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래전에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전을 성공시킨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힌 독일 동방대대 소속 조선 병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나중에 블로그에 포스팅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진기한 이야기를 소설로 다룬 조정래 선생의 <사람의 탈>도 읽었다. 소설은 선생의 다른 장편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2011년 다시 PD 출신 작가 이재익 씨의 <아버지의 길>로 노르망디의 코리안을 다시 만나게 됐다.

작가는 어느 병원에서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탈북자의 아버지 김길수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38년 소설의 주인공 월화는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랑하는 남편 길수와 아들 건우를 버리고 황량한 만주 벌판으로 떠난다. 뒤에 남겨진 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볼 수가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중국 동북부를 완전 장악한 제국주의 일본은 북방에서 강력한 맞수 소련과 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당시 일본 제국군 중에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관동군은 병력 부족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 징병을 시작한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어떤 국회의원의 엉터리 주장이 떠올라 절로 쓴 웃음이 나왔다.

작가는 징병을 통해 일본 관동군 부대에 모이게 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스케치한다. 주인공 김길수와 월화를 비롯해서 14세 소년병 영수, 정미소 일꾼 출신으로 괴력을 자랑하는 정대, 그의 연인인 명선 아씨, 친일부역자로 황군이 되어싶어하는 조선 출신 스기타 대위 등 마치 퀼트 이불의 한 조각씩 모여들어 큰 얼개로 모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됐다. <아버지의 길>의 부제로 나온 만몽국경의 노몬한 전투로 이야기는 치닫는다.

조선 출신 관동군이 어떻게 해서 노르망디에까지 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째 권에서 다뤄지게 되겠지만 1권에 나온 이야기만으로도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곡에 대한 스토리는 충분한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는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만주로 떠나고, 8살짜리 아들을 홀로 두고 떠나온 가슴 찢어지는 아버지 길수의 마음은 소년병 영수에게로 향한다. 독립군 출신의 이 무뚝뚝한 사내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수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아마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는 정신대 위안소에는 정대가 사모해마지 않는 명선 아씨가 하루코라는 이름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개연성이 소설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극적 구성은 현실감을 떨어뜨린다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악명 높은 독립군 “붉은 여우” 월화마저 스기타 대위의 포로가 되어 병영으로 끌려오지 않는가 말이다.

모름지기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반드시 검증을 해야 할 것이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이재익 작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묻고 싶다. 단적인 예로 122쪽에 나오는 태평양전쟁 전범으로 전후에 사형된 도조 히데키를 관동군 초대 사령관이라고 이재익 씨는 기술하고 있는데, 도조는 관동군 사령관 출신이 아니라 참모장 출신이다. 한국 위키피디아를 조회해 보면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별거 아닌 사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간단한 사실 하나도 짚어내지 못하는 역사소설이라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표지에 나온 4년간의 취재와 집필 기간 동안에도 미처 잡아내지 못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 때문에 이재익 씨가 혼신을 다해 역사소설의 빛을 바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거나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는 마음에 든다. 이야기의 원형이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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