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인생 반전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오병곤.홍승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1시간 전 2번 째 완독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생각은 탄탄하다. 군살이 없다. 복싱선수가 몇년을 고통스럽게 자신을 단련한 복근답게 군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을 쓰고 싶은 사람만이 읽는 게 아니다.삶의철학이 있다. 자기단련법이 있고 치밀함이 있다. 빠르게 속사포처럼 말하는가 하면 잔잔히 흐르는 물결처럼 말하고 있다. 옆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말하는 책의 내용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누가 이 책을 공저로 썼다고 믿을 것이며 2권을 집필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겠는가? 책을 전문적으로 썼던 사람이라도 이 한가지의 주제로 쓰기란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저자들의 글쓰기 책들을 많이 읽어보았다.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이외수 [글쓰기의 공중부양]등등 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이렇게 뛰어난 묘사력을 가진 책은 보지 못했다. 도자기를 굽는 장인들이나 예술가들이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겪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 그 실력과 함께 인성이 그 안에 묻어나오는 법인데 친절하게 써놓은 책을 보니 간만에 책 읽는 재미가 감동이다.누구라도,정말 보통사람이라도 이 책을 3번 이상만 보면 책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용문도 휼륭하고 각 각의 단과 절의 내용이 중복적이지 않게 잘 표현해놓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할 때 경계심을 허물고 마음을 움직인다. 웃으면서 글을 쓴 사람은 읽는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고 글을 쓰면서 울어본 사람은 읽는 사람을 울릴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전달하기란 어렵다.]  저자들의 솔직 담백한 글이 가장 매력이다. 여자로 말하면 특출나게 이쁘지는 않지만 한 번 보면 계속 생각이 나는 사람, 또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 비누향기가 나는 사람, 긴 머리를 길렀고 청순한 이미지를 풍기는 여인, 가을 날 코스모스 같은 느낌을 주는 솔직한 저자들이다. 극찬에 극찬을 더 해도 모자람이 없는 휼륭한 책이다. 이 책을 써준 저자들에게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 쓰는 사람도 무엇을 쓰는지 모르고 쓰는.,그런 차원 높은 원고 말고 여기저기서 한줌씩 뜯어다가 오려붙인,그런 누더기 말고,마음의 창을 열고 읽으면 낡은 생각이 묵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열리는,너와 나,마침내 우리를 더불어 기쁘게 하는 땀으로 촉촉히 젖은 그런 정직한 책" 

나는 이 책이 그런 책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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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깃집 사장님 유명우, “나는 영원한 복싱인” [JES]


 






1992년 11월 17일. 일본 오사카 부립경기장에서 다음날 열리는 WBA 세계주니어플라이급 타이틀전을 앞둔 기자회견. 유명우는 통렬하게 이오카의 기를 죽였다.

"맡겨놨던 내 타이틀을 잘 보관해줘 고맙다". 장담대로 유명우는 이오카를 2:0 판정승으로 물리치고 '잠시 맡겨놨던' 챔피언 벨트를 가져왔고 1차 방어전(상대는 호소노 유이치)을 치른 후 명예롭게 은퇴의 길을 택했다.

국내 프로권투 사상 최다연승(36연승), 최장기간 타이틀 보유(6년 9일), 연속 최다방어(17차). 세계타이틀 리턴매치에서 승리한 유일한 선수…. 모두 유명우가 쓰고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들이다. 프로 통산 전적은 39전 38승 1패(14KO)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다운을 단 한번도 당한 적이 없다.

그는 지금 수원에서 오리집을 경영하는 사장님이다. 수원종합경기장 바로 앞편에 있는 '유명우의 신토오리'가 그가 3년 넘게 경영해오고 있는 일터다. 주말이면 매출이 한때 1000만원의 매상을 올릴 정도로 자리를 잡았고 조류독감 파동 이후에도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권투선수에서 오리집 사장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곡절이 적잖았다.

93년 은퇴한 뒤 사회에 나와 처음 시작한 사업이 예식장 사업. 형과 누나(유명우는 6남매 중 막내)들이 하고 있던 사업이라 비교적 쉽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유명우의 설렁탕'이라는 이름으로 전업했다. 6년 동안 하면서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 장사 노하우가 쌓였다. 그러나 광우병 파동이 터졌다.

이후 절치부심한 2005년 10월 수원에 오리집을 개업했다. 지금은 오리집 경영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놨다. 지난 해 조류독감 파동이 있었지만 얼굴 장사가 아니라 맛으로 승부했기 때문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는 3월 중순 송파구 문정동에 지금보다 더 큰 업소를 인수해 2호점을 열 예정이다. '유명우의 신토오리'는 '신토마을'의 오리집 체인점으로 그는 이 프랜차이즈의 전무를 맡고 있다.

나는 영원한 복싱인
이제는 은퇴했지만 그는 지금도 자신을 권투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영원한 권투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라고할 정도로 권투는 인생 전부다.

수익면에서는 훨씬 떨어지지만 그가 더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은 사실 복싱체육관과 프로모터다. MBC 권투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업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활동 폭을 점차 넓혀나갈 예정이다.

신림동에 있는 '유명우 범진 체육관'은 이윤보다 정통 복서를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체육관 소속의 동양챔피언 김정범에게 올해 안에 꼭 세계타이틀 매치를 성사시켜 주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난 해에는 프로복싱 남북 대결을 중국에서 열기위해 동분서주했으나 남북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일단 뜻을 접었다.



1회 평균 파이트머니 1억원
유명우가 17차방어에 성공하던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복싱의 전성기였다. 장정구, 박영균, 백인철 등 세계챔피언 명맥이 끊일줄 몰랐다. 당시 그가 받던 파이트머니는 회당 평균 1억원이었다.

매니저와 트레이너 몫, 세금 등을 제외하면 절반인 5000만원 정도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 당시 적잖은 챔피언들이 흥청망청 쓰다 쪽박을 찬 경우가 많았지만 그는 주로 부동산에 차분하게 투자해 은퇴할 때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89년 비교적 일찍 결혼한 그는 군 복무중인 아들과 고2가 된 딸을 두고 있다. 6년간 세계챔피언을 유지한 덕에 비교적 넉넉한 부를 손에 쥐고 나와 사회 연착륙에 성공했지만 운동 선수의 은퇴 후는 불안하기 그지 없다.

그는 "링에서는 한 명의 상대와 싸우면 되지만 사회에서는 극복해야할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다"며 "감량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사회에 나와 열심히 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유명우

1964년 1월 10일 서울생, 1982년 데뷔, 85년 세계타이틀 획득, 89년 결혼, 91년 12월까지 17차 방어성공, 91년 18차 방어 실패. 1992년 18차 방어전 상대였던 이오카 히로키와 재대결 타이틀 탈환, 1차 방어전서 호소노 유이치를 이긴 후 타이틀 반납 은퇴. 총 전적 39전 38전 1패(14KO) 국내 프로권투 사상 36 최다연승, 최장기 타이틀 보유(6년 9일), 17차 최다연속 방어, 1991년 세계권투협회(WBA) 선정 올해의 복서. 현재 유명우 신토오리 수원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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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94세 ‘침과 뜸의 달인’ 김남수 선생, 무병장수의 비결을 말하다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아흔넷의 구당 김남수옹은 지금도 왕성하게 환자를 치료하고 전국을 누비며 강연한다. 우리나라 전통 의술인 침과 뜸을 널리 보급하겠다는목표를 향해 쉼없이 달려온 그의 남다른 인생과
장수비결.






지난 추석 KBS에서 이틀 연속 방영한 다큐멘터리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아흔넷의 김남수옹은 전통 의술인 침과 뜸을 지켜온 자신의 한평생을 소개했다. 그의 침과 뜸 치료를 통해 만성질환에서 벗어난 환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2도 화상을 입은 환자가 침 치료를 받고 1년 사이에 흉터가 거의 사라진 사례 등이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다.
김남수옹을 만나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서울 청량리 남수침술원을 찾았다. 온화한 인상의 김옹은 아흔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무엇보다 허리가 꼿꼿하고 피부가 맑았다. 기억력 또한 비상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굵직한 일에 대해서는 사람의 이름과 날짜까지 정확히 떠올리며 3시간짜리 강의도 가볍게 이끌어간다고 한다.
“제가 운영하는 봉사활동단체인 ‘뜸사랑’에 의사들이 많이 와요. 그분들이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해보자고 해서 검사를 했는데 뇌 상태가 젊은 사람과 똑같이 양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에 뜸 뜨고 일주일에 한 번씩 침 놓는 것이 건강비결
누구나 궁금해하는 그의 건강 비결은 말할 것도 없이 평생 손에서 놓지 않은 침과 뜸이다. 침과 뜸의 효능에 대해 김옹은 “우리 몸 안에는 음양의 전기가 흐르고 있는데 전기가 시원치 않으면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시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이때 침이나 뜸을 놓아 잘 가게 하면 병이 없어진다. 침은 기운을 움직이고 뜸은 피를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뜸은 밥 먹듯 하고 침은 고기 먹듯 하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침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놓는다면 뜸은 매일 놓으라는 뜻이죠.”



김옹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식사는 아침 6시와 낮 12시, 오후 6시에 하는데 밥 한 공기에 나물 등 채식 위주의 식단을 즐긴다고 한다. 술·담배는 물론 간식은 일절 안 한다고.
오전 9시가 되면 자신이 개발한 무극보양뜸을 놓는데 손에 닿는 부위는 직접 뜨고 등과 머리에 놓는 뜸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김옹이 70년 이상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체계화한 무극보양뜸의 핵심은 누구나 매일 같은 자리에 뜸을 뜨면 몸에 원기가 생기고 면역력이 높아져 질병을 예방하는 건강체질로 개선된다는 것. 그는 뜸을 뜨면서 10분 정도 달게 낮잠을 잔다고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뜸을 뜨면 다음 날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어요. 그만큼 뜸의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1915년 전라도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김옹은 의원이던 선친으로부터 침구학을 전수했다. 1943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침술원을 열어서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열한 살 때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침과 뜸을 배웠어요. 침술원을 열어 침을 놓고 뜸을 떠주곤 했는데, 효험이 좋았는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수많은 정·재계, 연예계 인사들이 그를 찾아 치료를 받았다. 얼마 전에는 발바닥 티눈으로 고생하던 수영선수 박태환도 김옹의 뜸 치료를 통해 티눈을 제거했다고 한다. 평생 환자를 살피고 치료해온 그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얼굴에 푸른빛이 도는 사람은 간에 탈이 났겠구나, 얼굴이 불그스레한 저 이는 심장에 이상이 있구나, 등뼈 맨 위 부위에 살이 많고 툭 튀어 나온 저 사람은 중풍이 올 확률이 높으니 조심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내가 무슨 비법 같은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의서에 나와 있는 병증을 판단하는 방법을 완전히 익히고 또 임상경험을 쌓으면서 남보다 빨리,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게 된 거죠. 병이란 결국 균형이 무너져 생기기 때문에 무너진 흔적이 몸 어딘가에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병에 따라서 그게 말과 행동, 냄새 등으로 드러나죠.”


 









김옹이 유명해진 건 지난 86년 개발한 화상침 치료법 때문이기도 하다.
“화상침을 맞으면 가장 먼저 고통스러운 통증이 빨리 멎고 빠른 시간 안에 진물이 멈춥니다. 특히 화상침 치료의 장점은 보기 흉한 흉터를 남기지 않고 화상 부위 관절의 변형을 방지하는 것이죠.”
김옹은 아내가 집에서 사고로 화상을 입자 이를 치료하기 위해 화상침을 개발했다고 한다.
“연탄보일러를 땔 때였는데 집 사람이 더운 물을 잘못 부어 얼굴부터 발등까지 전신을 데었습니다. 특히 가슴은 살점이 옷에 묻어날 만큼 심하게 데었어요. 화상을 입어 살이 문드러진 자리에 침을 놓은 지 사흘 만에 진물이 그치고 딱지가 앉더니 8일째 되는 날 딱지가 떨어지고 매끈한 새 살이 드러났습니다. 그 뒤 싫다는 아내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침술원에 와 앉아 있으라고 했어요. 사람들에게 침으로 화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증거로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김옹은 아내 사랑이 극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 2월 아내와 사별했다.
“우리가 17평 연립주택에서 50년을 살았어요. 밖으로 딸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아주 협소한 집이었는데 아내가 그 계단을 오르내리다 넘어져 다쳐서 다리를 못 쓰고 앓다가 떠났습니다. 병을 고치는 사람이 자기 식구 병은 못 고쳤으니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서양에서도 인정하는 침·뜸의 가치 한국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을 날 오면 좋겠어요”
아내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옹은 최근 또 한 차례의 시련을 겪었다. 서울시가 침사 자격증을 가진 김옹이 뜸 진료까지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며 한달 반 동안 자격정지 행정처분을 내린 것. 지난 62년 침구사 제도가 폐지(김옹은 침구사 제도가 폐지되기 전 침사 자격증을 획득했다)되면서 그는 40년이 넘도록 이러한 크고 작은 분쟁에 시달리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침구사 제도가 폐지된 후 그는 침·뜸 의술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민간단체 ‘뜸사랑’을 조직했다. 돈을 받고 진료 행위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뜸사랑’에서 실시하는 침·뜸 교육과정을 거쳐간 이들이 지금까지 4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4천 명 가운데 1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 뜸 요법사 자격을 얻은 이들은 1천6백여 명입니다. 시험이 어려워서 떨어지는 분이 많아요. 정년퇴임한 서울대 교수 한 분은 세 번 만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교수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부끄러워하기에 그만큼 ‘뜸사랑’ 시험이 대단한 것 아니겠냐고 말해줬어요(웃음).”
김옹으로부터 침·뜸 의술을 배운 이들은 현재 전국 30여 곳에 있는 ‘침뜸 봉사실’에서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에게 무료로 침과 뜸 치료를 하고 있다.
“일본·중국은 물론 미국도 의료제도를 통해 침·뜸을 육성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동서양 의학을 종합하는 대체의학이 각광받고 있는데 우리만 이를 소홀히 하는 게 무척 안타까워요. 조상이 물려준 보배인 침과 뜸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 김남수옹의 장수 비결, 무극보양뜸 뜨는 법
김남수옹에 따르면 침을 놓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뜸은 혼자서, 또는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뜸자리를 잡을 때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김옹의 ‘무극보양뜸’은 70년 이상의 오랜 임상결과 개발한 뜸요법. 오장의 균형을 맞춰주고 기운을 북돋워준다고 한다. 또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백혈구·적혈구 수치를 증가시켜 면역계 질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혈자리는 백회(머리)·중완(배)·폐유(등) 등 12곳(여자는 13곳)이다. 이곳에 뜸쑥으로 쌀알 반 톨 정도 크기의 뜸봉을 만들어 올리고 불을 붙인다. 하루 3~5회씩 매일 뜨는 것이 좋으며 뜸쑥은 3년 이상 묵힌 쑥으로 만든 것이어야 독소는 빠지고 불이 잘 붙으며 끝까지 잘 타고 지나치게 뜨겁지 않다고 한다.




 

뜸봉 만드는 방법

1.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소량의 뜸쑥을 놓고 엄지로 살살 굴려 길게 늘인다.
2. 늘어난 뜸쑥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어 쌀 반톨 정도 크기로 떼어낸다.
3.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물을 살짝 묻혀 해당 뜸자리에 물기를 묻힌다.
4. 뜸봉을 물기가 묻은 뜸자리에 올려놓고 선향으로 뜸봉 끝에 불을 붙인다.
뜸은 보통 한 자리에 다섯 장씩 하는데 둘째 장부터는 물 묻히는 과정을 생략하고 타고 남은 재 위에 뜸봉을 올려 붙이면 된다.

무극보양뜸자리 잡기



백회 양쪽 귓구멍에서 머리 위로 이어올려 선을 긋고 코 위로 인체의 중앙선을 그어 두 선이 십자로 교차하는 점. 치매예방·두통·중풍·이명·코막힘·뇌일혈·어지럼증·치질 등에 효과가 있다.



폐유 고개를 약간 숙이고 등 뒤 목 밑을 보면 툭 튀어나온 뼈가 있는데 이것이 제 7경추다. 이곳 아래로 흉추가 이어지는데 손가락으로 눌러 더듬어 제 3흉추와 제 4흉추 사이에 쏙 들어간 곳이 신주혈이다. 폐유는 신주 양옆에 있는데 신주와 견갑골 모서리 사이 중간에 위치한다. 폐결핵·폐렴·소화불량·기관지염·천식·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있다.
고황 제 4흉추와 제 5흉추 사이 쏙 들어간 곳에서 양옆으로 견갑골 모서리에 위치한다. 폐질환·신경쇠약·소화불량·식욕부진 치료 등에 효과가 있다.



곡지 팔꿈치 안쪽에 있는 가로무늬 줄(주횡문)과 손등이 위로 향하도록 곧게 펴고 팔 중간으로 그은 세로선이 교차되는 점에 있다. 성인병 예방 및 두통, 피부병, 상박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



중완 배에서 가슴으로 더듬어 올라가다 양쪽 갈비뼈가 만나 쏙 들어간 곳과 배꼽 사이의 중간점에 있다. 고혈압·위궤양·소화불량·복통·구토·급성위염·위출혈·변비·설사에 효과가 있다.
기해·관원(남자) 배꼽의 중앙과 치골 위를 잇는 선을 5등분해서 배꼽 아래로 1.5/5점이 기해, 3/5점이 관원이다. 기해는 생식기·장·신장 질환에, 관원은 조루·양기부족·발기부전·복막염 등에 치료 효과가 있다.



중극·수도(여자) 배꼽 중앙에서 치골 위를 잇는 선을 5등분해서 배꼽 아래 4/5점이 중극, 젖꼭지 아래로 내려 그은 선과 관원 사이 중간에 수도가 있다. 중극은 여성의 모든 생식기 및 신장 질환·자궁 물혹·복막염에, 수도는 월경·변비·방광염·자궁염·불임증·부종·탈장에 치료 효과가 있다.
족삼리 슬개골(무릎뼈) 바로 아래 양옆에 쏙 들어간 곳이 슬안이다. 다리 안쪽이 내슬안, 바깥쪽이 외슬안이다. 외슬안에서 정강이뼈를 따라 밑으로 손가락 4개 붙인 길이만큼 내려간 곳이 족삼리다. 신경통·고혈압·위경련·소화불량·변비·빈혈 등에 효과가 있어 ‘성인 무병장수혈’이라고 부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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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세 나이로 100km 울트라 마라톤 여성부 1위 차지한 김순임

기획·구가인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42.195km가 성에 차지 않아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아줌마, 김순임씨. 달릴 때는 힘들지만 한계를 극복했다는 쾌감 때문에 또다시 달리게 된다는 그를 만나 52세의 나이에도 날씬한 몸매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배워봤다.






지난 2월 경남 고성에서 열린 1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11시간23분30초의 기록으로 여성부 1위를 차지한 김순임씨(52). 사람들은 그를 보고 두 번 놀란다. 처음에는 그가 대회에 참가한 11명의 여성 중 최고령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그 다음에는 스물넷, 스물다섯 살 두 아들을 둔 아줌마임에도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 놀라는 것. 실제로 160cm에 55kg, 보기 좋게 근육이 붙어 탄력 있는 몸매에 긴머리를 하나로 묶고 달리는 그의 뒷모습은 결코 아줌마스럽지(?) 않다.
“등산이나 수영도 했지만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몸매가 더 단단해지고 보기 좋게 라인이 생긴 것 같아요. 가끔 혼자서 달릴 때면 총각들이 ‘아가씨’로 착각하고 쫓아오기도 하죠(웃음).”
김순임씨는 하루 1시간씩 한강 둔치를 뛴다. 지난 겨울 영하 15℃에 이르는 맹추위에도 달리기를 거르지 않았다는 그에게 달리기는 밥 먹고 잠자는 것과 같은 하루 일과인 셈.
“2000년 4월, 경남 통영에서 서울 상계동으로 이사왔어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서울에서 근무를 하게 됐거든요.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심심했어요. 서울에 아는 곳은 시집밖에 없어서 외롭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놀자’고 말할 성격도 못 됐던 그가 선택한 것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달리기. 김순임씨는 그해 5월부터 매일 1시간씩 중랑천 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2000년 6월 임진각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가 열렸어요. 신문에서 보고 ‘참가나 해보자’ 하는 생각에 신청하고 무작정 뛰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4등을 했어요. 폼이 좋다며 누구에게 배웠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때까지 김순임씨는 달리기에 관련된 책을 사 보거나, 전문가에게 자세 교정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운동화 끈 동여매고 모자 눌러쓰고 단순무식하게 달렸던 것. 내친김에 그해 10월에는 춘천 마라톤 풀코스 대회에 도전했고, 3시간52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입상권에는 못 들었지만, 첫 도전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이듬해인 2001년 같은 대회에 도전한 그는 3시간30분대를 기록했다. 그 이후부터 김순임씨는 집안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달렸고 주말에는 전국을 돌며 마라톤 대회에 참석했다.
“대회 신청을 안 하면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하는 식으로 늘어지면서 연습에 게을러져요. 하지만 대회를 앞두면 목표가 있으니까 긴장하게 되고 연습도 집중해서 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한 달에 여덟 번이나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적도 있다고 한다. 토·일요일마다 대회에 출전했던 것.
“오전 9시나 10시쯤 대회가 시작해 하프는 1시간 30분, 풀코스는 3시간 30분이면 끝나요. 대회를 마치고 점심식사하고 집에 오면 가뿐하게 하루를 마치죠.”

“친구들은 모두 골다공증, 갱년기 증세 등으로 고생하지만 저는 흰머리도 없어요”
그가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처음 도전한 2004년 8월. 당시 울트라 마라톤 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해 여름 날씨가 너무 더워 낮이 아닌 밤에 뛰는 울트라 마라톤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그는 12시간을 조금 넘는 기록으로 여성 참가자 중 2위로 들어왔다.
“원래는 딱 한 번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 다음 달에 양양에서 열린 ‘설악컵 국제울트라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어요. 밤 9시 남대천 둔치에서 출발, 100km 코스를 달렸는데 13시간13분20초를 기록해서 여자로는 1위, 전체 순위로는 14위로 골인했죠.”
초콜릿과 비타민, 음료수 한 병이 든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도로는 물론 산길을 뛰어다녔고, 눈을 비비고 볼을 꼬집어가면서 잠과 싸웠다고 한다.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뛰게 만드는 걸까.
 

“울트라는 하프나 풀 코스를 뛸 때와 또 다른 묘미가 있어요. 하프나 풀은 1위로 들어가기 위해 옆에 사람이 쓰러져도 그냥 지나가요. 하지만 울트라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기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힘들어하면 배낭에 있는 간식을 꺼내서 서로 나눠 먹으며 격려 해준다는 점에서 인간적이에요. 게다가 완주를 할 때마다 한계를 넘어섰다는 성취감도 크고요.”
그래서일까. 대회를 끝내고 나면 발톱이 서너 개 빠지고, 너무 힘들어 매번 “또다시 (울트라 마라톤에) 출전하면 성(姓)을 간다”고 말하지만 김순임씨는 울트라 마라톤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그는 달리기를 하면 몸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며 주부들도 달리기에 빠져볼 것을 권한다.
“제 친구들은 모두 골다공증이다, 갱년기다 해서 골골하는데 저는 그런 걱정을 안 해요. 염색을 하지 않아도 흰 머리카락이 없고요. 게다가 어느 집이건 걱정거리 한 가지씩은 있잖아요. 주부들은 늘 걱정거리를 껴안고 사는데 달리기를 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응어리를 풀 수 있죠.”



김순임씨 조언! 달리기 이렇게 해야 해요~
어떤 신발과 옷차림이 좋을까



매일 달리기를 연습하려면 좋은 러닝화를 구입하는 게 좋다. 특히 초보자일 경우 관절과 인대가 단련되지 않은 만큼 충격 흡수를 잘할 수 있는 신발을 선택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발이 부어 있는 오후에 신발가게에 가 신어본 후, 쿠션이 좋은 신발을 고른다. 너무 두꺼운 신발은 안정성이 떨어지므로 30mm 정도가 적당하다. 발끝은 1cm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하며 발과 발등 사이가 느슨하면 물집이 생기고 너무 조이면 혈액순환이 나빠져 피곤해지기 쉬우므로 이 부분도 확인해야 한다.

옷차림은 가볍고 뛰기 좋은 것이면 된다. 하지만 여름이나 겨울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여름철에 면 100%의 옷은 팔다리에 휘감겨 달릴 때 불편하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대신 쿨맥스 소재 옷이 습기를 빠르게 배출시키고 잘 마르기 때문에 추천할 만하다. 또 햇빛으로부터 눈이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나 챙이 달린 모자를 착용하고 자외선 차단 화장품을 바르는 것은 필수. 반면 겨울철에는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근육을 보호해줄 수 있는 차림이어야 한다. 일반 훈련복에 방풍을 위해 윈드브레이커나 재킷을 입고, 롱 팬츠를 덧입어 보온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 속에 레깅스나 타이즈를 신어도 좋고 모자, 장갑, 마스크, 목도리도 챙겨야 한다.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달려도 되나



빠르게 걷기부터 시작해서 충분히 워밍업을 거친 후 본격적인 달리기에 들어가야 한다. 특히 비만인 여성은 근력이 약하기 때문에 기초체력을 충분히 쌓은 후 달려야 무릎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처음 걸을 때 자세가 중요하다. 걷기의 경우, 어깨를 뒤로 해 가슴을 펴고 아랫배와 엉덩이에 힘을 준다. 턱은 가슴 쪽으로 살짝 당기고 시선은 20~30cm 앞을 보고 바른 자세로 걸어야 척추가 곧아져 심장기능이 강화된다. 또 팔은 양손에 주먹을 가볍게 쥐고 가슴 앞에서 모아지도록 앞뒤로 자연스럽게 흔든다. 발은 양 발의 엄지발가락과 뒤꿈치 안쪽이 스칠 정도로 옮기는 일자걸음이 몸에 배도록 연습한다. 매일 30분씩 1주일 이상 빠르게 걷기를 연습한 후 달리기에 들어간다. 운동의 강도는 맥박수를 재 ‘220-내 맥박수의 60% 수준’에서 차츰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500m를 달려서 숨이 차고 힘들면 60% 정도인 300m를 2~3주 정도 달려본다. 달리고 난 후 피로가 2~3일간 유지되면 운동 강도를 조금 더 줄인다. 1주일에 3~4회, 처음에는 1회 20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5분 이상 몸을 풀어주는 것은 기본. 머리는 숙이지 않고 70~80m 전방을 보며 가슴을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해 지면과 수직을 이루게 한다. 양쪽 발과 무릎은 나란히 가볍게 스치듯이 평행 이동한다. 장거리 달리기의 경우 뒤꿈치가 지면에 먼저 닿고, 다음에 발의 가운데 부분, 마지막으로 발의 앞부분이 지면을 차고 나가도록 한다. 호흡은 복식으로 길고 깊게 한다.

장소는 어디, 시간은 언제가 좋을까

처음에는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의 산책로, 자전거 도로 등 주변의 장소를 이용한다. 초보자의 경우 학교 운동장의 흙길은 관절에 부담을 덜 줘 좋다. 운동장을 달릴 경우 2~3바퀴에 한 번씩은 달리는 방향을 바꿔주는 것이 좋다. 한쪽 방향으로만 달리면 한쪽 다리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 코스를 두세 개 정도 확보해 다양한 곳에서 달리는 것도 매너리즘 탈피를 위해 좋은 방법이다. 운동시간이 언제가 좋은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새벽은 대기오염 농도가 높아 바람직하지 않으며 혈압이 올라가는 아침보다는 오후나 저녁이 좋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같은 강도로 달릴 경우 아침에 가장 많은 지방을 연소시킬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김순임씨의 경우, 오전에 운동 하는 편이다. 개운하게 운동을 하고 오후에 볼일을 보면 하루를 알차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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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그는 나쁜 남자다. 

 

고아로 태어난 그는 대학 졸업이 소원이었던 양어머니에게 ‘3학기만의 중퇴’라는 상처를 안겼다. 

첫 딸을 낳아 준 여자는, 임신 시킨 채 무참히 버렸다.

함께 일했던 동료 대부분은 그를 “폭군”이라 부르며 떠났다. 

 

하지만 그만큼 세상을 열광 시킨 남자는 없었다. 

그가 인생의 한 막을 시작할 때마다 

그가 나락에서 “희망”을 발견할 때마다

세상의 역사는 새로 씌어졌다.

돈과 명예, 열정을 모두 한 손에 쥔 이 시대의 아이콘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먹고살기 위해 스무살이 되던 해

 

 

스티브 워즈악과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다.

불과 10년후 4000여명의 종업원과 함께 20억달러 가치의 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 1막은 여기까지였다.

30살 때 모든 경영진이 그를 회사에서 내쫓았다.

이후 시작한 인생 2막은 모든 결과의 싸움이었다.

돈은 떨어져가고 언론은 냉혹했으며 동업자들은 등을 돌렸다.

5년 동안 “넥스트”와 “픽사”를 설립했지만,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몰렸다.

 

마지막 순간, 신(神)은 그의 편에 섰다.

 

픽사가 만든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것이다.

 

1996년, 추락하고 있는 애플은 쫓아냈던 스티브 잡스를 ‘임시(interim)’라는 딱지를 붙여 ‘구원투수’로 불렀다.

2년 후 스티브 잡스는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만든 아이맥(imac)을 내놓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2004년 8월, 그는 췌장암에 걸려 3~6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판정을 받았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 정리를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췌장암을 이겨냈다.

 

그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한다.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미련할 정도로 자기 길을 가라!”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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