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려라 정봉주 - 나는꼼수다 2라운드 쌩토크: 더 가벼운 정치로 공중부양
정봉주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11월
평점 :
우연히, 뜨겁다
보통, 읽고 싶은 책은 늘 읽어야 할 책을 앞지른다. 그런데 읽고 싶은 책은 대개 읽지 않아도 될 책 일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읽어야 할 책은 읽고 싶지는 않았지만 필요에 의해 의무로 새겨보아야 할 책이고 읽고 싶은 책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되었지만 욕망에 의해 넘길 수밖에 없는 책인 것이다. 전자가 머리로 이해하는 독서라면 후자는 가슴으로 느끼는 독서일 것이다. 독서의 아이러니는 이렇듯 언제나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을 때 불현듯 현실을 파고드는 우연의 사건에서 시작된다. 내겐 이 책 <달려라 정봉주>가 꼭 그랬다.
정봉주 전 의원의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둔 일주일전, 내 트윗 타임라인엔 불효자식을 용서하라며 아버님 산소 앞에 바친 그의 책과 소주 사진이 올라왔다. 그날 글샘님은 그를 응원하기 위해 서재에서 ‘달려라, 정봉주’ 6행시 이벤트를 벌이셨고 나는 늘 그렇듯 지나가는 과객이었지만 그만 울컥한 심경에 급조한 몇 자를 남겨버렸다.(잘은 모르지만 분위기상으로 무죄같은 행운이 절대 따르지 않을 것 같았다. 괘씸죄로 형이 추가되면 되었지... 그리고 다음날 징역 1년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주초에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이 책을 넘기면서 자꾸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던 것이 끝내 미셀 투르니에는 내년으로 미루기로 스스로 합의를 보았다. 정봉주 리뷰를 내년으로 넘기기는 어쩐지 싫었다. ‘나꼼수’ 콘서트나 집회를 좇아갈 체력은 안 되는 형편이고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책이, 이런 사람이 있다고 세상에 떠드는 일이므로 해가 가기 전에 운 좋게 가슴 뜨거워진 그 독서값만은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여 김어준, 김용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는 글로써 인사를 대신하려한다.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 수감되던 날, 그러니까 엊그제(26일) 지나가다 KBS 뉴스를 보았는데 삼사십 분을 북한뉴스로 도배하고 스포츠 소식으로 넘어가기 전에 아주 짧은 단신 처리하듯 그것도 인터뷰 목소리까지 묵음처리하며 뉴스를 재빨리 얼버무리는 장면을 보았다. 사건을 보도 했다기보다는 무슨 불법 비디오를 두 배로 재생하듯 후다닥 화면처리 하는 것을 보고 그럴 줄은 알았지만 대단히, 허탈했다. 이 모 씨(이제 MB도 너무 일반존칭이고 이명박 다 쓰는 것도 귀찮고 가카 같은 직함도 아깝다. 그나마 씨자도 붙여 주기 싫었으나 이모 *이라고 하면 농담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할 수 없이 붙여준다. 그래도 공개로 올리는 글이므로 뒷조사 당하고 싶지 않아 한 글자 더 큰 인심 쓰는 것)는 운도 좋지 때마침 죽어준 김정일 덕에 근 열흘째 생일인 기분이 아닐까. 아주 천만다행인 연말을 보내고 있을 그와 이 나라 집권세력, 그리고 덤으로 운 빨까지 가만히 앉아서 빨아 드시는 여권의 대권 공주님까지... 북한은 제대로 따스한 연하장을 날려 보냈다. 보수신문은 연일 안철수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호들갑이고 TV 정보란만 빼면 全 신문지면이 로농신문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싶은, 요즘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선관위 디도스도 FTA 날치기 통과도 4대강 사업도 한나라당 분해설도 싸그리 덮어버리는 괴담이상의 괴력을 발휘하며 연말의 대미를 장식해주고 있지 않은가.
잘못은, 잘못만이 감싸 준다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을 보면서 대체 그는 얼마나 그들의 허물을 눈감아 주었을까를 생각했다. 왜, 그들은 집권자에 대한 충성심이 이리도 유별나게 절절한 것일까 싶었다. 무슨 일이 터지기만 하면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분은 절대 모르시는 일이고 자기 혼자 독단으로 그분 좋으라고 일을 저질렀다고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신 나간 발언을 해댄다. 김어준, 김용민 책에 보면 하나같이 권력자가 가장 무서울 땐 잡아다가 죄 몫으로 감옥 넣는 것이 아니라 비리를 알고서도 음흉하게 감싸줄 때라고 말한다. 가장 질 나쁜 권력자는 지금 살려주고 나중에 옥죄기 위해 혹은 내 비리가 밝혀질 때 비장의 카드로 써먹기 위해 서로서로 보험들 듯이 조커 패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보수 집권세력이 허구한 날 법과 질서가 중요하다고 대중에게 소리 높여 뻥치는 이유는 매일 술 퍼 마시는 작자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이치와 똑같다. 그들이 가장 두려운 건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고 가장 반가운건 진실이 덮여지는 것, 그리하여 혐의도 사라지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안 밝혀지기만 하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이 책을 보면 명백한 증거가 나와도 그건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며 떼를 쓰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지만) 맹자(공자인가?)가 말하길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당신이 알면 그건 비밀이 아니라 했거늘, 그들은 그 한명의 당신만 없으면(있더라도 사라지게 하면) 완전한 비밀이라 여기는 것이다.
내 생각에 누가 되었건 그의 혐의를 묵인하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혹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어주려는 작자들은 틀림없이 그래야만 할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밖에 생각하기가 힘들다. 정봉주는 이 책에서 계보가 없기 때문에 여의도에서 대표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왕따 국회의원이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역으로 만약 계보가 있는 정치인이었다면 과연 구속까지 되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같은 주장을 한 것인데 박근혜가 한 말은 가치판단의 문제이고 정봉주가 내세운 것은 허위사실이 되는 정치현실은 박과 정의 주장이 (홍준표 전 대표가 말한 것처럼)다른 문제이어서가 아니라 박과 정이 본질적으로 다른 정치인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정치계에서만 발생하는 비극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학연, 지연 등의 인맥과 상관없이 혼자서 잘나가는 인사들을 대체로 보호해주지 않는‘같이 살고 같이 죽기’의 사회이다. 오히려 도대체 어디까지 잘나가는 지 가만히 지켜보다가 기회가 생기면 두고보자하는 식이 팽배하다고 할 수 있다. 조직사회에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기회도 많아 보이지만 그만큼 위험의 순간도 많이 찾아온다. 나는 회사 다닐 때 한국의 디자인 산업계가 S대와 H대파로 나뉘어 팽팽한 대결을 벌이다가도 신선한 유학파만 나타나면 갑자기 똘똘 뭉쳐 그들을 배타적으로 왕따 시키는 현장을 무수히 목격했다. 업계에서도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같은 학교출신이기 때문에 정의의 편을 들지 않고 제 식구만 챙기고 감싸려 드는 행태를 지겹도록 보아왔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며 잘못을 덮어주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비리를 외면하고 우리가 꼭 유명한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살아오면서 내가 속한 계파에 없는 타자들을 알게 모르게 나 몰라라 한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나이 사십 넘어서 아줌마들끼리 모여도 애들 피아노 가르치는데 선생이 어느 대학 나왔냐고 일단은 묻고 끄덕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꼴을 대단히 잘 학습해온 기성세대이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그토록 일류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희생은 의원이 하고 당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렇게 당을 위해서 고생한 의원들은 아미도 기억하지 않
고 구제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당의 모습이고 정치다. - p203
그가 지적했듯이 저격수는 치밀하게 저격을 하는 임무도 있지만 저격에 실패하거나 노출이 되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운명이다. 어떨 땐 조직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나꼼수 33회에서 김어준은 아주 분통스런 어조로 자기들(민주당) 위해서 앞장서 싸운 당원을 이렇게 버릴 수 있느냐, 왜 하나도 보호해주는 이가 없는 것이냐면서 저격수된 정봉주 형 뒤에서 격조 높게 비난했다. 나이 들어 정봉주 같이 싸울 때 앞장섰다가 나중에 혼자서만 보복당하는 사람을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두렵고 비겁하기 때문에 자기 살기 위해 결국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를 묵인하며 살아가는구나...그런 생각이 든다. 정봉주를 보면서 알면서도 침묵하고 눈감았을 이 시대의 많은 비겁자들 속에 내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외로왔다. 어쩌면 슬픈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결국 모두 한 사람을 향한 울분의 다른 말이었을 듯하다.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MB가 BBK와 확실한 관련이 있으며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대통령(일 것)이라는 것쯤은 김정일의 아들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것만큼 이제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추정소설의 결말이다. 나꼼수와 <닥치고, 정치>를 통해 우리는 대부분 BBK 기업형 첩보소설의 주인공과 시나리오를 잘 이해하고 있다. 김어준이 사회학적으로 접근했다면 정봉주는 보다 형사적으로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며 사건을 보도하는 듯했다. 두세 번 이들의 주장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이 나라 정부와 검찰은 지난 4년 동안 BBK가 이명박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억지 쓰고 잘 모르는 국민에게 세뇌시키기 위해 존재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우리가 이 모 씨를 대통령으로 뽑아 줄 당시로 돌아가서 잘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가 그렇게 도덕적이고 인품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우린 그의 도덕성 결핍을 얼추 예상들 하고 있었지만 그냥 묵인하고 다른 능력을 더 중요시 한 사람들이었다. 정봉주는 한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 도덕성 검증이 왜 필요하고 왜 그토록 중요한지 절절히 깨우쳐 준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돈을 여기저기서 끌어다 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엔 배후 동업자 혹은 의사결정권자 식으로 앞으로 드러나지 않게 창업과 주주관련 사안에 관여를 하면서 회사가 성공하게 되면 슬슬 그 회사는 내가 창업했고 내 소유고 다 내가 기획했다 주장한다. 만에 하나 잘못되었다 치면 나는 그 회사와 일절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동업자는 썩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판단해 일찌감치 손을 뗐다 하는 것이 사기꾼 형 자본가들의 전형적인 수법인 것이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치고 빠지는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에 추호도 도덕적인 양심이 없다. 기업을 하다보면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큰 돈을 모으고 굴리는 것도 능력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액수가 크면 클수록 대개 자신의 도덕성에 무감하다고 본다. 이는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죄책감에서 멀어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대통령을 한다하면 그 도덕성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이 정봉주가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BBK 전모를 다시 한번 학습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이 모 씨는 전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으며(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있다하여도 크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느낀다 하여도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라 생각할 것이라는 것. 나는 확신한다, 그의 뻔뻔함과 불감증을. 문제는 우리가 그의 성향을 몰랐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각자의 욕망에 따라 그를 택하였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에 보면 민주주의가 꼭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제도는 아니라는 투표의 오류를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정봉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민주주의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환상을 하기 쉽다고 꼬집는다. 유시민은 (다양한 국가론을 빌어) 민주주의가 ‘국가를 잘 통치할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과 정당을 국민이 선택하는 제도’가 아니라 무능하거나 최악의 인물이 지도자로 선출되더라도 그 악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 정리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법치주의 역시 법과 형벌로 국민(통치 받는 자)을 다스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
을 잘 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
“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라는 개념이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
리는 데는 어떤 주의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법을 만들 수 있는 힘을 필수요건으로
한다. 법을 만들지 못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현하지 못하도록, 권력자
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만든 원칙이다. ” -50 p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中
이렇듯 지도자의 일방적이고 잘못된 권력행사를 막기 위한 법치주의, 민주주의가 현 정권 들어 급격히 후퇴했다고 말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임종하기 한 달 전 마치 유언처럼 하소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지적하신 그대로 그때 이후로 무슨 정언명령처럼 더욱 우리나라의 법치주의, 민주주의는 완전 추락의 내리막길을 달려와 이제 진실을 덮고 거대한 흐름을 막아보고자 용기 있는 한 정치인을 황급히 감옥에 보내버린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부터 그런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절망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국민은 임기가 정해져 있는 정부를 해고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 씨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 주었다면 정봉주는 민주주의의 유약하고도 위험적인 속성을 가르쳐 주었다.
다시, 일어나서 달려라
드레스룸에서 감옥연습을 했다는 그는 얼마나 수감생활을 하게 될까. 3월 1일 사면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자신은 떳떳이 형기를 다 채우고 나오겠다 답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꼼수 녹음실에는 실물 정봉주 사진을 갖다 놓고 김용민은 편집할 때 정봉주 웃음소리를 적절히 삽입하겠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어제 김문수 경기도 도지사의 소방서 119 전화 건으로 정봉주의 웃음소리는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했다.(우연의 일치인지 정봉주는 이 책에서 김문수와 미국에 동행했을 때 김문수가 미국을 꼭 위대한 미국, ‘Great America’라 말할 필요가 있는지 비판했다) 지난번 조선일보 기자가 전화했을 때 욕설로 되받아 쳤다고 한 그 부분을 절묘하게 편집하여 김문수 전화목소리와 이어 붙이니 도저히 듣고서 나자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사실 욕설 수위가 높아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기가 막히게 쓰여 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역시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정봉주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예상대로 많구나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도 조직도 아무도 없다고 했지만 세상은 아직...그렇진 않은 것 같다.
나꼼수 에서나 대외적으로 농담처럼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무척 두렵다. 일부라도 뒤집히지 않고 그대로 확정된다
면 꼼짝없이 감옥행이다. 나를 지켜줄 사람도, 조직도 하나 없는 지금, 그야말로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 졌다. -256p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인데 이 정권에서의 의혹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고 검찰수사나 발표 같은 것은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보수 신문에선 모두가 근거 없는 괴담이고 괴담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화합을 저해하는 병적인 요소라 지적들 하고 있지만 언제나 핵심정보를 증언할 만한 인물들은 늘 그렇듯 기획출국 아니면 기획입국된다. 그런 중요한 인물이 등장할 땐 꼭 서태지-이지아 건과 유사한 대형 스캔들이 동시에 살포된다. 그리고 서둘러 눈에 보이는 요직 몇 사람이 잘리거나 구속되는 것으로 수사는 종결된다. 이에 정봉주의 결론은 이렇다. 검찰은 정치권이 깨끗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안밖으로 깨끗해지면 그 개혁의 칼날은 그대로 검찰개혁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에 ‘비리의 정보를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정치권을 향해 적당히 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나 역시 적극 동의한다.(자기들도 뒤로 구리기는 마찬가지니) 그런데 이 논리로 따지면 뒤를 봐주는 빽이 없고 정의롭게만 살아왔다면 그 사람은 보다 감옥에 갈 확률이 많아진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한 뒷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깨끗한 정치인이 많아 봤자 검찰만 피곤해질 것이 자명하기에. 이렇게된 사회에선 그 누가 저격수 역할을 하고 선봉장이 되어 비리를 밝히려 들 것인가.
또 하나, 이 책의 말미에는 부산, 삼화 저축은행 비리사건에 대한 의혹도 제시 되어 있다. 핵심은 쓰러져 가는 은행에 삼성이나 포스텍 같은 대기업이 막대한 돈을 투자하게 된 배경이다. 투자 유치와 중간 돈 빼돌리기 과정에 로비스트에 해당하는 인물이 포착되는데 늘 그렇듯 대통력 친인척과 여권 수뇌부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시작은 대규모 비리수사에 착수할 것처럼 창대하지만 신기하게도 대통령의 형, 조카사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의 실명이 거론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면 검찰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정치권과 연관이 없다며 수사를 종결한다. 어차피 고령의 상인과 서민들만 피땀 흘려 벌어 놓은 돈을 다 날리고 난 이후이다. 시장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어 서민과 친한 줄 알았던 저축은행은 기실 금전적 이해관계로 얽혀진 검은 커넥션으로 운영되어온 그들만의 ‘욕망의 도가니’ 로 기능해 온것이다. 정봉주는 이 챞터의 소제목을 미리보는 청문회라 칭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고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원외교로 국민을 현혹하는 과정과 교육전공자답게 대학등록금의 문제도 거론하였다. 등록금 인상이 탐욕스런 사학비리와 필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지적이었다.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교육부가 학생이 아닌 대학의 편을 드는 행태 역시 전관예우와 먹이사슬 관계로 엮어진 오래된 어둠의 커넥션이라 말했다. 가만 보면 대통령부터 이어지는 뿌리 깊은 서로 눈감아 주고 챙겨주기 관행이 아닐 수 없다. 공직의 최고위직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전 공무원이 좇아가는 악습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거나 부패한 대학이라고 해도 교육부는 그 대학들 편이다. 교육부 고급 공무원들이 은퇴하면 그 대학의 고
위 직원이나 교수로 가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은퇴한 공무원은 그 대학을 위해 교육부에 감사 축소 로비
를 하거나 혹은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한 로비 창구로 쓰인다. -303p
아직 주진우 기자의 글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나꼼수 4인방 중 김어준, 김용민과 비교해보면(책만으로) 그는 말하는 대로 글을 쓰는 사람인 듯하다. 김어준의 글은 말하는 방식과는 상반되는 쪽이었고 김용민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는 듯 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지만 말하는 방향은 한 곳인 것 같다. 정의와 도덕. 참여와 용기. 기죽지 말고 일어나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려가기...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정치인생을 살아왔다 생각하지만 90프로는 인정받지 못한 과정 이었다 고백한다. 그저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자신을 포레스트 검프와 비유하기도 한다. 고통과 시련에 굴복하지 말고 달리라는 말이 어쩌면 우리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달리는 순간 고통은 잊고 정면을 응시하는 순간 이미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라 말한다. 나 역시 삶이 시련의 연속이라는 것에 눈물이 마를 만큼 아니 목에 침을 삼키기 어려울 만큼 말라버린 목소리로 그렇다 답하고 싶다. 정봉주, 그가 수감되기 직전에 녹음실에서 자신의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고맙다며, 그리고 사랑한다며 말해놓곤 울어 버리는 장면을 떠올린다. 사람은 감옥에 가둘 수 있어도 진실은 가둘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준엄한 외침도 잊지 않으련다. 세밑이 예전만큼 따스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순 없다. 그곳이 어디든 외롭게 달리고 있을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달리고 있을 것이라는 그를 기억해야 한다. 이제 그에게 반대로 이곳에서 이렇게 손잡고 달리고 있을 우리를 기억하라 전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어쩌면 아무 힘도 못 될 수 있지만 그래도 말해드리고 적어 놓고 싶다. 2012년엔 그렇게 견딘 모든 시련이 부디 우리가 염원하는 정의, 그리고 진실과 도덕이라는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상식으로 열매 맺길 기대한다. 새삼 '역사를 신앙으로 섬기고 정의를 믿었으며 진실이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은 한 사람이 생각난다. 정봉주, 그 역시 이 추운 겨울동안에도 죽지 않는 인동(忍冬)의 세월을 이기고 당당히 세상에 나와 다시 정치의 꽃을 피우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때까지는 국민이고 싶다. 아니 세월을 같이 기다린 후 그때부터 라면 더욱 국민이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