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에 왕도(王道)는 있다”


 



되든 안 되든 큰 소리로 외우며 내 입에서 소리가 나올 때,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귀로 들으며 암기할 때 영어는 살아있는 자신의 언어가 된다.
“한때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중국의 ‘미친 영어(Crazy English)’가 바로 이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서 한 권을 큰 소리로 읽으며 암기하다보면 어느새 머릿속에는 영어의 메아리처럼 숱한 단어와 다양한 구문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는 ‘누구나 만드는 단어장’이지만 활용 여하에 따라 그 효율은 천양지차라고 강조했다. 두꺼운 노트에 단어를 적어내려가는 것은 단어를 한 번 ‘기록’해본다는 것 외에 다른 큰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
“손에 잡히는 크기의 카드 모양이 좋다. 큼직한 노트 들고 다니면서 단어 외우기는 힘들지 않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보다가, 심지어 무겁거나 거추장스러울 때는 버릴 수도 있는 그런 단어장이 좋다. 단어 구문 문장, 특이한 표현 등 조금이라도 필요가 있겠다 싶으면 다 적어놓고 외워야 한다.”

문장 중심 영어는 영자신문으로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 ‘타임’ ‘뉴스위크’ 같은 시사잡지를 매주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주로 커버스토리를 읽었다. 물론 고교1년생 수준으로는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영어 시사잡지를 읽으면 교과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살아 있는 단어를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어 위주가 아닌 문장 중심의 학습도 이뤄진다.
특히 시대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조어들은 영자신문이나 시사잡지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공(中共)’을 방문,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 미중 외교관계 수립을 통한 데탕트(detente)에 전격 합의했다. 당연히 시사잡지의 커버스토리로 다뤄졌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그 기사를 몇 번이고 읽었다. 당시 ‘데탕트’라는 말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그야말로 격변하던 와중이었다. 결국 ‘타임’지로 영어 공부를 하다가 3학년 2학기 때 이과에서 문과로 진로를 전격적으로 바꿔버렸다. 국제정치를 공부해서 남북통일에 기여하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진학 후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관이 됐다. “한 줄의 영어 문장이 단초가 돼 인생이 바뀌어버린 케이스”라고 한다.
그는 영자신문 읽기와 영어 라디오 방송 청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자신문은 영어 공부에 비타민과 같은 요소다.
“모자라면 결핍증이 생긴다. 내과 의사이던 아버지께서 영자신문을 매일 집에 가져오셔서 읽어보라며 주곤 하셨다. 영자신문을 하루에 30분만 읽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시간이 없다면 제목이라도 훑는 습관을 붙이면 좋다.”
그는 인터뷰하는 날도 기자에게 양복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낸 A4용지 4장을 보여줬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주장에 대한 뉴욕타임스 기사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지역 미군 증파 계획에 대해 쓴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인쇄한 것들이었다. 그는 요즘도 틈나는 대로 영어를 보면서 머리에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결핍증이 생길까 두렵다고 했다.
그는 어느 정도 독해력이 생긴 뒤로는 ‘까만 것은 영어요 흰 것은 종이’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글을 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대신 글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했다. “똑같은 말을 왜 이렇게 어렵게(혹은 쉽게) 썼을까” “직설적으로 안 쓰고 돌려서 표현했네”라며 수시로 자문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 무언가 자극을 준 색다른 표현들은 1차적인 관심이 컸던 만큼, 적어놓고 암기하면 더 쉽게 자신의 영어 자산으로 승화된다고 한다.
그는 집중적으로 듣기 훈련을 하는 데는 영어 라디오 방송 청취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고 확신한다. 비주얼(visual)의 방해 없이 듣는(hearing) 연습을 하는 것이야말로 귀를 제대로 틔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그 역시 학창시절 틈만 나면 AFKN 뉴스를 들었다. 해설서를 구입해 들리지 않은 부분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모방-숙달-응용 3단계로 끝낸다
● 암기는 머리가 아니라 턱과 입근육으로 한다
● 독해는 영자신문, 청취는 시각물 없는 라디오 뉴스가 기본
● 요즘도 미국 드라마 ‘24’ 시청…자막 없애고 대본은 나중에 본다
● ‘토종 영어’로도 “영국 장관보다 영어 잘한다” 찬사 들어




영어 유치원, 영어 마을, 원어민 과외에다 캐나다로 뉴질랜드로 몇 년씩 유학도 보내보지만 ‘결국 시험점수는 비슷하더라’는 부모가 많습니다. 논술은 또 어떤가요. 학부모도 모르겠고, 학교 선생님도 잘 모르겠다 하고, 학원강사들은 좀 안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배운 학생들이 써낸 답안에 채점교수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입니다. 교육 혼돈의 시대, ‘신동아’가 공부에 관한 한 자타공인하는 검증된 명사들을 통해 생생한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자녀들에겐 멘토이자 ‘해결사’ 노릇을 하게 될 겁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한나라당 박진 의원입니다.



박진 의원은 “감히 말하건대 영어공부에 왕도(王道)는 있다”고 첫마디를 뗐다. ‘모방-숙달-응용’ 3단계 방법이라는 이 왕도는 노력 여하에 따라 조기에 정복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나 역시 스물여섯 살 때까지는 외국에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채 이 방법만 가지고도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실력을 갖추게 됐다. 이후 유학생활도 따져보면 마지막 응용의 단계를 조금 더 확장시킨 차원이다. 이 3단계 학습법을 체계적으로 거치지 않으면 한국인 토종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화를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당연히 기회가 되면 외국에 체류해보는 게 좋지만, 단순히 영어만 배우려 한다면 한국에서 혼자 하더라도 전혀 밀릴 게 없다. 인터넷이나 영상매체의 발달로 영어 공부 환경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아니냐”며 후학들이 자신있게 영어공부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
첫 번째 ‘모방’의 단계는 암기(memorize)로 표준영어 문장을 따라 하는 것이며, 두 번째 ‘숙달’의 단계는 모방한 영어를 살아 있는 어휘(active vocabulary)로 만들어 바꾸는 단계이며, 세 번째 ‘응용’의 단계는 한마디로 영어로 생각(think in English)하고 영어로 말하는 단계다. 이 3단계를 통해 영어는 차츰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메아리 만들 때까지 외운다
그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에는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고, 중학교에 가서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 과외 역시 생소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영어학원이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영어 공부의 왕도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참고서를 보면서 노력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그는 중1~고2 때까지는 하루에 영어공부에만 4시간 이상을 투여했다. 이 시기에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조건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국어로 쓰는 원어민이 아닌 이상 표준영어(standard English)를 외우는 것 이외의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문법, 단어, 구문(syntax)은 물론 웬만한 문장은 통째로 외웠다. 정통기본영어, 성문종합영어, 1200제(題) 같은 당시 유명한 영어 문법 참고서도 달달 외울 정도였다.
그러나 무조건 암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입으로 큰 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외우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당시에 유행하던 비틀스의 노래 가사를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아침, 저녁으로 외우고 다녔다. ‘예스터데이’에서 ‘오블라디 오블라다’에 이르기까지 안 불러본 노래가 없어, 덕분에 지금도 비틀스 노래는 눈 감고도 부른다는 게 박 의원의 말이다.
그는 “이것이 영어를 시작하는 ‘모방’의 단계다. 눈으로 보기만 하는 영어는 죽은 언어와 다름없다. 언어는 펄펄 뛰는 등 푸른 생선처럼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공부도 재미있어진다면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안해 - 개정판, 하버드 초청 한류 강연 & 건국 60주년 기념 60일 연속 강연 CD 수록
박진영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박진영을 처음 보았던 90년대 중반.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무슨 연예인에 가수를 한다고 애쓴다. 풍신나다고만 생각했다. 긴 웨이머리, 못생긴 얼굴, 비닐로 가린 옷들,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오랑우탄을 닮은 듯한 얼굴이 영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나에게 박진영은 혁명가처럼 보인다. 비를 키워내고 프로듀서와 제작자, 작곡가를 견비하는 그 실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왜일까? 왜 내 마음이 간사하게 변했을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실력자에 대한 찬사이고 동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실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일에 대한 열정과 그 열정을 뒷바침하는 행동력,그 특별한 창의력에 경의를 표한다. 창의력을 그 만의 불가능에대한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제적인 부의 그 자체는 관심도 없다. 내 자신이 커갈려면 이런 사람의 머릿속을 분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책 자체는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꼭 가지고 싶었던 책이 었는데 읽는 내내 그리 감동이나 벅진영의 색깔이 드러내지를 않았다. 일기식 에세이라고 보면 된다. 그 만의 실력을 갗춘 장기나 비책을 보고 싶었던 내 마음이 강해서였을까?  

[ 용기란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섭지만 그래도 하는 거다! ] 이말 한마디는 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나의 읽을거리의 재미는 역사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이다.  초한지, 삼국지,수호지, 여러 판본과 저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읽고 싶은 책은 요즘 평설 열국지를 읽고 싶다. 하지만 이문열선생의 삼국지를 먼저 시작한지라 마땅치가 않다. 예전 대야미역으로 용접일을 다닐 때 그 대머리 형님이 그랬다." 삼국지만한 소설이 없는 기라 몇번을 읽어도 그 재미는 말로 못하는 기라" 

당시는 이해를 못했는 데 내가 나이를 먹어서인가? 아님 그 방면으로 관심이 많아서 인지 물에 스폰지가 푹 젖는 것처럼 빨려드는 정신세계이다. 이문열 작가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삼국지 평역을 읽고 역시 거장이라는 소리에 동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역사, 이 고전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갈 길을 닦는 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내 자신이 커지는 것 같다. 

고전, 장편에 올해 시간을 할애하자...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평설 열국지 - 전13권
유재주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97,500원 → 87,750원(10%할인) / 마일리지 4,870원(5% 적립)
2009년 01월 05일에 저장
품절
삼국지 제3권- 헝클어진 천하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01월 05일에 저장
구판절판
삼국지 제2권- 구름처럼 이는 영웅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01월 05일에 저장
구판절판
삼국지 제1권- 도원에 피는 의(義)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01월 05일에 저장
구판절판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선생은 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면서, 마음속에는 부처가 살기도 한다. 명동성당의 성모 마리아상 앞에 ‘장괘대’라는 자리가 있다. 무릎을 대고 앉는 자세를 고정시켜주는 기도 도구인데, 선생이 한번은 그 장괘대에서 몸을 낮추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글로 쓸 수는 없으리라, 갑자기 마음속에서 흘러나와 넘치는 눈물은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모습이다.
그리고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는 아미타불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처에게 절을 올렸다고 했다. 부처 앞에 몸과 마음을 낮추고 절을 할 때 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운주사의 못생긴 부처들
이미 ‘서울의 예수’와 같은 작품으로 당대 참혹한 현실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인은 많은 시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의 편에 서서 울고 그 눈물로 시를 적어내는 삶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다가 운주사의 못생긴 부처들 사이에 허름하게 앉아 있는 삼존불을 보았다. 세 부처 가운데 있는 부처. 이 땅의 백성처럼 허름하고 남루한 모습. 게다가 세월의 풍파에 마모된 그 조각상 앞에서, 삶과 시인을 응시하는 부처의 눈길 앞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감동과 그 무너진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위안을 동시에 느꼈다.
“그건 손바닥을 내려놓고 영원을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 부처 사진을 봅니다. 운주사 삼존불 가운데 부처의 미소는 내가 힘들 때마다 바라보는 삶의 위안이지요.”
마치 무거운 짐을 들고 가다가 그 짐을 내려놓고 부처를 바라보는 심경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 ‘소년부처’가 탄생한다. 우리 모두는 부처의 본성을 타고났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정호승 시인에게 목 잘린 부처를 바라보게 하고 이런 시를 쓰게 한다.

경주 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시 ‘소년 부처’ 전문.



원재훈
● 1961년 서울 출생
● 중앙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로 등단
● 시집 ‘딸기’, 소설 ‘바다와 커피’, 산문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등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정호승의 시가 소년 부처와 같은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선생의 시는 그런 미소로 다가온다. 나는 환자와 같은 심경이 되어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은 의사가 되어 미소로써 나를 맞아주었다. 그때 선생의 미소를 보고 나의 환부는 이미 치료된 것이다. 선생의 미소가 내게는 위안이고 위로였으며, 말씀은 치유였고, 시였다. 인사동에서 안국전철역까지 선생과 같이 걸어가면서, 나는 수많은 부처가 우리 곁을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미소로 내가 살고 시가 산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