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듀어런스 -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보급판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김세중 옮김 / 뜨인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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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구입한 캐롤라인 알렉산더의 기록 <인듀어런스>를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사실 작정하고 읽었더라면 금세 읽을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책을 읽으면서 가히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험의 시대가 저물어 가던 20세기에 남극 대륙을 정복하겠다고 나선 일단 사내들이 있었다. 이들의 리더인 어니스트 섀클턴 경은 이미 1909년 인류 역사상 가장 남극점에 가까이 도달한 업적으로 영국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았다. 남극 정복의 영예는 비록 노르웨이 출신 아문센에게 빼앗겼지만, 이 책의 제목이자 섀클턴 탐험대의 <인듀어런스>로 그는 세 번째 남극 탐험에 나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섀클턴 탐험대는 남극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세에 우리는 그들이 보여준 불굴의 노력에 대해 “위대한 실패”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실패가 어떻게 위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인듀어런스>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다. 섀클턴 탐험대는 1914년 8월 6일 영국을 떠나 남극으로 향한다. 장장 634일 간의 탐험에서 총 28명의 이질적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탐험대는 인간이 극지방에서 처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조건을 체험한다. 가장 먼저 부빙에 갇혀 <인듀어런스> 호가 침몰하는 위기를 맞는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 모선 없이 탐험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남극점을 지척에 두고 섀클턴은 철수를 결정한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한 리더 섀클턴 경은 불필요한 짐을 모두 버리고 가장 가까운 육지로 귀환하기로 한다. 탐험대장 섀클턴을 비롯한 선장 프랭크 월시를 비롯한 고급대원들은 리더십의 모범을 보인다. 보급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일반대원을 우선했다. 침몰한 <인듀어런스> 호를 뒤로 하고 사람이 빙원에서 보트를 끄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사진은 호주 출신의 사진가 프랭크 헐리가 찍었다. 온갖 역경 속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섀클턴 탐험대의 실상을 헐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빛나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섀클턴 경을 통해 형상화된다. 그 어떤 불평불만도 솔선수범하고 앞장 서는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육지인 엘리펀트 섬에 도착한 탐험대는 다시 선발대를 조직해서 포경기지가 있는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구조요청을 하러 가기로 한다. 문제는 제대로 된 배도 아닌 작은 보트로 1,000km나 떨어진 난바다를 항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섀클턴을 비롯한 6명의 선발대는 탐험대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는 임무에 뛰어든다.

엄청난 강풍과 절벽을 피해 마침내 사우스 조지아 섬의 킹 하콘 만에 도착하지만, 포경기지가 있는 스트롬니스가 있는 섬의 반대편까지 가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마지막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섀클턴 팀은 엘리펀트 섬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대원들을 위해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사우스 조지아 섬 내륙의 빙벽을 넘어 마침내 스트롬니스에 도착한다. 포경기지의 노르웨이 사람들은 죽음의 바다를 건너온 이 위대한 뱃사람들에게 아낌없는 경의를 표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동화 속 해피엔딩이다.

섀클턴 탐험대의 생환에는 물론 아슬아슬한 행운도 함께 했다. 만약 섀클턴 일행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트가 사우스 조지아 섬에 닿기 전에 허리케인 같은 엄청난 강풍에 만나 침몰되었거나, 섀클턴이 사우스 조지아 내륙의 빙벽 도전에 실패했다면 그들의 ‘위대한 항해’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섀클턴이 기록에 남긴 것처럼 모든 위험한 순간에 함께 했던 신의 도움이 그들이 갈망해 마지않던 마지막 퍼즐의 한 조각이었다.

섀클턴 탐험대가 무사하게 귀환할 수 있던 가장 결정적 요소는 어떤 상황에서도 저버리지 않았던 상호간의 절대적 신뢰였다. 섀클턴 경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항상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기상황에서 갈등과 분열 때문에 비극으로 끝난 다른 탐험대의 그것과 변별된다. 스트롬니스 포경기지에서 구조된 후에도 아직 엘리펀트 섬에 남아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던 동료들의 구조에 전력을 다하던 섀클턴 경의 모습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의 전범이었다.

모든 역경을 이겨낸 인간 드라마에는 상상 그 이상의 아우라가 있지만, 오늘 읽은 <인듀어런스>의 그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록 그들의 남극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바다”를 극복한 섀클턴 탐험대의 드라마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왜 지인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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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2 - 노르망디의 코리안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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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씨의 <아버지의 길>은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소재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조정래 선생이 쓴 <사람의 탈>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조정래 선생의 <사람의 탈>이 일본군-소련군 그리고 독일군으로 수많은 변신을 거듭하면서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조선인의 운명을 그렸다면 이재익 씨는 그 위에 조국에 남겨 두고 온 아들에 대한 부정(父情)에 방점을 찍는다.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너무나 뚜렷하다.

<아버지의 길> 두 번째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연합군 쪽으로 완전하게 돌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인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유타 해변에서 포로로 잡힌 독일 동방대대 소속 한국계 독일군 사진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로 귀착된다. 1939년 8월 소련군과 일본군이 만몽국경에서 격돌한 노몬한에서 관동군으로 강제 징집된 김길수는 다시 소련군의 포로가 된다. 악몽 같은 소련의 굴락 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길수와, 영수 그리고 스기타는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에 맞서 심각한 병력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의 결정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던 모스크바 전선에 투입된다.

길수의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붉은 여우”이자 길수의 아내 월화 이야기는 소설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한다. 길수의 도움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월화가 일본군에게 다시 잡힐 뻔한 순간에 다시 한 번 소련 공군의 일본군 기지 공습이라는 개연성이 개입한다. 위안소에 있던 명선과 함께 고향길을 재촉하던 월화는 정대를 합류한다. 위안소에서 일본군의 만행으로 거의 정신이 나간 명선은 정대와 월화가 보는 앞에서 자결한다. 조국을 잃은 사람들의 비극은 멈출 것 같지 않다. 귀향길의 마지막 순간에 일본군 포수들에게 사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던 월화는 영물 호랑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 부분은 길수가 모스크바 공방전이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살아남는 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것 같다.

7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점점 더 조국과 용암포에 두고 온 아들과 멀어지는 기구한 운명 속에서 정말 놓칠 수 없었던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냘픈 끈은 엷어진다. 길수는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어느 미군에게 아들 건우에게 전해주라는 편지를 전해주고 포로수용소를 탈출한다. 그리고 그 미군은 해방된 조국에 길수와의 약속대로 건우와 월화를 찾아 약속을 지킨다.

조정래 선생의 <사람의 탈>에서 구사일생으로 소련군 포로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소련으로 송환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길>에서 이재익 씨가 보여주는 비극의 정도 역시 그에 못지않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의 행적이라는 두 가지 줄기에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 넣는다. 길수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14세 소년병 영수, 조국을 배신하고 일제의 앞잡이로 나선 스기타 대위,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순정으로 일본군에 지원했지만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 정대 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전장의 영웅이 아닌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의 삶의 궤적에 소설은 방점을 찍는다.

<아버지의 길>의 소설적 재미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역사소설을 표방하는 책에서 보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잘못된 기록은 좀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소설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내러티브에 주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 내러티브의 핵심이 되는 역사 부분에 대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1권의 도조 히데키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관동군 출신으로 일본 군부에서 작전의 신으로 불렸던 쓰지 마사노부의 최후도 사실과 다르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소설이니까’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은 없겠지만.

어쩌면 역사소설에서 역사와 소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일이지도 모르겠다. 이오지마 전투에 등장하는 일본군 수비대 사령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이나 미군 소속 홀랜드 스미스 중장(167-168쪽) 같은 인명의 경우에도 좀 더 세심하게 교정을 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며칠 동안 몰입해서 열심히 읽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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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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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전을 성공시킨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힌 독일 동방대대 소속 조선 병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나중에 블로그에 포스팅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진기한 이야기를 소설로 다룬 조정래 선생의 <사람의 탈>도 읽었다. 소설은 선생의 다른 장편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2011년 다시 PD 출신 작가 이재익 씨의 <아버지의 길>로 노르망디의 코리안을 다시 만나게 됐다.

작가는 어느 병원에서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탈북자의 아버지 김길수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38년 소설의 주인공 월화는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랑하는 남편 길수와 아들 건우를 버리고 황량한 만주 벌판으로 떠난다. 뒤에 남겨진 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볼 수가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중국 동북부를 완전 장악한 제국주의 일본은 북방에서 강력한 맞수 소련과 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당시 일본 제국군 중에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관동군은 병력 부족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 징병을 시작한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어떤 국회의원의 엉터리 주장이 떠올라 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작가는 징병을 통해 일본 관동군 부대에 모이게 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스케치한다. 주인공 김길수와 월화를 비롯해서 14세 소년병 영수, 정미소 일꾼 출신으로 괴력을 자랑하는 정대, 그의 연인인 명선 아씨, 친일부역자로 황군이 되어싶어하는 조선 출신 스기타 대위 등 마치 퀼트 이불의 한 조각씩 모여들어 큰 얼개로 모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됐다. <아버지의 길>의 부제로 나온 만몽국경의 노몬한 전투로 이야기는 치닫는다.

조선 출신 관동군이 어떻게 해서 노르망디에까지 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째 권에서 다뤄지게 되겠지만 1권에 나온 이야기만으로도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곡에 대한 스토리는 충분한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는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만주로 떠나고, 8살짜리 아들을 홀로 두고 떠나온 가슴 찢어지는 아버지 길수의 마음은 소년병 영수에게로 향한다. 독립군 출신의 이 무뚝뚝한 사내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수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아마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는 정신대 위안소에는 정대가 사모해마지 않는 명선 아씨가 하루코라는 이름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개연성이 소설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극적 구성은 현실감을 떨어뜨린다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악명 높은 독립군 “붉은 여우” 월화마저 스기타 대위의 포로가 되어 병영으로 끌려오지 않는가 말이다.

모름지기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반드시 검증을 해야 할 것이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이재익 작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묻고 싶다. 단적인 예로 122쪽에 나오는 태평양전쟁 전범으로 전후에 사형된 도조 히데키를 관동군 초대 사령관이라고 이재익 씨는 기술하고 있는데, 도조는 관동군 사령관 출신이 아니라 참모장 출신이다. 한국 위키피디아를 조회해 보면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별거 아닌 사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간단한 사실 하나도 짚어내지 못하는 역사소설이라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표지에 나온 4년간의 취재와 집필 기간 동안에도 미처 잡아내지 못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 때문에 이재익 씨가 혼신을 다해 역사소설의 빛을 바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거나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는 마음에 든다. 이야기의 원형이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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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이레네 - 홀로코스트에 맞선 용기와 희생의 기록
이레네 구트 옵다이크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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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독서 주제다. 지금 막 다 읽은 이레네 구트 옵다이크의 실제 체험에 기초한 육필원고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꿈 많던 시절인 십대에 조국 폴란드를 폐허로 만든 독일 전격전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이레네의 이야기. 독일계를 연상하는 외모로 얼마든지, 폴란드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독일인 행세를 하며 전쟁의 참상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자신의 운명에 당당하게 맞선 이 나이 어린 아가씨의 의기는 정말 칭찬받아 마땅하리라.

이레네의 이야기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가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 즉결 처형당할 수 있었던 유대인 구조에 그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폴란드 간호조무사 출신 포로 처녀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독일과 소비에트의 협공으로 조국을 잃은 이레네는 가족과 헤어져 러시아로 몸을 피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닥치는 고난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이레네는 꿋꿋하게 현실에 맞선다. 생과 사를 가르는 극적인 수많은 순간들을 이겨내면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지만,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고 했던가. 다섯 자매 중에서 바로 아래 동생인 야니아와 함께 독일군의 대 러시아 침공 작전의 전초기지인 테르노폴로 이송되어 탄약공장에 배치된다.

그녀가 어려서 배운 유창한 독일어 실력은 향후 생존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독일군에 협력을 거부한 폴란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레네는 부역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우선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야 하는 어린 아가씨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비난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다친 동물과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배워온 그녀는 한때 자신의 다정한 이웃이었던 유대인을 격리수용하고 마치 짐승처럼 취급하는 나치 친위대의 만행에 분노한다.

유대인을 돕는 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즉결 처분한다는 독일 당국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이레네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한다. 이런 의로운 자각이 실천으로 옮겨지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처음에는 게토에 격리된 유대인들에게 남은 음식물을 몰래 넣어 주는 것으로 시작한 그녀의 순수한 선행은 나치의 유대인 절면계획에 정면으로 맞서 그들을 숲으로 보내고, 심지어 독일 장교의 집에 숨기는 데까지 나간다.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전황은 무적의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참패를 하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자그마치 12명의 유대인들을 몰래 숨기고 돕던 이레네는 마지막 순간에 후견인 에두아르트 뤼게머 소령에게 발각이 되고, 치욕적인 대가를 치른다. 수치심에 못 이겨 성당에 찾아가 신부에게 열한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독일군의 정부(情婦)가 되었다고 고백하자, 신부는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범한 그녀의 죄를 사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에 충격을 받는 이레네, 다시 한 번 획일적인 교리라는 패러다임에 갇힌 종교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온갖 역경 끝에 친구 유대인을 구해낸 이레네에게 닥친 운명을 가혹하기만 하다. 소비에트 러시아군에게 해방된 조국 폴란드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이레네는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치른다. 자신이 구한 친구들과 만난 기쁨도 잠시 뿐,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마저 전쟁으로 잃은 작은 영웅에게 돌아온 보답이 고작 이런 것인가하는 회의에 젖는다. 한때 신생국가 이스라엘로 유대인 친구들과 함께 건너갈 생각도 했던 이레네는 새로운 조국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된다.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하는 파란만장한 이레네의 이야기는 역시나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레네는 전쟁 중에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한 공로로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열방의 의인’이라는 칭호와 함께 국가최고훈장을 수여받는 영예도 얻었다. 미국 청소년을 위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용기와 희생을 유려하게 표현해낸 점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인류의 양심에 큰 상처를 남긴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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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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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열렬한 애청자다. 처음에 듣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중독이 될 줄 미처 몰랐다. 지난주까지 모두 22회 그리고 호외까지 방송된 모든 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김어준 총수의 책이 곧 나온다는 말을 듣고 바로 주문장을 날렸다. 책을 구입한 지는 제법 됐는데, 이 책 저 책 바람피우다가 오늘 새벽에서야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김 총수의 <닥치고 정치>에는 자신이 나꼼수에서 그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의 원형질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끊임없는 소재거리를 제공해 주시는 가카에 대한 무한애정으로 시작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은 오프라인의 세계까지 넘보면서 콘서트와 책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나꼼수 애청자라면 <닥치고 정치>는 그동안 김 총수가 방송에서 들려준 이야기의 집대성이라는 걸 한 눈에 알아채리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책의 집필시점이 이번 가을이 아니라 지난 봄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나 안풍으로 대변되는 안철수 바람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카가 아닌 여집합의 총합으로 우리시대 소통의 상징이자 시대의 결핍을 메워줄 새로운 플랫폼이 안철수가 아닐까 싶다. 물론 김 총수는 조국 교수에서 출발해서 문재인 이사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만. 그건 김 총수의 생각이고. 조국과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 트로이카를 보유한 것만으로도 든든하지 않을까?

김 총수는 대한민국 우(右)를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지 못하는 ‘겁먹은 동물’이라고 폄하한다. 어쩌면 유전자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는 모른다고 진보와 대척점에 둔다. 사실 우리나라 보수가 어디 제대로 된 보수인가 하는 문제에서는 또 도리질을 하게 만든다. 모름지기 진(眞)보수라고 한다면, 원칙과 가치에 어긋나는 것에 자존심 때문에라도 목을 걸고 투쟁하는 짠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먼 우리 보수에게 그런 결기와 폼 그리고 비장미를 볼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총수는 주장한다.

그렇게 우와 가카가 계속된 헛발질을 하고 있는데도 진보 진영은 무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총수의 판단은 냉혹하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대비해서 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합종의 길은 멀기만 하다. 그들의 단일화 논의는 재미도 없고, 듣기만 해도 짜증만 난다. 감동의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부질없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은 김 총수가 책의 초반에서 비판한 유인원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저런 정파 간의 이해를 대승적 차원에서 봉합하고 통 크게 합치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김 총수가 그렇게 목 놓아 외치는 안철수 룰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 기성정치권의 몰락을 목도하면서도 말이다.

가카와 그의 수하이자 부패한 폴리널리스트들의 암약으로 메시지 전달 루트는 모두 장악되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플랫폼의 확보가 필수적인데 방송과 신문 모두 보수에게 장악된 마당에 무슨 수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바로 <나는 꼼수다> 인터넷 팟캐스트였다고 김 총수는 말한다. 무상급식이라는 비밀병기를 선점했지만,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진보의 프레임을 짜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절실하다는 것이 김 총수의 분석이었다. 그래서 SNS와 스마트폰을 활용한 팟캐스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에 가카 덕분에 한층 재밌었진 정치라는 양념을 곁들이자 방송은 폭발해 버렸다. 이제 가카와 수하들조차 나꼼수는 무시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어 버렸다. 지난주 나꼼수 주진우 기자가 예언한 대로 가카의 사저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미 그전에 김 총수의 절친 보수의 고깔콘 시장은 그의 예언대로 행동했다가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정치의 세계, 여하튼 너무 재밌다.

단, 너무 진중하면서 과학적인 분석을 원하는 독자라면 <닥치고 정치>는 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 총수가 내내 말하는 대로 이 책의 근간은 ‘무학의 통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감성적 접근, 추정과 소설적 추론이 난무하는 사문난적(斯文亂賊) 그 자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사문난적스러운 주장이 진실처럼 들리니 큰 일이다.

언뜻 보기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겠지만, 쫄지 마라. 잘못됐으면 고치면 된다, 선거로. 이제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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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1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나꼼수를 듣지는 않지만 김어준의 책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쫄지 마라... 명쾌한 정치 철학이에요 ㅎㅎ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레삭매냐 2011-10-12 17:22   좋아요 0 | URL
방송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다 읽고 나니 마치 무슨 숙제라도 마친 것
같은 그런 상쾌한 느낌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