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시아

박진영


기사입력 2009-04-06 09:56 |최종수정 2009-04-08 14:28 기사원문보기



박진영 : 수많은 오디션에 ‘얼굴이 못 생겨서’ 떨어졌다. 댄스 가수로 성공했다. 작곡을 할 줄 아는 가수가 됐다. 음반 제작자가 됐다. 밀리언셀러 그룹과 한류스타를 탄생시켰다. 윌 스미스에게 곡을 줬다. 자신의 소속 가수를 미국에 진출시키려 준비 중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 시키는 그 남자의 중간 점검.







마이클 잭슨 : King of Pop. 박진영은 어린 시절 2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마이클 잭슨의 <Off the wall>을 생애 첫 앨범으로 샀다. 박진영은 이 때 흑인들과 놀면서 영어를 배우고, “흑인들과 함께 있는 게 편하다”고 할 만큼 흑인 문화에 빠졌다. 또한 박진영의 부모는 그가 집안에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도록 해 그가 언제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했다. 그의 미국 진출은 조기교육의 힘 때문이었던 건지도.




김수철 : 1980년대 ‘나도야 간다’ 같은 히트곡부터 ‘황천길’같은 퓨전 국악까지 종횡무진 했던 뮤지션. 박진영의 데뷔 앨범 박진영과 신세대를 직접 제작,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으나 실패했다.




김형석 : 박진영의 음악 스승인 작곡가. 김형석은 김건모와 노이즈의 댄서였던 박진영이 “솔직하게 노래 부를 줄 아는” 것에 호감을 느꼈고, 박진영은 김형석의 집에서 먹고 자며 2년여 동안 작곡과 편곡을 배웠다. 박진영은 춤에 소질이 있었던 것,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았던 것과 김형석에게 음악을 배워 미국 뮤지션들과 다른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재수 좋은 일’로 꼽는다.




이문세 : 가수 겸 방송인. 박진영은 1996년 KBS <이문세 쇼>에서 시청자 투표를 통해 ‘섬머 징글벨’‘그녀는 예뻤다’ 중 한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밖에도 박진영은 데뷔 당시 MBC <특종 TV연예>에서 스스로를 ‘연세대 명물’로 알렸고, 그룹 노을을 SK텔레콤의 모바일 서비스 ‘June’을 통해 데뷔시키는 등 홍보에 일가견을 보였다. 이는 그의 ‘대체 불가능한 인물론’과 관계가 있다. 박진영은 다른 댄스 가수들과 차별화되기 위해 음악을 배웠고, 비슷한 뮤지션들이 많아지자 시사에 대한 능력을 갖겠다며 연세대학원 정치학과에 다녀 ‘연세대 출신의, 작사 작곡 편곡을 하는, 롱런한 댄스 가수이자 정치학과 대학원생’이 됐다. 이후 박진영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반 기획사 사장이 되고, 모바일로 가수를 홍보하며, 한국 뮤지션 중 최초로 미국 메이저 뮤지션에게 곡을 줬다.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남들이 가지 못한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하는 최고의 제너럴리스트로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 된 것. 그래서 박진영은 계속 더 큰 판으로 나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풀 : 만화가. god의 <하늘 속으로>에 첨부된 만화를 담당했다. 강풀은 박진영이 털 알러지가 있음에도 자신의 집에 직접 찾아와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앨범 콘셉트를 설명하는 모습에 참여를 약속했다. 박진영은 미국 진출 당시 레코드사의 수위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친해진 것을 시작으로 회사 고위 관계자들에게 갈비와 소주를 사며 곡을 세일즈했고, 일면식도 없던 알 켈리와는 어느덧 그의 집에서 가끔 숙식을 하는 사이가 됐다. 이런 박진영의 사교성은 타고난 친화력에 어려운 일일수록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그의 승부욕이 더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듯. 박진영은 농구 시합에서 왼손 레이업을 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왼손으로 밥 먹고, 양치질을 하기도 했다.




원더걸스 : ‘Tell me’-‘So hot’-‘nobody’를 연이어 히트시킨 여성 그룹. 박진영은 국내에서 원더걸스를 히트시키고, 미국에서 민, 지-소울, 임정희 등을 데뷔 준비 시키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변화는 ‘작곡가 박진영’에 관한 것이다. ‘nobody’에서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훅(hook)은 박진영이 god 시절부터 보여준 장점이다. 하지만 ‘nobody’는 훅이 등장하기 전까지 완급을 조절하는 전개를 통해 훅에 더 폭발적인 느낌을 싣는다. ‘nobody’의 시작에 등장하는 훅과 다른 멜로디를 다 들은 뒤 나오는 훅은 그 느낌이 다르다. 또한 god의 ‘2 love’, 2AM의 ‘이 노래’는 곧바로 사람의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에 대한 강박 없이 편안한 멜로디 전개로 박진영 발라드의 새로운 시대를 보여줬다. 박진영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서 곡을 쓰는 것도 편해졌다”고 말한바 있다.




박지윤 : 가수. 박진영이 박지윤에게 준 곡 ‘성인식’은 순식간에 그를 섹시 스타로 만드는 동시에, 박진영을 대중문화계 성(性) 담론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다. 박진영의 섹시 콘셉트는 그가 가요계에서 특화된 위치를 가지도록 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지만, 프로이드의 책을 통해 “무한한 해방감을 얻었다”는 그의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들끼리 있을 때 부모님을 ‘누구 씨’라고 부르도록 교육 받았고, “그녀를 평생 여자친구로 두고 싶었지만 우리 사회 속에서 그렇게 살기엔 참 힘든 점이 많아 결혼을 했”으며, 한류에 대해 “우리가 우리 대중문화에 꼭 한류라는 말로 태극마크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박진영은 특정 집단이나 규율이 주는 억압을 극도로 싫어하고,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다. 뭐든 가리지 않고 튀어 보이려는 트러블 메이커, 혹은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자유인.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갈수록 더 크고 다양한 세상으로 나가 그 세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 박진영이 스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꼽는 네 가지 조건인 외모, 춤, 노래, 성격 네 가지 중 ‘별 셋 반’에 도달한 유일한 가수. 박진영과 비는 모두 큰 키와 타고난 춤 솜씨를 가졌고, 함께 아시아와 미국 시장에 진출한 뒤 올해는 각자 미국에서 중요한 승부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장 닮은 점은 끊임없이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세계를 넓히려는 욕구일 것이다. 그들은 하루 3~4시간씩만 잠을 자고, 가혹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몰아붙이면서 댄스가수에서 작곡가(박진영)/연기자(비)로, 한국에서 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가고 있다.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드는 워커홀릭들. 혹은 자기 능력을 1000% 믿는 확신범들.




Asian Soul : 박진영이 자신이 만든 음악에 쓰는 닉네임. 그는 한국이라는 특정 나라보다는 아시아인의 감성이라는 측면으로 미국 시장에 접근한다. 이는 그의 사고방식, 혹은 그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춤 잘 추는 몸 하나로 시작했던 청년은 인기 작곡가가 됐고, JYP의 사장이 됐으며, 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갔다. 그 사이 그의 감성은 한국과 미국의 어딘가에 걸쳤고, 전 세계를 돌며 비즈니스를 하게 됐다. 그리고 1년에 단 6주 동안 한국 활동이 가능한 혹독한 스케줄은 그를 “삶은 사생활, 친구나 내 애인과의 시간이 인생의 절반이고 일이 절반인데 이게 99대 1로, 백이면 99대 1로 만들어놓고 사는, 그 1에서 겨우 엑기스를 추려서 곡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 모든 곳을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 나가지만, 그럴수록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soul’만 남는 인생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99를 가졌지만 나머지 1이 외로운 인생. 혹은 1이 외롭지만 99를 가진 인생. 어느 쪽이든, 보기 드문 길을 걷고 있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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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23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두고 논산훈련소에 입소를 했습니다.

 

군대가 힘들다고는 들었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각오는 했지만 민간인의 옷을 벗고 훈련복을 입은 제 모습은 참 어울리지 않았습니다.제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창밖의 내리는 저 첫눈을 보노라니 정말 감옥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다시는 이곳에서 나가는 날이 있을까? 다시 세상을 볼 수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몸서리는 치는 입소의 첫날 밤에 그녀를 생각하며 이겨냈습니다.

 저에게 희망의 등불이자 마음 따스한 난로같은 그녀의 편지가 있으매 그 힘든 훈련병 생활을 이겨냈나 봅니다.

1월의 매서운 칼바람과 혹독한 훈련들, 추위와 싸우는 하루 하루는 견디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구나 다하는 군생활이지만 한가지 더 식당배식과 청소보직을 맡은 지라 남들 쉬는 그 작은 틈을 한 번 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손과 입술은 항상 텄지만 저에게는 누구에게나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녁8시면 편지를 나누어주는 그 시간이 저에게 단 하나의 살아가는 이유와 견디는 저만의 무기였습니다.

그녀는 2틀에 꼭 한통씩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녀의 편지를 읽고 읽고 또 읽고 군복 상의에 접고 접어서 시간만 나면 읽고 또 읽었습니다.
웃기도 참 많이 웃고,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느날은 그녀가 너무 보고싶어 가슴이 터져버릴 것도 같았습니다.
편지는 그녀와 저를 이어주는 끈이었습니다. 사회와 군대라는 곳의 거대한 벽을 뚫는 따스함이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인간난로였습니다. 훈훈함과 살아가는 분명한 목표를 주는 사랑의 난로 말입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녀와 내가 같은 하늘아래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그 힘들었던 훈련을 마친 후 이등병계급장을 달고 논산훈련소를 퇴소하고 광주에서 후반기교육을 3개월 받았습니다.
훈련소와 다른 여러 힘겨움과 제재들이 많음속에서도 이겨내는 힘은 그녀의 편지였습니다.
그녀의 편지는 항상 꾸준합니다.
어느날은 기쁨의 편지이고 어떤 날은 힘겨움과 아픔의 눈물의 편지이고 어떤날은 그리움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담은 편지였습니다.
저는 그 어떤 편지라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눈물나면 저는 몇배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간절히 잘 지켜주시라고 말입니다.
입대후 5개월간의 모든 훈련이 끝난후 드디어 파주금촌으로 자대배치를 받았습니다.

 
훈련소와 다른 그 엄청난 고참과 후임의 상하관계의 기운과 낯선 곳에서의 자대생활은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사람을 계급으로 이렇게 무섭게도 힘들게도 할 수가 있음에 놀랐습니다.
거대한 산이 제 앞에 서있는 그 기분, 참 낯설고 견디기 힘든 또 하나의 사회에 힘들었습니다.
항상 이병 이경상를 고래고래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새벽 경계근무, 훈련, 작업, 부대 막내로써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정말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녀에게 편지를 쓸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너무 너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정말 한 글자라도 쓰고 싶은데 그 시간마저 없었습니다. 훈련소 때가 정말 그리워졌습니다. 그때는 정말 편지라도 실컷 썼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방법은 구막사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단 몇줄이라도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어떻게든 써서 그녀에게 편지를 부쳤습니다.
그렇게 1통을 보냈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자대배치를 받고 그녀에게 받은 첫 편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고참들 눈을 피해서 역시 구막사 화장실에서 읽었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한참을 울어야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매맞은 아픔을 엄마가 위로해줘 서러움에 눈물이 나듯 자대배치후 힘들었던 순간의 힘겨움이 그녀의 편지 한통으로 봇물터지듯 흘렀습니다. 기쁨과 힘겨움의 눈물이었겠지요...

 
자대배치후 20여일이 지난 어느날,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1993년 5월23일 토요일 늦은 오후 5시를 넘어선 시각이었습니다.

역시나 힘든 이등병인 저는 이리 저리 아직도 부대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소대 고참에게 호출이 왔습니다. 지금 위병소에 면회가 왔으니 복장 갖추고 위병소로 가라고 합니다.
솔직히 면회 올 사람도 없지만 면회왔다는 자체도 웬지 너무 큰 부담이었고 눈치가 보였습니다. 통상 일병휴가를 다녀온 후 면회나 외박이 되는 걸로 알아 왔습니다.
 먼 지방 고참들이 많아서 주말에도 몇명 면회도 오지 않는데 이제 갓 자대배치온 이등병이 면회라는 말에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복장을 갖추고 위병소에 도착했습니다.
위병근무를 서고 있는 고참에게 경례를 하니 "면회소에 네 애인 왔다. 야! 겁나게 이쁘다야! "  사투리로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웬지 마음이 편하지않은 목소리였습니다. 이등병이 무슨 면회냐는 말 같았습니다.
면회소에 들어간 순간 저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꿈에서도 그렇게 보기힘들었던 그녀였습니다.
제가 꿈에도 그리던 그녀. 제가 2년을 넘게 단 하루처럼 사랑해온 사랑하는 그녀였습니다.

입대하는 날 논산훈련소까지 마중온다던 그녀를 전주터미널에서 버스 창문사이로 얼굴을 마주한채 떠나온 그녀.사랑하고 사랑한 가슴아프도록 사랑한 저의 그녀.
(논산훈련소까지따라오면 고무신 거꾸러 신는 다는 말에 논산훈련소에 못오게 했습니다.) 그날 입대한 날 첫눈이 오던 그 밤에 그렇게 후회를 했는데 그녀가 지금 제앞에 서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감동적으로 사람을 보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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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2 - 방태산화타 선생의 신토불이 간질환 치료법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2
김영길 지음 / 사람과사람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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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왜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겠다. 

돈도 중요하고 명예 가족도 중요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자신을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가족과 세상,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암, 불치병, 간병변같은 중대병들을 감기쯤으로 우습게 알아버리는 촤타선생...   이 양반이 매력적인 분이다. 

방태산에 가고 싶다. 아니 가여야 겠다. 산과 같이 넉넉하고 큰 생각을 배워야겠다. 아니 쉬고 싶다. 내 지친 마음과 시간에 멈춤을 하고 싶다.  

이책을 읽으면서 어서 방태산 이 화타선생이 있었던 곳으로 어서 가고 싶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내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정말 수고 많았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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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6권 - 불타는 적벽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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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갈량 등장하고 적벽대전의 싸움이 시작된다. 

제갈공명  이 인물이 최고의 메리트다. 고우영삼국지에서의 유비쪼다를 닭에서 봉황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다. 삼국지의 매력에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의 일들이다. 

정말 젊어서는 읽어야 하고 늙어서는 읽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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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5권 - 세 번 천하를 돌아봄이여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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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의 메리트는 관우의 4관문을 열고 5장수를 벤 일이다. 

조조는 관우의 사람됨에 죽이지 못하고 보내준다. 조조의 사람을 대하는 그 마음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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