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이야기 1 - 사막의 낭만과 모험 사하라 이야기 1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지나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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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헤딘의 전기를 읽고는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그런 사막 말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 호주로 첫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사막을 볼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호주의 사막은 모래사막이 아닌 붉은 흙사막이었다. 난 아직도 어려서 꿈꾸던 그런 모래사막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살아 생전에 볼 수 있을지 살짝 궁금해졌다.

 

나에게 싼마오는 처음에 에코 첸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막내집게 출판사에서 나온 싼마오 작가의 사하라 이야기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는 지나북스라는 곳에서 싼마오의 전집을 낼 모양인가 보다. 우리 북플러 문나이트님이 최근에 이 책을 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제 도서관에 들렀다가 바로 빌려서 다 읽어 버렸다. 언제 두어번 읽었다는 기시감과 함께 술술 읽히는 재미가 무엇보다 싼마오 작가가 펼쳐내는 사막판 아라비안나이트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당연히 싼마오의 신랑 호세 마리아 쿠에보 아저씨가 연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싼마오가 호세보다 8살 나이가 많았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943년 중국 충칭에서 태어나 1948년 타이완으로 건너간 싼마오의 삶은 그야말로 글로벌한 그런 세계인이었다. 그것도 지금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반세기 전 정도의 이야기라면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스페인 유학 시절은 그렇다 치고, 독일에 가서 6개월 동안 잠을 안자며 언어 공부에 매진해서 독일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이수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단 이렇게 세계인이 되고자 하면, 이 정도 언어에 대한 능력은 기본인가 싶기도 하고. 24살 정도에 결혼하기로 했던 독일 선생님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싼마오는 24살 때 처음으로 16세 호세를 만났다고 하는데, 이 어린애가 나중에 자신의 신랑이 되리라고 그녀는 과연 알았을까.

 

이런 새로운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타이완 출신 새색시의 사하란 나이트에 뛰어 들어본다. 사막이 로맨틱한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대 오산이었다. 일단 물가부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고, 싼마오와 호세는 결핍과 단절 그리고 먹고사니즘의 고단함과 싸워야 했다. 사막 생활 초기, 외로움과 비통함에 시달리던 싼마오의 심정이 예전과 달리 왜 이렇게 절절하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타지 생활은 모름지기 고달프기 마련이지만, 모든게 풍족하지 않은 사막에서는 더더욱 그랬으리라.

 

사람 좋고, 어쩔 수 없는 오지라퍼인 싼마오는 사하라위 사람들의 생활에도 깊숙하게 개입한다. 3~4년에 한 번씩 목욕을 한다는 현지 여성들과의 목욕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 서구인들의 위생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년마다 한 번씩 하는 목욕이니 엄청난 때가 나오는 건 불문가지의 일일 것이다. 사하라위 여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위생 관념에 역겨워하는 장면에는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서구의 시선으로 나와는 다른 이들을 판단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싼마오는 확실히 사막의 여걸이었다. 남편 호세가 늪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도 침착하게 대응해서 결국 그를 살려내는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신앙인답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엉터리 레시피를 동원해서 상사의 식욕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고, 자신이 적지라고 간주한 호세의 홈그라운드 마드리드의 시집에 가서도 36명이나 되는 소대 병력을 위한 중국식 크리스마스 이브 만찬도 척척해내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싶다. 1970년대 서양에도 시월드는 존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싼마오는 결국 시엄마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성공한다.

 


싼마오와 호세가 빚어내는 사하라 사막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 보잘 것 없는 사막의 거처를 모든 이들이 감탄하게 만드는 그들만의 궁전으로 꾸미는 것을 보라. 물론 초반에는 옥상에 올라간 염소가 중앙의 뻥 뚫린 공간으로 떨어지는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한 시절 주말어부로 불릴 정도로 낚시를 좋아해서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풋내기 어부 에피소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시배스와 도미를 잡아먹기도 했지만, 싼마오 부부처럼 물고기를 잡아 돈벌이할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물가가 비싼 사막에서 돈을 좀 아껴 보겠다고 물고기 잡이에 나선 부부의 어부 생활은 퍼주기 좋아하는 사람들답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자신들이 헐값에 넘긴 물고기 재료들이 요리로 변신해서 레스토랑 식탁에 오르고, 결국 자신들이 번 돈보다 더 쓰게 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 나도 물고기 잡고 싶다!

 

흥겨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타이완 처자 싼마오는 왜 남들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 사막에 가고 싶었던 걸까라는 점이 궁금해졌다. 그곳에서 싼마오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던 문명의 이기들을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면서 비통해 하기도 하고, 외로움에 지치기도 하지 않았던가. 동시에 사하라위 사람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통해 나와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삶의 다양성들을 포착하기 위해 싼마오는 사막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요즘에는 삼라만상을 커버하는 너튜브 콘텐츠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다면, 오래 전에는 이런 방식의 이야기들이 그 역할을 했었다. , 문득 넷플릭스에서 싼마오와 호세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싼마오와 호세의 사하라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함께 하는 동안 이 이질적인 부부의 사랑과 전쟁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구수한 누룽지 같은 맛 같은 이야기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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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5-30 22: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자책으로도 있네요.
내용도 독특할 것 같고,
구수하게 글을 써주셔서 읽어봐야겠어요.
아직은 달라가,,, 땡투 들어오면
달라가 올랐나 보다 생각하셔도 될 듯요.^^;;;

레삭매냐 2022-05-31 10:13   좋아요 3 | URL
아~ Dollar 돌라 !!!
역시나 재밌으신 라로님 ~

2권도 빌릴 걸 그랬나 봐요.
<포근한 밤>은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선정되서 다음달
에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싼마오와 호세의 엔딩이 그래
서 그렇지, 책은 참 재밌습니다.

moonnight 2022-05-31 1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레삭매냐님 리뷰를 읽으니 뭔가 완성감이 느껴져요. 책을 읽었으나 아직 덜 읽었었군요. 저는ㅎㅎ^^;;;;
덕분에 싼마오와 레오에 대해 더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

레삭매냐 2022-05-31 13:07   좋아요 1 | URL
싼마오 씨는 아무래도 시대
를 앞서간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나이트님의 글을 보고 나
서 삼독에 들어갔답니다 :>
감사합니다.

mini74 2022-05-31 1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저 이 책 좋아해요. 한권짜린데 그리고 루소그림이 표지죠 ㅎㅎ 유쾌하게 읽었던 책이에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2-05-31 13:08   좋아요 2 | URL
예전에 읽으면서 속으로
킬킬댄 기억이 솔솔 납니다.

아주 유쾌한 책이라는 지적
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
니다.

엔딩이 참 비극이라 그렇지
요 아무래도.

mini74 2022-06-10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가웠던 책이네요. 매냐님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6-10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싼마오 였군요!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6-10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6월우 압둘라로~!!

서니데이 2022-06-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6-11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 눌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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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히틀러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만 궁금해 했었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했던 것 같다. 전간기 히틀러의 부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집권까지의 기간을 관통하는 놀라운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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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31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전쟁하겠다 타인종에 대해 차별하겠다 이런 공약에도 그들이 표를 줬다고 그래서 독일인들 대부분이 공범이다 란 식의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 공약에도 ?! 뽑다니 했다가도 우리도 뭐 ㅠㅠ 싶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2-05-31 13:06   좋아요 1 | URL
괴테와 칸트를 배출한 나라
의 시민들이 이상한 집단을
선출한 걸 보면 정말 노답이
지 싶습니다.

저희도 아파트값만 올려 주
겠다는 공약만 내 놓으면 묻
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을 기
세인 걸요 ㅠ

coolcat329 2022-05-31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이 책 샀습니당~^^

레삭매냐 2022-05-31 17:10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려다 사두긴 했는데,
다른 책들 읽느라 미처
못 읽고 있네요.

6월에는 읽는 것으로.
 



지금은 왱청의 노래들을 듣고 있다.


너튜브에서 오늘 아침에 80년대 레트로 스타일로 영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를 평정한 두 청년 왬에 대한 콘텐츠를 보니, 문득 오래 전에 즐겨 듣던 노래들이 마구 떠올랐다.

, 마잭도 가고 프린스, 휘트니 휴스턴 그리고 조지 마이클도 모두 갔구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말이 1도 틀리지 않음을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사실 요즘 노래들은 자주 듣지도 않지만.

 


어젯밤 늦게까지 압둘라자크 구르나 아자씨의 <바닷가에서>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졸려서 자려고 누우니 또 잠이 오지 않는다. 이 무슨 해괴한 상황이란 말인가. 그래서 연달아 읽고 있는 <낙원> <바닷가에서>의 내용들을 떠올려 봤다.

자꾸만 생각들이 떠오르고 또 나중에 리뷰에 써먹을 만한 것들이 생겨서 자다 말고 일어나서 메모를 해야 하나 어쩌나... 그러다 잠이 들었다.

 

보통 책 읽고 나면 바로 리뷰를 날림으로 작성한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으면 책에서 만난 따끈따끈한 생각들이 모두 휘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어제 <낙원> 리뷰를 쓰면서도 무언가 읽을 적에는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이래서 생각이 나는 대로 바로바로 적어야 하는데 말이지.

 

소설 <낙원>이 구르나 아재의 고향인 잔지바르-탕가니카를 공간적 배경으로 했자면, <바닷가에서>는 이방인, 망명 신청자인 65세 라자브 샤아반의 관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왜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 타지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일까? 게다가 소설의 화자는 무슬림 흑인이다. 백인 기독교 사회인 영국에서 그가 과연 무탈하게 받아 들여질 수 있을까?

 

<낙원>이 과거사를 다루고 있다면, <바닷가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난민 혹은 정치적 망명자들의 이야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전에는 창틀 청소를 했다. 나는 주말에도 쉬질 못하는구나 그래. 몇 달 방치해 두었더니만 먼지가 잔뜩 끼어서 아침에 환기를 위해 문을 여닫을 때마다 눈에 밟힌다. 그래서 결국 고무장갑을 오른손에만 끼고 다른 왼손으로 물티슈를 꺼내 들고 작업에 나섰다. 꼴랑 두 짝을 닦았는데 땀이 나고 진이 빠져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한 것도 아니고. 구석까지 손이 닿지 않으니 나무젓가락을 동원해야 하는데 다 일이다. 그래서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말았다. 거실이랑 책방의 창틀은 아직 시도도 하지 못했다.

 


오늘 점심에는 소고기를 먹으러 갈 계획이다. 멀리까지 가면 좋은데, 너무 멀어서 대신 인근에서 수배를 했다. 식당이라기 보다 소고기 정육식당 분위기라고 하는데... 참 꼬맹이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그것도 수리하러 가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원두막이나 이런데 가서 책이나 읽으면서 밑줄 좍좍 긋고, 리뷰를 위한 메모나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나 그래.

 



월초에 근 2년 만에 속초-고성 바다에 갔다 왔는데 바람이 들었는지 또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간 아야진에서는 새끼 소라들을 무지 잡았지. 그때만 해도 물이 차서 발모가지가 어는 줄 알았다. 바닷가에 텐트를 쳤는데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그야말로 텐트가 날아갈 정도였다. 텐트 안에 돌멩이들을 깔았는데도 그랬다. 참 잡은 소라들은 제법 실해서 삶아 먹을 생각이었는데, 숙소에 성능이 좋아 보이는 인덕션은 있었지만 냄비나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그냥 다 바다에 풀어줬다. 녀석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래. 안 그랬으면 몽땅 다 내 뱃속으로 들어올 뻔 했다규.

 

애고 12시가 넘었네, 고기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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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28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점심부터 쇠고기에 소주 인가요? ^^ 리뷰는 공감가는게 조금 지나서 쓰면 잘 기억이 안나고 까먹게 되더라구요 ㅋ
압둘라자크 작품들은 다 좋아보이네요. 노벨상 탈만한 작가인거같아요~!!

레삭매냐 2022-05-28 15:43   좋아요 2 | URL
저희는 차를 가져 가서 먹고픈
쏘주는...

옆 테이블에서는 아주 거나하
게 드시고 계시더라구요 ㅋㅋ
근데 그곳은 차 없으면 못 가
는 곳인데 도대체 누가 운전을
할 지 궁금하더군요.

구르나 아재 읽을수록 진국이
라는 생각이 듭니다 넵.

독서괭 2022-05-29 0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바쁘게 보내셨네요^^ 압둘라자크 쭉쭉 읽어가시는군요. <파친코>를 비롯해서 최근 트렌드가 디아스포라적 삶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데, 압둘라자크가 다루는 이야기도 그런가 봅니다.
책 읽고 나서 바로 리뷰 써야하는데요 정말.. 자꾸 미루다가 못 쓰는 일이 허다하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2-05-29 08:54   좋아요 2 | URL
독서괭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두
작가 모두 디아스포라적인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국에서 태어난 이민자들이 자신
들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
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
점으로 작동하네요.

저도 될 수 있는대로 바로 쓰려고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
는데 결국 못 쓰게 되더라구요 ㅠ
 
전원 옥쇄하라!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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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도 뉴브리튼에서 벌어진 잊혀진 전쟁 그리고 그곳에서 잊혀진 병사들의 이야기. 병사들을 한낱 소모품 취급한 일본 제국 군부의 실체를 파헤치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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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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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 밴드 GNR<Paradise City>란 노래가 있다. 정말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노래라, 가사도 일부 기억한다. 화려한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곡에는 풀이 초록색이고 여자들이 예쁜 그 곳, 낙원으로 날 데려다줘(Take me down to the paradise city, Where the grass is green and the girls are pretty)”라는 가사가 나온다. 당시 하드 로커들에게 낙원이란 아마 그런 곳이 아니었나 싶다. 리뷰를 쓰기 전에 유튜브로 노래를 찾아 들었다. 참고로 grass에는 대마초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작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잔지바르 출신으로 영국에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낙원>에 다녀왔다. 작년 가을에도 언급했지만, 국내 출판사들이 부지런히 이런 해외작가들을 발굴해서 번역하는 작업을 해놓았다면 아마 작년 가을에 대박이 났겠지만 애석하게도 당시에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가 발표한 10권의 책 중에 단 한 권도 국내에 출간된 책들이 없었다. 노벨문학상 특수는 그렇게 물건너 갔고, 수상 후에는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비싼 인세를 지급해야 했으리라. 그리고 보면 문학산업 혹은 출판업도 투자의 혜안이 필요한 영역이 아닌가 싶다.

 

존 맥스웰 쿳시 선생이 말했다시피 모든 이야기는 자서전이라는 말이 구르나 작가의 <낙원>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연상됐다. 구르나 작가의 고향은 지금은 탄자니아라고 불리지만 예전에는 탕가니카라고 불리던 곳 중에서도 잔지바르다. 동향의 연예계 형님으로는 작가보다 2살 위인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 삼천, 아니 또 샛길로 빠질 뻔했다.

 

각설하고 소설 <낙원>에 대해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 보자. 소설의 주인공은 사이드 아지즈라는 거상에게 아버지의 빚 때문에 팔린 채무노예 유수프(12). 이유도 모른 채 집을 떠나야 하는 유수프에게 호텔리어였던 아버지가 설명을 해주었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겠지. 어쨌든 아저씨라 부르던 아지즈는 유수프의 주인으로 변신했다. 소년의 알량한 자존심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를 계속해서 아저씨라고 부른다. 아지즈의 집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선배 칼릴이 있었는데 칼릴은 세상물정 모르는 소년을 키파 우롱고(산송장)’이라고 부르며 또 나름 셈법도 알려 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츤데레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상인의 볼모가 된 유수프의 처지는 고달프다. 아버지의 채무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아지즈의 집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할 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지즈가 아주 악질 주인은 아니라는 점과 칼릴이 그를 좋게 봐주고 있다는 점 정도.

 

해안도시에 사는 아지즈는 내륙으로 향하는 대규모 카라반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도모하는 상인이다. 유사 이래,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은 틀린 적이 없는 모양이다. 대항해시대 무모해 보이는 일단의 유럽인들은 한 줌의 후추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방무역에 뛰어들었다. 일단 동방의 향신료들을 수급해서 본국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벼락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유사 낙원 같았던 아지즈의 정원을 떠나 상인 하미드가 거주하는 산동네 생활을 잠시 하던 유수프는 아지즈의 명으로 내륙지대로 향하는 대규모 카라반에 동참하게 된다.

 

그 때까지도 문맹이었던 유수프는 하미드 덕분에 치욕적이긴 했지만, 문자를 배우게 되었다. 늦깎이 학생이었던 유수프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의 모욕을 받으면서 탁월한 동기부여로 학업에 맹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맹이었기 때문에, 기도도 대충하고 이슬람 사원에 가서도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산동네에서 하미드의 창고에 아지즈가 무언가 불법적인 밀수품들을 숨겨 두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품기도 한다.

 

아마 이때 15세 정도가 된 미남자 유수프는 위험천만한 카라반 여정을 겪으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어려서는 꿈에서 개떼들에게 쫓기는 그런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지즈의 집에 살던 시절에는 동네 아줌마인 마 아주자가 치근덕대기도 했지 아마. 남색가로 유명한 카라반 리더 모하메드 압달라를 주의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는 일꾼들에게 냉혹하지만 주인에게는 둘도 없이 충성을 다하는 그런 음냐파라였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로 자원과 시장 확보가 절실하게 필요해진 영국과 프랑스로 대변되는 제국주의 열강들은 세계를 자기들 마음대로 요리했다. 무탈하게 걱정 없이 살던 원주민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백인들이 들이닥쳐서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잘 조직된 강력한 군대와 라이플이라는 선진 무기라는 뒷배가 있었다. 제국주의 총칼이라는 무력 앞에 지역 토후들이나 술탄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소설 <낙원>의 시간적 배경은 아마 영국과 독일이 탕가니카에서 맞붙기 직전인 1910년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식민지 쟁탈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다. 말로 안되니, 힘으로 맞붙어 보자는 식의 사고가 팽배하지 않았나 싶다.

 

상인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로 구성된 아지즈 카라반은 자신들만의 돈으로는 부족했는지 인도인들의 돈까지 빌려 대규모 카라반을 구성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 카라반이 막대한 이익을 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걸 소설이 진행될수록 절실하게 알게 됐다. 우선 가는 곳마다 적대적인 지역 토후들이 통행세 방식의 공물을 요구했다. 백인들이 침투하던 시절, 외부인에 대한 원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역의 영주나 토후들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방식으로 그들은 카라반에게 통행세를 요구했다.

 

게다가 야생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카라반 대원들 중의 한 명은 야간에 하이에나들의 습격을 받아 얼굴이 뜯기고 결국 사망했다. 귀중한 상품들을 지키기 위해 보초가 필요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무장한 보초는 필수였다. 어느 마을에서는 카라반 일행이 도착하고 나서 악어에게 마을 아녀자가 물려 갔다며 카라반이 재앙을 마을에 몰고 왔다는 식의 대응을 하기도 했다. 결국 무언가 공물을 더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차투 마을에 도착한 아지즈 카라반은 결국 그곳에서 봉변을 당하기에 이른다. 차투의 족장이 원하는 걸 모두 들어 주었음에도 결국 카라반 일행은 야간에 차투들의 습격을 받아 포로 신세가 되고, 안내자를 혹독하게 다룬 모하메드 압달라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해서 거의 반죽음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카라반이 몰살당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던 아지즈에게 구원의 손길이 도착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럽인 이끄는 부대의 등장이었다. 자신의 카라반이 약탈당했다는 사실을 유럽인 빅 맨에게 알린 아지즈는 사지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그야말로 폭풍 같은 전개가 벌어진 뒤, 일행은 해안 도시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재기를 도모하는 아지즈에게 하미드가 보관하고 있다는 비푸라(코뿔소 뿔)가 기회가 될 거라는 말들이 오간다. 비푸라 거래는 과연 차투에서의 대참사를 역전할 수 있을까?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청년으로 성장한 유수프의 앞에는 미스터리한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낙원>을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매혹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점이다.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탕가니카 출신이 아니라면, 이런 디테일한 서사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을 연구하고 직접 직조하는 작가답게 외부인의 시각이 아닌 내재된 시선으로 시대의 문제들을 다룬다. 한편, 자신의 언어인 스와힐리어가 아닌 이방인이자 식민모국의 언어로 자신의 사유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선배 조지프 콘래드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연상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대륙 심장부로의 여정을 그린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이 어쩔 수 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3년 전에 쓴 리뷰만으로는 <어둠의 심연>의 독서 기억을 되살릴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대단히 현실주의자인 작가는 유수프와 칼릴의 여동생 아미나의 대화를 통해 지옥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낙원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모두가 엄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낙원을 가기를 꿈꾸지만, 이 세상에 그런 근심과 걱정을 모두 덜 수 있는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 바로 구르자 작가의 인터뷰에서 읽어낸 그의 작품에 흐르는 두 가지 주제 가운데 하나인 잔혹함(cruelty)이 아닐까. 다른 하나인 불공정(injustice)은 유수프가 아버지의 빚을 대신해서 사이드 아지즈의 채무노예가 된 본질적 문제였다. 아울러 차투 참사 당시, 사건 해결에 나선 이가 식민 지배자인 유럽인이라는 점이었다. 차투 족장과 카라반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의 강제 혹은 정의에 의존해야 한다는 역설이야말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직면한 문제의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읽기의 출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낙원>을 읽고 나서 바로 수급해 두었던 <바닷가에서>를 읽고 있는데, 역자가 달라서 그런 진 왠지 문체나 스타일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자가 교수님 스타일의 정석 같은 번역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시인이 맡은 번역이라 그런지 좀 더 서정적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아무래도 구르나 작가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뱀다리] 오래 전, 사이먼 앤 가펑클의 콘서트에 갔던 적이 있다. 이미 전성기를 지난 노친네들이 부르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는 좀 서글펐다.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좋았지만 한 시절, 천사의 목소리라는 상찬을 받던 이마가 훤한 아트 가펑클의 목소리에는 전성기 시절 폭발하는 그런 힘이 없었다. 노벨문학상은 어떤 한 작품에 대한 상이 아닌 한 작가의 문학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전성기가 지난 노년의 작가에게 주어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한 작가가 쓰는 모든 작품이 좋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전성기가 지난 노대가에게 전작을 뛰어넘을 만한 그런 작품을 기대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지방선거, 사전 투표 완료!


지난 대선 때, 하도 사전 투표 조작 타령을 해대서

당일날 투표하러 갔다가 추운데 한 시간이나 기다

리는 바람에 쏘울이 탈탈 털린 기억으로 이번에는

바로 사전투표를 했다.


관외투표자 임에도 전문가들이셔서 그런지 채 5분

도 걸리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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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5-27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수프라는 소년의 성장 소설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내용을 보니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 없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2-05-27 13:23   좋아요 1 | URL
과연 그러합니다 -

노벨문학상이 고스톱 쳐서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5-27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레삭매냐님 별 다섯이니 검증은 끝난거네요 ~!! 저도 이 책 읽어보고 레삭매냐님 리뷰를 자세히 읽어야겠어요. 그 grass 가 대마초군요 ㅋ 저도 GNR 1집이 정말 좋더라구요 ^^

레삭매냐 2022-05-27 13:34   좋아요 1 | URL
좋은 작품이라서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가을
에 AFKN에서 처음 들은 ˝서윗
차일드 오마인˝의 서두에서 슬래
래시가 뜯는 기타 리프와 액슬
로즈의 쇳소리 나는 보칼은 지금
다시 들어도 슈파-울트라-메가
전율이었습니다.

최근 토르 <러브 앤 썬더> 예고편
에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걸 듣고는 크하~
바로 이거제!

Appetite for Destruction 은
최고의 록 앨범입니다.

Rock will never die !

그레이스 2022-05-27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기 전부터 팬이 될듯 합니다.
매거진도 받았고, 3권 다 구입했으니...^^
읽어야겠습니다.
빨리 읽고 싶어서 들썩거립니다 ㅋ

레삭매냐 2022-05-27 17:59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러합니다 -

당장 <바닷가에서> 읽고 싶어
서 몸이 다 근질근질하네요.

오늘 저녁에는 옴팡지게 빠져
볼랍니다.

라로 2022-05-27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5-27 21:45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책들은 나오는
대로 족족 읽게 될 것 같
습니다.

stella.K 2022-05-27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사이먼과 가펑클이 우리나라에 다녀갔었나요?
거 꽤 오래된 이야긴데요?
올해들어 우리나라의 셀럽들이 세상을 많이 등졌더던요.
그러고 보면 한 세대는 이렇게 가는구나 서글프긴 하더군요.
늙는 것도 그렇고.ㅠ
리뷰 보니 읽고 싶긴하네요. 포스트콜로니얼 문학 첨 듣는 용언데 뭔 뜻이 대충 알겠네요.
구르나란 성이 웬지 마음에 들어요. ㅋ

레삭매냐 2022-05-27 21:48   좋아요 1 | URL
울나라는 아니고 오래 전에
미쿡에서 직관했답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
대에 밀려나는 느낌이랄까요.

탈식민주의라고도 하는데,
왠지 느낌이 살지 않는 것 같
아서 원어 대로 차용해 봤습
니다.

어쩌면 키스와힐리로 뭔 뜻
이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그 쪽에는 워낙 문외한이다
보니.

이 책 읽으면서 키스와힐리로
심바가 사자라는 걸 배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