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2 - 노르망디의 코리안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이재익 씨의 <아버지의 길>은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소재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조정래 선생이 쓴 <사람의 탈>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조정래 선생의 <사람의 탈>이 일본군-소련군 그리고 독일군으로 수많은 변신을 거듭하면서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조선인의 운명을 그렸다면 이재익 씨는 그 위에 조국에 남겨 두고 온 아들에 대한 부정(父情)에 방점을 찍는다.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너무나 뚜렷하다.

<아버지의 길> 두 번째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연합군 쪽으로 완전하게 돌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인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유타 해변에서 포로로 잡힌 독일 동방대대 소속 한국계 독일군 사진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로 귀착된다. 1939년 8월 소련군과 일본군이 만몽국경에서 격돌한 노몬한에서 관동군으로 강제 징집된 김길수는 다시 소련군의 포로가 된다. 악몽 같은 소련의 굴락 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길수와, 영수 그리고 스기타는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에 맞서 심각한 병력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의 결정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던 모스크바 전선에 투입된다.

길수의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붉은 여우”이자 길수의 아내 월화 이야기는 소설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한다. 길수의 도움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월화가 일본군에게 다시 잡힐 뻔한 순간에 다시 한 번 소련 공군의 일본군 기지 공습이라는 개연성이 개입한다. 위안소에 있던 명선과 함께 고향길을 재촉하던 월화는 정대를 합류한다. 위안소에서 일본군의 만행으로 거의 정신이 나간 명선은 정대와 월화가 보는 앞에서 자결한다. 조국을 잃은 사람들의 비극은 멈출 것 같지 않다. 귀향길의 마지막 순간에 일본군 포수들에게 사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던 월화는 영물 호랑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 부분은 길수가 모스크바 공방전이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살아남는 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것 같다.

7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점점 더 조국과 용암포에 두고 온 아들과 멀어지는 기구한 운명 속에서 정말 놓칠 수 없었던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냘픈 끈은 엷어진다. 길수는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어느 미군에게 아들 건우에게 전해주라는 편지를 전해주고 포로수용소를 탈출한다. 그리고 그 미군은 해방된 조국에 길수와의 약속대로 건우와 월화를 찾아 약속을 지킨다.

조정래 선생의 <사람의 탈>에서 구사일생으로 소련군 포로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소련으로 송환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길>에서 이재익 씨가 보여주는 비극의 정도 역시 그에 못지않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의 행적이라는 두 가지 줄기에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 넣는다. 길수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14세 소년병 영수, 조국을 배신하고 일제의 앞잡이로 나선 스기타 대위,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순정으로 일본군에 지원했지만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 정대 등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전장의 영웅이 아닌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의 삶의 궤적에 소설은 방점을 찍는다.

<아버지의 길>의 소설적 재미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역사소설을 표방하는 책에서 보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잘못된 기록은 좀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소설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내러티브에 주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 내러티브의 핵심이 되는 역사 부분에 대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1권의 도조 히데키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관동군 출신으로 일본 군부에서 작전의 신으로 불렸던 쓰지 마사노부의 최후도 사실과 다르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소설이니까’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은 없겠지만.

어쩌면 역사소설에서 역사와 소설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일이지도 모르겠다. 이오지마 전투에 등장하는 일본군 수비대 사령관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이나 미군 소속 홀랜드 스미스 중장(167-168쪽) 같은 인명의 경우에도 좀 더 세심하게 교정을 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며칠 동안 몰입해서 열심히 읽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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