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레네 - 홀로코스트에 맞선 용기와 희생의 기록
이레네 구트 옵다이크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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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독서 주제다. 지금 막 다 읽은 이레네 구트 옵다이크의 실제 체험에 기초한 육필원고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꿈 많던 시절인 십대에 조국 폴란드를 폐허로 만든 독일 전격전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이레네의 이야기. 독일계를 연상하는 외모로 얼마든지, 폴란드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독일인 행세를 하며 전쟁의 참상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자신의 운명에 당당하게 맞선 이 나이 어린 아가씨의 의기는 정말 칭찬받아 마땅하리라.

이레네의 이야기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가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 즉결 처형당할 수 있었던 유대인 구조에 그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폴란드 간호조무사 출신 포로 처녀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독일과 소비에트의 협공으로 조국을 잃은 이레네는 가족과 헤어져 러시아로 몸을 피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닥치는 고난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이레네는 꿋꿋하게 현실에 맞선다. 생과 사를 가르는 극적인 수많은 순간들을 이겨내면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지만,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고 했던가. 다섯 자매 중에서 바로 아래 동생인 야니아와 함께 독일군의 대 러시아 침공 작전의 전초기지인 테르노폴로 이송되어 탄약공장에 배치된다.

그녀가 어려서 배운 유창한 독일어 실력은 향후 생존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독일군에 협력을 거부한 폴란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레네는 부역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우선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야 하는 어린 아가씨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비난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다친 동물과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배워온 그녀는 한때 자신의 다정한 이웃이었던 유대인을 격리수용하고 마치 짐승처럼 취급하는 나치 친위대의 만행에 분노한다.

유대인을 돕는 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즉결 처분한다는 독일 당국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이레네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한다. 이런 의로운 자각이 실천으로 옮겨지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처음에는 게토에 격리된 유대인들에게 남은 음식물을 몰래 넣어 주는 것으로 시작한 그녀의 순수한 선행은 나치의 유대인 절면계획에 정면으로 맞서 그들을 숲으로 보내고, 심지어 독일 장교의 집에 숨기는 데까지 나간다.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전황은 무적의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참패를 하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자그마치 12명의 유대인들을 몰래 숨기고 돕던 이레네는 마지막 순간에 후견인 에두아르트 뤼게머 소령에게 발각이 되고, 치욕적인 대가를 치른다. 수치심에 못 이겨 성당에 찾아가 신부에게 열한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독일군의 정부(情婦)가 되었다고 고백하자, 신부는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범한 그녀의 죄를 사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에 충격을 받는 이레네, 다시 한 번 획일적인 교리라는 패러다임에 갇힌 종교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온갖 역경 끝에 친구 유대인을 구해낸 이레네에게 닥친 운명을 가혹하기만 하다. 소비에트 러시아군에게 해방된 조국 폴란드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이레네는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치른다. 자신이 구한 친구들과 만난 기쁨도 잠시 뿐,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마저 전쟁으로 잃은 작은 영웅에게 돌아온 보답이 고작 이런 것인가하는 회의에 젖는다. 한때 신생국가 이스라엘로 유대인 친구들과 함께 건너갈 생각도 했던 이레네는 새로운 조국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된다.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하는 파란만장한 이레네의 이야기는 역시나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레네는 전쟁 중에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구한 공로로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열방의 의인’이라는 칭호와 함께 국가최고훈장을 수여받는 영예도 얻었다. 미국 청소년을 위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용기와 희생을 유려하게 표현해낸 점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인류의 양심에 큰 상처를 남긴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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