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비처럼 1
야설록 지음 / 계몽사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1999년 음료회사를 다닐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시 힘든 업무였는데 이 책을 정말 우연히,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읽기 시작해 새벽 3시넘게 읽어 다음날 정말 피곤한 날을 보낸 기억이있다.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책을 잡고 다른 일을 하기가 힘들었다. 빠른 속도 전개, 무술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탄탄한 구성등등이 나를 사로 잡았다. 

명성황후, 민자영....   외로운 검객 이무명. 

야설록 작가의 회심작이다. 10년만에 읽었지만 별다섯개 주는게 아깝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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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얼추 2백 년째 내려오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그간 수많은 답변이 나왔지만, 동시대의 입문자들이 마음 속 깊이 새겨둘 만한 이야기는 극소수에 불과했죠. 사진 애호가는 늘어가지만, 여전히 사진은 어렵습니다(라고들 합니다).

머리보다 먼저 몸으로 사진을 익히고 그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이라고 주장하는 사진가, 조선희가 드디어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한 책을 써 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쓰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망설임 없이 인터뷰를 신청했습니다. 그녀라면 좀 다른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으니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역시 시원합니다. (인터뷰 | 알라딘 도서팀 송진경, 최원호)

   






조선희 : 책 어땠어요?

알라딘 : 예 좋았습니다. 테크닉 위주로 구성된 입문서와는 달리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고요.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진가의 마음가짐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더군요. 그런 지침서가 한 권쯤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인터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네요.


조선희: 제가 그런 거 잘 해요. 조심하세요. (웃음)

알라딘: 사실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기를 낳고 나서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조선희: 저는 잘 모르겠는데, 주위에서 그래요. 이를테면 ‘이젠 여자 사진도 잘 찍네?’(웃음)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사랑이 담겨 있는 그런 거.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게 돼요. 옛날엔 안 그랬어요. 목표가 있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가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젠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단 생각도 들고. 촬영 스탭들도 다 같은 사람이 모인 거니까 배려하게 되기도 하고. 아, 차라리 그런 거 몰랐으면 더 좋았을까? (웃음)
카메라 고르기와 후보정도 '네 멋대로 해라'

알라딘: 네 그럼 가볍게 책 얘기로 들어가 볼께요. 책 초반부에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를 보여 주셨는데요. 어떤 기종인가요?

조선희: 이젠 구하기가 어렵겠던데. 야시카 T4*. 싸고 가볍고 칼 짜이즈 렌즈라서 좋아요. 바디는 별 거 없어요, 다 똑같죠. 그렇지만 렌즈는 좋아야 하거든요.

(Tip! 야시카 T4-흔히 유럽에서 T4 super, 동양권에서 T5D로 불리우는 모델. 20만원대의 가격에 유명한 칼 짜이즈 렌즈를 탑재해서 화제가 되었던 필름 카메라로써, 이 카메라를 써본 최MD 역시 강력 추천하는 기종. 사진에 나온 카메라는 역시 조선희씨가 아끼는 올림푸스의 E-Cru 한정판)

알라딘: 그렇다면 다른 분들께 부담없이 추천할 수 있는 카메라로는 뭐가 있을까요? 굉장히 많은 분들께서 늘 갖고 계신 고민인데요.

조선희: 책 앞부분에도 나와 있는데, 주위 사진가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대강 좁혀지는 분위기예요. 캐논 G9, 리코 GR-1, 라이카 D-Lux. 저 역시 자주 쓰는 것도 있고 몇 번 만져본 것도 있는데 역시 다들 좋아요.

알라딘: 요즘의 추천 대세는 DSLR인데 그게 없네요?

조선희: 처음에 그 기능들이 다 필요하겠어요? 가볍고 쉬워서 찍기 편한 카메라들이 제일 좋아요. 카메라든 렌즈든 마찬가지죠. 아 저 기능이 필요하겠다, 그런 흥미를 느낄 때 거기로 움직여도 늦지 않아요. 자기가 원할 때 움직여야지, 아니면 금방 힘들고 어려워하게 돼요.

알라딘: 그렇군요. 기술적인 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책에서 말씀하신 줌 렌즈에 대한 비판이라거나...

조선희: 음, 그게 무조건 줌 렌즈가 안 좋다는 얘긴 아녜요. 저도 꽤 써요. 다만 초보들이 프레임 감각을 익히지도 못한 상태에서 밀고 땡기고 하면 전혀 발전을 못해요. 줌의 혜택을 누리기 전에 기본적인 걸 느끼고 익혀야 한다는 거죠.

알라딘: 그럼 디지털 후보정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선희: 사진은 묵혀두는 게 아니에요. 컴퓨터 작업이 아날로그에 비해서는 훨씬 유용하죠. 다만 어디까지냐가 문제인데, 요즘은 후보정을 너무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심지어 프로페셔널 사진가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 후보정 때 손 보면 되니까 촬영에 집중하지 않고 나태해지는 느낌. 게을러지고요. 사진가는 사진 찍는 걸 즐겨야지!
사진과 삶, <네 멋대로 찍어라>

알라딘: 무척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럼 가장 촬영을 즐겼던, 좋아하는 모델이나 사진은 뭐가 있나요?

조선희: 이거 가장 식상한 질문인데(웃음).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면 물론 다 생각나요. 굳이 따지자면 힘들었던 시절에 찍은 것들이 더 생각나고. (잠시 생각) 서정주 시인 인터뷰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다 하고 나서 부인이랑 기념사진을 찍어 달래요. 그래서 그냥 담벼락에 서서 찍었는데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인터뷰 와중에도 일곱 번인가를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꼭 소년소녀 같고. 그 사진 너무 좋아해요. 이정재 씨 담배 피는 사진도 좋았고... 그땐 모델이랑 나, 담배연기, 세상에 이 셋 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그거 딱 세 컷만 찍었던 건데. 빛 때문에 눈이 너무 아파서요.

알라딘: 디지털 카메라도 아니었을 텐데 운도 좋았다고 봐야 할까요?

조선희: 그래요. 사진의 우연성. 그게 참 매력적이죠. 행운은 늘 감사하는 것이고.


알라딘: 다시 책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혹시 책을 쓰면서 영감을 받은 다른 입문서나 사진 책이 있나요?

조선희: 없어요. (웃음) 아니 진짜 없어요. 인터넷에 널린 똑같은 소리, 아니면 너~~무 어렵거나. (웃음) 그래서 이 책을 더 쓰고 싶어진 거라니깐. 3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쓰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엄청 답답했어요. 그러다가 주위에서 하나둘 물어오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풀어나가게 된 거죠.

알라딘: 그럼 각오 같은 게 있었나요? 책을 쓰면서의 목표라던가.

조선희: 머리 속에 든 거 말고 몸으로 쌓아온 감각을 보여주자는 거. 느낌이나 삘(feel) 같은 것들. 테리 리차드슨은 자동 카메라로 작업해서 유명세를 탔잖아요. 어떤 조건이나 상황보다는 자기 느낌이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어쨌든, 사진 책들 진짜 너무 어렵더라. (웃음)

알라딘: 네, 책에서도 자기 느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었죠. 그렇다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느낌을 갖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조선희: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너무 많이 안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타입을 만들게 되거든요.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어떤 모임에서 누가 인물 사진을 무슨 렌즈로 찍냐고 묻더라고요. 100mm 렌즈로 찍는다니까 엄청 놀라는 거예요. 백미리 렌즈는 안 쓰는 게 그 쪽 상식이라나? 아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백미리 렌즈가 얼마나 좋은데. 접사도 되고(웃음). 세상에 불문율 같은 건 없어요. 다른 사람이 뭐라든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알라딘: 책에 실린 ‘목 위로는 다 잘라버린 사진’도 그런 식이겠네요.

조선희: 그렇죠. 보통 처음에 사진 배울 때 불문율이잖아요. 팔목, 발목, 하여튼 목이란 목은 자르지 말라. 근데 어떡해요. 저는 이 사진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끌리는 대로 가야죠.

알라딘: 조금 관점을 바꿔서, 그럼 세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고정관념 같은 것도 느끼시겠어요. 조선희 하면 으레 언급되는...

조선희: 연예인 프로필 전문 사진가. 저는 이것저것 다 찍는데, 사진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 같은 데 뜨는 것들만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죠. 그렇게 이미지가 고정되는 게 싫어요. 저는 ‘그 냥 사 진 가’예요.

알라딘: 고정관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최근에는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찍는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사진가들, 특히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이 오히려 서로 엇비슷하고 스테레오타입화 된 사진들을 찍는 것 같아요. 자신의 느낌을 따라 찍었다고들 하는데 결과물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뭐가 문제일까요?

조선희: 그 경우에는 너무 남의 사진을 많이 봐서라고 생각해요. 저도 저와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각자의 컬러랄까, 스타일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 괜찮거든요. 그게 중요해요. 스타일은 닮을 수가 없는 거예요. 무비판적으로 남의 사진들을 구경하기만 하면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걸 잃어버리게 돼요. 매우 중요한건데도 말이죠. 저는 그래서 다른 사진들을 너무 많이 보지 않으려고 해요. 나도 모르게 닮을까봐.

알라딘: 좀 더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면?

조선희: 솔직해지라는 거죠. 스테레오타입 사진은 자기 스타일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한테서 나와요. 그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건 아니죠.

알라딘: 그렇다면 자신의 촬영 스타일은 어떤가요?

조선희: 엄청나게 몰입하거나, 아니면 머리를 싹 비우고 찍는 거죠. 틈틈이 인터넷 고스톱도 치고(웃음). 어중간하면 애매한 사진이 나오거든요. 다만 릴랙스를 하더라도 모델은 꼼꼼히 관찰해요. 사람마다 몸짓이 있는데, 그 사람만의 몸짓을 담을 수 있으면 성공이죠. 그걸 기다리고 또 담는 거죠.

알라딘: (조선희 씨의 다음 스케쥴 시간이 다가옴) 와.. 짧은 시간인 것 같은데 엄청 많은 얘길 했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책을 꾸준히 쓰고 계신데, 다음 책에 대한 구상도 있으신가요?

조선희: 책을 쓰는 게 좋아요. 제 자신부터가 정리되는 기분이죠.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인도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이야기를 꼭 해 보고 싶어요.

알라딘: 네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인터뷰였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포즈 잡고 사진 한 번...

조선희: 어떻게 할까요?

알라딘: 팔을 벽에 짚고 이렇게, 좀 카리스마 있게요.

조선희: 하나도 안 카리스마 있는데?

알라딘: 아하하;;;



*여담으로 나온 팁-
음식 사진 매니아 송MD를 위한 음식 사진 폼나게 찍기 즉석 강좌
"자 봐. 일단 플래시는 절대 쓰면 안돼. 그리고 원래 주위에 있는 조명을 최대한 쓰는 거야. 옆에 초가 있으면 초를 들고 이리저리 좋은 각도를 찾는 거지. 조명이 있으면 그 조명이 들어오는 쪽과 그림자 지는 쪽을 잘 살펴서 어디가 제일 예쁠지를 살펴보고. 거기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제일 예쁜 음식 사진이 나와. 어두워서 셔터 속도가 안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정시켜야지 뭐." (이후 담배를 쌓아서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비법을 알려주심)



1971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재학 중 써클에서 시작한 사진 활동에 매력을 느껴, 졸업 후 김중만을 사사했다. 이후 유명 패션지와 광고 사진, 앨범 재킷이나 영화 포스터 등 다방면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저서로 <왜관 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 <조선희의 힐링 포토>가 있다.

조선희의 저서 모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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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소중한 가치 중 하나인 유머를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에 담아 독자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한 공지영 작가. 따사로운 햇살 가득한 날에 만난 그녀는 날씨만큼 화사한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여유로움이 물씬 느껴지는 밝은 얼굴을 대하다 보니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의 ‘피할 수 없다면 감사하게 즐겨버리는 것’ 이 문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 편안하게 생각한다, 기다리면 된다”며, 예전과는 다르게 감사함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그녀. 책 속의 넉넉한 편안함이 직접 대면하는 그 순간에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화창한 봄날의 유쾌한 데이트를 공개합니다. (인터뷰 | 알라딘 도서팀 송진경)
   


"신나고 좋은 일을 해봅시다! 나에게 또 남에게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알라딘 : 화창한 날씨에 뵙게 되서 더 기뻐요. 작가님과의 만남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최근에 펴내신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작업하는 동안 유쾌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읽는 저도 유쾌한 시간을 가졌어요.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처럼 유쾌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또 한번 집필할 생각이 있으세요?

공지영 : 네, 아주 많아요. 예전에 동화 한번 썼을 때도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와 같은 이야기를 써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동화도 굉장히 가볍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작업이거든요.

알라딘 :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글을 모은 것인데요. 가볍게 쓰려고 했는데, (정치사회적) 주변 상황들이 가볍지 않아 곤란했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으세요.

공지영 : 신문연재가 아니었으면 부담이 덜했을 거에요. 지면이 저한테 많이 주어져서 저 나름대로 비판하는 글을 많이 쓰고 싶었어요. ‘한말씀’ 하고 싶은 걸 많이 참느라 힘들었던거죠.

알라딘 :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도가니’ 연재 중이신데, 연재기간이 언제까지죠?

공지영 : 5월까지에요.

알라딘 : 아무래도 온라인상에 연재를 하다보면,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을텐데, 어떠세요?

공지영 : 아, 아주 부담스러워요. 앞으로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요.(웃음)

알라딘 : 온라인상의 연재와 책을 출간하는 것, 둘 중 어떤 것에 훨씬 더 매력을 느끼시는지요?

공지영 : 앞으로 온라인 연재를 하지 않겠다는 건 농담이구요, 둘 다 아주 매력적이에요. 저는 ‘범죄와 마약’을 제외하고는 다 해보자는 주의거든요, 온라인 연재도 그 생각의 일부였어요.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책출간과 색다른 매력을 느꼈죠.

알라딘 : ‘도가니’ 작업 이후의 구체적인 활동계획은?

공지영 : 당분간은 계획이 없어요.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홍보활동에만 주력하려고요.

알라딘 : 2년 전 한 월간지 인터뷰를 통해 “난 다산(多産) 작가가 될 거야. 많이 쓸 거야. 이제부터 많이 쓸 거야. 난 가장이야. 애들하고 같이 살아야 돼.”라고 말씀하셨듯이, 실제로 많은 작품들을 펴내셨어요. 글창작을 산고(産苦)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다작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공지영 : 데뷔했을 당시에 1년에 1권씩 정도는 장편을 냈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다작하는 사람이다’라고 표현하는 게 ‘글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다’처럼 들렸어요. 그때도 저는 쓸 것들이 참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말들이 정말 듣기 싫더라구요…
7년의 공백을 마치고 ‘별들의 들판’을 열었어요. 취재도 다 했고,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려는데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더라고요. 피아니스트든, 미술가든 자신의 작업을 쉼없이 해야지 감을 잃지 않는거잖아요. 오래 쉬었던 탓에 내 손도 굳어지고, 머리도 굳어진 거였죠. 그때 절감했어요. 글 쓰는 작업을 절대 멈추지 말자고요. 글을 많이 쓰면서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감각들이 깨어나는 걸 경험을 했어요.
가장으로서의 중압감 아니었으면 진땀 흘리면서 할 필요가 없었겠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가게를 차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해왔던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요즘은 예전처럼 두렵거나 힘들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글 쓰는 작업이 지옥같았거든요.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즐거운 나의 집> 집필할 때부터 지금까지, 힘은 다소 들지만 예전 같은 생각을 갖지 않아요. 저에게 지면을 할애해 주고 또,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이 있음이 감사하고 기뻐요.

알라딘 : 3살 시절, 오빠책을 무작정 읽으면서 한글을 스스로 깨우쳤다고 하셨는데요, 언어감각이 굉장히 뛰어나신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꿈이 작가였나요?

공지영 : 저도 오빠책을 베껴쓰고 놀았던 그때의 제가 이해가 안되요.(웃음) 어릴 때부터 책벌레도 아니었고, 작가가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공지영 작가의 작품은 내게 "내 삶을 의미있게 하는 또 하나의 근원"이다."



알라딘 : 작가로서 걸어오신 기간이 20년이 넘었지요? ‘작가’를 버리고 다른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공지영 : 그런 적은 없어요. 돈이 없어서 커피집이나 국수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잠시 했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는 꿈은 없었지만,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기는 할 것이다란 확실한 마음이 있었죠.

알라딘 : 학부시절에 ‘연세문학회’를 통해서 시를 먼저 집필하셨다고 들었어요. 대중들에게 선보인 작품들은 소설 및 에세이 장르인데, 혹시 시집을 출간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공지영 : 시 못 써요.(웃음) 사실, 시적 영감을 소설이나 에세이에 다 쏟아 붓기 때문에 시 작업을 별도로 하긴 힘들어요.

알라딘 : 그렇다면 앞으로도 소설이나 에세이로만 선보이시겠네요.

공지영 :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 저는 에세이도 참 재밌더라구요. 이번에 출간한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을 주변에서 유쾌하다, 재밌다고 말씀해 주시니까 저도 참 좋았구요. 작업하는 것도, 독자들의 반응도 다 재밌었어요.

알라딘 : 독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에세이를 접하는 것도 참 좋아요.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 작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통로가 되거든요. 제 경우에는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해요. 소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고, 하루키만의 위트가 잘 반영되어 있고...

공지영 : 네,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해요. 그 작가를 통해서 에세이라는 장르를 달리 보게 되었어요. 부질없는 얘기지만, 유쾌함을 주잖아요. 뭐랄까, 과자 하나씩 집어먹는 것 같고, 한 끼니는 안되지만 배부른 느낌? 저도 하루키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고, 거의 다 소장하고 있어요.

알라딘 : 한달 동안, 작가전 ‘공지영 작가와의 소통’에서 ‘공지영 작가의 작품은 내게 …이다’란 댓글이벤트를 진행했었어요. 혹시 참여한 댓글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 스스로도 작가님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또 독자분들도 작가님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어요. 독자분들께서 남겨주신 댓글을 보면서 훈훈함도 느꼈고, 수많은 독자들에게 이런 영향을 끼치는 분이시구나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공지영 : 저도 그 이벤트 페이지 봤어요. 남겨주신 댓글도 거의 다 읽었구요... 이벤트 댓글 외에도 짧은 시간의 사인회를 통해 편지를 건네주거나, 사연을 직접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저인데, 그런 제게 많은 분들께서 ‘엄마, 이모, 멘토’같은 역할을 원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알라딘 : 사소설적 작품과 에세이를 통해서 진솔하게 자신을 표현했기 때문에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작품들의 주 키워드가 ‘위로’라는 것도 많은 영향이 되었을 것 같고요..

공지영 : 저는 단지 제 불행을 작품에 담아냈을 뿐인데, 독자분들께서는 그런 솔직한 글을 통해서 위로를 받으신 것 같아요. 저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요.

알라딘 : 댓글 중에서 인상적인 몇 가지만 추려왔어요.
공지영 작가의 작품은 내게 "내 삶을 의미있게 하는 또 하나의 근원"이다.
공지영 작가의 작품은 내게 "내 지친 영혼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존재"이다.
공지영 작가의 작품은 내게 책을 읽는 기쁨을 안겨줬다.

공지영 : 아, 세 번째 댓글을 듣다보니 문득 생각났어요. 이번 에세이 같은 경우에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아요. 내용 자체가 쉽고 가볍고 재밌으니까 책장이 잘 넘어가거든요. 주변에서 책을 읽지 않아 괴롭다 하시는 분들, 그분들께 깃털책을 선물하시면 되요.(웃음)



 



알라딘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독자들은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있는데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인생선배로서 특별히 후배들에게 ‘이것 만큼은’ 꼭 해보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지영 : 뒷날을 생각하지 말고, 연애를 마음껏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남녀간의 관계는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끝이 어떻게 되던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거에요.
특별히 20대 친구들에게는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도서대출증이 없어지니깐 서러워지더라구요. 20대, 30대 다 해당될텐데요, 혼자서 과감하게 여행을 떠나보면 좋겠어요. 만약, 친구와 같이 갈 생각이라면 서울에서 술 한잔 하는게 낫겠구요.(웃음)
반복되기 때문에 삶이 짧게 느껴지는 거에요. 새로운 것들을 계속 체험하면 삶이 굉장히 길다는 생각을 갖게 될 거에요. 시간이 우리를 늙게 하는 게 아니고, 체념이 우리를 늙게 하는 거에요.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 삶이 재밌어져요. 그러다 보면, 매혹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거에요. 매혹적인 것에 자신을 던지기 좋은 나이는 30대가 아닐까 생각해요.

알라딘 : 나이 들면서 가치관이라든지, 꿈이라든지, 인생에 대한 고민 등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혹시, 나이 듦에 따라 변한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지영 : 제 경우에는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도 같고,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같아요. 20대 때와 변한 건 거의 없어요. 하지만, 단 한가지 확실하게 변한 건 제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에요.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올 것이고 내일이 아니면 모레가 올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런 변화의 계기가 된 건 세 아이를 통해서였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사람은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간다는 걸 깨달은 거에요. 말없이 기다릴 수 있게 된거죠.

알라딘 : 현재의 ‘공지영’을 있게 해 준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세 아이, 그리고 신앙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공지영 : 81년부터 닥치기 시작한 고난이 25년 계속 되었거든요.. 요즘도 가끔 생각하는데 그런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다고 말이에요.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일, 그것을 고민하고 해석했던 저의 몸부림들 때문에 거의 죽을 것 같았어요. 압사 당해서 죽을 수도 있었는데, 저의 기질 자체가 그렇지를 않아서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했던 거죠.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서 대학을 나온 여자가 도저히 겪을 수 없는 일련의 황당한 일들을 25년 동안 겪으면서 인생을 굉장히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종교를 찾으면서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어요. 카톨릭이 제게 ‘고난들이 의미가 있었다’란 것과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줬어요. 그런데, 카톨릭이 개입한 시기는 아주 나중의 일이었어요. 이미 모든 것들을 겪고 난 다음에 마무리를 해준 것이죠.

알라딘 : ‘일련의 황당한 일들’이란 것은 사회적인 것과 가정적인 것 등 모든 것들의 복합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카톨릭은 언제부터 믿게 되신 건가요?

공지영 : 네, 복합적인 모든 것들을 말하는 거에요.
중학교 1학년 때 성당을 다니다가 대학교 때 저 스스로 떠났어요. 그러다가 제가 죽게 생겼을 때, 18년 동안 부르지 않던 이름을 부르게 되었던 거죠. 그리고 어떤 일을 계기로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경험했어요. 또, 성자들의 저작을 열심히 읽으면서 지혜를 흡수해 왔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이고, 신에게 왜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신이 우리에게 주는 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결국 ‘위로와 격려’인 걸 알게 된거죠.
실제로 제가 신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았어요. 정말 많이 받았어요. 잘못한 게 많은 나한테 조건없이 많은 것들을 베풀어줬고, 글을 쓰게 해줬고, 살려줬는데 거저 받은 그것들을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로 제가 받은 것을 전해주기 시작했어요. 좋은 도구로 쓰임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위로와 사랑을 우리 자식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에게 전해줬을 때 저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더라구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도 그런 생각의 파생물이에요.

알라딘 : 지난 노희경 작가님과의 인터뷰 때, 노희경 작가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바닥까지 내리면서까지 받았던 고통들이 결국 현재 작가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하셨어요. 작가분들이 겪은 시련들이 작품에 녹아들게 되고, 독자들은 그 작품을 통해서 그 시련을 고스란히 느끼고 위로 받게 된다고 생각해요.

공지영 : 네, 저도 책을 통해서 그 얘길 접했어요. 비단, 작가 뿐 아니라 지인들을 보면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하고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은 정말 다른 느낌이 있어요. 온갖 것들을 겪은 고난의 시간들이 한 사람을 온전하게 형성한다고 생각해요.



알라딘 : 최근 출간된 <내 인생의 책 읽기> 중에서 공선옥 작가께서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영혼을 각성시키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동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최소한의 행위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갇혀 있는 나를 확장시키고 확장된 내 인식 안으로 타인을 들이는 일이다.”라고 정의를 해주셨어요. 작가님께 책읽기와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공지영 : 글쓰기는 제 자신을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는 작업’이고, 책읽기는 ‘소통’이에요. 책 속의 삶을 대신 살아보고, 간접경험을 통해 그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하다 보면 책 속의 대상과 파이프로 연결된 느낌이 들어요.

알라딘 : 어떤 작가분들은 창작활동을 하는 동안 아예 다른 작품을 읽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글이 자신의 글 같아져서 창작활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작가님의 경우에는 어떤가요?

공지영 : 저의 경우는 그와 달라요. 집필하는 동안에도 책읽기를 병행해요. 오히려 요즘 더 많은 책을 읽고 있어요.

알라딘 : ‘공지영 작가와의 소통’이란 작가전에서, 작가님께서 아래와 같이 10권 도서를 추천해 주셨어요.



추천도서 외에 최근 재밌게 읽은 책을 소개해 주세요.

공지영 : 최근에 <더 리더>를 재밌게 읽었어요. <오두막>은 반 정도 읽은 상태구요. 저는 베스트 셀러 순위 30위 내의 책은 거의 다 읽어요. 20년 동안 계속 그렇게 해왔죠. 베스트 셀러를 읽다 보면, 시대의 흐름, 독자들의 트렌드가 파악이 되요.

알라딘 : 2009년 1분기가 이미 다 지났네요.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지영 : 최근 성서시리즈 중 아동물(<아담> <카인과 아벨> <노아>) 3권이 출간되었어요. 성서 시리즈를 완간하는 게 올해의 목표에요.

알라딘 : 마지막으로, 알라디너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공지영 : 알라딘은 베스트셀러 순위도 독특하고, 정말 책을 좋아하고 다독하는 독자들이 많으신 듯 해요. 평상시에도 알라딘독자들의 리뷰를 자주 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양서를 고르는데 많은 도움을 받곤 하죠.(웃음)
“세상 모든 꽃들이 당신을 위해 피어납니다!” 감사합니다!




공지영 - 198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과,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등이 있다.
21세기문학상과 한국소설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제10회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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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넘어, 자기 양식의 발견을 향해

알라딘 : <삼국지>, <심청, 연꽃의 길> 이후 4년만에 새 소설을 펴내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황석영 : 런던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면서 각종 세미나.컨퍼런스 등에 참여했어요. 아시아.아프리카인들이 많은 캠퍼스에서 주로 지냈는데 세계의 젊은 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한 나날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서점에 들려 신간과 잡지 등을 체크하기도 했지요.

알라딘 : <손님>에서 굿 형식이 차용된 바 있지만, 이번 소설에서도 무속과 초현실의 세계, 북한의 언어-함경도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그외 탈북자들의 모습에 대한 취재도 상세한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황석영 : 부모님이 황해도 분이셨어요. 어린 시절에는 영등포에 살았는데, 주변 피난민 중에 함경도 분이 많았지요. 그때 함경도 사투리를 자연스레 익혔습니다. 음, 그리고 저는 여러 지역의 사투리를 익히는데 타고난 재간이 있어요. 작가로서는 축복받은 부분이지요. 굿이나 서사무가 양식의 경우, <장길산>을 쓸 때 우리 전통 양식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쇼트처럼,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선 고유의 양식이 필요하다 생각했었거든요. 근대에 소설양식이 도입되면서 우리 원래의 서술 양식을 상실했는데, 모름지기 작가라면 산문이나 서사양식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왜 세계적 대문호가 없는가 생각해보았는데, 바로 이런 부분이 걸리더라구요. 소설이란 결국 서구적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라도 고유의 양식 탐구가 필요합니다. 자기 양식의 발견이 필요한 거지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을 멈춤없이 계속할 예정입니다.
탈북자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실제로는 소설보다 훨씬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북한에 사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측면에서 이를 좀 순화시킨 거죠. 북한에서의 갑작스런 산불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장길산> 집필시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어요. 대흉년이나 굶주림이 계속되면 짐슴이나 사람이나 땅을 파기 시작한대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움직임이죠. 북한에서의 산불 역시 그런 움직임의 일환으로(화전이라도 일구어보려는), 정말 커다란 슬픔을 느낀 이야기였습니다.


알라딘 : 고향을 떠나 이국을 떠돌며 역사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버림받은 자이자 효녀라는 점에서, <바리데기>는 <심청>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으로 보입니다. '심청'이나 '바리데기' 등 설화의 인물 중에서 특히 '여성'캐릭터를 빌어오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황석영 : 사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시대의 변화가 격심한 시기에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은 그 시대의 가장 약한 고리-곧 여성입니다. 격변의 시기를 그려낼 때 그 약한 고리를 깊숙히 탐구하면, 시대의 문제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연이어 여성 인물을 선택한 것이지요.

<심청, 연꽃의 길>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다루었다면, <바리데기> 동서 냉전의 종언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화체제=곧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의 이야기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제국주의의 변형에 다름아니며, 그런 측면에서 19세기와 21세기는 결국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심청>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웃음을 짓는 장면으로 끝나지요. 이때의 웃음은 실컷 울다 결국 웃음에 이르는 불교식 미소입니다. 일종의 달관.해탈의 경지라 할 수 있죠. '심청'의 모델로 삼은 것은 '관음'인데, 쓰디쓴 고해를 겪어낸 이후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시절 동아시아인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죠. 이에 반해 <바리데기>의 마지막 장면은 바리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일종의 열린 결말인데, 지금 이시대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또 여전히 계속될 거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해 절대 낙관하지 않는 거지요.

용서와 눈물, 누군가는 걸어가야 할 길

알라딘 : 바리는 그 자체로 끔찍하고 험난한 삶을 사는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을 때에는 마치 관찰자처럼 심각한 침잠없이 상황을 그려내보이는데요. 큰 비극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는 환상세계의 묘사는 현실세계를 비껴 그리되 그 비극성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킵니다. 현실과 환상세계를 오가는 장치는 바리를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처럼, 인상깊게 만드는데요.

황석영 : 바리는 일종의 '무당'인데, 무당은 결국 소설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무당이나 소설가나 '고통의 대가'여야 하지요. 고통의 '대가'가 되면 자기의 객관화가 가능해집니다. 육체는 영혼의 집이며, 죽음 직전의 고통에 이른 이들은 말 그대로 생각의 지평이 커지고 넓어집니다.

알라딘 : 설화 속 바리는 생명수를 얻어 부모를 살리고 많은 영혼들을 구합니다. 현실의 바리는 그저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며, 폭력과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그 '눈물'이 생명수라면, 인간 모두가 바리이며 구원의 가능성을 내면에 품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황석영 : 저는 그저 '화두'를 던진 셈입니다. 생명수에 대한 각자의 해석은 모두 맞아요. 바리는 생명수를 가지고 오지는 못했지만 그 생명수를 마셨지요. 그 과정들을 통해 성숙한 겁니다. 이 소설은 결국 모두에게 내재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알라딘에 올라온 마이리뷰도 모두 읽어보았는데, 독자 개개인이 내린 해석 모두가 정답입니다.


알라딘 : 여러 인터뷰에서 요즘 세계의 화두이자 이 소설의 주제를 '이동과 조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좀더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면?

황석영 :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동'하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확대.심화될수록 제3세계는 생존과 존립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지요. 현재 제3세계의 나라들은 가난을 견디지 못해 문자 그대로 점점 비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자기 땅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제3세계의 황폐화는 점점 더 가속화됩니다. 21세기의 특징으로 혹자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는 서구식의 개념으로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예요. 우리 나라에도 60만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고, 서양의 경우에는 그 퍼센트가 더 굉장합니다. 그로 인해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중산층의 복지가 저하되면서 Eu가 점차 보수화되고 있지요. 저는 이것을 유럽 자본주의 사회의 업보라고 봅니다. 이런 세상에서 다 같이 살아가려면, 다른 생각, 다른 음식, 다른 외모, 다른 문화를 용납하는 방법을 배워야만합니다. 그것이 바로 '조화'이지요. 이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입니다.

인식의 확장, 세계 시민의 길

알라딘 : 21세기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범세계적인 현실을 다루었고, 또한 탈북민들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소설인인데요.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이러한 세계적/민족적 상황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알라딘 : 지금보다 훨씬 개인을 존중해야 하고, 또한 과거와는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확대해야만 해요. EU가 그 한 예인데 문제는 많지만 국경에 매이지 않고 보다 넓은 범위의 통합을 이루려는 방향성만은 본받을만 합니다. 근래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에서 극렬 민족주의가 대두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저는 개인이 숨쉴수 있고 축제같은 나날을 보낼 수 있는 동아시아가 될 수 있다 낙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운동을 보다 활발하게 펼쳐야 해요. 인터넷의 적극적 활용도 좋은 방법이죠. 인터넷은 근본적으로 아나키즘적인 공간이며, 네티즌은 근본적으로 반체제적이며 독립적이고 개인을 존중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21세기의 새로운 흐름인 셈이죠.

개인적으로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라디오 방송을 꾸려볼 계획입니다. 동아시아 3국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문화구라방송'이지요. 진지함이 기본이 되대, 시니컬이 3/10 정도 섞인 모습이 될듯 싶어요. 텔레비전에 비해 즉각적 파급력은 적어보이지만 라디오는 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목소리'=언어의 힘 때문이지요. 2달여 체류하는 기간 동안, 다수의 시간은 이 라디오 방송 관련 작업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알라딘 : 4년간 런던과 파리 등에서 체류하셨는데, 바깥에서 보는 세계와 우리 나라의 위치에 대한 인식은? 그런 체험이 문학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황석영 : 여러 모로 아직 폐쇄적이고 인식이 좁은 면이 있습니다. 일종의 '항아리', '호리병' 속에 갇혀있는 거 같아요. 인식 자체를 넓히고 보다 넓은 관점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발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국경을 벗어난 세계시민. 그것을 지향해야 해요. 고구려만 해도 여러 유목민족들의 연합체였지요. 조금 과격하게 말해본다면, 통일을 이룬 뒤에 여러 동아시아 국가와 함께 범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국경을 넘어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만이 남한과 북한이 현재의 굴레에서 함께 놓여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예전에 김일성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었지요. "지구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데 지구가 변했다. 구름 위에 살지 않는 한, 우리가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 국제사정상 당시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남과 북의 변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봅니다.

알라딘: 바리가 세계 여러 나라 중 '영국'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황석영 : 안 그래도 왜 뉴욕이 아니고 영국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신자유주의가 결국 19세기 제국주의의 변형이라고 볼 때, 제국주의의 효시인 영국을 배경으로 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중심인 미국의 본가가 영국이기도 하구요. 흔히 미국에는 문화는 없고 문명만 있다고 하기도 하고... 대영제국을 해부한다면, 현재 사회를 축소 탐구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라딘 : 얼마 전 문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요. 예술가들의 정치 참여와 발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신다면.

황석영 : '다리를 만드는 자에게도 윤리가 있'는데 글을 쓰는 작가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휴머니티를 다루는 것이 작가인데, 작가라면 당연히 삶에 도움이 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밥벌이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지금 제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연초와는 달리 '상황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제가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만, 나중에라도 이야기를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않고 의견을 밝힐 생각입니다.

알라딘 : 요즘 우리 문학이 위기다 라는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또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황석영 : 첫째, 문제는 언제나 작가 자신들에게 있어요. 둘째, 우리 문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나요. 하하. 그러나 올해를 보세요. 연초부터 굵직한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어요.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인 것이 분명하고,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니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가란 항상 새로움에 주목하되, 자기 나름의 세계관/작가관이 있어야 해요. 이 세계관이라는 것은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잡혀 있어야 해요.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문학 책 외에 인문/사회학 분야 책들을 많이 읽으라는 겁니다. 그를 통해 '관점'을 갖게 되니까요. 인문사회적 양식을 외면하면서부터 한국소설의 서사가 약해졌어요. 또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해요. 새로움이란 것도 결국엔 보편성을 이야기하기 위한 일종의 촉매로, 인간의 본질과 조건은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하소설은 19세기의 유산이라 생각해요. 현대 독자들의 접근도 측면에서 볼 때 500~1000매 정도의 경장편 양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장편을 쓸 때의 유의점은 큰 서사를 담고 있되 문장은 시적으로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 젊었을 때는 그래서 시+소설=시설이라고 불렀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신화와 설화, 민담 등이 담고 있는 메타포와 현실을 결합하는 작업을 계속 할 예정입니다.

<바리데기>를 통해 이전에 구상해놓았던 작업의 1/3 정도 지점까지 왔다고 말한 작가는 10월께 완전히 귀국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자기는 언제나 현역이라며, 문자 그대로 '대가'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글쓰기에 매진하겠다 말하는 작가의 모습이 매우 든든했던 인터뷰였습니다. ^^


1943년 만주 장춘(長春)에서 태어났다. 고교시절인 1962년에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등단하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과 희곡 '환영(幻影)의 돛'이 각각 당선되어 문학 활동을 본격화했다.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돌입하여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등 리얼리즘 미학의 정점에 이른 걸작 중단편들을 속속 발표하면서 진보적 민족문화운동의 추진자로서도 활약했다. 1974년 첫 소설집 <객지>를 냈으며, 대하소설 <장길산> 연재를 시작하여 1984년 전10권으로 출간하였다.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장길산>, <오래된 정원>, <객지> 등이 번역.출간되었다. 1989년 평양 방문.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 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한다. 이해 11월,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제4회 만해문학상을 받았고 1990년 독일에서 장편소설 <흐르지 않는 강>을 써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다. 1991년 11월 미국으로 이주, 롱 아일랜드 대학의 예술가 교환 프로그램으로 초청받아 뉴욕에 체류했다. 1993년 4월 귀국, 방북사건으로 7년형 받고 1998년 사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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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놀라움을 선사해온 소설가 김영하가 3년만의 장편 <검은 꽃>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의 '새로움'은 예사롭지 않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그 유명한 마지막 문장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게 없을까, 인생이란"과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 의 작가의 말 "골방에 처박혀 책을 보기엔 너무도 발랄했으며 그렇다고 차분하게 음악을 듣기엔 너무도 산만했던 김씨" 사이에도 분명 '격세지감'이 존재했다.


그러나 <검은 꽃>은 그 이상이다. '격세지감'이나 '변화', '놀라움' 같은 단어로는 감히 이 책의 새로움을 표현할 수 없다. <검은 꽃>은 이제까지 발표한 책의 장점을 모두 지닌 동시에 그것들과 완전히 달랐다.

직접 만난 그는 다소 냉정할 것이란 선입견과는 달리 유머감각이 무척 풍부하고, 소문에 듣던 대로 정말 달변이었다. 쏟아붓는 비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유쾌했던 홍대 앞 그 술자리의 이야기를 슬쩍 옮겨본다.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문학담당 박지영, 박하영)
   

종적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알라딘: 제목을 <검은 꽃>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영하: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검은 꽃'의 이미지가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검은색 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동시에 세상의 모든 꽃을 섞어야 나오는 색이기도 해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검은 꽃'이 정체성의 상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에 나오는 11명의 데스페라도(무법자), 인간 존재 일반의 운명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고.

알라딘: 집필을 위해 과테말라에 다녀오셨지요?

김영하: 글을 쓰다 보니 아무래도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답사할 필요가 생기더군요. 올 2월, 하고 있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3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석 달 동안 그들이 처음 일했던 에네켄 농장과 메리다를 답사하고 주인공들이 간 길을 따라 과테말라의 밀림으로 향했어요. 함께 간 아내는 더위와 습기를 잘 못 견디는 편인데 작가 남편 만난 덕에 애꿎은 고생을 했죠.

그 후로도 띠깔, 안티구아 등을 둘러보고 16세기 어느 작은 호텔에 머물며 날마다 규칙적으로 글을 썼어요. 예순이 넘은 주인 할머니께 작가라고 말했더니, 책으로 가득한 자기 서재를 내주셨어요. 그곳에서 날마다 라틴 아메리카의 음식을 먹으며 스페인어를 듣고 마야인들과 마주치며 글을 썼죠. 과테말라에선 여전히 마야인들에 대한 차별이 대단해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난하고 못 배운 탓에 여전히 차별 당하고 있는 거죠. 그들 역시 내 소설의 일부가 되었어요.

알라딘: 해가 갈수록 '작가의 말'에 '아내'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김영하: 하하하... 그런가요? 그런데 특히 이번 작품은 아내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하루에 매일 맥주 두 캔을 마시면서 소설을 쓰다가 500매쯤 되었을 때 아내에게 보여줬거든요. 원고를 읽고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거에요. "이런 소설을 쓰는 줄 알았으면, 맥주 마신다고 잔소리 안하는 거였는데. 앞으로 맥주 더 마셔도 된다. 계속 열심히 써라." 500매를 넘기면, 사실 다시 쓸 수도 없는 지점이잖아요. 그럴 때 아내의 이런 격려는 정말 굉장한 힘을 줬습니다.

알라딘: <검은 꽃> 에서 특별히 인상적인 인물이 있으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최선길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영하: 박광수(바오로 신부)요. 어린 시절의 무당 체험에서 벗어나고자 신부가 되지만 파계하고 결국은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인물이지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 성가대 활동을 했었고, 또 커서도 결혼하지 않고 가톨릭 신부가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결국 그렇게 못한 탓에 가톨릭에 대한 원죄의식 같은 게 남아 있지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등장하는 신부도 그렇고, 제 작품의 종교적 성향에는 그런 저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30대, 단 한 권의 마스터피스

알라딘: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가 기대 이상의 주목을 받았었고, 더 넓어진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조금 더 편안하게 작품을 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2002년 꾸준히 단편을 발표하셨기에 3-4편만 더 쓰면 소설집 하나는 거뜬히 발표할 수도 있었을 거고요.

김영하: 단 한 권의 두툼한 '마스터피스'에 대해 오랜 욕심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발표한 소설이 고루 주목받은 만큼 딱히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은 없었지요. 도리어 '모든 소설이 대표작'이라 할까요. 그것이 저의 장점이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왔음에도 이젠 저도 30대 중반이고, '대표작'이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세계적 작가들 대부분이 30대에 이미 자신의 대표작을 남겼어요.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를 썼을 땐 35세에 불과했고, 하루키는 38세에 <상실의 시대>를 발표했죠.

김영하의 산문집 중,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그리고 <포스트 잇>



알라딘: '나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의 작가 후기에 보면 "담배처럼 매캐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김영하 씨는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죠. <호출> 시절만 해도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셨는데 최근 한국일보에 연재 중이신 '길 위의 이야기'나 <포스트 잇> 같은 산문집을 보면 개인적인 일상, 20대와 30대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눈에 띄고요. 혹시, 자신이 변해간다는, 나이 먹어간다는 생각을 하시는 건지요.

김영하: 우선은 '판타지'에 대한 생각이 변했어요. 소설을 처음 쓰던 때만 해도 일상과 판타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국 판타지는 일상 안에 있죠. 일상에서의 공포가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상상력' 역시 일상 속에서 극대화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주변을 기반한 상상 이야기가 많아지는 거 같아요. 그렇게 '거짓'말을 했을 때가 되려 신빙성이 있기도 하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담배를 끊은 다음에 제 소설이 좀 변한 건 맞는 거 같네요. 남자들이 담배를 처음 배우게 되는 사연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게 '겉멋'이거든요. 그런데, 30대는 이제 그 겉멋을 버려야 할 나이죠. 어찌 보면 담배를 끊음으로서 그게 버려진 것 같기도 해요. 20대가 쓴 소설에는 겉멋이 있고, 있는 게 당연하고, 그리고 없어서는 안 돼요. 그게 20대 소설가가 할 일이죠.

그렇지만 30대는 달라요. 30대에는 "앞으로 잘 쓰겠지"나 "가능성이 있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그야말로 작품을 통해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자기 작품에 대해 완전하게 책임져야 할 나이입니다. 그런 변화를 거부하고 계속 20대에 머물러 있으려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젊게 사는 것과 발전하지 못하는 건 다릅니다.

소설가의 길

알라딘: 단편과 장편을 쓰는 즐거움에 차이가 있다면?

김영하: 단편이 <세계를 간다>를 읽는 즐거움이라면, 장편은 직접 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할까요? 혹은, 다른 사람이 만든 집에서 사는 것과 손수 지은 집에 사는 것의 차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단편은 그야말로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술 같은 거에요. 물론 그도 재미있죠. 그렇지만 장편을 쓰면 '그 시대의 명예시민'이 되는 굉장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알라딘: 언제나 "글쓰기는 즐거운 작업"임을 강조하시는데,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되실 건가요?

김영하: (단호하게) 물론이죠. 소설이야말로 지적, 예술적 취향이 결합된 최고의 양식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픽션이 세계의 중심이에요. '연애'를 예로 들자면 '연애소설'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연애'가 있죠. 인간의 삶은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알라딘: "2003년엔 소설만 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책하고 놀자'도 진행 중이시고 '길 위의 이야기'도 쓰고 계세요. '잡기에 능하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영하: 하하... 그렇게 되었네요. 실은, 막상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어떤 도움을 주는 일인지 잘 몰라요. 2001년, 2002년에 걸쳐 2년 동안 명지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전 그게 뭐 제게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지내놓고 보니 그 시간동안 소설, 글쓰기에 대해 스스로 굉장히 많이 다듬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배운 거죠.

방송도 비슷해요. 라디오 진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안 봤을 그런 책들에서, 내심 무시했던 책들에서 새로운 발견과 가르침을 얻었죠.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인가는 지나봐야 알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열심히 사는 겁니다.

알라딘: '길 위의 이야기' 연재가 벌써 60회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매일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진 않으신지요? 혹시 소설에 사용할 소재를 따로 챙기시나요?

김영하: 글쎄, 저는 소재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소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무궁무진하게 있어요. 또한 소설은 분명 소재, 주제, 인물 이상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소재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어떤 소설이 줄거리만으로 '읽은 것'과 다름 없다면 그건 결코 잘된 소설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my.aladin.co.kr/TimeMuseum

알라딘: 평소 알라딘을 비롯한 인터넷 서점을 자주 이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알라딘만의 장점, 혹은 단점을 알려주세요.

김영하: 알라딘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서점입니다. 현재로서는 알라딘의 인터페이스나 아기자기함을 따라갈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건 아무래도 판매량이 '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훌륭한 인터페이스가 자료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알라딘: '나의 서재'는 혹시 이용해보셨나요?

김영하: 아, 정말 깜찍하더군요. 저도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my.aladin.co.kr/TimeMuseum.

'나의 서재'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김영하 씨의 실제 서재는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정리되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김영하: 서점 분류를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문학, 역사, 인물/평전, 여행서, 시집, 인문/철학, 잡지... 이렇게 나누고 다시 한국문학, 서양문학, 아시아문학, 한국사, 외국사, 기행문, 가이드북, 미술, 미술 이외 예술... 이런 식으로 나눠요. 그 분류에서 최종적으로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놓지 않으면 책 찾기가 정말 어려우니까요. 뭐 그리고 박스에 담겨 있는 책도 많고, 사실 바닥에도 막 굴러다니고 그렇죠. 아마도 여러분 사무실이랑 비슷할 거에요. 거기도 장난 아니죠?

안 와 보고도 책 때문에 엉망진창인 알라딘 편집팀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세 사람은 한참을 큭큭 웃어야만 했다. 겨우, 웃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질문!

알라딘: 그중에 알라딘의 독자분들께 권할만한 책이 있을까요.

김영하: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는 박민규 씨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아주 재밌었어요. 정말 '요절 복통 유쾌 상쾌'죠. 그리고 김원일 선생님의 <슬픈 시간의 기억>도 좋습니다. 노인 이야기도 좀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외국 작품으로는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백년 동안의 고독>도 재미있고 좋은 책입니다.

김영하는 24일,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한다. 그에게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물었다.

김영하: 아이오와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문예창작과가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창작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창작 프로그램은 세계 각국의 작가 40명이 한 건물에 기숙하면서 화학적 변화를 꾀하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국내에선 최인훈 선생님, 하일지, 한강 등이 다녀갔습니다. 번역과 창작 등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알라딘: 다음 소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김영하: 12월경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단편집이 나올 예정입니다.

이어진 2차 술자리에서 슬쩍 "왜 폭탄주를 마시냐?"고 물어봤다. "소주를 마시면 어쩐지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맥주를 먹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양주를 마시면 왠지 잰 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폭탄주를 마시면 인생과 정면으로 승부하는 기분이에요."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한 그는 곧이어 "실은, 별다른 이유는 없는데 물어보길래 갖다 붙여 봤어요."라고 이실직고 한다. 스물아홉의 김영하라면 이실직고는 안했을 것 같고, 마흔의 김영하라면 거침없이 말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가장 매력적인 지점에 그렇게 서 있는 작가, 김영하. 아이오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해 돌아와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상을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심으로, 다음 소설에 대한 기대가 크다.


1968년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서울에서 보냈다. 잠실에서 대학교까지 다녔고 이후 수원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990년대 초반, 1995년부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터키와 타이, 캄보디아와 유럽 등을 여행했고, 1996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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