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면서, 마음속에는 부처가 살기도 한다. 명동성당의 성모 마리아상 앞에 ‘장괘대’라는 자리가 있다. 무릎을 대고 앉는 자세를 고정시켜주는 기도 도구인데, 선생이 한번은 그 장괘대에서 몸을 낮추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글로 쓸 수는 없으리라, 갑자기 마음속에서 흘러나와 넘치는 눈물은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모습이다.
그리고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는 아미타불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처에게 절을 올렸다고 했다. 부처 앞에 몸과 마음을 낮추고 절을 할 때 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운주사의 못생긴 부처들
이미 ‘서울의 예수’와 같은 작품으로 당대 참혹한 현실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인은 많은 시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의 편에 서서 울고 그 눈물로 시를 적어내는 삶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다가 운주사의 못생긴 부처들 사이에 허름하게 앉아 있는 삼존불을 보았다. 세 부처 가운데 있는 부처. 이 땅의 백성처럼 허름하고 남루한 모습. 게다가 세월의 풍파에 마모된 그 조각상 앞에서, 삶과 시인을 응시하는 부처의 눈길 앞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감동과 그 무너진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위안을 동시에 느꼈다.
“그건 손바닥을 내려놓고 영원을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 부처 사진을 봅니다. 운주사 삼존불 가운데 부처의 미소는 내가 힘들 때마다 바라보는 삶의 위안이지요.”
마치 무거운 짐을 들고 가다가 그 짐을 내려놓고 부처를 바라보는 심경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 ‘소년부처’가 탄생한다. 우리 모두는 부처의 본성을 타고났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정호승 시인에게 목 잘린 부처를 바라보게 하고 이런 시를 쓰게 한다.

경주 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시 ‘소년 부처’ 전문.



원재훈
● 1961년 서울 출생
● 중앙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졸업
●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로 등단
● 시집 ‘딸기’, 소설 ‘바다와 커피’, 산문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등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정호승의 시가 소년 부처와 같은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선생의 시는 그런 미소로 다가온다. 나는 환자와 같은 심경이 되어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은 의사가 되어 미소로써 나를 맞아주었다. 그때 선생의 미소를 보고 나의 환부는 이미 치료된 것이다. 선생의 미소가 내게는 위안이고 위로였으며, 말씀은 치유였고, 시였다. 인사동에서 안국전철역까지 선생과 같이 걸어가면서, 나는 수많은 부처가 우리 곁을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미소로 내가 살고 시가 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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