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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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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의 어느 자리에서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 리뷰는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쓰는 편인데 지난 주말에 이러저러한 일로 바빠서 리뷰 쓰는데 며칠이 걸렸다. 모두 9편의 이야기 중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아버지의 부엌>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느 학생 꼬마처럼 시험 잘 보면 무엇이든 사주겠다고 약속한 아버지에게 턱도 없이 “미미의 부엌”을 사달라고 했다가 장난감 기관총을 받는다. 너무 “미미의 부엌”이 갖고 싶었던 나는 결국 동생의 돼지저금통에 손을 댔다가 전봇대에 호스로 묶인다. 정말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대한 묘사는 내내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위험한 독서>로 김경욱 작가를 처음 만났다. 아마 처음으로 내가 읽은 책의 저자와 지근거리에서 그렇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싶다.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진행된 <위험한 독서>에 대한 대담의 자리였지 싶다. 솔직히 김경욱 작가와 나눈 이야기보다 김경욱 작가가 우리를 위해 내준 커피 값의 추억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카메라맨과 PD의 요청으로 <위험한 독서>의 독서지도사 역할을 어느 대학생과 연출했었다. 그래서 더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친근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나 지난달 끄트머리에 김경욱 작가의 신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만났다. 다 읽고 난 나의 소감은 한 마디로 다음과 같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김경욱 작가의 단편 실력은 이미 알고 있기에, 장편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소설집을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다시 만난 지기 같은 기분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졌다.

도시의 수백 개의 계량기가 동파된 어느 추운 겨울날 벌어진 사건을 재구성한 타이틀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에서는 <도가니>의 잔향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악행에 대한 심판은 온전하게 신에게 맡겨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일본만화 <내일은 조>를 연상시키는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에서는 타인의 삶을 반추하는 자서전을 대필하는 글쟁이의 시선으로 몰락한 권투선수를 바라본다. 한 때, 각광받는 스포츠였지만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네 관심에서 멀어져간 권투 경기와 계체량 통과라는 가히 살인적인 자신과의 투쟁이 오롯하게 그려진다.

<연애의 여왕>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는 책마다 족족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은둔형 얼굴없는 작가 “연애소설의 여왕”을 찾아 나서는 사진작가의 밀착취재가 그 중심이다.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만, 도대체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인물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누가 봐도 빤한 상업소설이지만, 잘 팔린다는 이유로 궁금해 하는 설정은 문학의 소비가 과연 긍정적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연애의 여왕이 잘 팔리지 않는 작가였다면 그 누가 그녀에게 관심을 두었겠는가 말이다. 게임이 법칙이 지배하는 문학계에 대한 풍자를 슬쩍 내비치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가 가출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할아버지에, 야간경비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희망 없는 88만원 세대의 초상을 그린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도 주목할 만하다. 누구나 꿈꾸는 행복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은 금기의 단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허구한 날 꽁치찌개를 끓이는 아버지에게는 담배를, 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할아버지에게는 소주에 빨대를 꽂아 드리는 주유소 비정규직 알바 청년의 신산한 삶에 대한 초상이 마치 허상처럼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정답을 아주 좋아한다. 아니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정답에 가까운 근사치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런데 김경욱 작가는 나 같은 독자에게 그런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정말 다양한 삶의 군상을 죽 나열해준다. 이런 삶도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삶의 방향타를 다른 방향으로 수정하라는 말로 다가선다. <위험한 독서>를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그의 소설에는 정답이 없다. 하긴 변화무쌍한 삶의 여로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에서 김경욱 작가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때로는 공감하고, 분노하고, 연민을 느끼고, 그땐 그랬지를 속으로 연발했다. 깊어가는 가을에 부담 없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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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김경욱 작가 만나고 왔어요! 낭독회였는데, 말도 조곤조곤 잘하고 훈남이더라구요. 특히 [아버지의 부엌]을 낭독할 때는 연기까지 하셨다는 ^^;;

[신에게는...] 단편 하나 하나가 재밌고 잘 짜여진 것 같아요. 해설을 보기 전까지 하나로 묶이는 해석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요. 늘 그런 것 같아요. 단편소설은 정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보여줘요.

김경욱 작가의 장편소설은 어떨지, 사뭇 궁금하네요 :)

레삭매냐 2011-11-25 09:00   좋아요 0 | URL
그동안 저도 만날 단편만 만나서 장편이 기대가 됩니다 :>

연기를 겸한 낭독회라, 상상만 해도 즐거워집니다.
물론 싸인도 받으셨겠죠?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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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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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만에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만났다. 작년 이맘때 읽은 <탐정클럽> 이후 1년 만에 신간 <새벽 거리에서>로 다시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르 세계에 뛰어 들었다. 한 가지 패착은 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점이다. 순식간에 200쪽을 넘어가는 책읽기 속도에 깜짝 놀랐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느라 아주 고생했다.

올해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새벽 거리에서>는 불륜에 대한 어느 사내의 단상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제는 단골 소재로 빠지지 않는 정해진 짝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불륜은 타이밍의 문제인 것 같다. 나중에 오는 사랑을 막을 수 없다는, 지극히 통속적이다.

멀쩡하게 아내와 딸까지 있는 가장이 훨씬 나이 어린 직장 임시직 직원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설정, 정상적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정상 궤도에서 그렇게 일탈해 있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재미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 ‘관계’에 살인이라는 소재가 더해지면서 <새벽 거리에서>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출중한 외모로 주변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그런 미녀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사랑하는 나카시니 아키하는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매너리즘에 빠진 와타나베의 일상이 궤도에서 이탈한 로맨스의 단초를 제공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던 어느 날, 야구연습장에서 아키하를 만나고 만취한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아니 그건 사건 축에도 끼지 못한다. 진짜 사건은 15년 전에 일어났다. 그리고 아키하가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와타나베. 이제는 더 이상 남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던 중년 남자에게 다가온 사랑은 그래서 더더욱 치명적이다. 생판 모르는 타인 같이 되어 버린 아내와의 결혼생활, 그렇다고 아내와의 결혼을 끝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중생활을 하는 가장의 위선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충실하게 벗겨낸다. 아주 천천히.

아키하와의 불륜과 어우러지는 그녀의 과거는 책을 읽는 독자를 한 순간에 중독시켜 버린다. 파멸적 사랑과 결합된 ‘메멘토 모리’는 도대체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작가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한 단서로 결말을 예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추리는 하나는 맞았고, 다른 하나는 보기 좋게 틀렸다. 와타나베의 위험천만한 외도만큼이나 결말을 예상하는 스릴은 최고였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구성을 뒷받침하는 건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대화 전개방식이다. 원죄 때문에 아키하에게 한 순간도 당당할 수 없었던 와타나베의 속마음이 속도감 넘치게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남녀간의 ‘사랑과 전쟁’에서 보다 적극적인 감정의 전개를 보여주는 여자 역의 아키하 역시 놀라울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15년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결말로 갈수록 아드레날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의 심장 박동은 최고조에 달한다. 결승점을 앞둔 경주마처럼 <새벽 거리에서>의 모든 글자들이 공소시효 만료인 3월 31일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누구나 그렇듯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둘 다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다를 취하고자 할 때 항상 말썽이 생긴다. 사랑이 빚어낸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와타나베를 멋지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배신자로 규정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뒤늦은 사랑과 안정을 모두 가지려고 위험한 줄타기를 한 남자에게 돌아가는 건 인과응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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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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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에 아드만 스튜디오에서 만든 <치킨 런>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영화 <대탈주>를 패러디한 닭들의 대탈주를 그린 영화였다. <치킨 런>은 그때 이미 공장식 축산 농장의 효율적 산업 모델을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제시했다. 어떻게 해서 실리어 스틸과 찰스 밴트리스라는 낯선 이름의 주인공들이 오늘날 우리가 저렴한 비용으로 갈루스 도메티스쿠스(gallus domesticus:닭의 학명)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에 따른 도덕적 윤리 문제에 대한 아주 복잡한 셈법을 미국계 유대인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통해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모든 것이 밝혀졌다>라는 제목의 성장소설을 통해 처음 만났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어느 유대계 미국 청년의 우크라이나 여행기를 다룬 소설이었는데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유럽 출신 유대인이었던 포어의 할머니는 홀로코스트와 기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그 어떤 것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90세가 다 된 지금에도 언제나 사랑하는 자식과 손자들에게 풍족한 음식을 준비해주기 위해 지하실에 엄청난 양의 밀가루 부대를 쟁여 두고 있단다. 어쩌면 전쟁을 겪은 세대의 일반적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아홉 살 때, 처음 베이비시터를 통해 채식주의를 접하게 된 작가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또 첫 아이를 갖게 되면서 자신이, 앞으로 자신의 아이가 먹게 될 음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어쩌면 그게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볼 때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이 책을 쓰기에 뒤에 달린 참고 문헌과 인용구를 보면 엄청난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포어는 다양한 측면에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라는 주제에 접근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개를 식용으로 거리낌 없이 먹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에게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개를 식용으로 이용할 경우 상당한 비용 절감과 공장식 축산 때문에 생기는 환경오염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어떤 동물은 절대로 보호해야 하는 종(種)이고 또 어떤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예에 적합한 예로 베를린 동물원의 슈퍼스타 북극곰 크누트를 작가는 등장시킨다.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비좁은 공간 그리고 자연 조건을 임의대로 조작한 열악한 환경에서 생산되는 가축을 둘러보기 위해 열혈 동물 운동가 C와 함께 잠입 취재도 마다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게일 아이스니츠의 육성 르포인 <도살장>을 통해 미국 현지의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동물에 대한 참상을 읽어서인진 몰라도 포어의 짧은 모험은 솔직히 그다지 인상적이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책상머리에서 쓰는 글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담고 싶다는 그의 노력에는 가산점을 주고 싶다.

하지만, 그의 모험보다 그 뒤에 등장하는 은퇴한 농부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작금의 공장식 축산 농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캐릭터의 인터뷰가 더 인상적이었다. 효과적인 가축의 생산을 위해 술파제와 항생제를 남발하고 동물 복지에는 눈감고 끔찍한 행위가 자행되는 현실에 쏟아지는 비난에 그는 이런 대답을 한다. 만약 그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값싼 가격으로 단백질 섭취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또 다른 칠면조 농부는 자신이 기르는 동물을 잘 대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찌 되었던 간에 그가 기른 칠면조의 마지막 행선지는 도살장이 아니었던가?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의 복지론 때문에 나라가 다 시끄러운 판에, 미국에서는 동물의 복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충격을 먹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식탁으로 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무엇이 정상적인 때가 있긴 했었나?) 본격적인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고기를 먹게 될 세대의 징검다리 세대다. 그래서 우리의 결정이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확실하다.

어느 유명한 셰프는 자신의 아들이 육식 포기 선언을 한다면 총으로 쏘겠다는 극언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육식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과연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인식이 행동과 변화에 대한 결정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문제는 동물을 위한 윤리적 소비를 하기 위해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선뜻 지갑을 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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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왼팔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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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page-turner), 다시 말해서 정말 쉬지 않고 그렇게 재밌게 읽히는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새로 출간된 와다 료의 소설 <바람의 왼팔>은 전장에서의 낭만을 아는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고 페이지 터너다. 우리나라 역사 같았다면 바로 조사를 해봤겠지만, 일본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패스!

작년에 나온 <노보우의 성>도 아주 재밌게 읽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의 왼팔>이 더 재밌다. 1556년, 센고쿠 시대의 전란을 무력으로 평정하게 될 오다 노부나가가 아직 그 명성을 날리기 전이다.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도자와 가문의 하야시 한에몬이다. 그는 센고쿠 시대 기마무사의 전형으로, 적진으로 말을 달려 돌파하며 적장을 수급을 베는 ‘공로 사냥꾼’이다. 한에몬이 속한 도자와 가문이 이웃의 고다마 가문과 전쟁을 벌이다가 대패를 하고 만다. 물론 상대 진영에도 그에 못지않은 전사 하나부사 기베에가 있다. 역사에 언제나 등장하는 라이벌 구도다.

도자와 가문의 차기 성주 즈쇼의 엉성한 전략으로 초장에 대패하고, 적병의 추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한에몬은 도자와와 고다마의 경계 산속에서 살던 사냥꾼 요조와 그의 손자 고타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자신의 은인인 고타로에게 보은하고 싶었던 한에몬은 고타로의 소원인 화승총 사격대회 참가를 허락한다.

압도적인 고다마 가문의 침공에 직면한 도자와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을 가지고 농성전에 돌입한다. 농성전에 앞서 성 밖 마을을 점령한 기베에를 늙은 호위무사 기베에만 데리고 찾는 한에몬. 그리고 비열한 방법을 써서, 사실상의 적진 총사령관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병사들로 하여금 호위해서 성 안으로 무사히 들여보낸다. 와다 료는 소설의 곳곳에서 이렇게 멋진 무사간의 의기(義氣)를 칭송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한에몬과 기베에는 상대방의 수급을 취하는 상상을 하며 짜릿해 한다. 무사간의 정을 나누면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적장을 베는 즐거움을 타인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사무라이의 본심을 작가는 적확하게 잡아낸다.

어쨌든 고타로가 가진 신기에 가까운 사격 실력을 알게 된 한에몬은 고타로야말로 풍전등화 같은 도자와 성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최종 비밀병기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자, 문제는 어리숙하고 순수한 고타로의 적개심을 어떻게 불태워 전장으로 이끌어내는가이다. 승리를 위해 한에몬은 비겁하지 말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버리고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와다 료의 <바람의 왼팔>은 소년만화 혹은 무협지에 등장하는 절세 고수의 등장으로 절대 열세인 전장의 승부를 한판에 뒤집어 버리는 내러티브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초전에서 수많은 병사를 잃고 대패한 도자와 가문은 압도적인 고다마 가문의 공격 앞에 전멸 위기를 맞는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방법으로서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가 없다. 물론, 깁에도 시노비를 동원하는 암수를 쓰지만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 한에몬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고타로의 주무기였던 화승총의 등장에 주목했다. 센고쿠 시대까지만 해도 기마무사의 적진 돌격이야말로 농민으로 구성된 보병에겐 전차와 같은 위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저격할 수 있는 보병 무기인 화승총의 등장으로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센고쿠 시대의 무자비한 전란을 통해 개량된 화승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을 상대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조선군의 참패였다.

권력을 위한 음모와 사투가 뒤범벅이 된 센고쿠 시대의 사무라이는 상명하복과 주군에 절대 충성과 충돌하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고통 받는다. 게다가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스즈는 자신이 후일 섬기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주군 즈쇼에게 빼앗겼다. 게다가 전란의 시대에 살아남아야 했던 고타로의 이야기, 기마무사가 되어 신분의 상승을 이루겠다는 야심에 불타는 겐타 그리고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수하를 처형하겠다고 덤비는 성주 도시타카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는 욕망의 도가니탕이다.

작가는 그런 센고쿠 시대 사무라이들의 낭만을 소설의 메인 테마로 삼지만, 과연 그 시대가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좋은 시대였는지 묻고 싶다. 사무라이들이 칼날을 시험해 보겠다고,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베어도 죄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 봉건영주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군관계의 하부구조에 위치해 있던 사무라이에게 백성을 그저 수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영토를 넓히기 위해 이웃 영주와 전쟁에 동원되는 병사도 역시 농민 중에서 충당했다. 소설에서 패배한 한에몬과 산쥬로를 쫓는 패잔병 사냥꾼 역시 전공을 노린 농민이 아니었던가.

너무 소설의 중심이 너무 하야시 한에몬에게 집중되다 보니 “신의 왼팔” 고타로의 비중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하긴 와다 료 작가의 본심이 센고쿠 시대 무사의 정신세계를 독자에게 보여주겠다라는 점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고타로는 작가가 원한 무사가 아니라 그저 철부지 십대 소년이었으니까. 어쨌든 의리에 죽고 사는 싸나이들의 치열한 투쟁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그리고 재밌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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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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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퇴근길에 스티브 잡스 자서전에 대한 책 소개를 들었다. 사실 천 쪽 가까운 책을 누가 읽을까 싶었는데 지난 월요일 시중에 풀리고 나서 단박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초판으로 10만부를 찍었는데 물량이 달려서 8만부를 더 찍었단다. 어느 대형서점에서만 8,000부를 주문했다고도 한다.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 놓고 팔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사실 아무리 책을 좋아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읽을 생각은 없다. 그래도 언제고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이야기를 하게 될 텐데 맛보기로나마 이렇게 알아 두면 스티브 잡스의 삶에 대해 아는 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수로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우선 이 책은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부터 작업을 한 책이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포괄해서 100여명으로부터 직접 취재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서 쓴 책이다. 물론, 스티브 잡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다.

스티브 잡스의 기행과 괴팍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 자신이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만든 애플로부터 쫓겨난 사실을 비롯해서, 자신의 친딸인 리사를 부인하기도 했다. 친자확인 결과 95% 이상 친자로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결국 화해를 했다고 하던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요 부분은 잘 다뤄지지 않은 사실이 아닌가 싶다.

그는 특히 사람들을 천재와 바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고 한다. 자신을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로 생각하면서, 애플 2, 맥킨토시, 아이북, 아이팟, 아이패드 그리고 아이폰에 이르는 수많은 제품을 돈을 벌기 위한 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생각했고, 자신이 직접 설립한 애플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놀랍군!!!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에 대해서는 자신과 같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폄하하기도 했다.

1980년 애플을 기업 공개했을 때, 초창기 애플의 개국 공신들은 애플 지분으로 단박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동료에게는 전혀 지분을 주지 않아, 다른 이들이 자기 몫으로 돌아온 지분을 나눠 주자고 하면서 스티브 잡스에게 얼마를 줄 거냐고 했을 적에 당당하게 0%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위에서도 말한 대로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자신이 가진 고유의 가치판단 시스템(천재와 바보)으로 한 스티브 잡스의 사고를 설명해준다.

애플 신화를 창조한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들 줄 아는 천재였다. 워즈니악에게는 없던 천부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가지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조합해서 소비자의 기호를 자극했고, 그가 만들어낸 제품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와 환호를 받았다. 제록스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 GUI 시스템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에 적극적으로 탑재하면서 이제는 표준으로 자리잡지 않았던가. 아이팟의 경우에도, 기존의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이 이게 돈이 되겠어(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이다)라고 생각한 기술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아이폰의 와이드스크린 펑션도 마찬가지다.

생의 마지막 14년 동안, 애플로부터 매년 1달러의 연봉을 받은 것도 세간의 화제였다. 문제는 스티브 잡스에게 돈은 의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애플의 영속과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천재에게 돈줄은 따로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디즈니 주식 배당금으로만 매년 4,8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였다. 그러니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CEO에게 돈이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오로지 완벽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었고, 대중은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퍼부었다.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난 시대의 풍운아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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