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여기에서
실키 지음 / 현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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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2주 전에 빌린 책들을 내일까지 반납하라고. 거의 어지간해서는 연체하는 법이 없다. 읽지 못한 책이라면 당연히 반납을 해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연장해둔다. 2주 전에 만난 실키 작가의 <그럼에도 여기에서>라는 그래픽노블이다. 읽던 책인데, 리뷰를 쓰기 위해서라도 그전에 읽은 걸 싹 무시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기시감에 더 빨리 읽을 수가 있었다. 이제 리뷰까지 쓰고 나면 반납하는데 마음이 가벼울 것 같다.

 

어려서 인도유학을 떠난 작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림체부터가 뭐랄까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습작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작가의 개인 기록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완성품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좀, 그렇다. 소외와 괴리라는 단어들이 떠올랐고, 반바지와 고기가 금지된 인도 현지기숙사의 억압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일천한 나의 경험에 의하면, 나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 보지 못한 작은 도시 그리고 더 작은 마을 출신들이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원천적인 두려움이 혐오와 차별을 생성한다고 추론해 본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프랑스 현지에서 일상화된 그런 차별을 경험한 작가는 바로 맞받아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처음에는 언어적 장벽 때문에 그 다음에는 나의 안전이 최고라는 생각에 그들과 말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사실 피곤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기에서>에 나오는 가족 관계 개선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사실 작가가 제한적으로 보여준 무언가 삐걱거리는 가족 관계의 전모를 그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 장애물들을 뛰어 넘어, 가족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의 소모와 갈등들을 유추해 볼 따름이다. 나는 가족에게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나의 가족이 원하는 바를 다 수행하는 유형일까? 나와 그닥 원만하지 않은 관계 유형인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의 아버지는 역시나 아버지로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러셨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누구나 인생에서 아버지는 처음이겠지만 말이지. 전부는 다 알 수 없겠지만, 이렇게 어렴풋이나마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2020316일은 프랑스에서 그 유명한 록다운, 그러니까 봉쇄령이 실시된 날인가 보다.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서구 선진국들이 그렇게 우악스러운 록다운을 실시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 되돌아보면, 그 시절에도 우리는 전국적인 봉쇄령 없이 모두 일터에 악착까지 나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부의 통제에 따라 모두 마스크를 쓰고 생업전선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가.

 

마스크 품절과 손소독제 사재기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로 내 소중한 엉덩이를 보호하겠다는 발상이 참으로 눈물겨웠던 시절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메르스와 코로나 같은 역병의 시기도 이겨냈으니 그 무엇인들 이겨내지 못할 게 없겠다라는 자신감이 차오르기도 한다. 물론 실키 씨는 멀리 타향에서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고독 내지는 소외와 싸워야 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때문에 억울하게 중국 사람들로 몰려 다시 차별과 혐오를 당해야 했던 사실은 좀 안타까웠다. 그게 내 탓이냐? 역병의 시기에 그런 합리적 사고와 행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었는지도.

 

실키 씨의 요리 특강도 재밌다. 한국식 식재료를 구할 수 없었던 프랑스 앙굴렘(?) 같은 곳에서 직접 연어장이나 김밥 그리고 만두를 해먹는 패기에 박수를 보낸다. 오래 전에 자취하던 시절, 나의 끼니는 유통기한이 지난 신라면과 버거킹 와퍼가 책임졌었는데 말이지. 김밥을 한사코 스시로, 그리고 만두를 라비올리라고 부르는 프랑스 친구들의 언행이 결국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보고 들어 습득하게 된 익숙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유한한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국이라면 어디에서나 파는 냉동만두를 구할 수가 없어, 모든 재료를 구해서 직접 만드는 장면이 짠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밀대로 만두피를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만두소가 터지는 슬픔과 좌절을 알랑가 몰라 그래. 얇게 편 밀가루 반죽 위에 스텐 공기로 찍어 둥그렇게 만두피를 만들곤 했었지. 나중에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 만두피의 등장에 사실 좀 놀랐긴 했었다.

 

어쨌든 책 반납하기 전에 책도 다 읽고 이렇게 리뷰까지 다 써서 만족한다. 실키 씨는 요리를 창작의 고통에 비유하기도 하던데, 맞는 말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재료들을 가지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즐거움이야말로 작가들에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아주 열심히 소비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거지. 하나 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잘 살자라는 문구도 좋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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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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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어느날, 라디오에서 신간 소설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장류진 작가의 <연수>에 대한 소개였다. 마침 도서관에 가는 길이어서 빌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지려나 싶었지만,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대출 중이었다. 쉬이 나까지 차례가 오지 않더라. 그러다가 시간이 많이 흘러 해가 바뀌고 나서야 <연수>와 만날 수가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연수>가 소설집인지도 몰랐다. 연수는 심지어 사람 이름인가 싶기도 했고. <연수>에는 모두 6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었고, 표제작 <연수>는 자동차 연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제법 운전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지만, 나도 도로 위의 올챙이였던 시절이 있었지. 앞만 보고 달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 때 실감했다. 일산의 코스트코 가는 길에 마구잡이로 끼어 들었다가 뒤차 운전자에게 욕을 들어 먹기도 했다. 뭐 그 땐 그랬지. 초보의 설움이라고나 할까. 개구리가 된 지금, 올챙이들을 봐주어야 하는데 그런 여유는 아직 생기지 않고 있나 보다.

 

초보 운전자를 위한 베테랑 연수 전문가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차를 몰 수 있는 자격증인 운전면허와 실전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운전면허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능숙하게 도로 위에서 차를 모는 건 아니니까. 장류진 작가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올챙이 드라이버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해준다. 그래 맞아, 그 땐 그랬지. 그리고 보니 운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익숙함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지금도 밤에 낯선 길을 갈 때면 바짝 긴장하게 된다. 그래 어떤 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법이지.

 

두 번째 에피소드인 <펀펀 페스티벌>은 시대의 과제가 되어 버린 취뽀에 대한 서사다. 좋은 급여와 복리후생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AI 시대에 점점 줄어 들고 있다. 우리는 워라밸을 절실하게 원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개인의 자유시간 보장 보다는 회사의 이익추구를 우선하지 않던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좋은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런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젊은 청춘들을 무한 일자리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저격한다. 서양의 잘난 유투바 양반이 일찍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로 묘사하면서, 유교와 자본주의의 단점들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냉철하게 지적했다. 그의 정확한 분석에 할 말이 없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대동세상의 도래는 과연 한낱 꿈이란 말인가.

 

<공모>의 밑바닥에는 다같이 모여 삼겹살을 굽고 쏘주를 들이키는 방식으로 으쌰으쌰 해야 무언가 조직의 단합이 이루어진다는 고루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기존 회식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 회사에서의 관계는 철저하게 금전적 관계로 이루어진 그 무엇이다.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고 우르르 몰려 나가 점심 메뉴를 고르고 또 커피도 마시고 그러는 거다. 지긋지긋한 밥벌이하는 회사라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사라지는 순간, 그 안에서 형성된 인간관계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법이다. 아무리 회사라는 조직에 충성하라고 외쳐대지만, 회사는 조직원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역으로 왜 우리가 회사에 충성해야 하냐고 물어 보고 싶어졌다. 그러는 순간, 철없는 불순분자로 몰리게 되지 않을까. 지난주 월요일 밤에 내쳐 세 개의 에피소드를 읽다가, 잠깐 여러 생각이 들어서 보류해 두었다가 다시 독서의 수레바퀴를 돌리게 되었다. 다시 펴드는데 일주일이 걸릴 정도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여섯 개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바로 네 번째에 버티고 있는 <라이딩 크루>였다. 취미 활동과 연애 두 가지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자전거 동호회를 직접 만든 어느 사나이의 야심찬 도전기를 소설은 추적한다. 저자는 굳이 화자가 노련한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코어 동호회원을 바탕으로 해서, 네 명을 더 추가하려는 야심찬 계획 끝에 포섭한 새로운 동호회원이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마구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그렇지, 바로 이거지.

 

화자는 새롭게 등장한 신입 회원에 대한 경계심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자신보다 더 어리고 잘생긴 청년 목수 아니 CEO의 등장으로 자신이 공고하게 쌓아 올린 크루장으로서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질 판이다. 자신이 쌓아 올린 무언가를 뿌리채 뒤흔드는 존재의 출현이 화자에게는 위협으로 간주된다. 로드바이크가 아닌 전동 모터를 사용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당당하게 따지는 최도헌에게 크루장은 할 말이 없다. 화자인 크루장은 페어플레이 타령을 하지만, 모터 달고 달리는 최도헌의 자전거 뒷바퀴살에 돌멩이를 집어 던진 게 자신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 그가 과연 페어플레이 타령을 할 자격이 있던가.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들은 코미디의 연속이었다. 자기 고유의 영역에 침범한 젊은 수컷에게 무리의 리더가 짖어대는 그런 모습이랄까. 기득권을 지닌 자에게, 젊은 도전자는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맹렬하게 도전한다. 간만에 이런 날것들의 대결을 지면 중계로 해서 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과연 장류진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의 가독성은 탁월했고, 소재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성에 대한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말미에 펼쳐지는 두 수컷들의 어처구니없는 쌈박질에 웃은이 빵빵 터졌다.

 

<라이딩 크루>의 미친 폭발력 때문에 다음의 두 이야기들은 뭐랄까 조금 쉬어 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달까. 글쓰기에 대한 재능은 없지만, 풍부한 재력과 인생의 노련함으로 무장하고 작가 라라가 되고 싶어하던 미라 언니에 대한 단상이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과연 글쟁이들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조지 오웰이나 제임스 설터 선생이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세상으로부터 영광과 찬사를 얻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닌가. 그에 더해 덤으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

 

하지만 미라 언니는 이미 스타트업의 대성공으로 돈이 아쉬운 그런 문청이 아니었다. 글을 쓰기 위해 그리스 여행도 갈 수 있는 그런 재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결핍의 부존재가 역설적으로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니었을까. 문학에서 필요한 건, 풍요함이 아닌 어떤 종류의 결핍과 부족함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이 돈이 하나도 아쉽지 않은 이들이 구사하는 문장과 서사가 누구를 설득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자기 계발이나 돈 버는 방법으로는 그들의 언행이 유효할지 몰라도, 문학 아니 누군가를 감동의 도가니탕에 몰아넣을 수 있는 글쓰기는 또 다른 이야기다.

 

결국 미라 언니의 삐뚤어진 글쓰기에 대한 처절한 욕망은 기묘한 방식의 표절을 낳게 된다. 내가 창작한 것이 아닌 것을 내가 썼다고 믿게 되는 자신 확신의 과정이 너무 안쓰러웠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얼마나 절박했으면 내가 쓴 게 아닌 타인의 작품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라는 동정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보니 오래전, 어느 나라에서는 타인의 작품을 필사하다 보니 몸(팔이?)이 문장을 기억해서 그대로 베꼈다는 희대의 괴설이 등장하기도 했더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장류진 작가의 소설들은 철저하게 현재성에 기반한 서사를 구사한다. 아니 어쩌면 이 시대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소구력을 갖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동시대의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법한 그런 소재를 가지고 만든 맛깔스러운 여섯 접시의 요리들에 반해 폭식한 느낌이다. 그전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거북알" 만큼이나 로드바이크 크루장의 무쌍한 활약상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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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2-03 0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자목련님 리뷰읽고 살짝 찜해 둔 책인데 매냐님도 🌟 다섯을 주셨네요. 이름만 들어본 작가인데 저도 기회되면 읽어보고 싶네요.
연수 재밌을 거 같아요.
저는 초보때 물도 못 마셨다는...ㅎ

레삭매냐 2024-02-03 12:04   좋아요 2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오직 직진만 했답니다 :>

간만에 만난 아주 즐거운 책이
었네요. 시간 되시면 읽어 보셔
도 좋을 듯 합니다.

새파랑 2024-02-04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연수가 그 연수 였군요 ㅋ 저는 김연수 작가님 생각을 했는데... 레삭매냐님의 독서 범위는 대단한거 같습니다. 이번에는 한국문학 이군요~!!!

레삭매냐 2024-02-05 13:31   좋아요 0 | URL
저는 연수를 사람으로 처음에
생각했었답니다 :> 작가 분도
있으셨네요 ~~~

한국 문학도 닐거야 하는데...
그동안 사서 쟁여둔 책들이
원체 많다 보니 ㅠ

자목련 2024-02-05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만큼이나 술술 잘 읽히는 리뷰입니다. 장류진 작가가 좋아할 것 같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4-02-05 13: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목련님,
살짜쿵, 자랑을 해보자면...

제 인스타에도 연수 타령을
했는데 작가 분이 오셔서
살포시 좋아요 누르시고 가
셨더라구요.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작가
이래 두 번째라는 ㅋㅋㅋ

그레이스 2024-02-05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레삭매냐 2024-02-05 13:33   좋아요 1 | URL
아주 재미지답니다 -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즐거웠습니다 막 웃기구요.
얼마 만에 책을 읽다가 이렇게
빵~하고 터졌느지요.
 
커피 한 잔 더 1 커피 한 잔 더
야마카와 나오토 지음,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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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매일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신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점심 먹고 나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재미가 일상이 되었다. 이건 마치 하나의 신성한 의식 같다고나 할까. 주식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세상만사를 다 섭렵하다.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삼총사 중의 한 명은 커피 마시며 수다떠는 재미에 회사 다닌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커피는 이런 즐거움을 전달해 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는 관외 대출불가 만화 섹션이 있다. 몰랐었는데 4층에 아주 많은 만화들이 있었다. 시간 여유만 된다면 여기 가서 아주 하루 종일 만화를 보고 싶기도 하다. 어제도 무려 16년 전에 나온 야마카와 나오토 작가의 <커피 한 잔>이라는 만화를 찾았다. 순전히 분량이 적어서 금방 읽을 수 있겠다는 나의 얄팍한 노림수였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짧은 연작들이 몇 개 담긴 소설들이다. 불과 24시간 전에 본 만화인데 이미 기억이 많이 휘발되어 버렸다. 그 중에서 기억나는 이야기들 몇 개를 되짚어 본다. 우선 거리의 악사 양반이 들려주는 이야기. 거리에서 요즘 말로 하면 버스킹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고급 세단을 타고 온 아가씨의 집사가 음악을 듣고 나서 만엔씩 청년에게 주었다. 어찌 보면 큰 돈이 아니었지만, 거리에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버스킹 청년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그런 비용이었다. 그 돈으로 저녁을 사 먹고, 따뜻한 커피도 한 잔 사 마신다. 그리고 더 돈을 모아서는 좋아하는 밥 딜런의 CD도 샀지 아마. 나중에는 아가씨 집에까지 가서 공연을 하고 10만엔을 받는다. 그러다가 아가씨의 발길이 끊어졌다. 집사에 말에 의하면 병약했던 아가씨가 돌아 가셨단다. 그리고 죽은 아가씨는 아예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그랬던 거다.

 

이웃에 사는 이혼녀를 사랑한 평소에 그냥 저냥 살던 청년의 이야기도 가슴을 타격한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웃집 여자를 눈여겨 보게 된 청년. 혼자 마시는 커피를 계단에 앉은 그녀에게 나누어 주면서 사랑을 키워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도 충실하는 청년. 하지만 재결합을 요구하는 남편의 등장으로 둘의 관계는 무너진다. 그렇게 이웃 여자는 떠나가고, 그런 후에도 청년은 계단에 앉아서 자신이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또다른 이웃이 등장한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는 법인가 보다.

 

엄마와 별거 중인 아버지를 따라 나선 소년의 이야기도 마음에 든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이들 가고 싶은 데려 가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아들은 평소에 아버지가 가던 곳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간다진보초의 세계에서 가장 큰 헌책방 거리라는 곳을 방문한다. , 그리고 보니 나도 오래 전에 아버지와 함께 청계천 헌책방에 가서 한국일보에서 나온 <타임 라이프> 2차세계대전 시리즈를 10권 사서 전철을 타고 집까지 낑낑대면서 온 적이 있었지. 누구나 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어느 이야기에서 나이가 드니 점점 시간 때우기가 힘들어진다고 하던데... 무슨 소리냐 그래. 책읽기에 너튜브 감상에 그리고 화초 재배에 이르기까지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지. 역시 시간 때우기는 자기하기 나름이다. 시간을 보내는데(혹은 때우면서) 있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게 아닐까 싶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뱀다리] 서문부터 오류가 있었구나. 문득 생각이 나서 밥 딜런의 <커피 한 잔 더(One More Cup of Coffee (Valley Below))>가 수록된 앨범 <Desire>를 검색해 봤다. 그 앨범은 1967년이 아니라 1976년에 발매됐다. 아주 간단한 사실인데, 역자가 확인을 하지 않았나?

 

너튜브에서 노래를 찾아 들어 보니 왜 이리 애절한지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아예 듣지도 않았을 텐데 그냥 BGM으로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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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2-01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밥 딜런 노래 가사가...정말 아름다운 ‘시‘네요

레삭매냐 2024-02-01 13:05   좋아요 1 | URL
어쩌면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
을 준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김치바게트
실키 지음 / 현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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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같이 어울리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그는 만화를 그렸다. 나중에 연락이 끊긴 다음에, 앙굴렘 만화축제에도 참가하고 그랬다고 했던가. 그는 교육 만화 그리기를 정말 싫어했었는데,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만화를 그려야 했다고. 지금은 뭘하고 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자취를 쫓아 보니 작년 11월에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구나. 실키 작가의 <김치바게트>라는 책이 기억의 저장고에서 불러낸 친구의 추억이었다네.

 

주간행사로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간다. 그전에 빌린 책들을 반납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책들을 빌리기도 한다. 다음달 마지막 주에 예정된 달궁 책인 <사악한 목소리>도 빌리고, 바로 읽을 수 있는 그래픽노블도 한 번 찾아 본다. 그러다 만나게 된 책이 실키 작가의 <김치바게트>.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음식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책일 줄 알았다. 바게트에 김치를 끼워 먹는 이야기인가? 나의 오바였다. 프랑스의 웹진에 소개된 프랑스에 사는 실키 작가의 체험담을 소재로 삼은 그래픽노블이었다.

 

어딜 가나 그놈의 지긋지긋한 칭챙총 스토리는 빠지질 않는구나. 요즘 독일에서 한창이라는 AfD 반대시위의 거대한 물결 생각이 났다. 그동안 침묵하던 다수가 나서서 점점 더 오른쪽으로 향하는 극우정당의 인종차별에 대한 시민적 저항을 인스타 중계로 보고 있다. SNS의 긍정적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나와 다른 것이 나쁜 게 아닐진대, 끝없는 혐오로 치닫는 시대에 깨어 있는 시민 의식 교육에 대한 효과가 유럽의 중앙부인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도 못지 않은 똘레랑스의 나라라고 들었는데, 아직도 먼 모양이다.

 

얼마 전에 회사 중국인 동료의 비자 발급을 받으면서, 다른 나라에 취업을 하고 사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최종에 가서는 대표이사가 보증을 서고서야 법무부 장관이 발급하는 취업비자를 받았다. 그전에 서류 작업을 하면서 행정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실키 작가 역시 코로나 시절에 경찰(?)이 발급하는 체류허가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면서 절절한 느낌을 공감했다. 남의 나라에서 사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역시.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는 각종 민원서류 발급의 난이도에 대한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오늘도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서 알지만, 모바일로도 각종 민원서류들을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정부의 위력을 새삼 체감한다. 바로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무조건 서류와 팩스 타령을 해대는 건 기본이 아닌가. 관공서에 가서 무슨 일을 처리하려면 한나절은 기본이 아닌가. 물론 그 이면에는 모든 시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개인에 대한 고유 식별이 가능한 '빅 브러더'를 연상시키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무언가를 쉽게 얻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 다음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더라. 이틀 전에 읽은 그래픽노블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리뷰를 쓰는 게 쉽지 않네. 이래서 보통 리뷰는 책을 읽자 마자 바로 써야 하는데 말이지. 아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김치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지 않았나. 오늘 점심에도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김치야말로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흔하게 먹을 수 있을 적에는 굳이 찾지 않지만, 또 막상 먹기 쉽지 않을 적에는 생각나는 게 김치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자취생활을 해봐서 김치만 있으면 또 해먹을 수 있는 게 많으니깐. 요리 재료로서도 만능 치트키라고나 할까.

 

실키 작가가 코로나 록다운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읽다 보니, 그런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전면적인 록다운을 실시하지는 않지 않았나. 그러면서 얼마나 의료시설이나 사회 시스템이 그런 팬데믹에 대처할 수 없었으면, 록다운을 실시했나 싶다. 그 시절에도 우리는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나. 언제 그랬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평소에 있지도 않은 국뽕이 차오르는구나 그래.

 

내친 김에 도서관에서 실키 작가의 다른 책도 빌렸는데 그 책은 <김치바게트>만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지금의 어떤 스타일에 도달하기 위한 습작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간단하게 코로나 시절, 프랑스에 사는 엑스페이트리어트의 삶에 대한 스케치를 살펴봤다. 아주 오래 전, 파리에 도착해서 뤽상부르 공원에서 뜯어 먹던 바게트 생각이 났다. 그냥 뭐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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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4-01-24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간 ‘김치바게트라니 맛있겠다‘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정말 김치 만한 치트키가 없죠.
우동 좋아하는데 계란을 곱게 풀어넣고 묵은지나 새로 담근 김치를 넣어도 참 훌륭합니다.^^

파리에 갔을때 아끼려고 바게트랑 빵 위주로 줄곧 사먹던 기억이 납니다.ㅎㅎ

레삭매냐 2024-01-24 15:55   좋아요 1 | URL
저는 파리 민박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밥을 너무 잘해 주셔서 만날 민박집
밥을 먹느라 그만 ㅋㅋ

그래도 푸와그라 샌드위치 먹은 기억
은 나네요.

김치 우동 크하~~ 배 고프네요.
 
아이스링크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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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볼라뇨다. 열린책들에서 제공하는 리딩 가이드에는 볼라뇨 읽기 5개년 프로젝트가 있더라. 4년 동안, 15권을 읽고 마지막 해에는 <2666>을 읽으라고 되어 있다. 난 아직도 <2666><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다 읽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남아 있던 볼라뇨의 첫 소설 <아이스링크>를 어제 단박에 읽었다. 볼라뇨 21주기를 맞아 올해에는 못 다 읽은 책 두 권도 다 읽을 수 있을까.

 

소설 <아이스링크>는 세 명의 남자가 차례로 등장해서,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Z시 벤빈구트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한 진술(?)이 교차한다. 진술은 모두 16번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모 모란, 그는 칠레 출신 소설가이자 사업가다. 레모의 멕시코 친구 가스파르 에레디아(가스파린)는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한다. 마지막 인물인 엔리크 로스켈러스는 Z시의 매우 유능한 공무원으로 뚱보 사회주의자다.

 

그리고 금발의 스케이트 소녀 누리아 마르티가 뮤즈처럼 등장해서 엔리크의 영혼을 빼앗아 버린다. 올림픽 국가 대표 선발을 원하는 누리아에게 연습에 매진할 빙상장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누리아를 지상에 강림한 천사로 생각하는 엔리크는 시의 공금을 횡령해서, 신대륙에 가서 성공한 벤빈구트의 버려진 저택의 수영장을 개조해서 자신의 천사를 위한 빙상장으로 개조한다. 사랑에 눈이 먼 이의 대범한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스케이트 소녀를 위한 아이스링크에서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는 누리아에게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느끼는 뚱보 엔리크.

 

레모도 엔리크의 동료였던 롤라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2년 만에 이혼하고 카르타고 주점과 스텔라 마리스 야영장 등의 사업장 운영에 전념하다가, 운명적으로 누리아와 조우한다. 곧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누리아와 레모. 기묘한 치정으로 미쳐 돌아가는 애정 전선 가운데, 그나마 서사의 균형을 잡아주는 인물이 바로 레모가 아닐까 싶다.

 

멕시코 시절 친구였던 레모에게 픽업되어, 캠핑장에서 5개월 정도 야간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가스파린(가스파르 에레디아)은 불법체류자 신세다. 캠핑장의 터줏대감 카라히요 영감님과 어울리며 야간 경비라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야영장에 빌붙어 사는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오페라 가수 할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카리다드와 관계를 쌓는데 열중한다. 그리고 가스파린은 현재가 행복한 순간이라고 믿고, 무언가 더 바라지 않는다. 이런 게 젊음의 특권이라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벤빈구트 저택의 아이스링크가 완성되고, 우리의 스케이트 소녀 누리아는 그곳에 가서 마음껏 연습에 매진한다. 그리고 야영장에서 쫓겨난 카르멘 할멈과 카리다드도 남몰래 벤빈구트 저택에 잠입해서 삶을 이어간다. 이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서사의 전개는 예상대로 빙상장에서 카르멘 할멈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왜 누가, 아무에게도 무해해 보이는 카르멘 할멈을 죽였단 말인가.

 

그 다음에는 빙상장 건설에 실무 책임자인 엔리크가 살인죄와 횡령죄로 체포되면서 최고조로 치닫는다. 카르멘 할멈이 시청 공무원 엔리크를 협박해서 10만 페세타를 뜯어낸 전과도 있지 않은가. 모든 지표는 엔리크가 범인이라고 가르킨다. 과연 그럴까?

 

사실 누가 왜 카르멘 할멈을 죽였는가는 소설 <아이스링크>에서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인 볼라뇨는 소설의 끝까지 누가 할멈을 죽였는가에 대한 부분을 밝히지 않으면서, 바로 그 지점에서 파생된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역시 불혹의 볼라뇨는 글을 좀 쓸 줄 아는 작가였구만 그래.

 

"아이스링크"에서 벌어지는 게임판에 뛰어든 참가자들의 추구하는 목표는 현상유지다. 성공한 사업가 레모는 말할 것도 없고, 날건달처럼 보이는 가스파린 역시 카리다드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뚱보 사회주의자 엔리크는 자신의 공금 횡령 발각이 시간문제긴 하지만, 적어도 누리아가 벤빈구트 저택의 비밀 빙상장을 누비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복의 행복을 느낀다. 에피쿠로스적인 현세주의자들의 집합인가.

 

어느 순간부터 소설의 중심을 차지할 것처럼 보였던 살인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는 뒷전으로 빠지고, 레모와 가스파린 그리고 엔리크 3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진중한 삶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춰지기 시작한다. 무언가 벌어질 것 같은 예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난폭해 보이는 식칼을 든 카리다드의 존재감은 언제라도 무슨 사건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한다.

 

또 하나의 문제적 인물 누리아 마르티는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애타게 고백하는 엔리크의 고백에도 그리고 한때 연인 레모의 안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Z시를 폭풍우처럼 집어 삼킨 어마어마한 추문과 스캔들 속에서도 완벽한 알리바이로 혐의를 벗고, 새 삶을 찾아 나선다. 바로셀로나로 떠난 누리아는 비서로 일하면서 예술 화보를 찍어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 살인죄 혐의는 벗었지만 빼박이었던 횡령죄로 복역하던 엔리크는 교도 행정에 자신의 특유의 행정력 재능을 보여 주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그들이 누리는 행복한 순간이 영원하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그렇게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아니 행복한 순간들은 찰나일 뿐, 나머지 대부분은 인내와 고통의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 애정하는 작가의 첫 소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회고하는 방식으로 만나는 즐거움은 대단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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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4-01-17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처 돌아가는 애정전선과 팽팽한 긴장감의 스릴러인가요? ^^
찾아보니<2666>은 마침 정가가 66,600원이네요ㅋㅋㅋ

매냐님이 애정하는 작가 볼라뇨가 프루스트,조이스와 불멸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니
저도 일단 찜해두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4-01-17 15:17   좋아요 2 | URL
언제 읽어도 역시나, 볼라뇨구나
싶었습니다 :>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이 있다니... 놀랐네요.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
은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네요.

다시 한 번 도전해 볼랍니다 고저.

coolcat329 2024-01-17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재미있을 거 같아요!
저야말로 책 사놓기만 하고 단 한 권도 안 읽었네요. <야만스러운 탐정> 어려운가요? 제목이 너무 좋아서 새 책으로 사뒀는데...
저도 조만간 칠레의 밤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이 책도 찜입니다!

레삭매냐 2024-01-18 16:41   좋아요 0 | URL
왜 수년 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아마 읽었다고 착각
을 했는지...

역시나 책은 사서 읽는 게 아니라
개지구 있는 책을 읽는다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네요.

<야만스러운 탐정>은 두 번인가
읽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미처
완독 못했네요.

<칠레의 밤>은 세 번이나 읽었네
요. 읽을수록 진국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