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세계 역사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의 기록 서해역사책방 7
안토니 비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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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극적 전환점이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서유럽을 침공한 미영 연합군 때문에 전쟁에 진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부터 진격해 온 붉은 군대에 의해 결정타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전국(戰局)에서 파죽지세의 독일군의 예봉이 꺾인 것일까?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의 저자 안토니 비버는 1942년 코카서스의 유전지대와 소련의 중앙을 궤멸시키겠다는 청색작전(오퍼레이션 블라우)으로 시작된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의 참패를 그 시발점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 책의 시발점을 히틀러의 1941년 소련 침공에 둔다. 유럽 대륙에서 공산주의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었던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기수 히틀러는 프랑스, 베넬룩스,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발칸반도에서 거둔 기적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300백만에 달하는 독일군과 헝가리, 루마니아 추축군까지 합하면 400백만 명의 병력으로 소련을 상대로 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었다.

 

히틀러와 같은 과였던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은 점증하는 독일군의 침공 계획에 대한 첩보를 무시하고, 히틀러가 독소불가침 조약을 깨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런 오판과 1930년대 군부에 대대적인 숙청으로 다수의 일선 지휘관을 잃은 붉은 군대 전쟁 초기 우수한 화기와 훈련으로 무장한 독일군에 일방적인 패배를 거듭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대로, 독일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를 불과 몇 킬로미터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주코프가 이끄는 소련군의 매서운 반격과 동장군의 엄습으로 적도(赤都) 공략에 실패한다.

 

1942년 여름, 이번에는 주공(主攻)의 방향을 코카서스 유전지대와 남부 공업지대로 눈을 돌린 히틀러는 파울루스 상장이 이끄는 정예 제6군과 호트 대장의 제4기갑군단을 주축으로 한 대병력으로 스탈린그라드 공략에 나선다. 사실 작전 초기에 소련 수반의 이름을 딴 볼가 강변의 도시는 그다지 매력적인 전략 포인트가 아니었다. 폴란드 침공 이래, 전격전으로 단련된 독일 기갑부대와 야전사령관들에게 엄청난 병력 소모를 요구하는 시가전만큼은 피하고 싶은 주제였다. 독일 공군의 위력적인 폭격 아래, 폐허가 된 스탈린그라드 시내가 훗날 독일 제6군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스탈린그라드 함락을 목전에 둔 독일군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590일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그리면서 안토니 비버는 초기에 소련을 배신하고 독일군 편에 붙은 히위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려준다. 소련 첩보기관이었던 KGB의 전신에 해당하는 베리야가 이끄는 NKVD는 적군만큼이나 아군에게 피해를 준 애국전쟁의 반역자 히위들 처단에 앞장섰다. 사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독일군에게 투항한 소련 병사들에게 어떤 선택지도 만만하지 않았다. 주코프의 천왕성 작전으로 스탈린그라드가 역포위된 후, 히위들이 발악적으로 싸운 이유가 절로 이해가 됐다. 다시 소련군에게 투항한다고 해도 그들이 돌아갈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1942년 11월 19일 소련의 파울루스가 이끄는 독일 제6군을 파멸시키려는 천왕성 작전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독일군에게는 병력을 온전하게 유지한 채, 전역을 탈출해서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소련 첩보부에서는 이미 독일 전선의 좌측을 맡고 있는 루마니아 군대의 취약점과 낮은 충성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공의 방향을 북쪽에 집중시켰다.소련의 거대한 포위망이 완성되면서, 여름 동안 스탈린그라드 시내를 실제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독일군은 거꾸로 완전 포위가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공군 사령관이자 제국원수 괴링은 공중 보급으로 포위된 독일군에게 충분한 식량과 탄약을 보급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현실은 최고지도자의 낙관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한 해 전의 러시아의 겨울이 얼마나 파국적이었는지 절실하게 체험했음에도, 독일 전쟁지도부는 1942년 겨울에도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부상자를 위한 의약품을 비롯한 식량과 탄약의 절대적인 부족, 물샐틈없는 포위로 지원군으로 나선 폰 만슈타인의 공격마저 차단시킨 붉은 군대는 한 때 독일군 최정예 부대였던 제6군이 포위된 스탈린그라드를 그야말로 지옥으로 만들었다. 최후사수를 외치며 병사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보급품 수송은 외면한 히틀러의 구원을 기다리며, 독일의 젊은이들은 야만적인 전쟁터에서 그렇게 목숨을 잃어나갔다.

 

저자 안토니 비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지휘한 전쟁지도부나 장군들의 이야기로만 서술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옥도가 재현된 스탈린그라드 시내에서 적과 살을 맞대고 싸운 일선의 병사들이 안락한 조국의 가정에 보낸 애절한 편지 사연으로 참혹한 전쟁의 실상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히틀러의 잇단 성공에 현혹되어, 조국을 파멸로 이끈 지도자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하던 독일 국민과 병사들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처절한 패배와 포위된 독일군을 외면해 버린 지도자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과정도 유감없이 잡아냈다. 아울러 병사들에게는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말고 싸우라고 한 장성들이 자신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적군에 투항할 때를 대비해서 다양한 짐을 챙기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일선의 병사들은 당장 허기를 채울 빵 한 조각이 없어 굶주리는 마당에 버터를 두껍게 바른 빵을 개에게 먹이는 장면에서는 분노마저 일었다.

 

스탈린그라드 전장의 주요 인물 중의 하나였던 독일의 상승장군 에리히 폰 만슈타인에 대한 작가의 평가도 인상적이었다. 독재자 히틀러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로이센 출신의 원수 만슈타인은 개인의 보신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독재자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했다. 군인으로서 군국주의 국가였던 프로이센의 전통을 따른 결정이었다면 정말 할 말이 없지만, 의미 없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히틀러의 어이없는 명령을 무시할 수도 있는 권위가 있었지만, 만슈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제6군 파멸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그래도 만슈타인은 스탈린그라드의 대승에 힘입어 곧바로 역공에 나선 붉은 군대를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분쇄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안토니 비버는 스탈린그라드 전역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재구성한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에서 나온 그대로, 소련군은 자국 병사의 희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제대로 무장도 못한 병사들을 스탈린그라드 시내로 쓸어 넣었다. 영화에서 소총도 없어서, 전우가 죽으면 그 죽은 병사의 소총을 가지고 전장으로 달려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설마했는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 NKVD 소속의 코미사르는 적군과 맞서 싸우기보다 내부의 반역자를 색출하는데 혈안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독일은 포로가 된 독일군에 대한 소련군의 만행을 좋은 선전 자료로 이용했는데, 그에 못지않은 자신들의 잔학행위는 철저하게 숨겼다. 선전상 괴벨스는 스탈린그라드 참패를 철저하게 숨기고 온 국민을 총력전에 내모는데 매진했노라고 안토니 비버는 증언한다.

 

참혹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은 히틀러의 제3제국 파멸의 전주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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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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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예술애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단계는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음악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술. 오래전에 파리에 들러서 그 수많은 뮤지엄들을 돌면서 파리지앵이 부러웠던 건 우리로서는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직접 접하기 힘든 명작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12년 대한민국에 사는 보통 사람이 다빈치의 <모나 리자>나 티에폴로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실물로 보기란 정말 난망하니까 말이다.

 

조르주 페렉 선집의 1탄으로 막 세상의 빛을 본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을 받는 순간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의 온갖 아이콘과 도상학이 담겨 있는 미술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동안 말로만 듣던 조르주 페렉의 작품과도 처음 만나는 기회라 더 바랄 게 없었다. 금상첨화로 두께도 얇아 보여서 선택도 쉬웠다. 한편으로는 이 “천재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문학 세계에 미술 장르를 접목시킬지 궁금했다.

 

조르주 페렉은 우선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에 다음의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어느 미술애호가”에 해당하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양조업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 헤르만 라프케. 그리고 그의 예술적 패트론을 받아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이라는 걸작을 탄생시킨 화가 하인리히 퀴르츠. 마지막으로 퀴르츠의 작품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세상에 알린 레스터 K. 노박이다. 이들의 서로 상호보완적인 작동의 법칙에 따라 소설은 전진한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 앞서 미국의 피츠버그에서 열린 대규모 미술 전시회를 통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퀴르츠의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은 학술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인 선풍을 끌기 시작한다. 바로 이 사건을 중심으로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기존에 라프케가 수차례의 유럽방문을 통해 수집한 그림들의 총체를 퀴르츠는 화폭에 담아냈다. 그가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이라는 그림에 담아낸 세밀화 덕분에 도시의 광학기구 상인들은 밀려드는 주문에 환호성을 질러야 했다. 이 무명의 작가는 단순하게 기존의 그림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변형(variation)도 마다하지 않았다. 회화에 숨겨진 도상학의 비밀을 찾아내는 것만큼 전시회를 찾은 대중들은 숱한 시간을 이 그림 앞에서 보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위대한 컬렉터였던 라프케가 죽고 나서 그가 수집한 그림들이 경매에 붙여졌다. 니콜라 푸생, 잔바티스타 티에폴로, 프랑수아 부셰 그리고 한스 홀바인 같이 저명한 화가는 물론이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화가의 이름 앞에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든다. 이 기묘한 내러티브의 달인은 그렇게 주눅 든 독자의 어쭙잖은 예술 지식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경매에 나온 그림과 엄청난 호가의 나열 끝에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한 방은 가히 절묘했다!!!

 

근대 자본주의가 틀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예술품은 창조자(예술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헌정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예술품은 하나의 투자 대상이 되었다. 생전에 꼴랑 단 한 작품을 팔았던 반 고흐의 그림들이 지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페렉은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에서 그 예술 작품이 가진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경매장 호가 기준으로 평가되는 현실을 자신의 방식으로 비판한다. 소설에서 라프케가 정말 좋아했고, 자신이 궁극적으로 그림을 수집하게 된 계기가 된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작가의 예술에 대한 사고를 집약해주는 장면이다.

 

하인리히 퀴르츠가 기존의 예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대한 예술적 고찰은 조르주 페렉이 이 작품을 창조했는가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와 작품에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이라는 작품을 뻔뻔하게 끼워 넣는다. 작가가 나열하는 수많은 오리지널 예술 작품은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그렇게 새롭게 창조된 작품의 영롱한 “아우라”는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극적인 반전으로 독자를 몰고 간다. 기계적 복제가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위협하는 시대에 작가는 천재적 재능과 기묘하면서도 조마조마한 매력으로 독자를 희롱한다.

 

체계적으로 예술의 도상학과 아이콘을 배우지 않은 무지한 아마추어 미술애호가에게 이번에 새로 선보인 조르주 페렉의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은 유쾌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오르세에서 그리고 벨베데레에서 마주한 오리지널의 감흥이 그동안 잠자코 있던 역마살을 헤집는다. 페렉과의 첫 만남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나올 조르주 페렉 선집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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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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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책은 예나 지금이나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는 내게는 좋은 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가 있겠다. 사실 책을 펼쳐들었을 때, 이걸 어제 다 읽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완벽한 기우(杞憂)였다. 책은 딱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바로 전에 김훈 선생의 단편모음집인 <강산무진>을 읽어서인지, 그가 즐겨 쓰는 표현들을 <칼의 노래>에서도 만날 적마다 아주 반가운 느낌이 들었었다.

 

<칼의 노래>는 우리 민족의 성웅(聖雄)으로 손꼽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작가는 일인칭 시점에서 철저하게 겨레의 영웅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혀 씌웠다. 누가 작가이고, 누가 충무공인지. 책의 말머리에서 <칼의 노래>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지만, 여느 팩션이 그렇듯이 사실과 허구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했다.

 

왕조제 신분국가였던 조선의 그 근간부터 뿌리째 뒤흔들었던 7년 대전란(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기에, 조선과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오사카성에 할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꿈을 충무공은 남해 앞바다에서 철저하게 부숴 버렸다. 육전에서는 승승장구하던 왜군이었지만, 바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이 일던 바다에서 그들은 꼬리 내린 강아지의 꼴이었다.

 

하지만, 못난 조선 조정 중신들의 모함과 도원수 권율의 상소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망했다는 죄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죄인 신분으로 의금부로 압송된다. 삭탈관직된 그의 뒤를 이어 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의 참패로 충무공이 애써 길러온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다. 왜군의 승리로 충무공은 사지에서 가까스로 탈출한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적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 셈이다.

 

다시 조선 수군의 전권을 위임받은 충무공에게 남은 전선은 단 12척. 정유년(1597) 명과의 지루한 협상 끝에 왜군은 다시 전면적 침공을 개시한다. 제해권을 상실한 조선 수군은 왜군이 본국에서 부산과 울산 등지에 군사를 상륙시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게다가 조정에서는 충무공이 지휘하는 수군에게 전혀 보급조차 하지 못하고, 조선 수군은 자력으로 둔전을 하고 먹을 군량을 조달해 가면서 육지와 바다에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적과 상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다다른다.

 

하지만, 충무공은 이 위기를 단 12척의 전선으로 명량해협, 울돌목의 지형을 이용해서 서해에 진출하려는 왜군을 격파하고 다시 한 번 남해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조선의 구원 요청에 개입을 시작한 명나라는 천자의 군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조선에 주둔하면서 갖은 요구를 다하지만, 정작 전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꺼린다. 이미 다 끝난 전쟁에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국전쟁 당시 서부전선을 맡았던 미군의 모습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충무공은 퇴각하는 적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돌입한다.

 

아산의 현충사에 다녀오고, 민족의 영웅으로 우러름을 받는 충무공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이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젊은 날의 충무공의 모습을 그린 역사적 사실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제대로 된 문헌이나 책을 통해서 충무공과 대면을 하게 된 것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가 처음이었다. 그 흔해 빠진 드라마를 통해서도 난 당최 충무공을 만나지 못했었다.

 

김훈 선생은 <칼의 노래>를 통해 전설처럼 알려진 충무공의 무훈보다는 더욱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산 고향에 머물던 아들 면의 죽음을 들었을 때, 또 자신을 찾아온 여인과의 만남, 자신이 마땅히 보살펴야 하는 백성의 안위를 보전하지 못하는 번뇌, 그리고 장졸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마당에도 자신은 계속해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일인칭 시점의 서술은 독자의 공감을 얻을 만하다. 다만, 역사적 사실들과 픽션이 혼재가 되면서 과연 이런 작가의 생각들이 사실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금치산자(禁治産者)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선조는 조선조 처음으로 방계 승통으로 왕위에 오른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료와 장수를 믿지 못하는 고질병에 시달린다. 이런 선조의 성품은 미증유의 국난의 위기 가운데 각처에서 선전하는 휘하의 장수들에게 치명타였다. 진주대첩을 이끈 의병장 김덕령은 장살 당했고, 충무공 역시 모함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긴다. 군사들에게 보급조차 못 하는 무능한 조정은 감내라 배내라식으로 충무공을 닦달한다. 너절한 위정자들의 모습은 520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명나라 군대는 한 술 더 떠서, 직접 나서서 적을 무찌르기보다는 전공을 의미하는 왜군의 수급까지 요구한다.

 

이런 그 실체를 갖춘 적과 보이지 않는 적들로 둘러싸인 충무공은 자신의 사지(死地)를 찾는다. 일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아마 충무공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살아남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가설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의심 많은 군주 선조는 마지막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고, 적탄에 의해 장렬하게 산화한 장군의 존재가 더 마음에 놓였을 것이다.

 

작가 김훈 선생은 나름대로 서술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진 몰라도, 충무공의 미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군율을 지키지 않는 군졸과 군관들을 베고, 화살받이로 내세운 조선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에 고뇌하며, 자신에게 전혀 협조하지 않는 명나라 수군총관 진린을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가 머무는 숙소에 걸려 있던 선조가 내린 면사첩과 환도 두 자루는 소설 내내 등장한다. 그것은 마치 선조 임금에 대한 충무공의 애증 어린 관계를 상징하면서, 조국의 강산을 침범한 외적의 무리에 대한 살기 어린 적의처럼 다가온다.

 

개인의 운명이 존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의 그것과 오버랩이 되는 역사적 경험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아울러 역사적 사실과 팩션의 한계점이 어딘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유익한 독서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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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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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타티나아 드 로즈네의 <사라의 열쇠>를 읽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그녀의 <벽은 속삭인다>를 읽으면서 나중에 나왔지만 작가의 이름을 세계에 (책과 영화로) 널린 <사라의 열쇠>를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은 속삭인다>는 드 로즈네의 대표작을 위한 전주곡이라고 호칭하고 싶은 마음이다.

 

소설의 주인공 파스칼린 말롱은 매력적인 남편 프레데릭과의 15년에 걸친 결혼생활을 최근에 끝내고 홀로서기에 나선 커리어 우먼이다. 프레데릭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에 종사하는 파스칼린에게 상상력이 없다고 핀잔을 주고 했단다. , 컴퓨터 프로그래밍인 상상력 없이 가능한 일이었던가? 일종의 편견의 벽에 마주쳤다.

 

나이 마흔 살의 이혼녀는 생후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딸 엘레나를 잃고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정 원한다면 불임이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도 아닌데라는 상념이 따라 붙는다. 드 로즈네는 아이 잃은 엄마 파스칼린의 심리 상태를 여성 작가답게 예리하면서도 모성애 넘치는 관점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문제는 파스칼린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둥지를 튼 아파트에서 오래 전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집에서 도대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에 고생하던 주인공은 그 사실을 알아내고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된 꽃 같은 아가씨들의 운명에 자신의 삶을 대입하기 시작한다. 주변인들이 초반에 그녀에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가라고 했던 것처럼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반응은 정상적이지 않다. 아마도 신혼 시절에 딸 엘레나를 잃은 상실감의 발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당한 아가씨들과 자신이 잃은 아이를 동일선상에 두는 파스칼린의 과도한 피해의식이 책을 읽는 내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더 당혹스러웠던 점은 어느 순간, <사라의 열쇠>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는 1942716일의 벨디브 유대인 일제검거사건이 튀어 나왔다는 점이다. <사라의 열쇠>에서는 워낙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왜 그 사건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벽은 속삭인다><사라의 열쇠>의 확장을 위한 습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과거의 잊고 싶은 기억이 공간에 스며 들 수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설정에는 한편 수긍이 가기도 했다.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몰랐다면 그냥 모르고 살 수 있겠지만, 알고 난 뒤에 혼자 집에 있을 때 오싹한 살인사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또한 강심장의 소유자이리라.

 

내가 사랑했던 사랑의 행복이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열린 결말이 무척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과연 파스칼린이 프레데릭과 새로운 말롱 부인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너무 궁금했다. 한 번 만난 작가와의 재회는 짧았지만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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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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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위기로 시달리는 그리스가 위치한 발칸 반도는 고래로부터 잦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반도국가인 우리나라와 유사한 운명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발칸 반도에 알바니아라는 조그만 나라가 있다. 처음으로 알바니아 출신 작가의 글을 읽었다. 이스마일 카다레,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로 망명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데뷔작 <죽은 군대의 장군>이 오늘 이야기할 작품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 지난 천년의 끝자락에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학살로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코소보 사태 즈음에 한불작가교류프로그램으로 프랑스를 찾은 이청준 작가가 이스마일 카다레를 직접 만나 나눈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 인터뷰에서 카다레는 당시 알바니아가 속해 있던 발칸 반도를 휩쓸던 살육과 광기의 악순환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했다. 카다레 작품 세계의 시원을 이루는 <죽은 군대의 장군>을 읽는데 예의 인터뷰가 도움이 되었다.

 

<죽은 군대의 장군>의 얼개는 비교적 간단하다. 소설에서는 알바니아-이탈리아 전쟁이라고 명백하게 밝히지 않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발칸 전역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추측이 가능한 사실이다. 전쟁 당시 알바니아에서 전사한 이탈리아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라는 국방장관의 명령으로 장군(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은 과거의 적국 알바니아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을 이스마일 카다레는 예리한 시선으로 추적한다.

 

장군이 조국을 떠나기 전부터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유가족들이 그를 찾는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또 어떤 이들은 아버지를 잃고 비통해 하는 장면이 정말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고위 장교이자 백작 가문의 Z대령을 찾아 달라는 미모의 미망인의 부탁이 장군의 뇌리에 각인된다.

 

공산국가 알바니아를 철권으로 다스리던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통치 아래 있던 미묘한 정치 상황이 살짝살짝 엿보인다.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서류 절차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시신 수습의 과정에서 장군과 그의 보좌역인 신부가 맞닥뜨리게 되는 알바니아 국민의 적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적대감의 원류에는 바로 Z대령이 소속되어 있던 청색 대대, 보복 부대의 만행이 이유였다는 점이다.

 

동맹국이었던 독일과는 달리 전쟁에서 그다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탈리아군은 발칸의 소국(小國) 알바니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총을 손에 들고 싸운다는 알바니아 유격대에 맞서 이탈리아군은 패주하고 탈영해서 농촌으로 숨어 들어가 촌락의 머슴으로 살았다고 한다. 어느 무명 병사의 일기장을 통해 그런 생생한 사실을 알게 된 장군은 그것으로 스스로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수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장군은 스스로를 전쟁터에서 그렇게 스러져간 죽은 병사들의 군대 지휘관이라는 환영에 빠져든다. 명예롭게 조국을 위해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 실제로는 갈봇집을 드나들고, 적국 농가의 머슴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또 때로는 보복이라는 이름으로 잔학 행위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괴상망측한 사실이 장군이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신념과 가치를 가차 없이 공격한다. 수치화되고 통계화된 죽음의 기록은 비극 그 자체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20년 전 그의 조국 알바니아에서 벌어진 비극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했다.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제시하는 반전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전쟁의 포화 속으로 이렇게 멋지고 용감한 젊은이들을 몰아넣었단 말인가! 저자가 인터뷰에서 스위스와 그리스를 섞어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알바니아의 산하를 붉은 피로 물들인 전쟁의 폐해는 그 땅을 사는 이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 있노라고 카다레는 증언한다.

 

알바니아인들은 거칠고 후진한 민족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요람에 총을 갖다 두지요. 이 무기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말입니다.” (41)

 

논리적 판단보다는 관습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알바니아인들의 기질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해양민족에게 바다는 진출의 상징이었겠지만, 산악민족인 알바니아인들에게 바다는 침략자들의 통로였다. 그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외세에 맞서 단신으로 총질을 해대는 장면은 일견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끝없는 전쟁과 살육이 그들에겐 어쩔 수 없는 일상이었다는 카다레의 글에 자연스레 수긍이 갔다.

 

조국을 떠나 멀리 타국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노망명객의 데뷔작을 수십 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됐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문학 오딧세이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만남으로 시작되기 마련인가 보다. 국내에 출간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음에 읽을 책은 <꿈의 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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