던 건 꽤나 도시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김영하도 같은 것일까 새삼 놀라웠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육체적, 물질적 욕망이 삶의 진정성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은 환상기법이든 무엇이든 소설이라는 육체적 과정을 거침으로써 더욱 숙연해 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환상과 마술을 앞세워도 결국 몸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지 누구를 가르치거나 평가하는 것은 다른 몸이 한다는 것이다. (육체노동자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후반부에 육체를 엄청나게 운용하는 것이 아닌지...)

 

 

   '나'는 자본가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외려 곤경에 빠트리고자 ‘어지럽고 음란하고 실험적이면서 해체적인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있지도 않은 곡마단 마지막 생존자를 핑계로 뉴욕으로 떠난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뉴욕의 아파트를 선뜻 제공한 출판사 사장의 음모 또한 대단히 육체적이었다. 작가 박만수는 뉴욕에서 미모의 출판사사장의 아내와 조우하며 쾌락에 내몰리고 그 열정으로 예술작업에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된다. 사장이 불시에 침입해 소설이 진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급한 쓰레기라고 비난하자 나는 반박한다.

 

 

“쓰레기라니요? 이해가 잘 안되네요. 물론 이 소설의 창작동기가 불순, 아니 불명확했던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막상 쓰기 시작하자 신비스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어느 정도는 겪는 현상입니다만 작품이 작가 자신을 배반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번 경우에는 저 작품이 저 자신을 초월해, 저의 비천한 문재와 사상을 훌쩍 뛰어넘어 저 홀로 놀라운 지경으로 가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이 원고는 작가 박만수가 아니라 저의 손을 빌려, 아기 예수가 성모마리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셨듯이, 이 세상에 지금 오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씀드려 기분이 나쁘실 수 있는데, 그렇죠, 선승들 같았다면, 한 소식을 했다, 뭐 그런 식으로 말들 했겠죠“    -p59

 

 

   작품이 작가를 배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초기 구상이 완벽하더라도 글을 이루는 과정상에서는 그렇지 않으며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대단한 구상보다는 일단 써야 한다는 현실을 강조하는 문법이다. 남의 아내와 밤새 뒹굴었건 밤새 잠을 잤건 어쨌든 처절하게 육화된 원고를 써 내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누구도 쓰레기라 할 자격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가들이 소설 쓰는 과정이나 안 써지는 과정을 말하는 작품들을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그 작품이 끝남과 동시에 작가자신도 소설을 끝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 하는 뉘앙스를 발견하게 된다. 육체의 사력을 다해 힘겹게 써내었으니 더 이상 나는 옥수수가 아닌 것이다. 당신도, 그런 줄 알으란 뜻이다. 아니, 제발 당신만은 좀 알아 달라는 것이다.

 

 

   김영하는 작품 전반에 자기 목소리를 싣는데 있어 조크와 냉소를 이용하는데 능숙했다.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이라는 난해하고 음란하고 해체적인 책의 저자’였다고 문학적 자서전 <나쁜 버릇>에서도 주장하고 있다.(이 소설 골때린다) 실패자들이 골방에 모여 퇴폐적인 글을 전파하여 젊은 영혼들을 타락시킨 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작가를 평가하는 집단이 재판하는 나쁜 버릇이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작품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글을 쓰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부연한다. 작품성의 평가에 개의치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다시 말하면 당연히 고맙긴 하지만 이 상도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은 역으로 이 상이 글쓰는 작가에게는 누구에게나 당연하다는 뜻으로 뒤집힐 수도 있다. 다만 ‘해야만 한다고 믿는 그 일로’ 돌아가는데 이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작품 말미에 출판사 사장이 권해준 약은 아마도 그 앞으로의 더 지난한 고통과 세월을 이기라는 극약 처방은 아닐까 싶다. 약먹은 후 달라진 세상에서 쓴 첫 문장이 말해준다.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는 절규는 그것을 깨달은 작가 자신의 믿음은 아니었을지...

 

 

 

 

 

 

 

 

 

 

 

덧붙임)

김영하만으로도 충분히 길어서
나머지 우수상작은 더 줄여서 정리할 생각이다.
김숨이 아깝긴 한데, 뭔지 모르게 언제나 2프로 부족하다.

(독자마저 김영하만 떠드는구나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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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1-2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소설이 '재미있어서' 김영하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
그런데 이번에도 김숨은 우수상인가요? 작년에도 우수상인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도
우수상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군요. 작년에는 공지영이라면, 올해에는 김영하가 이상문학상에서 단언
눈에 띄네요 ^^

한사람 2012-01-28 09: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작년에도 우수상이 김숨말고도 김경욱이 있어요.
그 중에 김숨의 단편 당연히 기억나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렇게 우수상 타다보면 나중에 대상이 될 확률이 많은 것 같던데요.
이번에도 김영하와 김숨이 끝까지 경합을 벌였다던데..
<국수>는 새로움이 없어가지고 , 하하

평소에는 작가에 대한 호감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가
누가 상을 탔다고 하면, 아쉽거나 좋거나 하잖아요..
그럴때, 내가 이 작가를 좋아했었구나..(반대로 싫어했구나..)
그걸 느낍니다^^


비로그인 2012-01-27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한사람님 글은 길어서 읽기 전에 후~ 숨을 고르고 시작하는데, 읽다보면 어느새 끝이에요. 신기하죠? ^^

김영하의 단편소설은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당당하게(몰래가 아니라 당당하게!) <오빠가 돌아왔다>를 통해 처음 읽었어요. 되게 쉽게 읽히더라구요. 단편집에 실린 소설 중에 '이사'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읽을 때는 막힘 없이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뭔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이야기에요. 지금에서야 이것도 마술적 리얼리즘의 마술적이면서도 리얼한 힘이 아닐까 싶네요.

아참, 문득 궁금해진 게 있는데요. 책은 주로 사서 읽으시나요?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를 고수해왔는데, 이런 신간/인기도서는 빌리기가 너무 힘들어요 ㅠ

한사람 2012-01-28 09:12   좋아요 0 | URL

그렇죠? 길어서..
마음의 다짐? 같은게 살짝 필요하지 싶어요.
요즘엔 너무 구구절절 풀지 말자고 쓸때마다 생각은 하는데...
잘 안되요.. 늘이는 건 자신있는데, 정말로 줄이는건, 하하하

저는 김영하의 <퀴즈쇼>를 처음 읽었구요.
읽은 책 중에는 <빛의 제국>이 제일 좋았어요.
단편들은 말씀대로 읽을때는 짜릿하고 신나는데..덮고 나면
불쾌? 비슷했던 것 같아요.그게 매력이지만요.
이번에도 그 연장선상에 있구요.

저도 신간들은 거의 구매하는 쪽이어요.(기준은 그야말로 그때그때 변덕에 따라서)
책값이 능력에 비해 주제넘게 너무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서..우울합니다 ㅠ
서평 이벤트는 꼭 읽고 싶은 책만 신청하는데
제 기억상으로 이벤트 하는 책 치고 엄청 좋았던 경우는 없었던거 같아요 ㅠ
(중간 정도면 행운이죠, 하하)

마치 명품 브랜드는 세일안하는 거와 같다고 할까..
도서관은 꼭 내가 보고 싶은 책은 항상 대출중이라는^^

비로그인 2012-01-27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글도 마술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ㅁ'~)

한사람 2012-01-28 09:14   좋아요 0 | URL

길지만 가독력 우수-마술적?
리얼은 왜일까..음..극찬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하하하

가연 2012-02-0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저야 다른 작품들은 읽지는 않았고.. 김영하의 수상작만 읽었는데 재미있었어요. 다만 옥수수가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보이는데, 별로 그 키워드에 집중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뭐라고 부연하면 좋을까, 사실 스토리 자체는 좀.. 확 뭔가 사로잡는 그런 것은 없던데ㅎㅎ 그런 면에서 뭔가 훌륭한 해석을 남기는 작품이 수상된 것 아닌가, 하시는 한사람님의 말에 동감합니다.

한사람 2012-02-04 23:21   좋아요 0 | URL

히히, 그렇죠?
중요한 건 옥수수를 이루는 내용이 아니고 옥수수를 해석하게 한 김영하의 기획력이라니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