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삼시세끼'를 참 재밌게 봤어요. 이름을 '하루세끼'로 해도 좋았을까 싶었죠. 차승원씨 밥 하는 솜씨가 대단했어요. 참바다 유해진씨는 아빠 몫을 하며 웃음을 주었고, 심부름꾼 호준씨도 착실한 모습에 재미를 더했구요. 끝날 무렵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이었어요. 차승원씨가

 

 "계속적으로 나를 던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적'이라는 말은 쓰면 안되는데 생각이 났어요. 우리말 공부를 하면서 '~적'도 '~의'에 못지 않게 잘못 쓰고 있는걸 알았죠. 저도 돌아보면 은근히 많이 쓰고 있는 말버릇이예요. 

 

 "이건 교육적으로 좋지 않아.", "내가 지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단적으로 말하면 좋지.", "무조건적으로 찬성이야." 우리가 참 많이 쓰는 말인데 이게 잘못된 말인지 몰랐어요.  '~적' 은 본래 '~의' 뜻으로 쓰는 중국어 토예요. 이를 따라 일본사람들이 번역할때 영어 -tic 음과 뜻에 맞추어 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우리 나라에서는 최남선 씨가 '소년' 창간호 표지에 처음 썼다고 하죠.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글을 쓰면서 마구 퍼진 잘못된 말버릇이예요. 

 

 "그 여자는 참 매력적이야."

 

 처음에는 뭐가 문제지? 그런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바꿔야 바른 말이 될까요? 맞아요. 

 

 "그 여자는 참 끌려. 그 여자는 참 이뻐. 그 가시내는 참 아름다워." 따위로 바꿀 수 있겠죠.

 

 주관적, 객관적, 모순적, 종교적....이라 하여 무슨 적이란 말을 글로 자꾸 쓰다보면 그것이 어느덧 실제 말에도 쓰게 되고, 그래서 심지어 "시간적으로 바빠"라든지 "세상적으로 말하면" 하는 말까지 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이렇게 쓰다보면 우리 말이 점점 시들어져서 머지않아 우리 말 전체가 중국글자말과 일본말법으로 뒤섞인, 참으로 어설픈 말이 되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오덕 우리 글 바로 쓰기 1 - 353쪽)

 

 잘못 쓰는 말버릇이라고 생각하고 돌아보니 정말 많이 보여요. 특히 어렵게 써진 글들을 보면 백이면 백 '-적'을 쓰는 말버릇이 있더라구요. 바로 이런 말버릇이 어려운 글을 만들어요. 뭔가 있어보이려고 쓰는 경우도 많겠지요? 답답해요. 책을 펴보면 하나 둘 꼭 보여요. 우선 제가 공부하고 있는 '우리 글 바로쓰기'에 나오는 보기를 다시 만들어 몇 가지 보여드려요.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보여준다.)

 

*우리 학교는 학부모들의 참여가 전국에서 모범적으로 매우 희망적이다. (~모범으로 매우 희망이 크다.)

 

*교사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공부를 했다. (교사들은 때를 정해서 공부를 했다.)

 

*철수 엄마는 무조건적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조건없는 사랑을~)

 

*이번 표는 임의적으로 나눠주게 되었습니다. (~ 임의로 또는 마음대로 ~)

 

*한편 교양적 의의를 고려하여 내용이 건전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골라 엮었습니다. (한편 교양을 쌓는 뜻을 생각하여 내용이 바르고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로 골라 엮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반대다. (~아주)

 

*우리는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나서야 한다.)

 

*축구는 원시적인 운동이다. 사람 몸에서 가장 원시적인 발로 승부하니까. (축구는 원시스런 운동이다. 사람 몸에서 가장 원시스런 발로 결판내니까.)

 

*그래도 순종적인 여자가 좋다. (~순종하는)

 

*이상적인 여성상 (바람직한 여성, 가장 바람직한 여성의 모습)

 

*동물적 성에서 사랑과 결합된 인간적 성으로 (동물같은, 사람다운)

 

*권위적인 교회를 변화시키는 기독여성들 (권위에 갇힌, 권위만 휘두르는)

 

*정치적 안정과 부드러운 노사관계 (정치 안정과~)

 

*훼손되는 사회적 관습 (사회관습)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책들을 보니 참 많아요. 정말 많아요. '-의'만큼은 아니지만 '-적'도 못지 않아요. 오랫동안 버릇이 들어서 당장 버리기는 힘들 것 같구요. 그래도 조금씩 줄여 쓰도록 힘써야 겠어요. 다음에는 책에 나온 글, 잡지에 나온 글들을 찬찬히 살펴보려고 해요. 늘 길잡이가 되주시는 함께살기님 카페에 가시면 정말 많은 보기들을 볼 수 도 있어요. 한 번 들려보세요. (함께살기님 카페: http://cafe.naver.com/hbooks)

 

(2015.4.5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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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4-06 0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마음적`을 쓰기도 하지만,
`-적`이 붙는 낱말은 거의 모두 한자말입니다.

한자를 써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아닌
`쉬운 말`을 생각해서
아이들과 어떤 말을 나누어야 아름다울까를 살피면,
`-적`이 붙을 만한 한자말을 쓸 일이 없어요.

이를테면, `순정적인`을 `순종하는`으로 바꾼다고 해서 걸맞지 않아요.
`순종`이라는 말도 그렇기는 한데, `상냥한`이나 `고분고분한`이나 `다소곳한`이나 `얌전한`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권위적인`을 `권위에 갇힌`이라 고친들 느낌이 살지 않아요.
`우악스러운`이나 `무시무시한`이나 `딱딱한`이나 `차가운`이나 `바보스러운` 같은 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아이한테 어떤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한다면
`권위`이든 `관습`이든 `동물같은`이든... 다 다시 풀어야 해요.
이를 읽을 수 있으면 `-적`뿐 아니라 다른 말투도
모두 손쉽게 가다듬을 만해요.

민들레처럼 2015-04-07 22:36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적 앞에 한자말이 많이 아니 거의 붙는 듯 해요. 한자말까지 바꾸어야겠어요. 이런 말 많이 쓰거든요. 민주적 학급, 민주적 사회...이런 말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스스로 주인되는 학급? 여기도 한자말이 많이 들어가네요. 어려워요. ^^;;
 
표현과 소통의 교육, 셀레스탱 프레네 - 프랑스의 새로운 교육
황성원 지음 / 창지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프레네 교육을 알게 된지 오년이 넘어간다. 혼자 책을 보기도 하고 프레네 모임에 나가 공부도 해봤다. 학급회의, 꾸와드네프 등 교실에서도 어설프게 적용시켜봤다. 오랜만에 다시 책을 펴든다. 나는 왜 프레네 교육을 공부했고, 알려고 했나?

 

 다시 보니 이오덕 선생님이 말한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 교육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준다.

 

 먼저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선생은 아이들을 섬기는 사람이에요.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겨야 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아이들한테 배울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프레네 교육에서도 "아동본성과 어른본성은 같다. 몸집이 더 크다고 남들 위에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다. 성인과 동일한 과정으로 학습하거나 탐구하며 환경을 만들어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게 무언지, 그리고 어떤 마음을 갖고 아이들을 만나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둘째는 교육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기존 교육은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유지하거나 경쟁으로 남을 눌러 행복해지는 방법들을 가르쳐왔다. 교육은 무얼까? 우리는 학교가 없어도 아주 옛날부터 배워왔다. 왜 학교가 생겼을까? 지배계층이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근대 학교가 생긴다. 하지만, 학교는 사회유지도구로 이용되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학교는 필요없을까? 지금 학교는 위기다. 나 역시 학교에서 무얼 배웠나 싶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나 역시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고민이다. 그래도 나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희망이 되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나? 교육은 무얼까? 교육은 아이들 삶을 잘 가꿀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학교는 이를 도와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교사는 이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마지막 어떻게 해야할까? 아이들 삶을 어떻게 잘 가꿀수있도록 도와줘야 할까?

 

*교육목표: 내 삶을 스스로 살아가자!


하나,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하며 책임지는 민주주의 학급을 만들어야 겠다. (학급문화만들기, 학급이야기..) 

둘, 표현하며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해야겠다. (글쓰기, 삶이야기, 일과 놀이...)

셋, 일을 하며 내 삶을 가꾸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프로젝트학습, 일하며 배우기...) 

 

 하루종일 책을 읽고 마무리 한다. 생각보다 오래걸린다. 3권의 책이 또 남아있지만 읽고 여기에 덧붙여 프레네교육은 내 나름 정리를 해봐야겠다. 교육철학 세우기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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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한 소식이 들려요. 교육부는 2014년 9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안 발표때 초등학교 적정 한자 수를 밝히면서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어요. 도대체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요? 어떤 이는 우리 말 70% 넘게 한자말이고, 한자도 우리 글자라느니, 한자를 배우면 정확하게 말 뜻을 알 수 있고 어휘력도 풍부해진다고 해요. 정말 맞는 말일까요?

 

 먼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한자말이 많긴 하죠. 그런데 사전을 보면 한자를 배운 지식인들이 쓰지도 않는 한자말을 마구 넣어서 한자말이 늘어나기도 했구요. 일제식민지 때 토박이말 대신 일본한자말을 만들어 낸 이유도 있겠죠. 한자병기는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말글살이예요. 1910년 일본은 우리나라를 빼앗고 한자를 섞어쓰며 토박이말을 없애는 일부터 했지요. 땅이름 사람이름까지 일본식 한자말로 바꿔 우리 겨레 얼을 없애려고 했던 건 잘 알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알고 애써 한글전용법을 만들어 우리말글살이를 하게 되었지요. 그러자 광복 직후 문맹자가 80%가 넘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잖아요. 바로 한글이 보여준 힘이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한글로만 썼을 때 그 뜻을 알 수 없는 말은 우리 말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한자를 함께 쓰는 게 아니라 우리말을 바로 알고 되찾는 일이겠지요.

 

 한자도 우리 글자다? 우리는 한자문화권에 사니 한자는 꼭 써야 한다? 참, 말도 안되는 얘기예요. 한자는 중국글자예요. 우리는 한자문화권일까요? 과연 옛날 사람들이 한자를 얼마나 썼을까요? 한자를 썼던 사람들은 아주 일부 배운 사람들이었어요. 대부분 시골에 살며 농사를 짓고 우리 토박이말을 쓰며 살았지요. 한자문화가 아닌 농경문화, 시골문화, 흙문화 이렇게 말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요? 문화라는 말도 어색한 말이예요. 먹고 입고 살아가는 삶. 문화는 바로 삶이겠죠. 한자문화란 못 배운 사람들을 누르는 힘으로만 쓰지 않았을까요?

 

 한자를 배우면 정말 우리말 뜻도 제대로 알게 되고, 말힘(어휘력)도 풍부해질까요? 학교(學校)라고 아이들이 배울학, 학교교 라고 생각하며 '배우는 학교'라고 이해할까요? 그냥 학교는 내가 다니는 곳, 공부하는 곳 이렇게 생각하겠죠. 물론 한자를 보고 말뜻을 짐작할수는 있어요. 하지만 짐작해야 할만큼 어려운 말이라면 이미 쓸만한 말이 아닐 뿐아니라 대신 쓸 쉬운 우리말이 있을꺼예요.

 

 말힘(어휘력)이 풍부해진다는 말도 바보같은 말이예요. 한자를 써서 뜻이 헷깔리기도 하죠. 우리 글 바로쓰기 책에 나온 보기예요. '석탄절 특집'이라는 제목을 보면 무슨 말이 떠오르세요? 땔감으로 쓰는 석탄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석가탄신일 특집을 줄인말이라고 해요. 이 말은 어떤가요? "시각을 거대한 우주에서 미소의 세계로 옮겨보자." 미소가 무슨 말일까요? 웃음의 세계? 미국과 소련? 여기서는 아주 작은 세계라고 하네요. 한자말을 써서 알 수 없거나 어려운 말은 참 많아요.

 

 오히려 한자말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잡아 먹는 일이 많죠. '산(山)'은 '뫼', '재', '갓'이라는 우리말을, '강(江)'은 도랑, 개울, 실개천, 개천, 시내, 내, 가람까지 잡아먹고 있지요. 이런 말이 어떤 뜻인지 또렷이 안다면 훨씬 더 말살이를 넉넉히 할 수 있겠죠.

 

 우리말을 제대로 알아야 말힘(어휘력)도 커져요. '결'은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뜻해요. 살갗 상태를 뜻하면 살결, 숨 상태를 말하면 숨결, 물이 찰랑거리는 상태를 물결이라고 말할 수 있죠. 나아가 몸결, 삶결, 말결, 마음결 이렇게 우리말을 멋지게 쓸 수 있어요. 

 

 한자는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문자예요. 두 가지 글자를 함께 쓰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지요. 일본 글자는 우리 한글처럼 우수하지 않아 한자를 어쩔 수 없이 쓰고 있어요. 우리 글만 써도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데 왜 굳이 어려운 한자를 쓰려 할까요? 영어처럼 다른 나라 글로 배우는 걸 반대하지는 않아요. 중국 책 공부를 깊이 한다거나 중국, 일본에서 일한다면 한자가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배우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모두 보는 초등학생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쓴다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네요.

 

 한겨레신문에 김창진 교수가 쓴 사설(한자병기찬성)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가 한자는 그대로 쓰고 토박이말만 바꾸기 위해 만들었다느니, 한글전용은 외국인이 시작한 일로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니고 한자도 우리글이라는 둥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었어요. 더 놀란건 땅을 일궈오며 우리 겨레를 이어온 사람들을 무지한 백성으로 보고 있었지요. 이런 생각을 가진 지식인(?)들이 바로 나라를 팔아먹곤 했어요.

 

 내가 쓰고 있는 말이 왜 이리 이상해졌을까 생각해봐요. 어렸을때는 이렇게 엉터리말을 쓰지 않았을텐데. 생각해보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말이 엉터리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논문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몇 번을 봐야 뜻을 알 수 있어요. 어렵게 못 알아듣게 써야 뭔가 있어 보이나봐요. 우리가 보는 방송도 참 문제예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김구라씨는 '나까마'라는 일본말을 거리낌없이 쓰더라구요. 마구 쏟아지는 줄임말, 비속어, 외국말, 중국말, 일본말까지 우리 말이 숨쉴 틈이 없어 보여요. 내가 쓰는 말, 왜 바로 써야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아직 멀었지만요.

 

 "말이란, 그냥 쓰는 말이 아닙니다. 말이란, 우리 생각을 담아서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음고리이자 징검돌입니다. 말이란, 집과 밥과 옷을 짓는 삶에서 밑바탕을 이룹니다. 말이란, 언제나 노래가 되고 이야기꽃으로 피어납니다. 먼먼 옛날부터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글(한자)과 책을 모르던 사람들이 스스로 노래를 짓고 모든 삶을 입말로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삶을 노래로 듣고 이야기로 배우면서 ‘몸으로 익히는 삶말’을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익혀 새롭게 하루를 지었습니다. 풀이름 하나부터 씨앗을 심어 거두는 모든 얼거리를 몸으로 함께 일하고 놀면서 입말로 배웠어요."

<최종규 누리사랑방: http://blog.naver.com/hbooklove/220217892068

 

 말을 먼저 살려야 합니다. 우리 말을 바로 찾아야 돼요. 글도 말하듯 쉽고 또렷이 써야 겠어요. 이오덕 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다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외국말과 외국말법에서 벗어나 우리 말을 살리는 일이다. 민주고 통일이고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말이 아주 변질되면 그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잘못 병들어 굳어진 말은 정치로도 바로잡지 못하고 혁명도 할 수 없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남의 말, 남의 글로써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로써 창조하고 우리 말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이오덕 우리 글 바로쓰기 1권에서>

 

(민들레처럼.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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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3-29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려고 하는 까닭은 아주 쉽게 알 수 있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아이들이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입시교육`에 일찍부터 길들도록 해서,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는 힘(창조력)을 짓누르려는 뜻이에요. 한자를 쓴대서 중국이나 일본하고 교류가 되지도 않는 줄 전문가는 다 압니다. 중국 한자와 일본 한자와 대만 한자는 모두 다르거든요. 한국 한자는 다른 나라에서 이제 아무도 못 알아봅니다. 이런 죽은 글자를 아이들이 외우도록 해야, 아이들은 정치권력이 바라는 대로 길들고 휘둘리는 노예가 되겠지요. 그러니 학교교육이 아주 무섭고, 이런 데에 아이를 함부로 보낼 수 없기도 합니다...

민들레처럼 2015-03-29 19:25   좋아요 0 | URL
책 잘 받았어요. ^^ 고맙습니다. 선생들이라도 이런 사실을 알아차려야 할텐데요. 주위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해봐야겠어요.

마인 2015-04-0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른들은 이제 배우는 어린 학생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
소리글자만 익히는게 좋은지 아니면 뜻글자와 같이 익히는게 좋은지
 
1그램의 용기 - 앞으로 한 발짝 내딛게 만드는 힘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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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야님 글은 씩씩하고 따뜻하다.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얼른 사서 본다. 찬찬히 아껴본다.

 

 

"남에게 행복해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일생을 기다렸다가 단 한 번 느끼는 커다란 행복감이 아니라 매일매일 소소하게 느끼는 작은 기쁨과 만족감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걸 깨닫기만 하면 말이다." (17쪽)

 

 밀크커피, 와인, 보름달과 24일.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의 조건. 나는 무엇이 있을까? 요즘은 아주 조용한 연구실에서 책보는 일, 땀흘려 운동하고 막 나와 느끼는 상쾌한 공기, 띡띡띡 번호키를 누르고 집에 들어올때 들리는 "아빠다!"하는 소율이 소리와 환하게 웃는 선율이 모습. 내가 느끼는 행복 참 많다. 행복하다 느끼는 마음이 자주 올라오면 행복해진다.

 

 

"옛 말씀에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라'라고 했던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가다가 중지해도 간 만큼 이익이다.' (68쪽)

 

 요즘 계획과 기록이 중요함을 더 느낀다. 난 2010년부터 목표를 세우며 살았다. 그 전에는 막연하게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살았다. 그러다 자세히 목표를 세우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작년 목표를 돌아보니 많은 걸 이루었다. 목표를 세우지 않은걸 이룬건 없었다. 기록은 버릇같다. 일기를 쓰는 버릇이 조금씩 들어 이제는 꾸준히 쓰게 된다. 무언가 생각나면 메모하고 기록을 해놓는게 중요하다. 안 그러면 날라가 버린다. 정말 단어라도 적어놓으면 나중에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토론 중 조금만 논리가 달리면 당장 말싸움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논지 흐리기, 말꼬리 잡기, 인신공격, 얼굴 붉히며 언성 높이기...토론은 없고 논쟁만 있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너무 아전인수일까?" (84쪽)

 

 그렇다. 토론은 없고 논쟁만 있는 사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회. 돌아보면 참 답답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사회를 물려줘야 할까? 아니다. 너희들부터라도 토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렴. 그렇게 아이들도 만나야겠다.

 

 

"돌이켜 생각하니, 내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였다고 해서 내가 받은 석사학위가 온전히 내 것만이 아니다." (104쪽)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게 온전히 내가 잘나서일까? 맞다. 세상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우선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지 깨닫고, 주변을 돌아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게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시민이다. 내 힘을 나만을 위해 돈버는데 쏟는게 아닌 보다 뜻있는 곳에 쏟을 수 있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 이게 교육이다. 


 난 어떤 유언장을 쓰고 죽을까? 나도 한비야님처럼 내가 갖고 있는 힘 몽땅 다 쓰고 갔으면 좋겠다. 내가 있어 세상이 조금 나아지는 삶, 그게 내 삶에 과녁이다. 그 과녁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한비야님을 보면 힘이 난다. 늘 응원하며 나도 함께 힘차게 걷는다.

 

"나도 참말이지 빛의 딸이 되고 싶다. 한여름 한낮의 태양처럼 너무나 뜨겁고 눈부시고 위협적이기가지 한 강렬한 빛이 아니라 겨울 아침 햇살처럼 맑고 다뜻하고 다정한 빛이 되고 싶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느님게 받은 이 온기와 생기를 전해주고 싶다. 세상 어디를 가건 거기서 무슨 일을 하건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과 임무, 아니 존재의 이유는 바로 빛의 딸이었으면 좋겠다."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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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3-23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이나 사회에서 `토론`을 으레 말하지만,
`토론`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없고
우리 스스로도 제대로 모르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토론`이 아니라 `이야기`랍니다.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비로소 모든 일이 풀려요.

`논쟁`이란 `말다툼`이고, 말다툼이란
생각을 말하지 않기에 이야기가 안 되는 모습입니다...

민들레처럼 2015-03-2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토론, 토의, 심포지움, 세미나...생각하니 이렇게 나누는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지요. 이야기와 말다툼 새겨봅니다. ^^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 최종규, 푸른책(청소년책)과 함께 살기
최종규 지음 / 양철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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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와 같이 잔지 벌써 한 달이 되간다. 아내가 밤 젖주는 것을 끊으려 나와 잔다. 새벽에 자주 깨서 보채 많이 힘들다. 아이가 깨면 업고 한참 달래야 잠이 든다. 새벽녘 틈틈이 본 책이다. 푸른책(청소년책)을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 이야기다. 책에서 본 삶 이야기를 보며 내 삶도 함께 돌아본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만난 교사들 거의 모두는 '교과서에 나온 지식을 교수법에 맞게 진도를 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한 반 예순에 가까운 아이들이 나중에 저마다 어떻게 제 삶을 다 다르게 꾸려 나가야 좋을지'를 살피거나 헤아리면서 가르칠 수는 없었구나 싶습니다." (38쪽)

 

 나 역시 머릿속에 남아있는 선생님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교에서 무얼 배웠나 돌아보면 교과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외우는 공부를 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선생이 되고나서도 그리 가르쳤다. 다시 돌아본다. 내가 왜 선생이 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한다. 교육은 '내 삶을 어떻게 가꿀지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국어는 왜 가르치는지? 아이들은 왜 배우는지? 모두 열 과목. 다시 생각해본다.

 

 

"생각이 있는 사림이 생각이 깃든 그림을 그리며 생각이 넘치는 삶을 꾸립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사랑을 담은 글을 쓰며 사랑이 넘실거리는 삶을 일굽니다. 웃음이 있는 사람이 웃음을 머금은 사진을 찍으며 웃음이 가득한 삶을 돌봅니다." (114쪽)

 

 돌아보면 난 내가 힘들고 바쁠때 아이들에게 여유있길 바랬다. 내가 행복하지 않을때 아이들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지도 않는데 아이들은 쓰라고 강요했다. 내 삶이 차 있지 않는데 머릿 속은 차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삶을 가꾸는 것을 알려주려면 나부터 아름답게 삶을 가꾸어야 한다.

 

 

"책이란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책은 이웃을 살피는 눈길입니다. 여태 몰랐던 일을 느끼게 해주고, 이제껏 돌아보지 못한 세상을 가만히 돌아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멀디먼 남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 얼핏설핏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삶터를 차분하게 되새기도록 도와줍니다." (156쪽)

 

 예전에는 책을 숙제처럼 읽었다. 이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까 째려보며 읽었다. 지금도 그 버릇이 조금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래도 책을 보며 나를 찬찬히 돌아본다. 내 삶과 책에 나온 사람들의 삶. 다르면서도 같은 삶. 그러며 울고 웃는다.

 

 

"아이를 보육원에 넣거나 밥어미를 두어 돌보게 하고 두 사람이 밖으로 돈벌러 나가기보다는, 우리가 우리 아이와 하루 내내 함께 지내면서 '벌지도 않지만 쓰지도 않는' 삶으로 아이한테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을 듬뿍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186쪽)

 

 요즘 사람들은 돈을 벌어 살아간다.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나도 그렇다. 같이 있는 시간에 온 힘을 쏟아보려하지만 쉽지 않다. 쉽게 벌면 쉽게 쓴다. 어렵게 벌면 어렵게 쓴다. 가치있게 벌면 가치있게 쓴다. 가치없게 벌면 가치없게 쓴다. 난 어떨까?

 

 

"한 마디로 말해서, 내 몸을 써서 땀을 내는 일은 한결같이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면, 우리 몫으로 다른 이들이 땀을 흘려 주어야만 할까요. 우리가 먹는 밥과 입는 옷과 자는 집은 내 손이 아닌 다른 이들 값싼 품삯으로 얻어야만 하나요." (238쪽)

 

 좋은 직업은 편하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몸을 쓰는 힘든 일은 하찮게 여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계급을 매기며 산다. 손수 삶을 짓는 일, 무엇인지 생각한다.

 

 

"가난한 마음이기에 절집에 가고 예배당에 갑니다. 가난한 생각이기에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고운 말씀을 차근차근 받아먹습니다. 가난한 넋이기에 누구 앞에서라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서 말을 낮춥니다. 가난한 몸이기에 두 발을 땅에 디디고 두 손으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칩니다." (245쪽)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성경구절이 있다. 더 벌어 불쌍한 사람을 더 도와주면 좋지 않나 싶었다. 내가 넘치고 차 있으면 남이 보이지 않는다. 가난하게 사는 삶, 왜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새겨본다. '돈 많이 벌고 나서 베푸는 나눔'이 아니라 '똑같이 고단하고 어려운 가운데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삶'이어야 하는지 다시 새겨본다.

 

 

"냉장고에 그득 채워 넣는 삶이 되면 더 싼 먹을거리를 찾을밖에 없고, 더 산 먹을거리를 찾는다 하여 '먹을거리 사는 데 쓰는 돈이 줄지'않습니다." (289쪽)

 

 얼마전 잔뜩 장을 보고 온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언젠가 먹겠지 한다. 돌아보면 십만원치를 사던, 오만원치를 사던 다시 장을 봐야 하는 날짜는 비슷하다. 상해 버리는 먹을거리가 자꾸 생긴다. 틈틈이 먹을만큼만 사고 나머지는 직접 키워먹는 삶. 옛날 사람들은 그리 사는게 당연했을텐데 싶다. 머릿속은 진보인데, 삶은 그렇지 못하다. 많이 그렇다.

 

 

"아마 "밥이 하늘이다"라든지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라든지 "밥 한 그릇에 담긴 즐거움과 고마움"같은 말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밥이 왜 하늘이며, 밥 한 그릇에든 나락 한 톨에든 왜 우주가 담겼는지 깨달아 보고자 나서는 몸짓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291쪽)

 

 대학때 농활을 가서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신나게 부르며 한톨도 안 남기며 밥을 먹었을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내 스스로 벼를 심어 가꾸고 거두어 먹지 않아 그 뜻을 모르지 않을까 싶다. 나도 모르고, 그러니 아이도 모른다.

 

 

"그래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마땅히 우리 누리를 읽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누리를 아름다이 가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누리를 깨끗하게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야 합니다. 돈만 버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벌되 온누리를 맑고 밝게 키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 좋은 놀이를 찾아 즐기되 내 이웃과 함께 아름다워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내 살림을 알뜰히 꾸리되 우리 누리가 어지 흐르는가를 꿰뚫면서 바른 쪽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다스려야 합니다." (293쪽)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나 살도록 짜 맞추어진 애 아빠는 목숨 하나가 이루어지는 흐름과 목숨 하나를 느끼는 넋하고 목숨 하나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눈길이 무엇인지를 늘그막까지 옳게 받아 들이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348쪽)

 

 아이를 온 몸으로 키운다. 이 말이 가슴깊게 와 닿는다. 한 달 가까이 잠투정을 하는 아이와 씨름하며 많은 생각한다. 새벽 푸르스름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또 생각한다. 힘들다. 힘들다. 새벽녁 아이가 흐느끼는 소리에 꼭 껴안고 숨소리를 함께 한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눈길이 무언지 알 수 있었을까? 미치도록 힘들지만 지금 마음이 아이를 사랑하는 힘이 될거라 믿는다.

 

 

"꿈, 사랑, 사람, 꽃, 어깨동무" (349쪽)

 

 하나 하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이다. 내 삶에 어떤 뜻으로 다가올지 날마다 새롭다.

 

 

 "글쓰기란 머리에 담긴 지식을 쏟아붓는 일이 아니라 삶쓰기라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책읽기 아닌 삶읽기를 하고, 글쓰기 아닌 삶쓰기를 하면서 제 말투와 글결은 나날이 거듭납니다. 그동안 제대로 모르고 썼던 얄딱구리한 말투를 하나하나 고칩니다. 여태껏 옳게 알지 못하고 함부로 쓰던 글결을 아쉬움없이 떨치면서 고운 글결을 찾고자 애씁니다." (355쪽)

 

 나에게 글쓰기는 대학을 가기 위한 어려운 숙제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기술을 배우는 거였다. 어른이 되서도 그저 있어보이는 글만 이곳 저곳 끄적거렸다. 하지만, 내 삶을 남기는 일기를 쓰고 돌아보며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왜 글을 쓰는지, 왜 글쓰기가 삶쓰기인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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