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한국·일본에서 1000만부 팔려
|
작가 시오노 나나미에게 ‘로마인 이야기(신초사(新潮社))’는 준비에만 20년, 집필에 다시 15년이 걸린 평생의 작업이다. 1992년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매년 1권씩 출간해 지난해 말 제15권 ‘로마시대의 종언’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에서는 단행본과 문고본을 합쳐 누계 770여 만부가 팔렸다. 매년 12월 중순경 책이 나와 유명인사나 지식인층이 연말연시 휴가 때 읽는 도서목록에 반드시 끼곤 했다. 한국에서는 1995년 한길사가 번역판 제1권을 낸 뒤 지난 2월 제15권을 발간했고 판매 누계 250만부를 기록한 스테디셀러다. 특히 기업인, 정치인에게는 탁월한 경영도서로 주목을 받았다.
지력, 체력, 경제력, 기술력 모든 면에서 주변 민족보다 열세에 있던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고 중근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1000년 넘게 경영한 비결이 도대체 무엇인가. 작가는 이 한 가지 주제를 기원전 753년 전설의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운 때부터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에 이르는 시기를 1∼5권 ‘융성기’, 6∼10권 ‘안정기’, 11∼15권 ‘쇠퇴에서 멸망’의 세 단계로 나눠 추적했다.
‘로마인 이야기’는 철저한 고증과 사료에 바탕을 두되 사료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상상력으로 보충하지만 허구에 빠지지 않는 작가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시오노씨는 고교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고 지중해 세계에 빠져들어 라틴어를 독학으로 공부할 정도로 ‘별난 소녀’였다. 대학시절에는 학생운동에도 참여했으나 마키아벨리에 심취하면서 회의를 느꼈다. 1963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서양문명의 모태인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 현장을 찾아다녔다.
데뷔작은 1968년 일본에 귀국해 주오고론(中央公論)사에서 발표한 ‘르네상스의 여인들’. 그러나 세상의 인정을 받은 것은 1970년의 첫 장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이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의 일대기를 그린 이 책으로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그해 다시 이탈리아로 건너가 이탈리아 의사와 결혼해 피렌체에 정착했다. 이후 독학으로 이탈리아 역사를 공부하며 다양한 저서를 쏟아냈다. |
|
▼ 시오노씨는 정치를 해도 잘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생각이 있었으면, 잘했을지도 모르죠. 인간이란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해낼 수 있습니다. 아들은 ‘엄마가 정치를 하면 외교 문제를 일으킬 거다. 하고 싶은 대로 말해버리니까’라고 하더군요(웃음). 다만 유권자 앞에서 표 달라고 고개 숙이는 게 체질에 안 맞습니다. 하긴 그것도 혹 정치를 했더라면,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냈을지도 모르죠. 속된 말로 ‘어떻게 하면 나를 가장 비싸게 팔까’하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거지요. 하지만 제겐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난 철저한 아웃사이더”
▼ 사회지도층 가운데 시오노씨를 만나려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압니다. 자리 제안도 많았다는 소문이고….
“시간이 없으니 VIP들과의 만남을 자제하려고 합니다. 그들과 만나고 나면 잠시 나도 함께 고양된 듯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만, 제 작업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지요.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면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거절의 방법이 늘 고민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제게 뭔가를 제안해오는 사람은 대개 제 책의 독자였습니다. 그럴 때 정해놓고 거절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장관이나 기관장은 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고대 로마의 역사를 15년에 걸쳐 쓰려는 바보는 저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면 대충 납득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5년간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에고이스트로 지내왔습니다. 이제 그 핑계를 댈 수 없으니 다른 거절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는 15년분의 휴가를 쓰려고 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조금씩 지워 나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내가 작가 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 한 해엔 그 10년간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20~30년 전이라면 나도 정치를 하라는 제안에 응했을 것 같습니다. 남은 시간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또 하나,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 무슨 뜻입니까.
“‘메이저리그 진출’은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고문의 표현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영역(英譯)을 준비 중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표현하더군요. 믿을 만한 번역이 되도록 자비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변호사와 학자 두 사람에게 맡겼지만 감수는 영국인 교수 한 사람에게 받습니다. 도쿄에 집을 사려고 모아둔 돈을 그리로 돌렸죠. 전 ‘로마인 이야기’를 특정 국가가 아닌 인간을 위해서 썼고, 좀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양인이 일본어로 쓴 서양사를 서양에 수출하겠다는 것이니, 일본의 자동차 수출이나 야구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닮은 것 아니겠습니까.”
▼ 작가의 작업은 대개 철저히 혼자 진행됩니다. 외롭지는 않았습니까.
“난 철저한 아웃사이더입니다. 학교에 적을 둔 것도 아니고,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 살며, 그것도 역사소설을, 그것도 로마사를 쓰는 것은 몇 중의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일본에 오면 작가라고 하지만 사실 이탈리아에 가면 보통사람이지요.”
“도쿄대 교수들이 나를 싫어해”
▼ ‘시오노식 역사서술’에 대해 학계에서는 반발도 꽤 있다던데요.
“이탈리아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내일 도쿄에서 유명대 교수들이 온다’며 만찬에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가 곧 그 교수들이 저와 동석하기 싫다고 했다는 연락을 받거나, 마키아벨리 전집에 발문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좀 지나니 번역자가 시오노의 발문은 싫다고 했다는 얘길 들을 때 어땠겠습니까. 그런 일은 수시로 일어났습니다.”
▼ 그런 때 어떻게 했습니까.
“속으로 두고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들보다 더 큰 성과를 내면 된다고. 많은 독자가 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로마사를 본다는 것 자체가 성과 아니겠습니까. 학생들이 그 교수들이 정리한 책이 아니라 제 책을 읽고 교수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역사학 교수들에게는 ‘평생 월급 받으며 뭘 했냐’고 묻고 싶지요.”
그는 말 그대로 홀로 싸우는 전사(戰士) 같았다. 그가 쓴 역사 속에서도 항상 승부에 나서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들을 살려내려 애썼듯이, 그 스스로도 나름의 승부처를 정하고 모든 것을 ‘올인’했다.
“승부에는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나선 것도 있고 회사원이 나선 것도 있습니다.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도 각자 나름대로 승부를 걸고 있는 것 아닙니까. 작가 일이란 것도 어느 지점에 가면 결단력이 중요해집니다. 정하고 나면 가야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