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 살 딸아이 크는 재미에 살아요. 이제 제법 말도 주고받고 재롱떠는 모습이 너무 예뻐 이게 사는 기쁨이구나 싶죠. 엊그제 저녁밥상에서 조기반찬을 가리키며 

 

“이건 생선이 아니라 물고기!”

 

 둘레 놀이터에 있는 풀들을 보며

 

“아빠, 이건 녹색이 아니라 풀빛이야.”

 

 이렇게 말해요. 참 귀엽고 흐뭇해요. 예전에 알려줬던 말이 떠올랐나봐요. 아이들은 아직 말이 굳어있지 않죠. 앞으로 아이와 아름다운 우리말을 더 나눠야겠어요. 

 

 저번주에 이어 빛깔 이야기를 더 해보려고 해요. 빛깔 공부를 하다 미술수업시간 배우고 가르쳤던 ‘빛의 삼원색’, ‘색의 삼원색’이 떠올랐어요. 이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줘야지 고민이 됐죠. 역시 이끔이 선생님이 많은 깨달음을 주셨어요. 답장받은 글을 풀어 이야기해 볼께요.

 

 ‘빛의 삼원색’은 이렇게 바꿀 수 있어요.

 

*빛의 삼원색 → 세 빛살 또는 세 바탕빛살

 

 세 바탕빛살은 바로 ‘빨강, 푸름(풀빛), 파랑’이죠. 빨강은 ‘온 목숨’을 나타낸다고 해요. 빨강을 띠는 것은 ‘피’, ‘열매(알)’이 있어요. 푸름은 ‘풀, 나무, 숲’을 나타내죠. 파랑은 ‘바람, 하늘, 물과 바다’를 나타내요. 이 세 빛살이 가장 많은 빛깔을 만들어낸다고 해요. 모두 겹치면 하양이 되죠.

 

 이제 ‘색의 삼원색’을 살펴볼께요. 잠깐 돌아보면 ‘색’은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해 드러나는 알록달록 모습’이라고 했죠. 그러니 다음과 같이 바꿔야 돼요.

 

*색의 삼원색 → 세 빛깔 또는 세 바탕빛깔

 

 세 바탕빛깔은 바로 ‘빨강, 파랑, 노랑’이죠. 이것 역시 이 세 바탕빛깔을 섞었을 때 가장 많은 빛깔을 만들어내서, 이 세 가지를 바탕빛깔로 정했다고 해요. 빨강은 목숨을 따뜻하게 안는 빛깔이예요. ‘핏빛’이나 ‘열매빛(알빛)’이죠. 파랑은 ‘바람빛’, ‘하늘빛’, ‘물과 바닷빛’이구요. 노랑은 온누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빛깔이죠. ‘햇빛’이나 ‘불빛’이 있어요. 

 

 여기서 잠깐 ‘햇빛’ 이야기를 해볼께요. 햇빛은 ‘해에서 나오는 빛’이예요.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기운’이죠. 살결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기운이예요. 햇살은 ‘해가 내쏘는 줄기’지요. 비슷한 듯 다른 말, 우리 겨레가 생각을 담아온 말들을 보면 참 놀랍고 뿌듯해요.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함께 쓰자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 말을 하기보다 우리말을 바로 아는 게 먼저 아닐까요? 햇빛, 햇볕, 햇살을 담아 짧은 글을 써보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겠죠.

 

*햇빛이 비치는 가을 들판, 나는 따스한 햇볕을 쬐며 서있다. 나락 사이로 한줄기 햇살이 물웅덩이에 부딪쳐 눈부시게 부서진다.  

 

(2015.05.03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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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쇠에 녹이 슨 색을 녹색으로 알았다. 

그래서 자꾸만 갈색을 녹색이라고 불렀다. 

엄마가 녹색은 초록색이라고 해도

나는 갈색을 녹색으로 믿었다. 

아직도 그렇게 착각할 때가 있다.”  

<착각, 배지훈 시집 '시를 쓰는 아이'에서>


 저는 어렸을 때 ‘파랗다’와 ‘푸르다’가 알쏭달쏭했어요.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노래 있잖아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그래서 ‘푸르다’는 ‘하늘빛’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상했죠. 하늘은 파란데? 말집(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와요. 


*파랗다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

*푸르다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파랗다’는 ‘푸르다’로 풀이하고, ‘푸르다’는 또 ‘깊은 바다 빛깔’이라고 해요. 새싹이 파란가요? 새싹은 푸르죠. 깊은 바다가 푸른가요? 깊은 바다는 ‘새파랗다’ 아니면 ‘시퍼렇다’라고 해야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말인데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예요. 간혹 푸켓이나 제주도에 푸른빛 바다가 있기도 하죠. 하지만, 흔한 바다빛깔은 파랗거나 새파래요. 푸른 하늘도 있긴 해요. 지구 극쪽에 오로라 현상에서는 가끔 볼 수 있죠. 그래도 우리가 흔히 보는 하늘빛깔은 파랗거나 하늘빛이예요. 푸른 숲, 푸른 나무, 푸른 풀이고, 파란 하늘, 파란 바다예요.


 어느 날 네 살 딸아이가 물어봐요. 


 “아빠, 이건 무슨 색이야?”

 “응, 이건 초록색이야.”


 지금까지 썼던 말이예요.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로 칠하면서 썼던 말들이죠. 문득 아이가 물어본 말과 위 시가 떠오르면서 ‘색(色)’이 우리말일까 싶었어요. 우리말 이끄미 최종규님께 전자편지도 보내고, 둘레 이야기도 모아봤지요. 답장을 받고 깨달았어요. 색(色)도 우리말이 아니구나. 그래서 몇 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색(色)’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먼저 ‘색’을 말집(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요. 


 색(色)

  (1)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이나 빨강, 파랑, 노랑 따위의 물리적 현상 → 화려한 색 / 색이 선명한 옷감

  (2) 같은 부류가 가지고 있는 동질적인 특성을 가리키는 말 → 그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색이 다르다

  (3) 색정이나 여색, 색사(色事) 따위를 뜻하는 말 → 색에 빠지다

  (4) [불교] 물질적인 형체가 있는 모든 존재

  (5)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색깔’의 뜻을 나타내는 말 → 딸기색 / 바이올렛색


 여기서 뜻은 (1)이겠죠. 색(色)은 ‘빛’에서 나온 말이예요. 중국글자말로 ‘빛-색’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색(色)은 우리말로 ‘빛’이라고 해야겠죠.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해가 뜨면서 빛이 반사되서 보이는거예요. 빨간색, 무슨 색깔이야? 이런 말들은 다 우리말이 아닌거죠. 색연필, 색종이, 색도화지, 색실 이런 말들도 빛연필, 빛종이, 빛도화지, 빛실 이렇게 써야돼요. ‘이런 말까지 바꿔야 돼?’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먼저 바로 알고 써야할 것 같아요. 어찌보면 어른들 머리에만 자리잡힌 말이지 않을까요? 빛에서 나온 말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아요. 


ㄱ. 빛

- 우리가 볼 수 있게 하는 ‘전자기파’를 말하죠. 해에서 나와요. 

ㄴ. 빛깔

- 빛을 받으면서 드러나는 알록달록한 모습을 말해요. ~깔은 모습, 상태, 바탕(꼴)을 뜻해요. 맛깔, 때깔이라는 말도 있죠. 

ㄷ. 빛살

- 빛이 흐르는 줄기를 뜻해요. 화살, 물살, 햇살이라는 말도 아시죠?


*이 꽃은 무슨 색깔이야? → 이 꽃은 무슨 빛깔이야?

*색연필, 색종이, 색도화지, 색실 → 빛연필, 빛종이, 빛도화지, 빛실


 이렇게 써야겠어요. 그럼 우리가 쓰는 빛깔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빛깔을 알려줘야 할까요? 빨주노초파남보! 이 말은 맞는 말일까? 너무 궁금하고 답답했어요. 이 궁금증도 이끄미님이 풀어주셨어요. 찾아보니 우리나라는 KS(한국산업규격)에서 색표시법으로 먼셀 표색계를 채택하고 있더라구요. 다음 열 가지 빛깔을 보여줘요.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빨강, 주황, 노랑, 연두, 녹색, 청록, 파랑, 남색, 보라, 자주


 여기서 우리말은 무엇일까요?

 빨강, 노랑, 파랑, 보라는 우리말이예요. ‘빨강’도 말집을 찾아보면 ‘빨간 빛깔’로 나와있어요. 그러니 다음과 같이 써야 겠죠. 


*이 꽃은 빨간색이야. → 이 꽃은 빨간 빛깔이야. (또는 이 꽃은 빨강이야. 앵두빛이야.)  


 주황(朱黃)은 붉을주, 누를황으로 ‘붉고 노란 빛깔’이라는 중국글자말이예요. 연두(軟豆)는 연할연, 콩두로 ‘연한 콩 빛깔’을 뜻하지요. 녹색(綠色)은 풀빛녹, 빛색으로 ‘풀 빛깔’을 뜻해요. 청록(靑綠)은 푸를청, 풀빛록으로 ‘푸르고 풀빛이 나는 빛깔’을 말하죠. 남색(藍色)은 쪽람, 빛색으로 ‘쪽 빛깔’을 뜻하구요. 자주(紫朱)는 자주빛자, 붉을주로 ‘자주빛깔’을 말해요. 


 아이들에게 이 빛깔들은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요?


*빨강, 노랑, 파랑, 보라, 하양은 그대로 쓰구요. 


*주황(朱黃) → 감빛

*연두(軟豆) → 옅은 풀빛

*녹색(綠色) → 풀빛

*청록(靑綠) → 짙은 풀빛

*남색(藍色) → 쪽빛 또는 짙은 파랑

*자주(紫朱) → 자주빛


 더 생각해볼 것은 이런 빛깔을 우리 아이들은(저도 그렇구요) 책이나 수업시간, 물감과 크레파스에서만 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색상환에 얽매여 있는거죠. 얼마든지 숲에서 꽃에서 여러 빛깔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감빛이 귤빛이 될 수 있고, 동자꽃빛이 될 수도 있겠죠. 감빛도 이 감나무 빛깔과 저 감나무 빛깔이 모두 다르구요. 미술시간 교실을 떠나 숲과 나무를 찾아 저마다 다른 빛깔을 찾아보는 일도 참 좋겠어요.    


(2015.04.26.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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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4-2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깔...너무 예쁜 말입니다~ 빛깔을 나타내는 말이 요즘 온통 영어로 된 말들 뿐이라 헷갈리기도 하고 무슨 빛깔인지 모르겠던데 이렇게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좋네요~ 고맙습니다 ㅎㅎ 그레이, 네이비, 마샬라, 인디고... 가끔 그레이가 우리말로 뭐지? 이런다니까요ㅠㅠ

민들레처럼 2015-04-27 10: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레이보다는 잿빛하면 참 이쁘죠. 우리말에는 우리 삶과 얼이 담겨 있지요. 늘 살펴보고 말삶을 즐거이 가꿔보세요. ^^
 

 교사들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가리켜 '선생님'이라고 해요.

 

 "이번에 선생님이 보여줄 영상은 오늘 수업과 관련 있는 거야."

 

 저도 자주 쓰는 말버릇이었죠.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데서 생겨났다고 말씀하셨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래요. 나를 높여서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싶어요. 아이들에게 나를 낮출 필요는 없지만 존댓말을 쓰는 게 좋겠다 싶기도 하구요. 지금까지 이런 말버릇이 이오덕 선생님 말처럼 아이들을 낮게 보는 버릇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말을 오래 들어와서 크게 잘못된 거라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내가 보여줄 영상은 오늘 수업과 관련 있는 거예요."

 

 그냥 이렇게 얘기하면 되겠죠. 교과서에서 익힌 말이 잘못된 경우도 있어요.

 

 "엄마께서 오신다. 아빠께서 학교에 가셨다."

 

 어른들에게 존댓말을 꼭 붙여야 하다는 뿌리박힌 생각 때문인지 이상한 말들이 많아요.

 

 "엄마가 오신다. 아빠가 학교에 가셨다."

 

 이게 살아있는 말이죠.

 

 저번에 이어 ‘학교에서 잘못 쓰는 말’ 몇 가지를 더 살펴보려고 해요.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아이들을 만나는 곳이니 한 번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삶을 가꾸는 글쓰기' 연수와 '우리 글 바로쓰기'책, 그리고 둘레 이야기들을 모아봤어요. 

 

<학교 알림판>
*탑승금지 - 사람이 타면 안됩니다.
*관계자외출입금지 - 어린이는 들어오면 안됩니다.
*출차주의 - 차조심
*비상구 - 나가는 문
*명찰 - 이름표
*위 사항을 위반한 개인 및 단체는 차후 운동장 사용을 일체 불허하겠습니다.
-위의 내용을 어긴 사람과 단체는 다음부터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자주 쓰는 말>
*학습하다 - 배우다 / 해석하다 - 풀이하다.
*수업종료 - 공부 마침 / 방과후 - 학교 마치고, 공부 마치고
*질문있어요? - 궁금한 점 있어요? / 질문하다 - 묻다
*이해되니? - 알겠니? / 확인해볼까? - 알아볼까? / 애로사항은 없니? - 어려운 점은 없니?
*집합하다 – 모이다 / 호명하다 – 부르다 / 휴식한다 - 쉰다
*급식시간 - 밥 먹는 시간(밥때) / 급식비 - 밥값
*소란스럽다 - 시끄럽다
*정신자세 - 마음가짐
*습관적으로 - 버릇이 되어
*파티 - 잔치
*선행 - 착한 일  / 정직하다 - 올바르다, 거짓없다, 착하다

 

<교과서에 나오는 말>
*다음 제시된 글을 읽어보세요. - 다음 나오는 글을 읽어보세요.
*공이 필요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공이 필요한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면담을 통하여 직업특성을 알아봅시다. - 면담을 하고 직업특성을 알아봅시다.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방법에 관하여 알아봅시다. -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거대한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 아주 큰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두 수를 비교하여 봅시다. - 두 수를 견주어 봅시다.
*다음 낱말을 사용하여 짧은 글을 지어봅시다. - 다음 낱말을 써서(낱말로, 낱말을 가지고) 짧은 글을 지어봅시다.
*다음 빈 칸에 알맞은 말을 정확하게 써봅시다. - 다음 빈 칸에 알맞은 말을 올바르게 써봅시다.

 

(2015.04.19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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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1 :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오덕 일기 1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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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빌려 서둘러 읽어보다 책을 사고 찬찬히 다시 읽는다. 1권은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일기다. 마치 그때로 돌아가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각종 공문 보고로 힘들어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며 괴로워하는 선생님 마음, 부패한 교육현장 모습들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놀라운 건 내가 선생이 된 후 느낀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다.

 

 "두고 두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워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15쪽)

 

 선생님은 늘 고민하셨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속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애쓰셨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실망도 하고 화도 내신다. 소풍에서 아이들에게 점심밥을 얻어먹는 마음도 걸리고, 교실로 들어온 참새를 보고  "그럼, 모두 나가 주자!"라고 외친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 하시기도 한다.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지내는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이라 더 깊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시는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생활의 표현이어야 하고, 소박하고 현실적인 감동으로 쓰여야 하는 것이다."(26쪽)

 

 "백일장 대회를 데리고 나와 엉터리 주제를 보고 걱정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에 가서 놀았다. 글짓기고 시 짓기고 그 까짓 것이 다 뭘까? 천진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어디 있는가?" (41쪽)

 

 요즘 학교도 다르지 않다. 교사가 대신 써서 대회에 보내기도 하고, 모범작품을 보고 그럴싸하게 쓰는 연습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철마다 흡연예방, 과학의 날, 가정의 달, 화재예방, 각종 관공서에서 쏟아져오는 글쓰기대회가 셀 수 없다. 삶이 담겨있지 않은 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직접 자기들에게 개인적으로 손해가 나면 그때는 꿈틀거린다. 그리고 저보다 약한 자에게 무섭게 덤빈다. 그러면서 일단 개인을 떠나 사회 전체, 국가 민족 전체가 해를 입을 경우는 나 모른다는 태도다. 철두철미 이기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을 받아 온 20대, 30대의 젊은이들, 이들이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28쪽)

 

 갈수록 그렇다. 일베를 보면 그렇고,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봐도 그렇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과 학교폭력에서도 '남'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보면 어른들, 사회, 그리고 교육이 이렇게 만든게 아닐까 싶다. 

 

 "아침 출근이 괴롭다. ... 교장, 교감의 찡그린 어룰 결코 진실이라고 할 수 없는 거짓 교육의 강요 때문이다. ...우선 아이들에게 정이 안붙는다. ...학습이고 생활이고 아이들의 세계가 너무 황폐되어 있다. " (131~132쪽)

 

 맞다. 선생들 요즘 참 힘들다. 아이도, 학부모도, 수업도, 학교도, 관리자들도 모두 다 힘들다. 무엇보다 가르치고, 아이들을 만나며 보람을 느껴야 하는데 그러기 힘들다. 어떤 선생님은 방학이 끝나자마자 방학을 기다리는 웃지 못할 모습도 있다.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이 아이들에게 정이 안 붙고, 학교가 힘들다면 어찌할까? 그래서 나도 아둥바둥 공부하고 길을 찾으려 애쓴다. 이오덕 선생님도 괴로웠다. '이오덕 선생님도 참 힘드셨구나.'하고 위로받으며 힘을 낸다.

 

 "또 장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진정 교육을 위해서 '1교1사육'같은 것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207쪽)

 

 이 책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이다. 교육은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경우가 참 많다. 아이들은 없고 실적만 있다. 나도 그런 유혹에 잘 빠진다. 남들에게 내가 잘 교육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일들 많았다. 거기에는 아이들은 없었다. 돌아보면 씁쓸하다. 

 

 "그까짓 교육장들 비위 맞춰 동네 사람들 등지는 것보다 교육장 꾸중 들어도 지방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다. 학교는 교육장이 주인이 아니다.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주인이어야 하니까.(330쪽)"

 

 학교 주인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있다. 수업은 안하고 쓸데없는 공문처리하는 모습, 무턱대고 비판만 하는 수업협의회, 각종 지시 명령, 통계보고 등은 요즘 학교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없고 행정만 있는 학교, 이제 바꿔야 한다. 혁신학교가 이런 흐름을 바꾸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아직 먼 길 같다. 충남은 이제 막 내딛고 있다. 마지막 일제고사 시험을 보며 한탄하는 선생님 모습이 떠오른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2015.04.15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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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4-15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도 글쓰기 대회가 많은가 보네요.
왜 그런 대회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도록 북돋우는 길로 가려고 하지 못할까요.
뜻있는 교사만 애쓰기에는 참으로 벅차 보입니다..

민들레처럼 2015-04-15 08:40   좋아요 1 | URL
그래서 무시하고 넘기는 경우도 많아요. 힘들어도 갈 길은 가야죠. 함께 애쓰는 선생님들 보며 꿈을 그려봅니다. ^^

[그장소] 2015-04-15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좋아할 책이라..봐야지 했는데 분위기 어둡군요..교육정책때문...ㅎㅎㅎ

민들레처럼 2015-04-15 10:11   좋아요 1 | URL
예. 옛날 잘못된 교육 현실에 부딪치며 애쓰는 이오덕 선생님 삶을 다룬 이야기예요. 그래서 조금 어둡기도 해요. ^^

[그장소] 2015-04-15 10:44   좋아요 1 | URL
그렇기도 하고..두분 나누시는 얘기 분위기또한 그러한 모양 였기에..
얼른 비켜갔어요.^^
 
백의민족이 왜 붉은 악마가 되었는가? - 이오덕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이오덕 교육문고 10
이오덕 지음 / 고인돌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이오덕 선생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다. 사서 읽어본지는 좀 됐는데, 다시 읽고 갈무리해본다.

 

 2002년 월드컵, 그 때 기억이 새록 떠오른다. 하나된 마음, 거리 응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뜨거웠던 그때 마음을 기억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4강까지 올라가며 우리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대한민국!~짝짝짝 짝짝" 그 때 외침은 그동안 억눌렸던 우리 겨레가 불끈 일어선 기운찬 소리였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붉은 악마를 보며 새로운 빛을 보셨다. 그리고, 스스로 바로 서는 새길을 가자고 외치신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데서는, 누구든지 모두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맡아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즐겁게 일하면서, 한편으로 운동이나 노래나 춤 같은 것, 글쓰기 같은 것은 그런 일 속에서 함께하면서 누구든지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곧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로 된 삶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쪽)"

 

 지금 모든 문제가 여기서 오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더 편하게 살려고 더 많이 돈을 벌고, 더 높은 위치에 가려고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땀흘려 일을 했다. 일하고 사는게 삶 그 자체였다.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며 일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아닌 돈으로 바뀐다. 누구 대신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몸으로 하는 일은 하찮게 여기고 머리로 하는 일을 더 좋게 본다. 쉽게 돈을 버는 일이 좋은 직업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르치려고 하는 바로 그 아이들을 아는 일이다. 아이들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 부모의 직업과 교양과 가정환경, 경제 사정, 아이의 성격과 바람과 버릇...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담임교사는 학년 초 가정방문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들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이들이 써 놓은 글을 읽는다. 그 글에는 아이들의 삶과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99쪽)

 

 난 얼만큼 아이들을 알고 다가섰나 싶다. 가정방문은 선생되고 곧 몇 번하고 난 다음 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뻤는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는게 부담스러웠다. 겉모습만 보고 이 아이가 이렇다 생각한적도 많았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을 핑계로 대며 그럭저럭 아이들을 만나며 살았다. 아이들 마음이 담긴 글은 보지 못했다.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산과 들에서, 논밭에서, 온갖 풀과 나무와 짐승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하면서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땅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203쪽)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글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태극을 그려 놓은 네모난 천에 나라가 잇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다. 이 강산이다. 이 강산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 그리고 그 풀과 나무와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과 고향산천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 사랑이요 겨레 사랑이다. 이것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뿌리다. 이 뿌리가 없이는 어떤 나라 사랑도 겨레 사랑도 다 헛것이고 빈말이고 속임수다." (275쪽)

 

 그동안 했던 나라사랑교육이 떠오른다. 태극기를 그리고, 애국가를 외워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내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과 고향산천을 사랑하는 일,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것이 나라 사랑이요 겨레 사랑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못하고 있을까?

 

 "그것은 다만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숨 막히는 교실에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갇혀 있던 교실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억눌린 자리에서 풀려나 비로소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힘, 사람의 힘은 이렇게 해서 비로소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 참되고 아름다운 것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재능도, 온갖 어려운 일을 이겨 내는 힘도 죄다 스스로 즐겨 하는 데서 생겨날 수 있다는 이 사실, 이 진리를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배워야 한다." (369쪽)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마지막 두 꼭지글은 새겨두며 늘 봐야겠다.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서 두 꼭지글을 읽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

 

(2015.04.14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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