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 최종규, 푸른책(청소년책)과 함께 살기
최종규 지음 / 양철북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둘째와 같이 잔지 벌써 한 달이 되간다. 아내가 밤 젖주는 것을 끊으려 나와 잔다. 새벽에 자주 깨서 보채 많이 힘들다. 아이가 깨면 업고 한참 달래야 잠이 든다. 새벽녘 틈틈이 본 책이다. 푸른책(청소년책)을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 이야기다. 책에서 본 삶 이야기를 보며 내 삶도 함께 돌아본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만난 교사들 거의 모두는 '교과서에 나온 지식을 교수법에 맞게 진도를 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한 반 예순에 가까운 아이들이 나중에 저마다 어떻게 제 삶을 다 다르게 꾸려 나가야 좋을지'를 살피거나 헤아리면서 가르칠 수는 없었구나 싶습니다." (38쪽)

 

 나 역시 머릿속에 남아있는 선생님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교에서 무얼 배웠나 돌아보면 교과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외우는 공부를 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선생이 되고나서도 그리 가르쳤다. 다시 돌아본다. 내가 왜 선생이 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한다. 교육은 '내 삶을 어떻게 가꿀지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국어는 왜 가르치는지? 아이들은 왜 배우는지? 모두 열 과목. 다시 생각해본다.

 

 

"생각이 있는 사림이 생각이 깃든 그림을 그리며 생각이 넘치는 삶을 꾸립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사랑을 담은 글을 쓰며 사랑이 넘실거리는 삶을 일굽니다. 웃음이 있는 사람이 웃음을 머금은 사진을 찍으며 웃음이 가득한 삶을 돌봅니다." (114쪽)

 

 돌아보면 난 내가 힘들고 바쁠때 아이들에게 여유있길 바랬다. 내가 행복하지 않을때 아이들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지도 않는데 아이들은 쓰라고 강요했다. 내 삶이 차 있지 않는데 머릿 속은 차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삶을 가꾸는 것을 알려주려면 나부터 아름답게 삶을 가꾸어야 한다.

 

 

"책이란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책은 이웃을 살피는 눈길입니다. 여태 몰랐던 일을 느끼게 해주고, 이제껏 돌아보지 못한 세상을 가만히 돌아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멀디먼 남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 얼핏설핏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삶터를 차분하게 되새기도록 도와줍니다." (156쪽)

 

 예전에는 책을 숙제처럼 읽었다. 이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까 째려보며 읽었다. 지금도 그 버릇이 조금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래도 책을 보며 나를 찬찬히 돌아본다. 내 삶과 책에 나온 사람들의 삶. 다르면서도 같은 삶. 그러며 울고 웃는다.

 

 

"아이를 보육원에 넣거나 밥어미를 두어 돌보게 하고 두 사람이 밖으로 돈벌러 나가기보다는, 우리가 우리 아이와 하루 내내 함께 지내면서 '벌지도 않지만 쓰지도 않는' 삶으로 아이한테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을 듬뿍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186쪽)

 

 요즘 사람들은 돈을 벌어 살아간다.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나도 그렇다. 같이 있는 시간에 온 힘을 쏟아보려하지만 쉽지 않다. 쉽게 벌면 쉽게 쓴다. 어렵게 벌면 어렵게 쓴다. 가치있게 벌면 가치있게 쓴다. 가치없게 벌면 가치없게 쓴다. 난 어떨까?

 

 

"한 마디로 말해서, 내 몸을 써서 땀을 내는 일은 한결같이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면, 우리 몫으로 다른 이들이 땀을 흘려 주어야만 할까요. 우리가 먹는 밥과 입는 옷과 자는 집은 내 손이 아닌 다른 이들 값싼 품삯으로 얻어야만 하나요." (238쪽)

 

 좋은 직업은 편하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몸을 쓰는 힘든 일은 하찮게 여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계급을 매기며 산다. 손수 삶을 짓는 일, 무엇인지 생각한다.

 

 

"가난한 마음이기에 절집에 가고 예배당에 갑니다. 가난한 생각이기에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고운 말씀을 차근차근 받아먹습니다. 가난한 넋이기에 누구 앞에서라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서 말을 낮춥니다. 가난한 몸이기에 두 발을 땅에 디디고 두 손으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칩니다." (245쪽)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성경구절이 있다. 더 벌어 불쌍한 사람을 더 도와주면 좋지 않나 싶었다. 내가 넘치고 차 있으면 남이 보이지 않는다. 가난하게 사는 삶, 왜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새겨본다. '돈 많이 벌고 나서 베푸는 나눔'이 아니라 '똑같이 고단하고 어려운 가운데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삶'이어야 하는지 다시 새겨본다.

 

 

"냉장고에 그득 채워 넣는 삶이 되면 더 싼 먹을거리를 찾을밖에 없고, 더 산 먹을거리를 찾는다 하여 '먹을거리 사는 데 쓰는 돈이 줄지'않습니다." (289쪽)

 

 얼마전 잔뜩 장을 보고 온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언젠가 먹겠지 한다. 돌아보면 십만원치를 사던, 오만원치를 사던 다시 장을 봐야 하는 날짜는 비슷하다. 상해 버리는 먹을거리가 자꾸 생긴다. 틈틈이 먹을만큼만 사고 나머지는 직접 키워먹는 삶. 옛날 사람들은 그리 사는게 당연했을텐데 싶다. 머릿속은 진보인데, 삶은 그렇지 못하다. 많이 그렇다.

 

 

"아마 "밥이 하늘이다"라든지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라든지 "밥 한 그릇에 담긴 즐거움과 고마움"같은 말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밥이 왜 하늘이며, 밥 한 그릇에든 나락 한 톨에든 왜 우주가 담겼는지 깨달아 보고자 나서는 몸짓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291쪽)

 

 대학때 농활을 가서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신나게 부르며 한톨도 안 남기며 밥을 먹었을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내 스스로 벼를 심어 가꾸고 거두어 먹지 않아 그 뜻을 모르지 않을까 싶다. 나도 모르고, 그러니 아이도 모른다.

 

 

"그래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마땅히 우리 누리를 읽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누리를 아름다이 가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땅히 우리 누리를 깨끗하게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야 합니다. 돈만 버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벌되 온누리를 맑고 밝게 키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 좋은 놀이를 찾아 즐기되 내 이웃과 함께 아름다워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내 살림을 알뜰히 꾸리되 우리 누리가 어지 흐르는가를 꿰뚫면서 바른 쪽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다스려야 합니다." (293쪽)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나 살도록 짜 맞추어진 애 아빠는 목숨 하나가 이루어지는 흐름과 목숨 하나를 느끼는 넋하고 목숨 하나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눈길이 무엇인지를 늘그막까지 옳게 받아 들이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348쪽)

 

 아이를 온 몸으로 키운다. 이 말이 가슴깊게 와 닿는다. 한 달 가까이 잠투정을 하는 아이와 씨름하며 많은 생각한다. 새벽 푸르스름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또 생각한다. 힘들다. 힘들다. 새벽녁 아이가 흐느끼는 소리에 꼭 껴안고 숨소리를 함께 한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눈길이 무언지 알 수 있었을까? 미치도록 힘들지만 지금 마음이 아이를 사랑하는 힘이 될거라 믿는다.

 

 

"꿈, 사랑, 사람, 꽃, 어깨동무" (349쪽)

 

 하나 하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말이다. 내 삶에 어떤 뜻으로 다가올지 날마다 새롭다.

 

 

 "글쓰기란 머리에 담긴 지식을 쏟아붓는 일이 아니라 삶쓰기라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책읽기 아닌 삶읽기를 하고, 글쓰기 아닌 삶쓰기를 하면서 제 말투와 글결은 나날이 거듭납니다. 그동안 제대로 모르고 썼던 얄딱구리한 말투를 하나하나 고칩니다. 여태껏 옳게 알지 못하고 함부로 쓰던 글결을 아쉬움없이 떨치면서 고운 글결을 찾고자 애씁니다." (355쪽)

 

 나에게 글쓰기는 대학을 가기 위한 어려운 숙제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기술을 배우는 거였다. 어른이 되서도 그저 있어보이는 글만 이곳 저곳 끄적거렸다. 하지만, 내 삶을 남기는 일기를 쓰고 돌아보며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왜 글을 쓰는지, 왜 글쓰기가 삶쓰기인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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