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문고와 중복부록] 고우영 - 대야망 <새소년 76년> | 대야망


  2005.01.20 10:07





버즈컴(buzzcom1)
카페 스탭


http://cafe.naver.com/clovercomic/853
 



76년 새소년의 별책부록으로 연재된 만화.
'고우영 선생님'의 <대야망>입니다.
참고로 사진은 경매사이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해당 관련글은 클로버문고의 총정리 포스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cafe.naver.com/clovercomic/852

 

[다음은 회원님들의 관련 덧글을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ysd3573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죠 
 
cum2001  이그림에나오는 자전거타는사람이 최배달의수제자 아시와라히데유끼고 그눈앞에있는소년이 대장간소년이죠 모두고아출신앤데 마지막대장간소년이 아끼던어린소녀를구하고 대신죽었을때 아시와라히데유끼가 한말이생각나는군요 아 이렇케 한마디 말도없이가버리긴가 실화만화였지만 가슴이찡했답니다. 사나이들의;우정에관히서 제가가지고있는유일한클로버문고 대야망5권이기도하고요.

 

batthegold  3권 초반에 말썽꾼 제자 '아시와라 히데유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던것으로 기억되는데,올려주실수 있으신지요?

 

영화사랑  저도 4권 소장하고 있는데 저한텐 보물이죠^^
 
ecoist  아... 정말 재미있게 본 만화였습니다...극진 가라테인데, 태권도 비슷하게 그린게 좀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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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의 호신술 그것을 온천하에

과시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대야망이다!"

 




클로버문고 대야망의 같은 1편 책표지<좌측 : 1차 표지, 우측 : 3차 표지>

 



클로버문고 대야망의 같은 2편 책표지<좌측 : 1차 표지주황, 우측 : 3차 표지>

 



클로버문고 대야망의 같은 3편 책표지<좌측 : 1차 표지, 우측 : 3차 표지>

 



클로버문고 대야망의 같은 4편 책표지<좌측 : 1차 표지, 우측 : 2차 표지>

 



클로버문고 대야망의 같은 5편 책표지<좌측 : 1차 표지, 우측 : 2차 표지>

 

클로버문고의 책 No.4 '대야망①②③④⑤'입니다.

클로버문고 No로는 1차클로버 ①편 005번, ②편 006번, ③편 043번, ④편 073번,

⑤편 114번 입니다. 장르는 태권만화 입니다. '고우영 그림'입니다.

 

대야망! 을 시작하기전에 학산프로덕션판의 대야망에 실린 핵심글들을 발췌해보겠습니다.

 

1. 힘. 그것만으로 되겠는가? 무쇠라도 녹이는 정신력과 오랜 시간 동안 갈고 닭은... 진공속의 스피드. 그리고 우리의 얼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려는 그 야망.

2. 여기 황소보다 더욱 힘있는 사내가 있다. 여기 무쇠보다도 단단한 사람이 있다. 우리와 같은 조상을 가진 배달민족으로 우리의 뛰어난 재능을 온 세계에 떨치려 애망을 불태우는...

3. 상대를 찔렀을때의 기쁨, 그리고 상대에게 찔렸을때의 분노, 그래서 포악해지는 동작, 이런것들이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에서도 매일매일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변하는 심성을 조절할 수 있을때 비로소 태권도의 참뜻을 알았다.

4. 콩밭에서는 콩이 난다. 무사들의 혈통은 꼬마에게도 전해져서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신이 올바르다. 작은 몸에 태권을 익히더니 지는 법이 없고 그래도... 가슴은 따뜻해서 아이들이 걱정된다. 무쇠를 두들기면 강철이 되듯이...스승에게서 인간을 배워 큰 나무로 자란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린다. 그러나 대장간 꼬마는 꽃잎으로 지는가?

 

<내용>

 

본명 최영의! 맨손으로 바위를 깬다하여 붙은 별명 바우.

그리고 스스로 배달 민족임을 자랑하여 지은 다른 이름 배달.

현재 한국의 태권도를 온 세계에 떨치게 한 효시가 된 극진회를 일본에 창설한 주인공.

 

바우가 4살이 되던해 중국의 만주에서 봉천까지 누님과 기차를 타고 가면서 파란만장한 이 사나이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바우의 선천적인 성격은 겁쟁이에 울보였습니다. 누가 무서운 표정만 지어도 곧 울음을 터트렸으니까요.

그런 바우가 아홉살이 되던 해 이씨 아저씨라는 인생의 중요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외소한 이씨 아저씨는 동네의 못된 두목이 행패를 부리자 간단하게 차력술로 그를 제압합니다.

겁보였던 바우는 이날부터 아저씨처럼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배움을 거절했던 그는 결국 바우를 가르치게 되나 2년뒤에 아저씨는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그 뒤 바우는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산속에서 무술을 연마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려던 일본은 일본공수도 선수권대회를 서울에서 열었는데 낌새가 이상한 바우의 출현으로 이를 의식. 일본 관헌은 선수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바우를 출전정지 시킵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사고를 치게 되는데...

이를 못마땅히 여긴 일본 공수도 명인인 검은독사가 바우를 뒤따릅니다. 공수도의 뜨거운 맛에 참패를 하고 다시 3년간 산속에서 태권을 연마합니다. 그러니 총 6년동안 산속에서 혼자 산것이지요.

이제는 서있는 나무와 지형을 상대로 무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는 동물을 상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곰을 때려잡고 돌을 두쪽으로 가르던 날.

함경도의 첩첩산중을 다시 내려오게 됩니다. 마침 또 다시 공수도 선수권 대회가 열려 참가하게 되는데 결국 결승에 오르고... 그의 상대 미나미가 반칙을 하자 바우도 같이 반칙을 하게 됩니다. 다이긴 이 경기를 무승부라고 결정되자 이에 화가난 바우는 일본인에게 화풀이를 하는데 오히려 범죄자로 몰려 붙잡혀서 고문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탈출을 시도 성공하자마자 지고도 무승부라고 했던 미나미를 만나러 조국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 갑니다.

 



<대표 캐릭터> 대야망<클로버문고의 향수전 2차 포스터 中>

 

내용 이어서 - 일본의 교토. 어느 길거리에 조선인이 장사를 하는 포장마차에 행패를 부리던 일본인을 혼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제부터 바우는 배달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겠습니다.)

그가 배달이었고 배달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을 만닜으니 포장마차에서 장사를 하던 최영하가 그였던 것입니다. 외로운 타향에서 이들은 같이 살아가게 됩니다.

드디어 미나미의 거처를 알게되고 그와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미나미는 비겁하게 튀어나온 기둥에 배달을 다치게 하려하자 이를 눈치챈 배달! 미나미는 자신의 꾀에 스스로 넘어가 기둥을 받고 쓰러지게 됩니다. 한국에서 끝내지 못한 시합을 일본까지 와서 그를 찾아내어 승리를 확인하는 모습은 배달의 끈기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을 지켜보던 그는 자신의 목표가 부질없음을 깨닫고 보다 높은 야망을 키우게 됩니다. "세계 제일의 호신술. 그것을 온 천하에 과시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대야망이다!" 그는 일본이 아닌 세계를 상대하기 위해 더 혹독하고 무서운 수련을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촛불 건드리지않고 불끄기>, <빈 맥주병을 세워놓고 맨손으로 병의 목을 날리기>...등등

짐승같은 훈련과 자신 스스로 만든 고통들... 괴상한 사나이의 소문은 바람을 타고 넓게 퍼져나가자 헤어지게 되었던 최영하가 태권도 3단의 실력이 되어 미자라는 한국소녀와 같이 배달과 재회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 같은 시기에 미군장교 브라운이라는 사람도 배달을 만나 미국으로 건너가 동양의 호신술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달라는 제의를 받고 일본을 떠납니다.

배달의 태권기술과 벽돌깨기 같은것은 쇼라고 일축해 버리는 미국인들. 그러나 맨손으로 쇠뿔을 꺽는 등. 배달의 태권은 미국사람들로 하여금 커다란 놀라움과 관심을 갖게 했고 가는곳마다 환성과 감탄이 터져 나오게 합니다. 거기에다 미국내에서 악명높은 스네이크 일단을 잡은 공로로 더욱 유명해지고 드디어 미국내에서 태권도장을 세우게 됩니다.

이역만리 미국땅에 태극기가 하나둘씩 걸리고 뉴욕에 본부, LA, 산타페, 시타고, 덴버 등에 지부를 두게되는 쾌거를 이룹니다.

이때부터

중국의 진대인 (중국의 전통무술 십팔계),

미국의 붉은 전갈 톰 라이스 (전 세계헤비급챔피언 및 프로레슬러)

미국의 헨리 아이서 (네바다주 헤비급 챔피언, 전 미국 4위)와의 종목이 전혀 다른 실전시합에서 승리를 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부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배달은 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태권이라는 무술의 위력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바로 대한의 기백을 말이죠.

그런데 일본에서 이러한 미국에서 배달의 대권이 속임수라는 요나지마의 말에 화가나서 이번에는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말을 잡는다는 요나지마! 배달은 그의 공수도장에 말의 창자를 꺼내들고 무서운 웃음을 지어보이는 요나지마의 커다란 사진을 보고 잔뜩 긴장합니다.

요나지마는 자신과 겨룰려면 100명과 싸워서 이기면 상대해 주겠다고 제의를 하자...이에 배달은 흔쾌히 승낙을 하는데...누가 보더라도 불가능할것 같은 이야기! 이것이 가능 할까요?

그러나 배달은 일반인도 아닌 공수도 유단자 100명을 차례로 무너뜨리니...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상대 요나지마 그런데 그는 싱겁게 쓰러지고 맙니다. 배달보고 속임수를 쓴다고 비아냥 거렸던 요나지마가 오히려 속임수를 쓰던 인물이었죠...

다시 세계를 돌며 무술인과의 대결에서 승승장구하는 배달!

일본의 다까아시 (유도),

태국의 삽둘라 (킥복싱),

태국의 킹 코브라 (킥복싱)를 차례로 무릎 꿇입니다.

이때 일본의 공수계에는 혼란이 일어납니다. 바로 최배달 때문이었지요. 시기에 차있던 일본인들. 하지만 진정으로 태권의 위력에 감격하여 자청하여 제자가 된 일본인들도 많았습니다. 일본에도 태권도장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다시 어려운 결심을 합니다. 조국을 얼마나 가고 싶었겠습니까? 어린 나이부터 외국에서 고생을 하며 살아왔으니...그러나 태권도로 이역만리에서 세계만방에 떨쳐 국위를 선양하는 것은 우리민족 전체의 자랑이라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배달의 성품을 알수있는 사건이 생깁니다. 어느날. 깡패들이 시비를 걸어오자 방어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싸우게 되는데 그만 한번의 옆차기에 두목이 죽어버립니다.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지만 배달은 죽은 깡패 두목의 부인과 아들이 살고있는 시골로 가서 그들이 용서 할때까지 그들의 소(배달의 표현)가 됩니다. 노여워하는 깡패두목의 부인과 그녀의 아들은 처음에는 거부하였으나 배달의 고집을 꺽지 못했고 2년이라는 시간동안의 노력 끝에 용서를 받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깡패 두목의 아들이 바로 설 수 있게 해주어서 그녀의 은인이 됩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배달은 이제 FBI의 연방수사국 태권교관이 되고 그 이후

프랑스의 보오몬 (사바테),

중국의 임연산 (태극권),

브라질의 빼드로 (파비토),

인간이 아닌 고릴라와의 대결,

미국의 맘모스 빌리 (프로레슬러),

중국의 리첸 (삼광권법)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합니다.

서양인들에게 장사속으로 선전을 벌이고 있던 일본의 공수도가 평이 좋지 않아 위축되었던 동양의 무술 중의 하나 태권도. 그런 역경속에서 한국의 태권도를 전파하여 세계에 200여개의 태권도장이 생겨납니다. 이런 그의 끈임없는 도전속에 일본의 아시와라 히데유끼라는 제자가 나타납니다. 부모없이 떠돌던 아시와라! 그는 자라온 환경이 배달과 비슷하였습니다. 아시와라는 용기있고 끈기있는 소년이었습니다. 한번은 배달이 자리를 비웠던 도장에 악명높은 일본의 쯔바 깡패단이 시비를 걸어왔고 이 어린 소년은 그들에게 인질로 끌려가서도 용기를 잃지않았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어린 그였지만 배달이 너무나도 놀라와 했던 사건이었지요.

일본에서도 태권도가 발붙일 자리가 없던 시고꾸라는 곳에 공수도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맨손으로 그곳에서 태권도의 극진회 지부를 세우기를 명령 받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스승인 배달을 거울삼아 어려움을 이겨내며 결국 시고꾸에 지부를 설립하는데 아사와라 역시 뛰어난 제자를 키워냅니다. 제자의 제자. 극진회 태권도의 계보를 이어나가는 이 꼬마 또한 이시와라 못지 않았으니 일본내에서 태권도의 이름을 떨치는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이름없던 대장간 소년. 하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게 됩니다. 친형제와도 같이 지내던 요시꼬와 히데오 오누이의 어려운 환경을 돕겠다며 태권도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그들의 학비를 대주었던 대장간 꼬마는 그 둘을 구하려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시와라는 이때 스승의 역할이란 얼마나 힘든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최배달의 제자로서 지내오면서 말썽을 부렸던 옛날을 생각하면서...

이때 배달은 아시와라에게 "이런 역경에 처할수록 더 열심히! 극진하게!...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우리나라의 태권도가 그냥 세계제일의 무술이 된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무술인 최영의의 무용담이 아닙니다. 어둡던 우리나라의 역사속에 온 몸을 바친 세계에서 배달민족의 힘을 전파하려던 선각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세계 각국의 무술인들과 맹수들을 통한 승리에서 즉, 실전을 통한 경험을 하면서 태권도의 위력을 세계만방에 떨쳤습니다.

그는 바로 아시아, 아메리카, 또 유럽대륙에 태권도와 태극기를 휘날리게한 장본인 입니다. 지금은 그의 이야기가 영화로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30여년전 우리가 클로버문고로 보았던 그 만화의 감동이 아직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보고싶은 컷>



         

             가장 숨죽이고 보았던 장면!!! 유단자 100명과의 대결...

한사람을 물리치는데 2분이라 하면 3시간 30분이 걸리는 긴시간!

그리고 그뒤에 태산같은 몸집의 관장 요나지와와의 대결... 그 결과는?

 



 



            <대야망 학산프로덕션판 ♣ 최영의 선생 서거 5주년 추모 한일 동시발행,

♣ 글. 그림 : 고우영   표지 전 6권 2000년 7월 초판발행>

클로버문고판의 대야망과 학산프로덕션의 끝부분에서 다르게 편집되었습니다.

클로버문고는 5권으로 제자 아리아께를 후계자로 선택한다는 장면과 함께

해피엔딩으로 끝맺음을 하였으나 학산프로덕션판은 최영의 선생님의  제자 아리아께를

후계자로 고려한 이후에 아리아께가 교통사고를 내어서 사망하는 것까지 기록되었습니다.

 

<해당 관련글은 일본각색작총정리 포스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cafe.naver.com/clovercomic/1510

 

http://cafe.naver.com/clovercomic/1511

 

http://cafe.naver.com/clovercomic/1512

 

http://cafe.naver.com/clovercomic/1513

 

<해당 관련 부록만화를 포스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cafe.naver.com/clovercomic/853

 

TIP : 이 포스트의 사진을 잘 보시려면 해당 그림면을 클릭하시면

확대되어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보고싶은컷, 학산프로덕션판 제외)

 

다음은 [클로버문고총정리005] 샤넬의 향기 (황수진) 순정만화편 입니다.

원고를 쓰실분은 덧글을 남겨주세요. 자료를 보내드립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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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을 말하다 무술과쌈박질

2004/08/05 11:57



복사 http://blog.naver.com/nbjs/60004682842









목숨을 걸었던 무술인…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장남 최광범씨, 아버지의 삶과 무술세계 담은 『This is 최배달』 펴내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 비결은 간단하다. 한 손의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으로 턱걸이가 아니라 배꼽걸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로 쳐라. 스피드도 중요하다. 아주 추운 날 정권치기를 할 때 주먹이 지나간 선을 따라 하얀 선이 생겨날 만큼의 속도로 쳐라. 그 주먹으로 치면 소는 죽는다!”

17세의 나이에 홀홀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뒤 도쿄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에서 우승하고, 극진가라테라는 실전 무술을 창시한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본명 최영의ㆍ1922~1994). 47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대결해 4마리를 즉사시키고, 나머지 소들의 뿔을 전부 꺾는 등 초인적인 일화를 남겼던 그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에게 ‘바람의 파이터’란 별칭으로도 친숙한 최배달 무술의 근원을 아들 최광범(30) 씨가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최강의 훈련을 거친 분이셨습니다. 하나의 기술을 온전한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30,000회의 연습을 강조할 정도였죠. 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아주 꺼려하셨습니다. 혹여 일이 잘못 돼도 빠져나갈 변명의 여지를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항상 송두리째 ‘목숨’을 걸었습니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 최씨는 얼마 전 동생 광수(28), 광화(22)씨와 함께 최근 아버지 최배달의 삶과 무술 세계를 담은 평전 ‘This is 최배달’(찬우물 刊)을 펴냈다. 8월 12일에는 그가 자문을 맡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감독 양윤호ㆍ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도 개봉한다.

-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
평전이 생전 최배달의 무술 이론과 철학 세계를 충실하게 고찰하고 있다면, 영화는 최배달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강한 외면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를 조명하는데 집중한다. 최씨는 특히 배우 양동근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말한다. “영화 개봉 후 아버지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최배달의 인상을 고스란히 실제 최배달의 느낌으로 연결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배우 양동근의 연기력에 대해 최씨는 후한 점수를 준다. “아버지 무술 세계를 적어도 7,8할은 실감나게 그렸다”고 평한다. “촬영도중 배우 양동근에게서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을 봤어요. 경기 후 허탈해 하던 인간적인 갈등까지… 생전 아버지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최배달에 얽힌 일화는 수두룩하다. 벽돌 격파를 하면서 거들먹거리곤 하던 어느 무술가와의 자리에서 벽돌을 두 손에 쥐고 비틀어서 부숴 버렸다고 하는가 하면, 술집에서 시비를 걸던 건달 앞에서는 뚝배기를 귀를 엄지와 검지로만 차례로 뜯어냈다고 하는 ‘무한’의 힘이 화제의 핵이다.
“중 3때 생일날 아버지께서 180cm에 90kg짜리 샌드백을 선물로 주셨어요. 저는 신이 나서 날마다 이마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도록 치고, 또 쳤죠.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날 ‘텅텅’ 소리가 온 마당에 울리도록 샌드백을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그렇게 치는 거 아니다. 멋은 있지만…’하며 질책하시더군요. 놀란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죠. 아버지가 짧은 기합과 함께 뻗은 주먹에 그 육중한 샌드백이 ‘퍽’ 소리와 함께 반으로 접혀버린 겁니다. 당시 아버지 연세가 일흔에 가까웠어요.” 그때 아들은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아버지의 저런 ‘괴력’이 그를 전설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흔히 무廈된??만화에서는 무예 고수들이 죽기 전엔 그의 후계자에게 평생 갈고 닦은 비법을 전수해준다. 그래서 그도 생전 아버지에게 최고의 고수가 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아들을 타일렀다.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한 건 비법을 전수 받아서가 아니다. 마음에 칼을 품고 자신만의 기술을 익히는데 올곧게 정진했기 때문이다.”

- 마음에 칼을 품고 올곧게 정진하신 분
세인들은 종종 그런 아버지를 시라소니, 김두한 등과 비교한다. “최배달과 시라소니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이 같은 물음들에 일일이 답변할 가치를 두지 않지만, 때로 은근히 부아가 치민 적도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모두 당대를 빛낸 뛰어난 기량을 갖춘 분들이었지만, 그런 식의 단순 비교는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무술인으로서 심신을 수련하며 ‘칼끝에서’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세계 곳곳을 돌며 최고의 무예 고수들과 100여 차례 겨뤄 모두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파이터로 사람들에게는 알려졌지만, 그의 기억 속의 아버지 최배달은 자식들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한 분이라는 무게가 더욱 크다.
“어린 세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길 좋아하셨어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얼굴은 천장 쪽을 향하게 해서 눈에 비눗물이 들어갈세라 조심스레 머리를 감겨주곤 하셨어요.”
94년, 험난한 무술인의 길을 원치 않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 시험을 준비 중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가족 가운데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잠시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떠난 뒤, 3주 만이었다. 말기 폐암이었던 아버지는 90여 kg의 몸무게가 마지막 순간에 60kg이 될 정도로 고통 받으면서도, 끝내 자식들에게는 “소를 때려잡던 강인한 아버지로 남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산을 잃은 심정이었습니다. 사랑했다기보다 존경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무술과 철학을 올바르게 알리는데 열과 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 출처 : 주간한국

출처블로그 : 한국자기개발원


"최선만으로 안된다, 목숨을 걸어라"

"아버지 무패의 비결은 자기수양과 정진이었어요"… 아들, 최배달 일대기 엮어 책·영화화

“아버님은 의외로 약한 분이었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였긴 했지만 말년엔 몸 이곳 저곳이 안좋아 자주 통증을 호소하곤 하셨습니다. 특히 관절이 좋지 않으셨어요. 손목이나 무릎 같은 곳이 심했습니다. 손목을 뒤로 젖히지도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님이 아버님 팔·다리를 주무르며 마사지 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3040세대에겐 ‘고우영, 대야망’으로, 2030세대에겐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고 최배달(본명 최영의)씨.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39년 17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1947년 도쿄 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서 우승한 뒤, 미국·남미·중국 등을 돌며 고수들과 무예를 겨뤄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전설적 인물. 그가 창시한 ‘극진(極眞) 가라테’는 오늘날 일본 공수도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러시아·북한 등을 포함한 세계 100여개국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배달의 장남 최광범(30)씨는 강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가 풀어내는 ‘기억’엔 의사로서의 개인적 소견이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젊었을 때 워낙 심하게 몸을 쓰셨던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에서 계속 단련을 하셨으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죠. 아버님은 생전에 약 100번에 걸쳐 황소와 대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47마리의 뿔을 꺾고, 4마리는 즉사시켰죠. 그때 쓰러지는 소에 무릎이 깔린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400㎏도 넘는 황소가 무릎을 덮쳤으니…. 제 생각으로는 당시 미세골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봅니다. 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사람들은 퇴행성 관절염을 조심해야 하거든요.”

쏘는 듯한 눈빛에 다부진 체격

부친을 닮아 그럴까? 최광범씨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탱글탱글하니 쏘는 듯한 눈빛에 프로레슬러 같은 체구, 활기 넘치는 다부진 몸집이 사진으로 본 ‘최배달’을 쏙 빼닮았다. ‘한 가락’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하. 저희 3형제가 다 그래요. 저는 174㎝에 92㎏, 둘째는 175㎝에 95㎏, 막내는 181㎝에 95㎏입니다. 모두들 운동을 좋아하죠. 저는 킥복싱과 헬스를 했고요, 둘째(최광수·29)는 체육대를 나와 킥복싱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막내(최광화·23)는 아직 학생인데 검도를 익혀 서울 검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최광범씨는 만화가 방학기씨가 스포츠신문에 ‘바람의 파이터’를 연재(1989~1993년)할 때, 작가 앞에서 실전 자세를 시연해 이해를 도왔던 무술 모델. 그런 그가 왜 ‘극진 가라테’가 아닌 킥복싱을 배웠을까?

“우리나라엔 가라테 도장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태권도와의 마찰을 우려, 고국에는 극진 가라테를 들여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물론 가라테를 배우고 싶었었죠. 어렸을 때 아버님께 ‘좋은 도장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뜻밖의 대답을 하시더군요.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좋은 도장’이란 겁니다. ‘매일같이 갈 수 있고, 틈 나는대로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란 거지요.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이 킥복싱 도장이었습니다.”

 

‘배달’은 자식들에게 “기본부터 착실히 다질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항상 ‘내가 많은 사람들과 겨뤄 상대를 쓰러뜨렸지만, 그 비결은 결코 화려한 공중돌기나 발차기가 아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장의 무기는 오직 ‘정권치기’ 하나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발차기가 화려할수록 위력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미국 프로레슬러 톰 라이슨과 붙었을 때 얘깁니다. 만화에선 공중에 붕 떠서, 링 3면을 돌아가면서 발로 차, 가속도를 붙여 그 힘으로 톰 라이슨을 가격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그와 다릅니다. 상대도 평생을 갈고 닦은 고수 아닙니까? 그런 상대의 빈틈은 눈 깜빡하는 순간, 0.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을 잡느냐 못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그런 상대 앞에서 벽을 세 번씩이나 차면서 빙빙 돌면, 그게 통하겠습니까? 그때도 아버님의 무기는 단 한 방, 상대가 ‘깜빡’하는 그 틈을 파고든 정권치기였다고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라” 역설

최광범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버님을 보면 늘 ‘칼 끝에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아버님은 항상 자신을 다듬으며 정진하셨거든요. 집에서도 좌선을 하시고, 천천히 산책하며 차를 마시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에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그 말을 몹시 싫어하셨어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 아니냐’는 거죠. ‘자기 상황에 따라 단지 성실히 노력하는 정도로는 이뤄지는 것이 적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목숨을 걸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거다 싶으면 목숨 걸고 정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달’에게 최광범씨는 늦둥이다. 52세에 첫아들을 낳았으니 늦둥이도 이만저만한 늦둥이가 아니다. 무예를 위해 결혼마저도 뒤로 미뤘던 것일까?

“어머님이 일본서 유학할 때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24세, 아버님은 45세였습니다. 사실 아버님에겐 어머님을 만나기 전,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사람이어서 집안 어른들이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을 데려오자 집안 어른들이 비로소 인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었으니까요. 1974년에 제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은 귀국 후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셨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에게도 사생활은 있었을 터. 부부싸움이나 자녀 교육문제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배달’의 모습이 궁금했다.

“아버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어요. 소리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은 제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트러블이 생길 것 같으면 어머님은 아무말도 않고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했어요. 그럼 그냥 모든 것이 조용해졌습니다.”

 

최광범씨는 ‘최배달’의 아들로서 “고교시절 동급생들의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딱 한 번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했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상대편 얼굴이 부서지다시피 했거든요. 의사가 보더니 ‘교통사고가 났느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애들이 ‘최배달 아들이 싸운다’며 우루루 몰려 나와 에워싼 채 구경하려 몰려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우쭐해진 겁니다.”

10여년 전 치료비로 400만원이 나왔을 정도라니, 집에서 엄청 혼났을 법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님은 아무 표정도 없이 ‘무술은 너 자신을 닦는 거다’라고 딱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나중에 그러셨다더군요. ‘그래도 맞고 들어온 것 보단 낫다’라고요.”

 

‘최배달=일본인’ 일본 만화는 왜곡

최광범씨는 바쁘다. 8월 12일 개봉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제작 자문을 맡았고, 부친의 일대기를 엮은 책 ‘This is 최배달’(찬우물)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생활 아시잖아요? 병원 일을 보면서 인터뷰도 하고 하려니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아예 휴가를 냈습니다.”

최씨는 인터뷰 말미에 최배달을 다룬 한 일본 만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 만화에는 최배달이 ‘가미카제’ 조종사로 묘사됐고 일본이 패망하자 ‘허망하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도장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귀화했지만,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때도 ‘배달’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런데 철저한 일본인으로 아버지를 묘사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최씨는 “시정조치가 없을 때엔 극진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적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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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인생 반전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오병곤.홍승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국내에 글쓰기에 대한 책은 거의 읽어 본 것 같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글쓰기야 말로 자기 자신과의 가장 솔직한 대화라는 대해 늘 생각해왔다.나에겐 어떤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하여,그 툴이  항상 궁금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세계적인 작가가 썼다지만 내게 영 다가오지 않았다. [글쓰기의 전략]이나 이외수 선생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등등..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읽었지만 뜬 구름 잡는 듯 감동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병곤 홍승완 공동저자의 [내인생의 첫책쓰기] 이 책은 아니다.  아마추어이면서도 프로의 냄새가 나고 프로냄새가 나면서도 아마추어의 초심의 마음이 솔직히 나타나있다. 글은 말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의 경계에서 중용을 지킨다고 할까? 이 책에는 저자들의 겸손과 배려의 글들이 소중히 나타남이 매력이다.  책쓰기에 좋아하는 술도 한달간 끊고 바쁨의 일상과 회사일 속에서 시간을 만들어 책을 써준 저자들에게 감사하다.  

나도 이제껏 글쓰기에 관심도 많고 쾌 많지는 않지만 상당한 글을 써왔다. 글쓰기가 즐거움이 될 수도 있고 괴로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정확히 맞다. 하지만 생각만 하는 사람보다는 써보는 사람이 더 멋지고 일단 쓴 글을 어떤 기획과 출판을 하여 다른 이들에게 감동과 공유를 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의 감사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명한 사람들이야 대신 써줄 대필작가가 있다지만 평범한 소시민은 자신이 써야한다. 나도 이제 나의 책을 써야겠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내 자신을 드러내야 겠다. 잠자고 있는 내 안의 야성을 이제 끄집어내어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줘야겠다. 두 공동저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배려와 감동의 솔직함이 묻어난다고... 두 분의 글이 어떤 한 사람을 일깨어주었노라고...  

역시 구본형작가의 제자들이다. 맹장 밑에 약졸은 역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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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어서

"기존의 작가 스타일과는 완전히 반대로 해보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라는 말은 조금 단순하고 과격한 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단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당시 상당히 반항적인 심정이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분명 몹시 건방진 인간이었습니다.
젊었고 오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필사적이었습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에, 어떻게든 스스로 길을 개척해서 제 나름대로의 문학 스타일, 생활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축한 스타일 자체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어떻게 보면 옛날보다 한층 더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예전만큼 반항적이지는 않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그동안 제 스타일을 나름대로 분명하게 확립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반항하려고 해도 반항할 만한 것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작가가 되었을 무렵과 비교하면, 일본 문단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무의미한 문학계 특유의 계율이 점점 사라지고, 시스템으로서의 융통성도 생겨났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합의가 세상에서 그렇게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변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가와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끈끈한 인간관계'만은 어느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건 체념할 수밖에 없겠지요.
-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중에서 -
  
 







 
무라카미 하루키 프로필

1949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하였으나 곧 효고현 아시야로 이주해서 10대시절을 보냄
부모님은 모두 국어교사.
 
196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영화과에 입학.
중학교 시절에는 러시아문학과 재즈에 탐닉하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한 손에 사전을 들고 미국문학을 탐독게 되었다. 와세다 대학의 교정과 기숙사는 후에 <상실의 시대>의 무대가 된다. 대학 입학 후 학원 분쟁(전공투)을 체험한다.
전공투 체험을 겪으면서 형성된 하루키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쥐의 3부작과 <댄스 댄스 댄스>까지의 초,중기 작품속에 스며들어 있다

1971년
학생의 신분으로 요코와 결혼한다. 와세다대 수업시간에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계기로..
팬들이 그녀에 대해 묻자 하루키는 아내를 이렇게 설명한다. '결혼할 당시에는 머리가 허리까지 왔는데 점점 짧아져서는 지금은 아주 짧아졌어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퍼머를 한 적도, 화장을 한 적도 없는 보기 드문 사람이예요. 데이빗 린치와 모짜르트 k491번과  함박조개와 연어껍질과 카슨 멕커러즈의 소설과 무라카미의 이전 차 '빨간 페가수스'와 포르쉐 911타르가톱(이건 비싸서 사 줄수가 없어요)을 좋아하고, 어릴때의 꿈은 닌자였대요'
하루키에겐 2세가 없다. 아이가 없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 70년대의 환멸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한 장소인가하는 데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하루키는 밝혔다. 그리고 아내와 자신도 부모님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에서 오는 자신감의 상실이라고 한다

1974년
재즈 바 '피터 캣'을 고쿠분지에 연다
초기 두 작품 이후에 피터 캣을 정리하고 전업작가로 나선다.

1975년
<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7년간 다녔던 대학을 졸업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 : 부엌 테이블에서 매일 1시간씩 4개월에 걸쳐 쓴 그의 첫 소설



1980년
    

 

<1973년의 핀볼>발표(초기 3부작 두 번째 작품)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원형을 이루는 단편)





1981년
<와세다 문학>의 편집위원이 되었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영화화 되었다.
오랫동안 경영하던 피터 캣의 문을 닫는다.

1981년

<사슴과 신과 성세실리아>(단편)
<꿈속에서 만나요>(에세이)








1982년

첫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발표(초기 3부작 마지막 작품)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








1983년

<중국행 슬로보트>(오후의 마지막 잔디밭>등 7편수록)
<캥거루 날씨>,<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세이)









1984년

<반딧불, 헛간을 태우다. 그밖의 단편>
(<노르웨이 숲>의 원형을 이루는 단편<반딧불>등 6편을수록)
<파도의 그림, 파도의 이야기>(에세이)
<春上朝日堂>(에세이)






1985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발표 :'다나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佐佐木 마키의 삽화에 의한 그림책)
<영화를 둘러싼 모험>(에세이-川本三卽와의 공저)






1986년

<빵집 재습격>(<1973년의 핀볼>의 TKdend이가 재등장 하는 <쌍둥이와 가라앉은 대륙>등 7편 수록)
<春上朝日堂의 역습>(에세이)







1987년

<노르웨이의 숲(한국명; 상실의 시대)>발표
6백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하루키 신드롬 출현. 하루키가 말하는 <노르웨이 숲>은 자신의 소설 분류와는 좀 다른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후에 미국에서 쓰게되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더불어 이 두 작품은 리얼리즘 소설이라 단언한다. 나머지 작품들은 비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노르웨이 숲>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해뜨는 공장>(에세이)



1988년

<댄스 댄스 댄스>발표(초기 3부작의 속편)
<스코트 피츠제럴드 북>(장편)








1989년
<春上朝日堂-하이호!>(에세이)


1990년

<먼북소리>(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외국 생활을 그린 여행 에세이)
<雨川炎天>(터키와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 여행)









1992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미국 체류
장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발표









1994년

<슬픈 외국어>(에세이)
장편 <태엽감는 새 연대기>발표








1995년




인쇄매체 광고를 위해 광고문으로 쓴 <밤의 원숭이>발표







1996년
에세이 <소용돌이 고양이의 발견법>발표

1997년

<렉싱턴의 유령>발표










 
1999년

<스푸트니크의 연인> 발표










2000년
 
<신의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 발표.(자신의 고향 고베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단편집으로 처음으로 3인칭이 시도 됨)








2003년

<해변의 카프카> 발표 (3인칭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
 








2004년

<어둠의 저편> 발표 (등단 25주년 기념작)

(중요 작품만 모았고 년도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혹시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댓글에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야 시립 도서관> 챈들러, 피츠제럴드, 스티븐 킹, 레이먼드 카버등 하루키는 미국의 현대 작가 11인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10대 시절 이 아시야 시립도서관에서 그들을 탐독했다. (그 11인의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다룰 예정이다)
 

 




 <하루키상의 집에 있는 음악실> 벽을 가득 메운 LP들만 6천장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역시 재즈 음반이 제일 많다

 
 



 
< 그리스 미코노스 섬 전경>
 이 섬에서 <상실의 시대>를 집필했고 그리스와 유럽의 여행이야기는 그의 에세이 <먼 북소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하루키의 힘의 원천 마라톤 풍경> 하루키가 다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체력이다. 

 어떻게 해서든 결승점에 뛰어 들어가 한숨 돌린 다음 건네어진 차가운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뜨거운 욕조에 잠긴 채로 바늘 끝으로 발바닥에 부풀어오른 물집을 따낼 무렵에는, '자아, 이젠 다음 레이스에서는 더 분발해야지'하고 다시 마라톤에 대한 의욕으로 불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 <하루키 일상의 여백> 中 -
 
   
 






< 고양이 > 하와이의 카우카니 섬에서 만난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고 인사를 나누는 하루키상.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 실린 사진으로 부인인 요코가 찍었다. 그는 옆집 고양이를 부를때도 옆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아닌 그 고양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름을 지어서 몰래 부른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TV나 매스컴에 거의 등장하는 일 없이 그저 활자만을 통해서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에는 방문한 적도 없지만 외국인 작가로는 아마도 제일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손을 거쳐 나오면 아무리 허접한 소재나 이야기라도 비범한 일이 된다. 그것은 재능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하나, 둘 읽기 시작하여 이제는 그가 내세우는 인물들의 짧고 가벼운듯한 대사들 속에서 무거운 의미를 제법 해독해 낼 줄도 알게되었다.

우상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히 우상이 될 만한 존재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를 말한다' 시리즈를 발행하면서 하루키 그에게 더욱 다가가고자 한다.

 












1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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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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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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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댄스 댄스 댄스 Remix
아라키 스미시 지음, 신현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3월
7,800원 → 7,020원(10%할인) / 마일리지 3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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