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열렬한 애청자다. 처음에 듣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중독이 될 줄 미처 몰랐다. 지난주까지 모두 22회 그리고 호외까지 방송된 모든 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김어준 총수의 책이 곧 나온다는 말을 듣고 바로 주문장을 날렸다. 책을 구입한 지는 제법 됐는데, 이 책 저 책 바람피우다가 오늘 새벽에서야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김 총수의 <닥치고 정치>에는 자신이 나꼼수에서 그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의 원형질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끊임없는 소재거리를 제공해 주시는 가카에 대한 무한애정으로 시작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은 오프라인의 세계까지 넘보면서 콘서트와 책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나꼼수 애청자라면 <닥치고 정치>는 그동안 김 총수가 방송에서 들려준 이야기의 집대성이라는 걸 한 눈에 알아채리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책의 집필시점이 이번 가을이 아니라 지난 봄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나 안풍으로 대변되는 안철수 바람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카가 아닌 여집합의 총합으로 우리시대 소통의 상징이자 시대의 결핍을 메워줄 새로운 플랫폼이 안철수가 아닐까 싶다. 물론 김 총수는 조국 교수에서 출발해서 문재인 이사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만. 그건 김 총수의 생각이고. 조국과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 트로이카를 보유한 것만으로도 든든하지 않을까?
김 총수는 대한민국 우(右)를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지 못하는 ‘겁먹은 동물’이라고 폄하한다. 어쩌면 유전자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는 모른다고 진보와 대척점에 둔다. 사실 우리나라 보수가 어디 제대로 된 보수인가 하는 문제에서는 또 도리질을 하게 만든다. 모름지기 진(眞)보수라고 한다면, 원칙과 가치에 어긋나는 것에 자존심 때문에라도 목을 걸고 투쟁하는 짠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먼 우리 보수에게 그런 결기와 폼 그리고 비장미를 볼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총수는 주장한다.
그렇게 우와 가카가 계속된 헛발질을 하고 있는데도 진보 진영은 무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총수의 판단은 냉혹하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대비해서 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합종의 길은 멀기만 하다. 그들의 단일화 논의는 재미도 없고, 듣기만 해도 짜증만 난다. 감동의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부질없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은 김 총수가 책의 초반에서 비판한 유인원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저런 정파 간의 이해를 대승적 차원에서 봉합하고 통 크게 합치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김 총수가 그렇게 목 놓아 외치는 안철수 룰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 기성정치권의 몰락을 목도하면서도 말이다.
가카와 그의 수하이자 부패한 폴리널리스트들의 암약으로 메시지 전달 루트는 모두 장악되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플랫폼의 확보가 필수적인데 방송과 신문 모두 보수에게 장악된 마당에 무슨 수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바로 <나는 꼼수다> 인터넷 팟캐스트였다고 김 총수는 말한다. 무상급식이라는 비밀병기를 선점했지만,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진보의 프레임을 짜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절실하다는 것이 김 총수의 분석이었다. 그래서 SNS와 스마트폰을 활용한 팟캐스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에 가카 덕분에 한층 재밌었진 정치라는 양념을 곁들이자 방송은 폭발해 버렸다. 이제 가카와 수하들조차 나꼼수는 무시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어 버렸다. 지난주 나꼼수 주진우 기자가 예언한 대로 가카의 사저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미 그전에 김 총수의 절친 보수의 고깔콘 시장은 그의 예언대로 행동했다가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정치의 세계, 여하튼 너무 재밌다.
단, 너무 진중하면서 과학적인 분석을 원하는 독자라면 <닥치고 정치>는 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 총수가 내내 말하는 대로 이 책의 근간은 ‘무학의 통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감성적 접근, 추정과 소설적 추론이 난무하는 사문난적(斯文亂賊) 그 자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사문난적스러운 주장이 진실처럼 들리니 큰 일이다.
언뜻 보기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겠지만, 쫄지 마라. 잘못됐으면 고치면 된다, 선거로. 이제 얼마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