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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집에 있을걸 - 떠나본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후회
케르스틴 기어 지음, 서유리 옮김 / 예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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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광고에서처럼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사실 여행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고생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라는 매력을 포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케르스틴 기어의 <그냥 집에 있을걸>은 바로 그 시점에서 출발한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떠나 삶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여행길에 나서게 되면서 체험하게 되는 다양하면서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그런 흥미진진한 여행에세이들로 가득 차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실 여행 그 자체보다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과 즐거움이 나중에 본 여행의 그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막상 여행길에 오르게 되면 오늘은 또 어디에서 잘까, 뭘 먹고 어디를 구경하러 가야 하나 그리고 낯선 음식들이 주는 불편함이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여행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여행에 대해 보여 주는 스펙트럼은, 여행을 하게 되면 느끼게 되는 그 수많은 포비아(공포증)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예측 불허의 날씨, 화장실문제, 우연한 로맨스, 인터넷에서 과대포장된 선전과는 상이한 숙소 그리고 현지 언어 사용에 이르기까지 일탈을 꿈꾸는 나그네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냥 집에 있을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철저한 환경보호론자인 옛 친구 크리스 가족의 방문기였다. 환경보호와 생태계 보존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면서 작가와 남편 프랑크에게 홈스테이 하는 동안 민폐를 끼치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오염의 주범인 문명의 이기들이 주는 편리함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하지 않는다는 그런 피상적인 회피에 안도감을 느꼈던 건 아닐까?

케르스틴 기어는 역시 어쩔 수 없는 서구출신의 여행자일 수밖에 없었나 보다. 특히 서구인의 시선으로 보는 여행지에 대한 선입견이 눈에 밟혔다. 예를 들어 인도여행을 같이 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대해 자기가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신성한 소가 사는 저개발 국가를 여행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글에서는 서구인들의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편견이 느껴지기도 했다. 동시에 프라다 모조가방을 원하는 그들의 이중성이란!

역시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불의의 사고에 대한 작가의 지적도 예사롭지 않다. 작가 자신이 여행 도중에 맹장 수술을 받았지만, 정작 여행자보험 처리를 하지 못해서 낭패를 당하는 이야기에서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타인도 예외일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양동이를 화장실 대용으로 쓸 수도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지론을 뒷받침해 주기 위한 에피소드 소개 역시 인상적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판에 박힌 듯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그네들의 삶이 부러웠다. 도대체 얼마나 여행을 많이 하기에, 평소에 만나기 힘든 지인들을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만날 수가 있는지.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가고, 그리스의 가족호텔로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우리가 인근의 대형마트를 찾는 것처럼 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고작 해야 1년에 일주일 남짓한 휴가를 감지덕지하게 생각하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독일 출신인 케르스틴 기어의 독일식 유머는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와의 공간적 거리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네들의 유머의 구조가 우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조금은 까칠해 보이는 유머들이 잘 와 닿지 않기도 했다.

요즘 휴가철을 맞아 공정여행의 실천에 대한 뉴스들이 눈에 띄고 있다. 단순하게 여행지를 찾아 잠시 동안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행이 아닌, 우리가 찾은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들과 건전한 소통을 통해 소비의 여행이 아닌 관계의 여행을 하자는 멋진 주장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여름에 어디로 휴가를 떠날진 모르겠지만 그런 공정여행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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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야마 도모히로 지음, 강민정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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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소>, <도살장> 그리고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내가 명명한 몰락해 가는 제국 미국에 대한 3부작을 읽으면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냉전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을 거덜 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올해 들어 다시 한 번 재미 일본 칼럼니스트인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를 읽으면서 몰락하고 있는 미국의 현재 진행형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됐다.

모두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그 내용에 앞서 무엇보다 읽기에 재밌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사실 미국의 현실을 다룬 어떤 책들은 아무래도 그 무거운 내용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칼럼니스트이자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그가 빚어내는 글들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올해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정부에 자그마치 11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안겨준 부시 행정부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복음주의에 대한 르포로 마치야마 도모히로는 이 책을 시작한다. 미국 헌법에서 정교분리를 엄격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부시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남부 바이블 벨트의 기독교 복음주의의 맹목적인 신앙관과 폐해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TV전도로 자금을 모금하고, 갖은 형태의 설교가 소비되고 있는 미국의 종교지도자들이 과연 복음의 전파와 구원이라는 지상과제보다는 모든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라는 세속적 해결책에만 매달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전사자의 장례식에 찾아 가서 유가족들에게 신의 형벌을 받아 그들의 자제들이 죽었다고 하는 폭언을 퍼붓는 극우파 목사의 행태에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다음 장에서는 역시 아들 부시 임기 내에 최악의 결정이었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단면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평론가답게 <엘라의 계곡>, <관타나모로 가는 길> 같이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제목들의 영화들을 통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한다. 명분은 물론, 자질이 떨어지는 미군들을 이라크 전장에 투입해서 고문, 학살 등의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 아들 부시과 그 일당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조소가 잇따른다.

전 세계에 서브프라임 대란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던 월가의 천재들이 초래한 미국의 경제 위기 역시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도 한 때 입점했었던 할인마트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월마트의 악랄한 고용정책과 기존의 영세한 유통업체들을 집어삼키는 경쟁 시스템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오는 비참한 현실이 바로 오늘날의 미국의 모습이었다.

이제 곧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제의 도입을 앞두고, 미국 사회는 바야흐로 폭풍전야와도 같다는 뉴스를 들었다. 안티 부시를 천명하는 마이클 무어가 자신의 최신작 <식코>에서도 설파했듯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는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의료보험이 없다. 그리고 의료보험이 없이 지내는 이들이 자그마치 5천만 명이나 되고, 의료혜택의 부재로 연간 2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미국의 곳곳에서 허울 좋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주장이다.

썩을 대로 썩은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반 게이운동을 주도하면서도 추잡스러운 섹스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워싱턴 DC의 모습이 소개된다.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 그룹의 폭스뉴스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 역시 문제다. 진실의 보도라는 언론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고, 심지어는 사실에 대한 허위보도와 편집, 조작까지도 서슴지 않는 그네들의 모습이 우리 보수언론의 그것과 어쩌면 닮았는지 모르겠다. 마치 큰 형님으로부터 한 수 배운 것처럼 말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아들 부시를 비판했다가 곤욕을 치른 딕시 칙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준 것이 실수였다는 기가 막힌 발언을 하는 최악의 보수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진 앤 쿨터는 그래도 옳은 말 한 마디를 남겼다. 진보주의자들이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부시가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에 대해 칭찬해 주어야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과연 진보가 고용한 스파이라는 말을 들을만하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비롯된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의 알짜배기 자산들이 외국 기업과 자본들에 팔려 나가는 모습은 지난 1980년대 미국을 죄다 사버릴 기세로 덤벼들던 일본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게만 보인다. 그나마 올리버 스톤 감독 같이 지각 있는 미국의 지식인들은 미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스런 우려를 하고 있다. 마치야마 도모히로는 조금은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식 있는 미국인들이 미국의 추락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 그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한판대결을 벌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들 수가 있을 것 같다. 비록 공화당 출신이기는 하지만, 반이민법과 고문에 반대하는 등 초당적인 모습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도 역시 베트남 참전 베테랑으로 하노이 힐튼(베트남 감옥에 대한 애칭)에서 자그마치 5년 반 동안이나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그동안 구축해온 세계경찰으로서의 헤게모니를 까먹어 가면서도, 네오콘 같이 부패한 정치집단이 아닌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미국인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지탱해가는 원동력이라고 작가는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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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사사진의 모든 것 포토 라이브러리 8
브라이언 피터슨 지음, 공민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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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그 옛날의 구닥다리 올림포스 카메라로 사진의 세계에 처음으로 입문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작업용으로 산 니콘801을 얻게 되면서 본격적인 사진의 세계에 뛰어 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 한 번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거나 그랬던 건 아니고 책과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독학한 게 전부였다.

나중에는 사진의 세계에 좀 더 발을 들여 놓게 돼서, 흑백필름을 직접 현상 인화하는 것도 배웠었다. 특히 인화작업은 필카시대 사진의 정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대망의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를 했다. 디지털 카메라 초창기만 하더라도, 여전히 필카 대세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술의 발전으로 디카가 필카만큼의 이미지 구현력을 갖추게 되면서, 전문 사진작가들조차 디카를 구비하게 됐다.

사진 업계의 대가인 브라이언 피터슨이 알려주는 사진 예술의 세계는 놀랍기만 하다. 특히 <접사사진의 모든 것>에서는 SLR 혹은 DSLR을 가진 이들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기술과 팁들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지난 30년간을 사진과 함께 해온 브라이언 피터슨 역시 디카를 사용해서 자신의 작품 세계의 지평을 열어 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책의 제목에는 접사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브라이언 피터슨은 당당하게 접사가 아니라 클로즈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매크로렌즈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냥 나처럼 보급형 디카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과연 접사/클로즈업 사진은 요원하기만 주제란 말인가?

그가 책에 클로즈업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대가가 찍은 사진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변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진작가의 눈을 통해 렌즈로 찍히는 사진들에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다. 물론 인위적인 이야기를 만들면 안 되겠지만, 브라이언 피터슨은 조심스럽게 최소한의 가공은 암묵적으로 허용하자는 편인 것 같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지 작업윤리라고 했던가? 어쨌든 이야기가 담긴 이미지는 그야말로 사진을 찍은 모든 이들의 로망일 것이다.

브라이언 피터슨은 클로즈업 사진촬영을 위해 다음의 기본적인 네 가지 장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카메라, 렌즈, 리버싱 링 그리고 삼각대. 이 책에서 장비 파트를 읽다가 예전에 누군가가 사진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그 많은 장비들 때문에 차까지 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외에도 익스텐션 튜브, 링 플래시, 광각렌즈, 어안렌즈 그리고 반사판에 이르기까지 정말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이 너무나 많다.

클로즈업 사진의 정수는 질감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텍스쳐의 살아 있는 질감이 느껴지는 사진이라,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촉각을 자극하고, 시선을 유혹하며 시각적 호소력까지 있는 이미지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아마 상업 사진을 찍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사진을 찍어야하지 않을까? 시골길을 달리다가 우연히 만난 거미줄에 맺힌 이슬, 브라이언 피터슨의 주장에 의하면 백년을 찍어도 질리지 않을 영원한 주제인 꽃사진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의 깃털,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보랏빛 불가사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사진의 소재들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우리가 창조적인 시선을 가지지 않은 채, 그 소재들을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디카 기술의 발전과 디카의 대중적인 보급은 예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사진세계를 일반에까지 확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사진작가들은 모두 촬영 후 보정작업을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유명 사진작가들도 보다 나은 퀄리티를 얻기 위해 포토샵 처리를 한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피터슨 역시 사진 보정을 하는데 있어서 포토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 찍기란 과연 무엇일까? 사진 찍기는 바로 이미지의 기록이다.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피터슨의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은 부드럽고 즐거운 멜로디란다. 말이 필요 없다,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카메라라도 들고 나가서 한 번 클로즈업 사진을 찍어 보자. 적어도 사진 촬영에 있어 나의 경험에 의하면 백번의 강의보다도 한 번의 촬영 후에 반추하는 것이 백 번 낫다.

*** 보다 깊이 있는 브라이언 피터슨의 사진 강의를 원하시는 독자라면 그가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인 완벽한 사진학교(http://www.ppsop.com)를 방문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그의 사이트를 찾아 ‘창조적인 적정노출’(creatively correct exposure)에 대한 강의를 들어 봤다. 브라이언 피터슨은 특히 노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참조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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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를 리뷰해주세요
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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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과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추억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진 몰라도 책을 보는 내내 삐딱선을 탄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오탈자들이 보일 적마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나는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유감을 제외한다면 시사IN북에서 나온 <거꾸로, 희망이다>는 2009년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고 있었다.

책의 띠지에는 과감하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기를 “야만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거꾸로, 희망이다>는 12명의 지성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토론과 강연회를 통해 나누는 이야기들을 활자화한 책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촘스키와 아슈카르의 대담을 다룬 책을 읽고 있는데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의 <후불제 민주주의>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민주주의가 역주행하고 있는 이 갑갑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거꾸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두 6개의 강연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 첫 번째 주자로는 “녹색평론”을 십 수 년째 발간해 내고 있는 김종철 발행인이 등장한다. 김종철 선생은 현 정부의 녹색성장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성장과 생태 환경보호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소멸되어가고 있는 공동체적인 삶이야말로 21세기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김종철 선생은 역설한다. 그리고 각박한 경쟁 대신에, 인간관계에 기초를 둔 사회적 자본이야말로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우리네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아주 가슴에 와 닿았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딴지일보의 총수 김어준이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선생과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 놓는다. 개인적으로 김어준 총수의 해학적이면서도 솔직한 입담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감각에 충실하고, 자기 대면(self encounter)을 통해 물질적인 성공과 부의 축적만이 모든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 혼란의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팁을 정혜신 선생은 조근조근하게 풀어 나간다. 경쟁과 가시적으로 치환될 수 있는 물질적 성공만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현 세태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뜬금없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행동하는 실천적 삶에 방점을 찍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지성은 바로 지금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은퇴하신 김수행 교수의 대담이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어쩔 수 없이 회전하게 되어 있는 위기, 공황 그리고 호황의 주기에서 우리는 현재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위기/공황에 빠져 있다. 유례없었던 1950~60년대의 호황의 시기는 저물고,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공황을 신호탄으로 해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의 투기로 인해 작금의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 김수행 교수의 진단이다.


다음 편에 등장하게 되는 우석훈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꾸준하게 주장해온 것처럼 우리나라 경제는 더 이상 1970~80년대 고성장 신화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소득의 재분배와 사회적 기업들을 육성해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위정자들은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대한민국 호를 이끌고 나가고 있다.

신성장 동력으로 가장 각광 받고 있는 문화 아이템들을 위한 창조적 상상력에 대해 조한혜정 교수와 우석훈 교수의 대담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조한혜정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승자독식의 사회를 지양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덜 공포스럽게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박원순 변호사와의 이야기 역시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그의 족적은 보다 나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들어준다. 박원순 변호사 역시 사회적 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만 명을 고용할 수 있는 한 개의 기업보다, 1명을 고용한 만 개의 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건국절과 뉴라이트의 근대화론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역사학계의 주장을 서중석 교수의 말을 통해 들어본다. 어느 특정 계층을 위한 역사 연구과 해석으로 일관된 뉴라이트들의 주장에는 알맹이는 없고 검증되지 않은 이론과 가설들만이 난무하고 있다. 하나의 사실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해방, 광복 그리고 건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 부족했던 과거청산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보여지는 경제지표들은 모두 하향곡선을 그리고만 있다. 국민소득은 몇 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고, 국민총생산 역시 우리나라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한 나라들에게 뒤지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에, 실업률은 단군 이래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주위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양심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각개약진의 경쟁이 아닌 조화로운 공동체적인 삶을 바탕으로, 기존의 정형적인 틀을 부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져야할 것이다. 처음부터 거창할 필요도 없다. 1%의 깨어 있는 이들로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진보적이서 -> 진보적이어서 (113쪽)
2. 사레 -> 사례 (120쪽)
3. hear -> here (126쪽)
4. 조서 -> 조선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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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8-22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분이네요. 시사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오타 를 찾아봤는데 3번은

제대로 표시되어 있던데요. 혹시나 해서 산 책을 확인하니까 초판1쇄 인걸 보면 리뷰어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머지 1번, 2번, 4번 지적은 문제가 있군요.

책이 쇄를 거듭하면, 수정되겠죠.

레삭매냐 2009-08-24 10:52   좋아요 0 | URL
안타깝게도 저도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오자 맞습니다.
컨텐츠에는 맞게 되어 있지만 중간 타이틀을 한 번 보시죠, 뭐라고 되어 있나
^_______^

다이조부 2009-09-0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찾아 봤는데 님 이야기가 정확한 지적이네요 ㅋ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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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지영 작가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몇 년 전인가 읽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고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공지영 작가에게 자신의 글에서 다루었던 사형수들의 삶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일 뿐이다. 내가 삐딱선을 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작가들에게 타인의 리얼리티는 단순하게 작가적 상상력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건 아닐까.

작가는 <도가니>에서 보다 한층 자극적인 소재로 독자들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어떤 분은 책의 내용을 알고 차마 못 읽겠다고도 말했었다. 보통의 경우에 책에 대한 편견 없이 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 바로 책읽기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책을 읽으면서 그 분이 왜 책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도가니>의 배경은 안개로 유명하다는 지방의 무진(霧津)이다. 그 유명한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미처 읽어 보지 못해 그 내용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역시 무진을 배경으로 한 <도가니>에서 그 이야기를 빼놓고 갈 수는 없겠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아내의 소개로 무진의 어느 농아학교로 오게 된 기간제 교사 강인호가 등장한다. 사립학교 채용을 위해 관행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다섯 장의 학교발전기금은 그에겐 차라리 모멸이었다. 처음에 강인호에게 자애학원은 자신의 재기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교사로 일하게 된 자애학원에서 원치 않았던 엄청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도가니>는 최근에 본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우선 토착화된 지역민들이 일심동체가 돼서 외부에서 온 인사들(강인호와 서유진)의 진리와 정의를 밝히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없으니 공연히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우리와 지내거나 아니면 이곳을 떠나라는 식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도저히 상식이라고는 통하지 않는 추악하고 끔찍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금력과 관권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악행을 덮으려 하는 지역 기득권층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날카로운 활시위를 겨눈다. 소설에서 거대한 빙산에 작은 망치 아니 맨손으로 달려드는 서유진의 모습에 작가의 그것이 얼비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많지 않은 소설의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악머구리 끓듯한 작은 도가니탕 같은 무진의 이야기들을 읽기가 사실에 다가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작가의 글쓰기 패턴을 볼 때 분명 대한민국의 어디선가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을 텐데, 그 생각을 할수록 책장을 넘기기가 버거워졌다. 더 힘들었던 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의 도식적인 결말 대신에 그래도 이런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삶은 계속 되더라라는 엔딩이 예상되서였다.

그런데 작가가 <도가니>에서 다루고 있는 더 본질적인 것은 바로 사실을 대하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보다는 차라리 위선적이지만 포장되고 가공된 거짓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구? 참혹한 진실보다는 적당히 뚜드려 맞춘 거짓이 우리들의 마음에 자책으로 수치심을 덜어 주기 때문에. 자애학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무진 시민들의 일반적인 속내 또한 다르지 않았다.

비록 민주화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무진이지만, 이제는 빛바랜 옛 추억에 불과하고 지금은 모두 한 자리씩 잡고 공고해져 가는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밝혀져야할 진실 따위는 슬쩍 눈감아 버리면 그만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예의 도시에 농무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지영 작가의 종교에 대한 다소 회의적인 시각은 무진 영광제일교회 신도들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아멘과 할렐루야 선창을 통해 청각화되고 있었다.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들은 옳고, 그 밖에서 우리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은 모두 사탄이라고 외쳐대는 맹목적인 신앙의 모습들이 자못 두렵기까지 했다. 나중에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악당들의 잘못에 대해 비판 없이 아멘을 읊조리는 그네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IMF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보수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것 같은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무척 반가웠다. 비록 책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현실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거짓이 우리네 양심을 잠깐 동안 자유롭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불의에 대해 언제나 눈을 감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답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진실과 거짓이 뒤범벅이 된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사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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