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인의 계절
오월은 정신이 없었다. 월초에 일주일 여행을 다녀왔더니 너무나 짧았다. 무언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작 제대로 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날씨는 초여름에 이르렀고 달력의 무게는 자꾸 줄어든다. 점점 시간에 이끌려 나이를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산다는 건 결국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사용한다는 뜻 일 텐데 언제나 시간이 충분치 않은 것 같고 충분히 있다 해도 야무지게 시간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행의 후유증이 이렇게 길 줄이야. 나는 누구의 시간을 보내었던 것일까.
#2. 타인의 노래
오월은 임재범으로 시작해서 임재범으로 끝났다. 모든 기막힌 뉴스는 그의 더 기막힌 노래에 묻혀버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임재범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전설은 그런 것이다. 두 번은 필요치 않은 것. 두 번은 울 수 없는 것. 1979년인가. 나는 제 1회 서울 국제 가요제에 참가한 윤항기, 윤복희 남매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 우리 집 TV는 아직 흑백이었고 윤복희는 머리에 캡을 쓰고 번쩍거리는 뱀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인터내셔날 서울 송 페스티벌, 엔트리 넘버 ~~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윤복희의 여러분은 (대상을 받긴 했지만)내게 그다지 특별하진 않았다. 외려, 좀 낯설고 느끼했달까. 그 당시 노래하는 여자 가수들은 다 그런 식이었다. 그 정도 가창력이 없으면 쇼 프로에 나오지 못했었다. 내 (총명한)기억으로 그 대회에 진미령, 장덕, 김수희도 출전했었다. 어이없게도 임재범이 여러분을 노래 할 때 내 기억은 1979년 반포 주공 아파트 339동 406호로 달려 갔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곳은 어떠하신지.
#3. 타인의 방
도서관에서 최인호의 ‘타인의 방’을 빌려와 읽었다. 기가 막혔다. 꼭 4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앞으로 40년은 족히 먹힐 글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타인의 방’때 까지만 해도 최인호 작가는 대중 소설가는 아니었던 듯하다. 순수(?)의 극치를 달리셨다. 이 분의 신간 소식이 알 수 없게 반가웠다. 서평단 신청을 잘 하지 않는데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서평단을 모집한다 하길래 덜커덕 응모해버렸고, 다행히 기회가 주어졌다. 비슷한 제목의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도 내일이면 도착할 성 싶다. 살면서 나이들면서 모든 게 익숙해질 거 같아도 점점 낯선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의외로 많아진다. 타인처럼 낯선 내가 낯익어 지는 과정이 결국 낯선 세상에 적응하는 시간이 아닐까. 이 분들의 소설을 차례로 읽을 생각을 하니 다가오는 유월이 조금은 설렌다.
‘타인의 방’에서 소름이 끼치던 문장을 옮겨본다.
그때였다. 그는 서서히 다리 부분이 경직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우연히 느낀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이방에서 도망가리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움직이리라고 마음먹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려 했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내려 다리를 만져보았는데 다리는 이미 굳어 석고처럼 딱딱하고 감촉이 없으므로 별수 없이 손에 힘을 주어 기어서라도 스위치 있는 쪽으로 가리라고 결심했다. 그는 손을 뻗쳐 무거워진 다리, 그리고 더욱 더 굳어져 가는 다리를 끌고 스위치 있는 곳까지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는 숫제 체념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조용히 다리를 모으고 직립하였다. 그는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이후 '직립'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분명한 순간은 없었다. 그리곤 부활이라니....그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로 부활한 것이었다.
유월달 달력에 두어개 동그라미를 친다.
그리곤 오월달 달력을 뜯어 버린다.
읽고나면 어느 분이 더 낯익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