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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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 밴드 GNR<Paradise City>란 노래가 있다. 정말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노래라, 가사도 일부 기억한다. 화려한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곡에는 풀이 초록색이고 여자들이 예쁜 그 곳, 낙원으로 날 데려다줘(Take me down to the paradise city, Where the grass is green and the girls are pretty)”라는 가사가 나온다. 당시 하드 로커들에게 낙원이란 아마 그런 곳이 아니었나 싶다. 리뷰를 쓰기 전에 유튜브로 노래를 찾아 들었다. 참고로 grass에는 대마초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작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잔지바르 출신으로 영국에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낙원>에 다녀왔다. 작년 가을에도 언급했지만, 국내 출판사들이 부지런히 이런 해외작가들을 발굴해서 번역하는 작업을 해놓았다면 아마 작년 가을에 대박이 났겠지만 애석하게도 당시에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가 발표한 10권의 책 중에 단 한 권도 국내에 출간된 책들이 없었다. 노벨문학상 특수는 그렇게 물건너 갔고, 수상 후에는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비싼 인세를 지급해야 했으리라. 그리고 보면 문학산업 혹은 출판업도 투자의 혜안이 필요한 영역이 아닌가 싶다.

 

존 맥스웰 쿳시 선생이 말했다시피 모든 이야기는 자서전이라는 말이 구르나 작가의 <낙원>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연상됐다. 구르나 작가의 고향은 지금은 탄자니아라고 불리지만 예전에는 탕가니카라고 불리던 곳 중에서도 잔지바르다. 동향의 연예계 형님으로는 작가보다 2살 위인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 삼천, 아니 또 샛길로 빠질 뻔했다.

 

각설하고 소설 <낙원>에 대해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 보자. 소설의 주인공은 사이드 아지즈라는 거상에게 아버지의 빚 때문에 팔린 채무노예 유수프(12). 이유도 모른 채 집을 떠나야 하는 유수프에게 호텔리어였던 아버지가 설명을 해주었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겠지. 어쨌든 아저씨라 부르던 아지즈는 유수프의 주인으로 변신했다. 소년의 알량한 자존심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를 계속해서 아저씨라고 부른다. 아지즈의 집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선배 칼릴이 있었는데 칼릴은 세상물정 모르는 소년을 키파 우롱고(산송장)’이라고 부르며 또 나름 셈법도 알려 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츤데레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상인의 볼모가 된 유수프의 처지는 고달프다. 아버지의 채무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아지즈의 집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할 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지즈가 아주 악질 주인은 아니라는 점과 칼릴이 그를 좋게 봐주고 있다는 점 정도.

 

해안도시에 사는 아지즈는 내륙으로 향하는 대규모 카라반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도모하는 상인이다. 유사 이래,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은 틀린 적이 없는 모양이다. 대항해시대 무모해 보이는 일단의 유럽인들은 한 줌의 후추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방무역에 뛰어들었다. 일단 동방의 향신료들을 수급해서 본국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벼락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유사 낙원 같았던 아지즈의 정원을 떠나 상인 하미드가 거주하는 산동네 생활을 잠시 하던 유수프는 아지즈의 명으로 내륙지대로 향하는 대규모 카라반에 동참하게 된다.

 

그 때까지도 문맹이었던 유수프는 하미드 덕분에 치욕적이긴 했지만, 문자를 배우게 되었다. 늦깎이 학생이었던 유수프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의 모욕을 받으면서 탁월한 동기부여로 학업에 맹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맹이었기 때문에, 기도도 대충하고 이슬람 사원에 가서도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산동네에서 하미드의 창고에 아지즈가 무언가 불법적인 밀수품들을 숨겨 두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품기도 한다.

 

아마 이때 15세 정도가 된 미남자 유수프는 위험천만한 카라반 여정을 겪으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어려서는 꿈에서 개떼들에게 쫓기는 그런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지즈의 집에 살던 시절에는 동네 아줌마인 마 아주자가 치근덕대기도 했지 아마. 남색가로 유명한 카라반 리더 모하메드 압달라를 주의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는 일꾼들에게 냉혹하지만 주인에게는 둘도 없이 충성을 다하는 그런 음냐파라였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로 자원과 시장 확보가 절실하게 필요해진 영국과 프랑스로 대변되는 제국주의 열강들은 세계를 자기들 마음대로 요리했다. 무탈하게 걱정 없이 살던 원주민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백인들이 들이닥쳐서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잘 조직된 강력한 군대와 라이플이라는 선진 무기라는 뒷배가 있었다. 제국주의 총칼이라는 무력 앞에 지역 토후들이나 술탄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소설 <낙원>의 시간적 배경은 아마 영국과 독일이 탕가니카에서 맞붙기 직전인 1910년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식민지 쟁탈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다. 말로 안되니, 힘으로 맞붙어 보자는 식의 사고가 팽배하지 않았나 싶다.

 

상인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로 구성된 아지즈 카라반은 자신들만의 돈으로는 부족했는지 인도인들의 돈까지 빌려 대규모 카라반을 구성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 카라반이 막대한 이익을 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걸 소설이 진행될수록 절실하게 알게 됐다. 우선 가는 곳마다 적대적인 지역 토후들이 통행세 방식의 공물을 요구했다. 백인들이 침투하던 시절, 외부인에 대한 원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역의 영주나 토후들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방식으로 그들은 카라반에게 통행세를 요구했다.

 

게다가 야생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카라반 대원들 중의 한 명은 야간에 하이에나들의 습격을 받아 얼굴이 뜯기고 결국 사망했다. 귀중한 상품들을 지키기 위해 보초가 필요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무장한 보초는 필수였다. 어느 마을에서는 카라반 일행이 도착하고 나서 악어에게 마을 아녀자가 물려 갔다며 카라반이 재앙을 마을에 몰고 왔다는 식의 대응을 하기도 했다. 결국 무언가 공물을 더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차투 마을에 도착한 아지즈 카라반은 결국 그곳에서 봉변을 당하기에 이른다. 차투의 족장이 원하는 걸 모두 들어 주었음에도 결국 카라반 일행은 야간에 차투들의 습격을 받아 포로 신세가 되고, 안내자를 혹독하게 다룬 모하메드 압달라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해서 거의 반죽음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카라반이 몰살당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던 아지즈에게 구원의 손길이 도착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럽인 이끄는 부대의 등장이었다. 자신의 카라반이 약탈당했다는 사실을 유럽인 빅 맨에게 알린 아지즈는 사지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그야말로 폭풍 같은 전개가 벌어진 뒤, 일행은 해안 도시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재기를 도모하는 아지즈에게 하미드가 보관하고 있다는 비푸라(코뿔소 뿔)가 기회가 될 거라는 말들이 오간다. 비푸라 거래는 과연 차투에서의 대참사를 역전할 수 있을까?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청년으로 성장한 유수프의 앞에는 미스터리한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낙원>을 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매혹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점이다.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탕가니카 출신이 아니라면, 이런 디테일한 서사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을 연구하고 직접 직조하는 작가답게 외부인의 시각이 아닌 내재된 시선으로 시대의 문제들을 다룬다. 한편, 자신의 언어인 스와힐리어가 아닌 이방인이자 식민모국의 언어로 자신의 사유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선배 조지프 콘래드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연상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대륙 심장부로의 여정을 그린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이 어쩔 수 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3년 전에 쓴 리뷰만으로는 <어둠의 심연>의 독서 기억을 되살릴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대단히 현실주의자인 작가는 유수프와 칼릴의 여동생 아미나의 대화를 통해 지옥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낙원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모두가 엄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낙원을 가기를 꿈꾸지만, 이 세상에 그런 근심과 걱정을 모두 덜 수 있는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 바로 구르자 작가의 인터뷰에서 읽어낸 그의 작품에 흐르는 두 가지 주제 가운데 하나인 잔혹함(cruelty)이 아닐까. 다른 하나인 불공정(injustice)은 유수프가 아버지의 빚을 대신해서 사이드 아지즈의 채무노예가 된 본질적 문제였다. 아울러 차투 참사 당시, 사건 해결에 나선 이가 식민 지배자인 유럽인이라는 점이었다. 차투 족장과 카라반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의 강제 혹은 정의에 의존해야 한다는 역설이야말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직면한 문제의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읽기의 출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낙원>을 읽고 나서 바로 수급해 두었던 <바닷가에서>를 읽고 있는데, 역자가 달라서 그런 진 왠지 문체나 스타일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자가 교수님 스타일의 정석 같은 번역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시인이 맡은 번역이라 그런지 좀 더 서정적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아무래도 구르나 작가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뱀다리] 오래 전, 사이먼 앤 가펑클의 콘서트에 갔던 적이 있다. 이미 전성기를 지난 노친네들이 부르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는 좀 서글펐다.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좋았지만 한 시절, 천사의 목소리라는 상찬을 받던 이마가 훤한 아트 가펑클의 목소리에는 전성기 시절 폭발하는 그런 힘이 없었다. 노벨문학상은 어떤 한 작품에 대한 상이 아닌 한 작가의 문학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전성기가 지난 노년의 작가에게 주어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한 작가가 쓰는 모든 작품이 좋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전성기가 지난 노대가에게 전작을 뛰어넘을 만한 그런 작품을 기대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지방선거, 사전 투표 완료!


지난 대선 때, 하도 사전 투표 조작 타령을 해대서

당일날 투표하러 갔다가 추운데 한 시간이나 기다

리는 바람에 쏘울이 탈탈 털린 기억으로 이번에는

바로 사전투표를 했다.


관외투표자 임에도 전문가들이셔서 그런지 채 5분

도 걸리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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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5-27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수프라는 소년의 성장 소설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내용을 보니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 없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2-05-27 13:23   좋아요 1 | URL
과연 그러합니다 -

노벨문학상이 고스톱 쳐서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5-27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레삭매냐님 별 다섯이니 검증은 끝난거네요 ~!! 저도 이 책 읽어보고 레삭매냐님 리뷰를 자세히 읽어야겠어요. 그 grass 가 대마초군요 ㅋ 저도 GNR 1집이 정말 좋더라구요 ^^

레삭매냐 2022-05-27 13:34   좋아요 1 | URL
좋은 작품이라서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가을
에 AFKN에서 처음 들은 ˝서윗
차일드 오마인˝의 서두에서 슬래
래시가 뜯는 기타 리프와 액슬
로즈의 쇳소리 나는 보칼은 지금
다시 들어도 슈파-울트라-메가
전율이었습니다.

최근 토르 <러브 앤 썬더> 예고편
에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걸 듣고는 크하~
바로 이거제!

Appetite for Destruction 은
최고의 록 앨범입니다.

Rock will never die !

그레이스 2022-05-27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기 전부터 팬이 될듯 합니다.
매거진도 받았고, 3권 다 구입했으니...^^
읽어야겠습니다.
빨리 읽고 싶어서 들썩거립니다 ㅋ

레삭매냐 2022-05-27 17:59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러합니다 -

당장 <바닷가에서> 읽고 싶어
서 몸이 다 근질근질하네요.

오늘 저녁에는 옴팡지게 빠져
볼랍니다.

라로 2022-05-27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5-27 21:45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책들은 나오는
대로 족족 읽게 될 것 같
습니다.

stella.K 2022-05-27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사이먼과 가펑클이 우리나라에 다녀갔었나요?
거 꽤 오래된 이야긴데요?
올해들어 우리나라의 셀럽들이 세상을 많이 등졌더던요.
그러고 보면 한 세대는 이렇게 가는구나 서글프긴 하더군요.
늙는 것도 그렇고.ㅠ
리뷰 보니 읽고 싶긴하네요. 포스트콜로니얼 문학 첨 듣는 용언데 뭔 뜻이 대충 알겠네요.
구르나란 성이 웬지 마음에 들어요. ㅋ

레삭매냐 2022-05-27 21:48   좋아요 1 | URL
울나라는 아니고 오래 전에
미쿡에서 직관했답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
대에 밀려나는 느낌이랄까요.

탈식민주의라고도 하는데,
왠지 느낌이 살지 않는 것 같
아서 원어 대로 차용해 봤습
니다.

어쩌면 키스와힐리로 뭔 뜻
이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그 쪽에는 워낙 문외한이다
보니.

이 책 읽으면서 키스와힐리로
심바가 사자라는 걸 배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