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 그늘 아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4년 만에 다시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읽었다. 좋은 책은 거듭 읽어도 잔좋음의 잔향이 가시지 않는다. 내게는 <석류나무 그늘 아래>가 그런 책이다. 여전히 슬프고, 아름다운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523년 전인 14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스티야 왕국 주도로 이른바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가 성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무슬림 근거지였던 가르나타(그라나다) 왕국이 결국 함락됐다. 가르나타의 마지막 술탄은 수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 살아온 무어인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한다는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말에 저항 없이 투항했다. 하지만 모리스코인들에게 예정된 비극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실존 인물인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시스로네스, 톨레도의 대주교는 코란을 비롯한 수십만권의 이베리아 반도 아랍 문화의 정수가 담긴 서적과 원고들로 벽을 세웠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질렀다. 모리스코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를 말살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반도에서 내쫓으려는 그를 사탄의 사제라며 경멸했다. 어느 거리의 노숙자는 배울 책이 없는 사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기도 했다. 그들이 약속한 관용과 공존은 공허한 메시지일 뿐이었다.

 

, 이제 이 방대한 서사를 이끌어갈 바누 후다일 가문의 일족들이 등장할 차례다. 그들의 선조인 이븐 파리드는 로맨틱한 중세 기사도가 살아 있던 시절의 인물로 자신들의 땅을 엄습해 오는 기독교 전사들에 맞서 싸운 영웅이었다. 하지만 신자들의 고질적인 내분으로 안알달루스의 무어인들은 전성기 때처럼 결집하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 거점인 가르나타까지 내주게 되었다.

 

알후다일의 영주인 우마르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했다. 첫 번째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조건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삼촌인 미칼, 아니 이제 쿠르투바의 주교가 된 미겔은 다른 이유로 바누 후다일 집안을 떠나 적진에 투항해 버렸다. 그리고 대고모 자라는 마리스탄에 감금된 신세였다. 그녀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반세기 전 금지된 로맨스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두 번째 선택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기독교 카바예로들과 맞서 마지막 1인까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 것이었다. 우마르의 피 끓는 장남 주하이르 알팔 같은 세대들은 이런 선택을 선호한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어떻게 될 거란 말인가. 마지막 선택지는 안알달루스 무어인들의 출발지인 마그레브의 사막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는 점이 바로 그들이 직면한 문제였다.

 

소설에서 최고 빌런으로 등장하는 시스네로스는 이제 무어인들로부터 막 수복한 이베리아 반도에서 모든 이교도들을 몰아내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광신자였다. 무어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최고사령관 돈 이니고가 아무리 시스네로스에게 관용과 공존을 이야기해도, 광기에 물든 대주교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이슬람 청년들을 선동해서 봉기를 유도하는 악역을 자처한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빌미만 제공한다면, 눈엣가시들은 이교도 무슬림들과 가짜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모두 청소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아니 실제로 카스티야 초대 종교재판장으로 악명을 떨친 토르케마다를 능가하는 그런 종교적 광신이 사로 잡힌 이가 바로 시스네로스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알후다일 사람들은 무사태평이다. 사실 그들이 무엇을 한다고 해도 거대하게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역진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알후다일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선대로 올라가는 가문의 비밀은 중세 시절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알진디크와 자라의 사랑에 그만 방점을 찍고 만다.

 

타리크 알 리가 구사하는 팩션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분노와 혐오 그리고 배제의 시대에 관용과 공존이란 이상이 존재할 공간이 없다는 걸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게다가 종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어느 정도의 관용이 허용되었지만,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기독교 왕국의 지배자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더 무서운 점 중의 하나는 그들이 개종자들도 전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슈퍼 빌런 시스네로스는 정확하게 이베리아 반도의 이교도들이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종을 택한 것이지 온전하게 정신적 투항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교도들과의 공존이 아닌 제거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비극으로 이어진다.

 

혈기 넘치는 청년답게 주하이르 알팔은 회의주의자 알진디크의 가르침이나 아버지 우마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저명한 기독교 전사와의 대결에서의 승리는 가족에게 재앙이 되었다. 시스네로스의 명을 받은 레콩키스타의 영웅 코르테스(당시 16)는 알후다일을 공략해서 바누 후다일 사람들을 몰살시킨다. 주하이르의 막내 동생 야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카스티야 전사 한 명이 민간인들을 죽이라는 코르테스의 명령에 저항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코르테스에게 언제부터 이 땅의 기독교 전사들이 저항하지 않는 죄 없는 아이들과 여자들을 죽이는 게 관습이 되었느냐고 따진다.

 

알카히라에서 온 교사 이븐 다우드와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한 다음, 마그레브의 페즈로 이주한 힌드만이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주하이르 알팔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가족의 복수를 맹세하고, 그들이 그렇게 목놓아 찾았던 알라가 자신들을 수호하지 않는다는 말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공공연한 무신론자 작가다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타리크 알리의 분석과 서사는 너무 냉정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에게 환호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팩션의 전범을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과 가공된 인물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자신들이 나고 자란 땅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무어인들의 결의는 비장했지만,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그런 수준의 저항일 뿐이었다. 꽃이 필 때가 있으면, 또 질 때도 있는 법이다.

 

기독교 왕국들의 파도 같은 공격 앞에 무슬림 왕국들은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을 거듭했다. 그리고 위대한 베르베르 전사들의 후예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 속에서만 살았다. 과거에 사는 이들이 현재와 미래를 얻겠다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카스티야의 전사들은 레콩키스타의 경험을 토대로 결국 신대륙으로 진출해서 대제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물론 시절이 지나 그들 역시 쇠락해 버리고 말았지만. 역사란 그런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500년 전에, 자신의 근거지를 버리고 물설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건 더더욱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결국 이주나 개종 대신 알후다일에 남아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기독교 병사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스러져간 우마르 가문의 최후는 더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여전히 슬프고 아름다웠다. 구성과 주제 그리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들의 향연은 이 책이 고전에 반열에 들기에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다고 증언한다. 책은 절판된지 오래다. 이렇게 좋은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로 타리크 알리 이슬람 퀸텟의 유이한 생존자 <술탄 살라딘>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원서로 <팔레르모의 술탄><황금 나비의 밤>도 구비해 두었다. 십 수 년 전에 근간 예정이었던 <돌기둥 여인>이 출간되지 않은 점이 너무 나 아쉽다. 원서로 구해서 읽는 시늉이라고 해봐야 하나 싶다.


[뱀다리] 소설의 엔딩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가 등장하는데, 고작 16살의 나이에 알후다일을 전멸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그가 신대륙으로 넘어가 또다른 악행을 저지른 것을 지적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신대륙에 카스티야 세력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어인들의 식탁에 토마토 샐러드가 오르는 것 역시 역사적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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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2-03-02 0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라나다에 4년 살았었는데 이런 책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꼭 방문하셔서 알함브라도 가보시고 도시 전체에 깔려 있는 석류 문양도 보시면 책이 또 다르게 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어인들이 번성할 때의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 이야기도 흥미롭군요.

레삭매냐 2022-03-02 10:42   좋아요 2 | URL
우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가르나타에서 4년이나 사셨다고
하시니까요 ^^

잘 나가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는 참
슬프고도 아름다웠습니다.

바람돌이 2022-03-02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라콩퀴스타에 대한 무어인들의 관점이 궁금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네요. 다 절판!!! 다행히 중고매장에는 나와 있어서 볼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이 글이 오늘자 득템같은 기분입니다. ^^

레삭매냐 2022-03-02 10:45   좋아요 2 | URL
아니 이런 책들이 왜 절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꾸준하게 발표해 주어야
하는데, 보아 하니 역자분
도 작업을 하신 것 같던데
말이죠.

부디 좋은 컨디션의 책으로
만나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mini74 2022-03-02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빌려왔어요 매냐님 ㅎㅎㅎ 그래서 살짝만 보고갑니다. ~~

레삭매냐 2022-03-03 11:35   좋아요 1 | URL
모쪼록 이런 좋은 책들이
널리 알려져서 많은 분들
이 읽으셨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절판된 게 흠이네요.
 
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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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허겁지겁 그렇게 책을 읽어댄다.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에 한 번 궤도에 오르면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일부러 책읽기의 속도를 조절할 때가 있다. 너무 빨리 엔딩에 도달해 버리기가 싫을 정도로 내용이 좋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이번에 내가 만난 <하버드 스퀘어>가 그랬다.

 

사실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팬을 자처하는 나는 <하버드 스퀘어>의 번역을 기다리지 못하고 2년 전, 원서를 주문했다. 하지만 모국어도 아닌 영어 읽기의 스트레스 때문에 조금 읽다가 내팽개쳐버렸다. 그러다 보니 번역이 되어 출간되었지 무언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 하버드 스퀘어의 밤거리를 누비는 택시의 불빛이 아른 거리는

원서의 표지는 정말 일품이다. 국내 번역서도 차라리 그냥 원서

의 표지를 그대로 쓰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 스퀘어>는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때는 1977년 여름, 하버드 스퀘어가 위치한 케임브리지를 배경으로 한다. 이집트 출신 유대인인 나는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에 도전하고 있다. 세 번의 종합시험 가운데 두 번을 떨어지고 1월에 있을 마지막 시험마저 떨어진다면 그 후의 기약은 없다. 아니 모든 것이 불확실한 그런 삶 속으로 내던져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제법 살다 보니,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어떤 것도 우리에게 확실하게 약속해 주는 법이 없더라. 그저 오늘 하루를 살 뿐.

 

그리고 화자인 나는 카페 알제에서 요즘 말로 하면 관종격인 택시 드라이버 칼라슈니코프, 아니 칼라지를 만나게 된다. 내가 이 자전적 소설을 통해 접하게 된 튀니스의 시디 부 사이드 출신 칼라지는 대단히 뻔뻔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전에 창조한 그리스인 조르바와 너무 많이 닮았다는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칼라지라는 남자는 자신감의 화신이고, 세상에 모르는 게 없는 그런 남자다. 세상에 두려울 게 하나 없는 칼라지는 미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권리인 영주권을 원한다. 반대로 나는 영주권을 가지고 있고, 박사 학위를 원한다. 엘리트 코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사 학위, 그것도 다른 대학도 아닌 하버드의 박사 학위라니. 이런 두 이질적인 존재가 과연 치고 박고 싸우면서 과연 우정을 직조해낼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을 읽다 보면 나라는 캐릭터는 정말 비겁한 엘리트의 전형이라는 점이 등장한다. 지중해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아메리카에서 도리 없는 이방인이라는 점까지도 똑같다. 자기혐오라는 특질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처음에 그 둘을 이어준 것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 한 명은 자신감에 넘치는 아랍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심한 엘리트 유대인이기도 했다. 서로 상극이 아니던가. 아니 그런데 초반에는 이런 형식적인 온갖 장애물들을 뛰어 넘는 우정의 탄생을 목격하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점점 더 박사 학위에 가까워질수록 칼라지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나는 칼라지가 누리는 자신감 넘치는 자유를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무분별한 행동에 질려 하고 결국에 가서는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마음먹기도 한다. , 그 둘을 이어주는 또하나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바로 가난도 있었다. 특별한 즐거움을 원하면서도, 나는 항상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했다. 월세는 물론이고,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연애에 이르기까지 돈이 필요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여름방학이면 유럽으로 어디로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이 떠나면 나는 에어컨도 하나 없는 무더운 케임브리지에 남아 종합시험 준비와 호구 걱정을 해야했다.

 

그런 순간에 등장한 칼라지라는 존재에 나는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걱정하기 시작한다. 특히 부잣집 딸인 앨리슨 집안과 관계를 맺고, 하버드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칼라지가 등장할 때는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결국 사단이 나고 만다. 그리고 칼라지는 조국을 떠나 17년간 이룬 것 하나 없는 타국생활에 대한 환멸을 나에게 털어 놓는다. 그렇게 강할 거라고 생각한 남자가 미래의 잘나가는 교수이자 작가가 될 하버드 대학원생에게 기대는 장면은 참...

 

그렇게 시작된 관계의 미세한 균열은 치유할 방법이 없다. 아니 내가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를 의식적으로 외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파국은 시작되었다. 아니 관계의 용도가 이미 폐기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우리 모두는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귀찮음도 마다하면서 기꺼이 상대방을 도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로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이런 이중성에 대해 칼라지가 신랄하게 비난했다면 의 속은 아마 후련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의 칼라지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이미 숱한 그런 관계의 순환을 경험한 칼라지는 물러설 때를 잘 알고 있었다. 칼라지가 쏘아 보내는 비난의 눈빛에 아마 나의 양심을 산산조각이 났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양심이란 게 있었다면 말이다.

 

다시 한 번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통해 인간관계가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의 화자는 칼라지가 도움의 손길을 뻗을 때마다, 그의 요청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했다. 물론 얄팍한 계산과 변명도 첨가되긴 했지만 말이다. 과연 타인에게 그가 원하는 완벽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관계에서 일방의 희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의 노력에도 많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택시 운전을 못하게 된 칼라지에게 하버드 대학 객원 프랑스어 강사직도 마련해 주지 않았던가. 21세기에는 어림도 없었을 그런 일이 지난 세기에는 가능했던 모양이다. 하나의 에피소드로서는 정말 제격이 아니었나 싶다.

 

이방인들의 안식처로 등장하는 카페 알제도 인상적이다. 소설의 출발점이 바로 카페 알제가 아니었던가. 외로운 영혼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안식을 주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하기 마련인가 보다. 화자(저자)는 카페 알제에 우연히 들렀다가, 결국 칼라지를 만나게 되고 이렇게 수수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각도의 생각들과 오래된 추억들을 되새기게 하는 그런 멋진 이야기의 출발을 선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의 삶 속에 침잠하기가 어려운 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부단하게 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행복도 존중해 주는 그런 스탠스를 취하기란 너무 어렵지 않나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들에 대한 오기가 못내 아쉽다. 아무래도 역자가 현지 사정을 모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세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전적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읽으면서 이제는 거의 휘발된 빈타운에 대한 기억들이 구석에서 슬며시 피어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하던데, 기억 혹은 추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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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01 07: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드레 애치먼 작품을 한편밖에 안읽었지만 정말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 책도 왠지 그런 느낌인가 보네요. 레삭매냐님 별다섯에 너무 좋았다고 하시니 더 기대가 됩니다 ㅋ

레삭매냐 2022-03-01 09:48   좋아요 4 | URL
앞으로 애시먼 작가의 책이
두 권 더 나온다고 하니
기대만빵입니다 :>

지명에 대한 오기 때문에
별을 하나 빼려 했으나...
그건 저자의 잘못이 아니
니.,. 암튼 그랬다고 합니다.

mini74 2022-03-01 09: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페이지 줄어드는게 아까웠어요.~

레삭매냐 2022-03-01 09:49   좋아요 4 | URL
뭐랄까 새로운 관계 속으로
뛰어 드는 사람에 대한 심
리 묘사가 탁월했습니다.

누구나 다 공감할 만한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책장 넘기는데 살짝
괴로웠더라는.

청아 2022-03-01 1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저 지역에서 지내셨었나봐요!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더듬어 가는 추억이
제 추억이 된 것마냥 즐거웠습니다.

저도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었을것 같아요.
음미하시면서 아껴 읽으신거 넘 이해가 됩니다.^^*

레삭매냐 2022-03-01 13:44   좋아요 2 | URL
이십대의 초큼을 보낸 곳이라
그런진 몰라도 격이 새록새록 -

그 시절에는 참 사진도 많이
찍고 그랬었는데... 싸이가
망하는 바람에 사진이 다 사
라져 버렸네요 ^^

책은 참 재밌었습니다.

얄라알라 2022-03-01 12: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 거의 못 읽고 지낸 이번 주, 간만에 알라딘 들어와서 플친님들 리뷰 읽는데
독서를 넘 행복하게 하셨구나....샘이 날 지경으로 재미있게 읽으셨다는 걸 느끼겠어요

레삭매냐님, 2년 전 원서로 읽으시고 재독이시니
더 깊이 읽으셨을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3-01 13:48   좋아요 2 | URL
새책으로 안드레 애시먼의 책을
그리고 구간으로는 타리크 알리
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는데 넘나
재미지지 뭡니까 그래.

원서로는 못 다 읽었어요 힝~~~
그래서 이번에 번역서로 다 읽었
답니다 ㅋㅋㅋ
 


 

4년 만에 다시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 가운데 한 편인 <석류 나무 그늘 아래(1992)>를 읽는다. 여전히 아름답고 슬픈 소설이 아닐 수 없다.

 

타리크 알리는 펀잡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많은 저작들을 발표해왔다. 여전히 활동 중이신지 궁금하다.

 

알함라에서 수십만 권의 서적과 원고를 불태운 야만적인 밤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7세기 이래,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해온 무어인들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가르나타(그라나다) 왕국이 1492년 카스티야 왕국에 넘어간 뒤 7년 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타리크 알리는 무신론자라고 알려졌는데, 이 소설에서 무슬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팩션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낼 수 있다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들은 마치 살아 숨쉬는 것처럼, 나를 알안달루스로 인도한다. 타리크 알리가 구사하는 문장은 수려하고, 애초의 약속과 달리 이교도 취급을 받으며 곧 자신의 땅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한 알후다일 사람들의 번민에 대한 묘사는 가슴을 저민다.

 

이런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절판이라니 아쉬울 따름이다. 책의 뒤편에 근간이라고 표기되어 있던 또다른 5부작 가운데 한 편인 <돌기둥 여인>은 끝내 출간이 되지 않았다. 3년 전에 북디파지토리에서 영문판으로 <팔레르모의 술탄><황금 나비의 밤>은 샀더라. 물론 어디에 두었는지는 모르고. <하버드 스퀘어>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지명 때문에라도 한 번 찾아서 비교해 봐야 하는데...

 

<석류 나무 그늘 아래>는 과연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을수록 책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곁에 두고 오래 읽을 만한 그런 책이다. 양장본에 비닐 커버까지 해서 무장이 튼튼하기까지 하다. 만족스럽다.


타리크 알리 이슬람 5부작


1. 석류 그늘 나무 아래 (1992) 국내 출간 / 절판

2. 술탄 살라딘 (1998) 국내 출간 / 절판

3. 돌기둥 여인 (2000) 국내 출간 예정 / 미출간

4. 팔레르모의 술탄 (2005) 국내 미출간

5. 황금 나비의 밤 (2010) 국내 미출간


전 세계 무료 배송이라는 북디파지토리로 읽지도 못하고 소장각인 <돌기둥 여인>을 주문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 가운데, <돌기둥 여인>만 빼고

모두 보유 중이다.


오늘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다 읽고 바로 <술탄 살라딘>

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팔레르모의 술탄> 읽기에 도전해 볼까 한다. 하루

에 한 장씩 읽으면 올해 안으로 다 읽을...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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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28 12: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 2번은 마침 도서관에 있네요
근본주의에 대한 타리크 알리의 다른 책도 있는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2-28 17:05   좋아요 3 | URL
타리크 알리의 소설 말고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네요...

모쪼록 다른 책들도 속히
번역이 되길 바랍니다.

stella.K 2022-02-28 16: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 근사하네요. 석류 먹으면서 읽고 싶네요.ㅎ
근데 알지도 못했는데 절판이라니!ㅠㅠ

레삭매냐 2022-02-28 17:09   좋아요 1 | URL
제목 만큼이나 소설의 내용
도 아주 일품이랍니다 ^^

이런 책들은 계속해서 팔아
주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mini74 2022-02-28 16: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다행 저희 동네 도서관에도 석류 그늘이 있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2-02-28 17:09   좋아요 3 | URL
한 권 일독을 감히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읽어 보시면 후회하시지
않으시리라고 믿습니다.

라로 2022-02-28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의 뽐뿌질에 그냥 파닥 넘어갑미다,,, 못살아..^^;;;

레삭매냐 2022-02-28 21:31   좋아요 0 | URL
타리크 알리의 소설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슬픕니다.

그래서 4년 만에 다시 읽습
니다.
 
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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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여름은 뜨거웠다. 시드 부 사이드 출신 택시 드라이버 칼라지와 알렉산드리아 출신 나의 만남으로 시작된는 서사는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우리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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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28 16: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방인일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 ㅠㅠ 딱 맞는 비유에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02-28 17:11   좋아요 3 | URL
책은 초큼초큼 보름 만에 다 읽고
리뷰 마무리 중이랍니다.

아, 너무 마음에 드는 그런 독서
였습니다.

라로 2022-02-28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라니.... 저는 3월을 노려보겟습니닷!! 오늘 올리버 색스 책 다 읽을 계획이라 괜히 혼자 마음이 분주해요.ㅎㅎㅎ

레삭매냐 2022-02-28 21:32   좋아요 0 | URL
다 읽는데 근 보름이 걸렸네요 -
좀 거북이 스탈로 읽어 보았습니다.

타리크 알리와 안드레 애시먼의
글들이 왠지 서로 맞닿는 느낌이랄
까요.

우리 3월에도 열심히 달려 BoA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 중종실록, 2021년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21년 개정판) 8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는 주간행사처럼 되어 버린 도서관 방문을 했다. 지난주에 빌린 책들을 반납하고도 제법 시간 여유가 있어서 신간 도서와 내가 그동안 놓친 그래픽 노블이 있나 찾아 보기도 했다.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에서 오래 있을수록 좋은 책들을 만나기 쉽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이런 시간들을 즐기려고 한다. 다만 코로나 시국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하세월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해서 송나라 황제 열전과 신간 소설 하나 그리고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중종실록 편을 빌렸다. 얼마 전에 황현필 선생의 컨텐츠를 너튜브로 시청해서인지 좀 더 중종에 대해 가까워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1506년 중종반정으로 형님이자 폐주 연산군을 몰아내고 조선의 11번째 임금이 되었다. 반정 3대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박원종, 성희안 그리고 유순정이 실제 반정을 주도했고 진성대군이었던 중종은 거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즉위 초기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국공신들보다도 더 많은 반정공신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폐주 시절 워낙에 폐해가 많았기 때문에 중종 연간에는 그전의 정치들을 제 자리로 돌리는 데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특징 중의 하나는 언관들로 구성된 사간의 힘이 세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정공신들에 비해 사림 출신의 사대부들은 개혁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그들에게 주자의 성리학적 질서는 거의 신성불가침의 그런 영역이었다. 하지만 신하된 존재로 기존의 주상을 폐주로 몰아 폐위시킨 반정 자체가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반정 사실을 명나라에게는 쉬쉬했다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비밀이었다고.

 

중종 초기 강력했던 공신들의 권력의 추는 박원종을 필두로 공신들이 하나둘씩 사망하면서 결국 중종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중종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조광조가 아니었던가. 아니 어쩌면 허수아비 왕 같았던 중종으로서는 다른 공식들의 전횡을 누르기 위해서는 조선 모든 사림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바른 선비 조광조를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중종을 신출내기 과거 급제자인 조광조를 등용해서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시키면서 일단의 개혁 조치들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사장에 치우친 과거제 대신 현량과를 통해 신진 인사들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조선 개국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정몽주와 자신의 스승인 김굉필의 문묘 종사를 추진했다. 후자는 실패했지만 결국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자신의 의지대로 문묘에 종상시키는데 성공한다.

 

소격서 폐지를 두고 자신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던 주상 중종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조광조. 다음 단계는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책봉된 반정 공신들에 대한 정리작업이었다. 이 당시 영의정이었던 정광필이 좀 더 적극적으로 균형을 잡아 주었다면 이후에 이어지는 기묘사화에서 조광조와 기묘명현으로 알려진 그의 일파들에 대한 중종의 숙청이 좀 누그러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총애하던 조광조를 기묘사화로 일망타진한 중종이 이번에 신임한 사람은 남곤이었다. 당시 공신들조차 많은 공신들의 존재가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자신의 원훈을 반납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박시백 저자는 중종의 입장에서는 누가 권력을 잡던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아울러 자신에게 엄격했으며, 그야말로 수신제가 평천하의 모범을 보여 주었던 바른 선비 조광조가 제거된 다음 조선이라는 국가의 학풍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무리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도, 임금 그러니까 권력의 눈 밖에 나는 순간 급전직하할 수 있다는 것을 기묘사화를 통해 국가가 직접 만천하에 알리지 않았던가. 그저 예전처럼 사장에 집중해서 과거 시험을 치르고, 관직에 올라 보신이나 하는 게 최고라는 걸 아무도 반박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선 최고의 권력자인 임금이 보여 주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중앙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기회주의를 부추기지 않았나 싶다.

 

남곤이 죽은 다음에, 세자의 누나를 시집보낸 집안의 김안로 같은 권간의 시대가 열렸다. 어디선가는 왕권이 약했던 중종에 대해 이중인격자라는 비판도 보인다. 특히 경연의 스승으로까지 여기며 총애했던 조광조를 하루아침에 내치고 사사하는 걸 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게다가 반정의 성공으로 재위 기간 동안 수많은 옥사와 변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성공하면 반정이고, 실패하면 역모가 아닌가. 조선 왕조 동안 숱한 역모가 있었지만 성공한 역모는 딱 두 번이지 않은가 말이다. 성공만 하면 왕후장상의 기회가 열리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장장 38년이나 되는 재위기간으로 조선 왕조 TOP5에 랭킹되었지만, 치적으로는 무엇 하나 꼽을 만한 게 없는 왕이 중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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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2-02-27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종 하면 여인천하!^^;;;;

레삭매냐 2022-02-27 18:30   좋아요 2 | URL
중봉의 세번째 왕비인
문정왕후와 그 외척이 훗날
발호하게 되는 상황을 그야
말로 드라마틱하게 잡아낸
모양이네요 ^^

mini74 2022-02-27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중종하면 딸바보? 그에 비하면 재위기간 가장 긴 영조랑 참 비교되네요.

레삭매냐 2022-02-28 01:11   좋아요 1 | URL
그리고 보니 중종이 집권 후기
에 가서 김안로를 중용했던 게
세자 누나에 대한 사랑 때문이
었는지도 모르겠네요 ^^

영조는 조선 임금들이 평균
수명이 47세였다는데 정말
장수하지 않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