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소식이 들려요. 교육부는 2014년 9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안 발표때 초등학교 적정 한자 수를 밝히면서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어요. 도대체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요? 어떤 이는 우리 말 70% 넘게 한자말이고, 한자도 우리 글자라느니, 한자를 배우면 정확하게 말 뜻을 알 수 있고 어휘력도 풍부해진다고 해요. 정말 맞는 말일까요?
먼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한자말이 많긴 하죠. 그런데 사전을 보면 한자를 배운 지식인들이 쓰지도 않는 한자말을 마구 넣어서 한자말이 늘어나기도 했구요. 일제식민지 때 토박이말 대신 일본한자말을 만들어 낸 이유도 있겠죠. 한자병기는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말글살이예요. 1910년 일본은 우리나라를 빼앗고 한자를 섞어쓰며 토박이말을 없애는 일부터 했지요. 땅이름 사람이름까지 일본식 한자말로 바꿔 우리 겨레 얼을 없애려고 했던 건 잘 알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알고 애써 한글전용법을 만들어 우리말글살이를 하게 되었지요. 그러자 광복 직후 문맹자가 80%가 넘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잖아요. 바로 한글이 보여준 힘이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한글로만 썼을 때 그 뜻을 알 수 없는 말은 우리 말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한자를 함께 쓰는 게 아니라 우리말을 바로 알고 되찾는 일이겠지요.
한자도 우리 글자다? 우리는 한자문화권에 사니 한자는 꼭 써야 한다? 참, 말도 안되는 얘기예요. 한자는 중국글자예요. 우리는 한자문화권일까요? 과연 옛날 사람들이 한자를 얼마나 썼을까요? 한자를 썼던 사람들은 아주 일부 배운 사람들이었어요. 대부분 시골에 살며 농사를 짓고 우리 토박이말을 쓰며 살았지요. 한자문화가 아닌 농경문화, 시골문화, 흙문화 이렇게 말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요? 문화라는 말도 어색한 말이예요. 먹고 입고 살아가는 삶. 문화는 바로 삶이겠죠. 한자문화란 못 배운 사람들을 누르는 힘으로만 쓰지 않았을까요?
한자를 배우면 정말 우리말 뜻도 제대로 알게 되고, 말힘(어휘력)도 풍부해질까요? 학교(學校)라고 아이들이 배울학, 학교교 라고 생각하며 '배우는 학교'라고 이해할까요? 그냥 학교는 내가 다니는 곳, 공부하는 곳 이렇게 생각하겠죠. 물론 한자를 보고 말뜻을 짐작할수는 있어요. 하지만 짐작해야 할만큼 어려운 말이라면 이미 쓸만한 말이 아닐 뿐아니라 대신 쓸 쉬운 우리말이 있을꺼예요.
말힘(어휘력)이 풍부해진다는 말도 바보같은 말이예요. 한자를 써서 뜻이 헷깔리기도 하죠. 우리 글 바로쓰기 책에 나온 보기예요. '석탄절 특집'이라는 제목을 보면 무슨 말이 떠오르세요? 땔감으로 쓰는 석탄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석가탄신일 특집을 줄인말이라고 해요. 이 말은 어떤가요? "시각을 거대한 우주에서 미소의 세계로 옮겨보자." 미소가 무슨 말일까요? 웃음의 세계? 미국과 소련? 여기서는 아주 작은 세계라고 하네요. 한자말을 써서 알 수 없거나 어려운 말은 참 많아요.
오히려 한자말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잡아 먹는 일이 많죠. '산(山)'은 '뫼', '재', '갓'이라는 우리말을, '강(江)'은 도랑, 개울, 실개천, 개천, 시내, 내, 가람까지 잡아먹고 있지요. 이런 말이 어떤 뜻인지 또렷이 안다면 훨씬 더 말살이를 넉넉히 할 수 있겠죠.
우리말을 제대로 알아야 말힘(어휘력)도 커져요. '결'은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뜻해요. 살갗 상태를 뜻하면 살결, 숨 상태를 말하면 숨결, 물이 찰랑거리는 상태를 물결이라고 말할 수 있죠. 나아가 몸결, 삶결, 말결, 마음결 이렇게 우리말을 멋지게 쓸 수 있어요.
한자는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문자예요. 두 가지 글자를 함께 쓰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지요. 일본 글자는 우리 한글처럼 우수하지 않아 한자를 어쩔 수 없이 쓰고 있어요. 우리 글만 써도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데 왜 굳이 어려운 한자를 쓰려 할까요? 영어처럼 다른 나라 글로 배우는 걸 반대하지는 않아요. 중국 책 공부를 깊이 한다거나 중국, 일본에서 일한다면 한자가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배우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모두 보는 초등학생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쓴다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네요.
한겨레신문에 김창진 교수가 쓴 사설(한자병기찬성)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가 한자는 그대로 쓰고 토박이말만 바꾸기 위해 만들었다느니, 한글전용은 외국인이 시작한 일로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니고 한자도 우리글이라는 둥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었어요. 더 놀란건 땅을 일궈오며 우리 겨레를 이어온 사람들을 무지한 백성으로 보고 있었지요. 이런 생각을 가진 지식인(?)들이 바로 나라를 팔아먹곤 했어요.
내가 쓰고 있는 말이 왜 이리 이상해졌을까 생각해봐요. 어렸을때는 이렇게 엉터리말을 쓰지 않았을텐데. 생각해보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말이 엉터리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논문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몇 번을 봐야 뜻을 알 수 있어요. 어렵게 못 알아듣게 써야 뭔가 있어 보이나봐요. 우리가 보는 방송도 참 문제예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김구라씨는 '나까마'라는 일본말을 거리낌없이 쓰더라구요. 마구 쏟아지는 줄임말, 비속어, 외국말, 중국말, 일본말까지 우리 말이 숨쉴 틈이 없어 보여요. 내가 쓰는 말, 왜 바로 써야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아직 멀었지만요.
"말이란, 그냥 쓰는 말이 아닙니다. 말이란, 우리 생각을 담아서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음고리이자 징검돌입니다. 말이란, 집과 밥과 옷을 짓는 삶에서 밑바탕을 이룹니다. 말이란, 언제나 노래가 되고 이야기꽃으로 피어납니다. 먼먼 옛날부터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글(한자)과 책을 모르던 사람들이 스스로 노래를 짓고 모든 삶을 입말로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삶을 노래로 듣고 이야기로 배우면서 ‘몸으로 익히는 삶말’을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익혀 새롭게 하루를 지었습니다. 풀이름 하나부터 씨앗을 심어 거두는 모든 얼거리를 몸으로 함께 일하고 놀면서 입말로 배웠어요."
<최종규 누리사랑방: http://blog.naver.com/hbooklove/220217892068>
말을 먼저 살려야 합니다. 우리 말을 바로 찾아야 돼요. 글도 말하듯 쉽고 또렷이 써야 겠어요. 이오덕 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다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외국말과 외국말법에서 벗어나 우리 말을 살리는 일이다. 민주고 통일이고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말이 아주 변질되면 그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잘못 병들어 굳어진 말은 정치로도 바로잡지 못하고 혁명도 할 수 없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남의 말, 남의 글로써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말로써 창조하고 우리 말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이오덕 우리 글 바로쓰기 1권에서>
(민들레처럼. 201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