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학시절 그에게 시련이 찾아 왔다. 2학년인 1997년 가을, 폐결핵과 늑막염 진단을 받은 것.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며 단 하루도 쉬지 않았던 그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빨간불을 보고도 길을 건넜다. 잠시 쉬라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뿌리친 채 계속 학교에 다닌 것이다. 그러다 11월 기말고사 기간 중에 며칠 밤을 새운 그는 마지막 시험을 보고 집에 와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 실려가 입원을 했고, 보다못한 동생이 그를 대신해 휴학 신청을 했다.
입원 후 몸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의사로부터 “잘못하면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폐가 너무 나빠져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행히 상태가 호전됐고, 이듬해 5월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한 뒤에도 계속 통원 치료를 받았고 겨울이 돼서야 비로소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독한 결핵약을 오랫동안 복용한 탓에 체력이 많이 약해져 그로부터 2년 더 힘들게 생활했다.
인생을 가르쳐준 권투
그 와중에도 다시 책을 잡았다. “숨은 쉴 수 있게 됐으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독하게 공부했으니 대학생활의 낭만이나 즐겼겠나 싶은데, 그가 환하게 웃는다.
“저를 잘 챙겨준 동기들 덕분에 MT도 가보고, 술도 마시고, 실연당한 친구들 위로도 해주고…. 대학생활에서 경험해볼 만한 것은 다 겪어봤어요. 동기들이 미팅 자리에도 꼭 데리고 나갔어요. 근데, 미팅 나온 여학생들이 처음엔 유명인이라고 관심을 갖다가 나중엔 자기 또래의 잘생긴 친구들에게 눈길을 주더라고요.(웃음)”
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물씬 묻어났다. ‘체육관 사부’의 전화였다. 공부하는 틈틈이 대학생활을 즐기던 중에 그가 빠져든 게 또 하나 있었다. 권투였다.
“권투는 어릴 적부터 좋아한 운동이에요. 많이 맞으면 그 충격으로 하루 종일 앓아요. 정신적으로도 위축되고요. 그렇지만 제게 권투는 맞고 때리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매력적인 운동이에요. 권투를 통해 인생을 배우기도 했고요.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을요.”
고교 시절 그는 권투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먹고 살기가 바빠 그럴 여유가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저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가 베스트셀러가 된 덕분에 당장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형편이 되자 봉천동 집 근처 체육관을 찾았다. 뭐든지 한 번 시작하면 대충대충하는 게 없다는 그는 “권투도 한번 시작한 이상 제대로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법시험 준비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어떻게 권투까지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중간에 체육관에 다녀오곤 했어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학교 샤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서 체육관까지 2km 되는 거리를 뛰어갔어요. 그러면 따로 러닝 트레이닝을 할 필요가 없죠. 운동이 끝나면 다시 체육관에서 학교까지 뛰고, 공부를 끝내고 집에 갈 때도 뛰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에 사법고시보다 권투 실력을 먼저 인정받았다. 2000년 프로복싱 슈퍼플라이급 테스트에 통과해 프로복서가 된 것. 2003년 말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그는 이듬해 1월에 열리는 슈퍼플라이급 신인왕전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등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 인대까지 다치는 바람에 신인왕전 출전을 포기했다. 지금은 한 달에 2~3번 체육관에 나가 몸을 푸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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