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처음으로 파리를 찾았다.

 

사실 파리는 그저 내가 꿈꾸던 도시 로마를 가기 위한 경유지였다.

그런데 정작 두 도시를 가보니 로마보다 파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4년 뒤에 다시 한 번 파리를 찾게 된다.

 

물론 로마도 좋았다. 아마 그 당시에는 지금은 손절해 버린 작가 시오노 할매의 책을 보고 로마에 가지 않았나 싶다.

콜로세움과 판테온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은 황홀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감동 그 자체였고.

하지만 개똥으로 뒤덮인 도시 로마는 정말...

 

오래전에 사둔 설터 작가의 프랑스 기행문을 읽고 있는데...

물을 퍼부어 도시를 목욕시키고짚으로 만든  빗자루로 어제의 잔해를 쓸어 보낸다.”
바로 내가 파리에서 첫 아침에 느낀 느낌 그대로였다.

 

천신만고 끝에 찾은 오렌지민박에서 시차 때문에 새벽 같이 일어나 파리의 거리를 누비다가 맡은 바게트 냄새 역시 기가 막혔다. 사실 아직도 바게트 빵맛을 잘 모릅지만, 당시 느꼈던 냄새의 추억은 평생 갈 것 같다. 그렇게 걸어서 뤽상부르 공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물을 퍼부어 도시를 목욕시키고, 짚으로 만든 긴 빗자루로 어제의 잔해를 쓸어 보낸다.
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아직은 아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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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8-25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파리는 가보지 못했어요. 개똥으로 뒤덮인...ㅋㅋㅋ 저에게 로마는 꽤 괜찮은 곳이었어요^^ 신혼여행지여서 그랬나?ㅋㅋ 파리는 다른 건 모르겠고 바게트 빵을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가보고 싶네요...ㅎㅎㅎ

레삭매냐 2022-08-25 11:19   좋아요 1 | URL
오옷 로마로 신행을~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로마에 갔을 적에
만난 분들도 신행 오셨었다고 했는데...
밤새도록 술 마시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

여행하고 난 뒤에 기억을 되짚어 보면
여행은 결국 사람들과의 만남이 추억
이지 싶습니다.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술은 인민의 것인가? 아니면 그 예술을 창조해낸 이들의 것인가? 내가 두 번 아니 아마 세 번째로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을 읽으면서 내내 했던 생각 중의 하나다.

 

이번에 제발트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역시 책은 재독 그리고 삼독 정도는 해주어야 표면에 등장하는 기표 너머의 기의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 문제는 새로 나오는 책들이 너무 많고, 또 사두고 어디에 파묻어둔 책들이 그 이상으로 많다는 게 문제다. 한 마디로, 아직 읽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평생 읽지 못할 책들이 한가득이라는 말이지.

 

소설 <시대의 소음>은 위대한 독재자 시절을 살아남은 위선과 모순의 천국이었던 소비에트 러시아 출신 작곡가이자 문제적 인간이었던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를 주인공으로 삼은 대한 전기 소설이다. , 몰랐었는데 인스타에서 보니 주인공이라는 말이 불가에서는 쓰는 말이라고 한다. 말의 어원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다.

 

미트야(서방에서는 쇼스티라고 불렀다)라는 별명을 지닌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상트레닌스부르크 출신의 작곡가다. 젊은 시절에는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쳤다. 마마보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미트야에게 닥친 첫 번째 위기는 야심차게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당 기관지 <프라우다>음악이 아닌 혼돈이라는 비판을 실리면서 찾아왔다.

 

다른 때도 아닌 심지어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이 그야말로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시절이 아닌가.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는 붉은 베토벤을 원했다. 그리고 미트야는 대원수의 기준에 가장 적합한 작곡가였던 모양이다. 또 다른 원수 투하쳅스키의 재정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을 받던 미트야는 대숙청의 시절, 언제라도 엔카베데(NKVD)에게 끌려갈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잠옷 바람에 끌려가는 치욕을 면하기 위해 가방에 옷가지와 간단한 짐을 꾸려 층계참에서 언제라도 자신을 빅 하우스로 데려갈 요원들을 기다렸다. 그게 1936년 그가 기억하는 첫 번째 윤년의 위기였다.

 

고집쟁이였던 미트야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웅이 되어 실컷 고문을 받은 다음,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식들이 사이베리아의 고아원으로 끌려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 자라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자신의 자유를 옥죄는 권력자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방식으로 생존해야했다. 다 필요 없고 아무리 공포 속에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을 후원하던 붉은 나폴레옹마저 대원수를 암살하려 하려는 계획에 휘말려 숙청되지 않았던가. 자신을 지켜주던 든든한 빽이 사라졌으니 다음 차례는 누가 봐도 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일 것이 뻔했다.

 

하지만 우리의 미트야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공포의 상징이었던 빅 하우스를 제 발로 찾아갔지만 자신을 심문하던 이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쇼스티는 첫 번째 윤년의 위기를 넘겼다. 그렇다고 아주 우리의 비관주의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작품세계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작곡가에게 최악의 시기가 모두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항상 최악의 순간은 미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1948년 위대한 조국 해방 전쟁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를 위협하던 파시스트 독일을 대원수가 이끄는 조국은 무너뜨리고 승리했다. 전쟁 중에도 미트야는 큰 위기 없이 잘 넘겼다. 독일과 사이가 좋았을 적에 바그너는 위대한 작곡가 취급을 받았지만, 조국 해방 전쟁이 터지면서 바로 바그너가 갈색 쓰레기로 전락해 버렸다는 전언도 얼마나 씁쓸했는지 모르겠다. 대원수 이전의 위대한 지도자 레닌은 일찍이 예술은 인민의 것이라는 선언을 한 바 있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기근과 전화 그리고 숙청 속에서 살아남기 급급했던 소비에트 인민들이 과연 레닌 동무가 말한 그들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물질적 그리고 심리적 여유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원수는 어쨌든 소비에트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를 미국에 파견하는 대서방 선전 프로젝트를 실행할 계획을 세운다. 어느 나라에서 여전히 아티스트들을 선전과 자신을 홍보하는 일개 도구로 삼아 소위 각이 나오는 사진을 찍기 위해 팔을 비틀어 버리는 장면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아 실소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건너간 미국의 뉴욕에서 쇼스티는 미국 망명을 종용받기도 하고, 존경하는 선배 작고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당장에 당의 비판을 받고 언제 숙청당할지 모르는 그런 시절은 지나갔지만,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서방에서 그가 당한 모욕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비극이 소극으로 바뀌는 건 그저 시간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지막 위기는 1960년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내면세계에 침투한 줄리언 반스는 이꼴저꼴 다 보기 전에 일찍 그가 죽었어야 했노라고 대신 말한다. 아니, 어쩌면 쇼스티의 전기나 여러 연구를 통해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일지도 모르겠고. 이제 대원수도 가고 그를 괴롭히던 이들도 모두 떠났지만, 소비에트 러시아는 어느덧 생존의 달인이 된 비관주의자 작곡가에게 평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편 부르주아적인 허영심의 발로였는지 메르세데스를 타기 원했지만, 서방과 체제경쟁 중이던 소비에트 러시아의 권부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니 왜 소비에트 러시아가 만든 훨씬 성능이 후진 자동차 대신 그야말로 삐까번쩍한 과거의 갈색 위협이자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독일이 만든 자동차를 타겠다는 말인가. 여전히 서방에 대해 선전 가치가 높은 작곡가의 그런 일탈을 소비에트 러시아는 막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쨌든 우리의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를 최후의 궁지에 몰아넣은 위기는 무척이나 세련된 방식으로 다가왔다. 대원수의 뒤를 이어 제1서기장의 자리에 오른 무식쟁이 옥수숫대 니키타 흐루쇼프는 전임자가 가졌던 붉은 베토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개인교사까지 붙여서 소비에트의 위대한 작곡가에게 마르크스-레닌의 한물간 위대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다양한 레닌훈장과 스탈린상 그리고 소비에트 작곡가 조합 위원장이라는 감투로 그를 회유했다. 회유의 마지막 단계에 고비가 하나 있었는데 이 작곡가가 여전히 당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비관주의자는 갖은 핑계를 대가면서 심지어 종교적 이유까지 당원 가입을 회피했으나, 철권통치 시절의 강압과 다른 접근방식에 결국 생존의 달인은 자신의 신념을 꺾고 당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서방으로 망명한 스트라빈스키와 반체제 인사 사하로프 박사 등을 비판하는 타인이 쓴 성명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해야 했다. 험한 시절을 겪고 이 꼴을 보기 위해 생존해야만 했는지 줄리언 반스는 <시대의 소음>을 통해 이미 세상을 떠난 작곡가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명예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전체주의 통제라는 칵테일 속의 새우 같은 그런 존재였다는 것이 줄리언 반스의 분석이지 않나 싶다.

 

줄리언 반스의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문장 안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 앞에 섰다가 너무 무서워서 바지에 실례한 이들이 다수 발생하자, 남자 간호사 둘을 배치해서 그 사람을 끌어다가 깨끗이 씻기기도 했다지. 자신이 사는 건물의 층계참에서 가방을 들고, 자신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엔카베데 요원들을 기다리는 장면은 비극의 희화화였다. 그런 시대의 비극을 소극으로 트랜지션해내는 역량이야말로 줄리언 반스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무더운 여름날의 좋은 독서였다. 다시 읽으니 또 새롭게 볼 수 있어 좋았고. 대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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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8-25 10: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대의 소음, 저도 찜해놓고 오래 묵히고 있네요;;;참, 쥴리언 반스 신간 소식 있던데요. ^^

레삭매냐 2022-08-25 10:31   좋아요 2 | URL
춘수 아자씨의 경우처럼 팬도
아니라고 하면서 꾸역꾸역 읽는
작가 중의 하나가 줄리언 반스
라지요.

신간 소식이 들리니 혹하네요 ㅋ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22-08-25 1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를 연애의기억에서 멈추었네요.
전에 ebs에서 한 강연을 들었는데 좋더군요. 시대의 비극을 소극으로 변환, 이 말씀에 동감되네요. 재독에 삼독까지요.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

레삭매냐 2022-08-25 13:17   좋아요 3 | URL
5년 전에 처음 읽고, 또 작년
9월에도 읽고 나서 1년 만에
다시 읽었네요.

왠지 읽을 때마다 사골국물
처럼 우려난다는 느낌적 느낌
이 듭니다 ㅋ

미미 2022-08-25 1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찜해두었던 책인데 구매해야겠습니다. 재독도 부러운데 삼독이라니요.
원서 표지도 분위기가 제법 납니다. ^^*

죽기전에 구매해둔 책들은 다 읽고 싶은데 그리고 소장가치 있는 100권 정도남겨
레삭매냐님처럼 그 이상 반복해 읽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레삭매냐 2022-08-25 13:18   좋아요 3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계속해서 더 이상 읽지 않는 책
들은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책을 사들이고 있거
든요.

어제 중고 책방에서 필립 로스의
<위대한 미국 소설>을 샀답니다.
제가 또 야구 팬이거든요 :>

100권의 책만으로도 충분히 햄볶
을 수 있지 않을까요 ㅋㅋㅋ

mini74 2022-08-25 1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쇼스타코비치 이야기군요. 저도 찜 ~ 독재와 비극의 희화화라니 넘 궁금하네요 ~

레삭매냐 2022-08-25 13:19   좋아요 2 | URL
쇼스티의 음악에 대해 좀 더 안다면
더 와닿을 텐데... 제가 또 현대음악
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 고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어쩌면 그냥 문자 그대로 인간 미트
야에게 몰입할 수 있어서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바람돌이 2022-08-25 14: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오래 묵혀둔 책인데 닞고 닜었네요. 힘내서 빨리 읽어야지.

레삭매냐 2022-08-25 14:53   좋아요 2 | URL
다다시 읽어도 재밌더라구요.

바람돌이님의 <시대의 소음>
독서를 응원합니다. 빠이팅!!!

coolcat329 2022-08-25 15: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놨는데 레삭매냐님 리뷰보니 빨리 읽고 싶네요. 요즘 재독 많이 하시네요. 정말 책은 다시 읽을 때가 진짜인거같아요.

레삭매냐 2022-08-25 23:26   좋아요 2 | URL
이런 저런 책들을 만나다
보니 이달에는 재독을 자주
하게 되네요 ^^

공감하는 바입니다.

새파랑 2022-08-26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좋은책은 재독해야 되나 봅니다 ㅋ 전 이책 한번 읽었는데 막 좋다는 생각은 안들었었는데 제가 한번만 읽어서 그런가보군요~!!

레삭매냐 2022-08-26 17:59   좋아요 2 | URL
독서는 개인적 경험인지라...

저도 처음에 읽었을 적에는 그
냥 그랬답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 읽다 보니 애정이 솔솔~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유의 공기를 숨 쉬면서 그가 단 한 번이라도 공개적으로 항의의 말을 한 적이 있던가? 경멸할 만한 침묵이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를 작곡가로 존경하는 만큼 사상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는 경멸했다. 어쩌면 그것이 개인적 정직성과 예술적 정직성에 대한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몰랐다. 개인적으로 부정직하다 해서 예술가로서도 정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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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4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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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비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고, 소비에트인이 된다는 것은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었다. 권력층은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인구 중에서 필요한 만큼을 죽여 없애고 나머지에게는 선전과 공포를 먹이면 그 결과로 낙관주의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 어디에 논리가 있는가?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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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23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르도 모르고, 레삭매냐님 올려주신 105페이지 문단 본 후, 사회과학이나 역사 쪽 에세이인가?하고 클릭한 순간 부끄부끄하네요. 줄리언 반스 소설, 추천이 많은 작품이군요!

레삭매냐 2022-08-23 17:32   좋아요 1 | URL
제가 만난 줄리언 반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2/3 지점을 넘었네요.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전기 소설을 이렇게 쓸 수 있다
는 게 아마 작가의 능력이 아닐
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