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독서가 王道.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多讀·多作·多商量)…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독서가 王道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多讀·多作·多商量)
 
  ●지식축적을 많이 하라(金埈成)
  ●진실·솔직한 말을 짧고 간단하게 하는 것이 말 잘하는 비결(洪思德, 姜南周, 전여옥)
  ●多讀, 多作 후 깊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李相培, 張良守, 정진석)
  ●좋은 글을 소리내어 읽는 연습을 하면 말을 잘할 수 있다(金上俊)
  ●金東吉·李御寧·金大中·金東鍵의 말과 글)
 
 

월간조선 
 


 金順子
 
  전문가 53명 조사
 
  말과 글은 곧 사회를 반영한다. 사회가 혼탁해질수록 말과 글은 거칠고 혼탁해지고 만다. 사회의 구성원이 쓰는 말과 글은 종종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부정확하고 거친 말들이 난무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月刊朝鮮은 ‘글과 말을 잘 쓰고 잘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좋은 글쓰기, 바른 말하기’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설문에 참여해 준 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글과 말을 잘 쓰고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각계 각층의 전문가 53인이다.
 
  이번 설문을 통해 바르게 말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 사회의 말과 글이 거칠고 혼탁해진 원인을 살펴보고, 바른 말과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울러 어떻게 하면 바른 말과 글쓰기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설문에 응해준 분들로부터 우리 사회에서 글과 말을 잘쓰고 잘하는 분들을 추천받기도 하였다.
  설문 항목별 응답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 사회에서 말과 글이 품위 없고 부정확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과 글은 사회와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만큼 전문가들은 말과 글이 품위 없고 부정확하게 된 원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말과 글이 거칠게 된 데는 일제식민 치하와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심성이 피폐해진 데서 그 원인을 찾는 의견과 방송 매체가 제 구실을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밖에 컴퓨터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비속어·은어 남발, 정치인 등 지도층 인사들의 저속하고 폭력적인 언어 사용, 문화 정책과 교육 부재, 말하고 글쓰는 사람의 思考(사고) 훈련 부족, 국어에 대한 관심 부족 등 폭넓은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소설가이자 부총리 출신인 이수그룹 명예회장 金埈成(김준성)씨는 “8세기경 한자가 유입되면서 우리 고유의 말을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데 등한시한 것이 우리 말과 글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중 방송과 언론 매체의 책임을 지적하는 의견은 다음과 같다.
 
  ‘품위 없고 부정확한 말에 대한 원인은 1차로는 방송에 있다. 사투리와 무식하고 거친 말이 예사롭게 방송되고 그것을 어린이들이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런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본다.’(姜南周)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한 소위 N세대 문화가 사회 저변에 확대되면서 출처 불명의 은어나 略語(약어)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남발되는데, 이들을 계도해야 할 언론이나 방송 매체 등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도 품격을 떨어뜨리는 원인이다.’(黃樹寬)
 
  ‘청소년들에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매스컴이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 사회의 언어 질서는 깨졌다. 구체적으로 인쇄 매체의 경우 스포츠신문, 주간지의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묘사와 잘못된 언어 표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영상 매체에서는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 드라마의 극중 대사가 거칠고 무질서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李相培)
 
  ‘텔레비전과 라디어에서 속된 언어를 남발하는 자질없는 연예인이 문제이다.’(李根三)
 
  ‘방송의 책임이 크다. 첫째는 엄격성이 없는 말과 글들이 많이 나온다. 엄밀하고 투명한 방송 언어의 선택이 필수적이다. 둘째는 TV에서 개그적 발상이 확대된 사회 풍조 탓이다. 개그적 발상이 글쓰기에 퍼져 재담도 아닌 모호한 글들이 많아졌다. 뛰어나지 못한, 재미를 표현한 글은 차라리 가벼워져 글을 망치기 쉽다. 정상적인 규범 아래 글이 쓰여지고 말로 소용되어야 할 것이다.’(柳宗鎬)
  이밖에도 많은 이들이, 말과 글이 거칠고 혼탁해진 원인은 오염된 방송 언어가 일상화된 데 있다고 지적했다(具常, 孔柄淏, 金承鉉, 辛奉承, 李季振, 金炳宗, 李珉和, 安秉煜, 金亨錫, 金光雄, 柳根粲, 任東權)
 
  미화·변명 위한 억지와 깡패논리
 
  한편으로는 일제식민 치하, 6·25 전쟁, 고도 성장기 등을 거쳐온 근대사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어는 시대와 사회를 민감하게 반영하는데, 그런 역경을 헤쳐 나오면서 살벌하고 각박한 사회 환경이 언어를 거칠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일제의 식민통치, 6·25 사변을 겪는 등 쫓기고 위협당하고 억눌리고 시달리면서 살아온 결과, 곧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을 사는 동안 심성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張良守)
 
  ‘빨리빨리란 일상어가 조급성과 강박성을 상징하듯, 오랜 권위주의를 거치는 동안 국민 상당수가 능률주의의 신봉자화되어 과정보다는 결과 위주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李文求)
 
  ‘전쟁과 압축 성장을 해오는 과정에서 말과 글을 절제하여 바로 하기보다 구호와 虛張聲勢(허장성세)가 많았고, 말과 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추궁이 없었다.’(崔禹錫)
 
  ‘문화적,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질서의 不在가 원인이다. 글의 왜곡 현상은 이성적인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 나아질 것이다.’(金彦鎬)
 
  ‘우리의 의식과 사고를 규정하는 한국 근대사의 불건강성 때문이다. 개인과 역사를 미화하고 변명하기 위해서는 非논리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억지 논리와 깡패 언어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이었다.’(박종만)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선비 문화를 계승하지 못하고 마당쇠 문화를 수용했다. 일제하와 미국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품위 있고 절도있는 말보다 편한 대로 속된 말을 쓰고 익혀 생활하였다. 따라서 말과 글이 저속하게 되었다.’(任東權)
 
  2. 말을 잘한다는 것,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응답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결코 ‘능숙한 언변이나 기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과 둘째는 무엇보다도 ‘진실성’과 ‘솔직함’을 담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라는 것이다(安秉煜, 柳根粲, 崔禹錫, 李季振, 孔柄淏, 李相禹).
  ‘계층과 교육 수준에 관계 없이 일반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그 말을 믿게 하는 말로, 미사여구보다는 내용이 깊이 있고 신뢰를 줄 수 있는 말과 글이어야 한다.’(金光雄)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잘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표현함으로써 상대방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정재환)
  또한 ‘말과 글을 사용하는 데 있어 목적이 분명한 것’(李珉和)이 말을 잘한다는 것, 글을 잘 쓴다는 것이라며, ‘불분명하면 그 말과 글은 산만해지기 십상’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兪翰樹), ‘의사 전달이 분명하게 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말’(張良守),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李光勳, 黃樹寬, 李相培)이라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
 
  安秉煜씨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은 길게 오래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짧고 쉽게 말하고 쓰는 것이다(洪思德, 姜南周). 전여옥씨는 ‘말은 길게 할수록 효과가 반감된다. 짧고 간단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응답자들은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진실함’과 ‘솔직함’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巧言令色(교언영색)도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쓸데없는 소문을 수다스럽게 지껄이는 것도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에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말과 생각하게 하는 말이 있다. 재미에도 단순한 오락적인 재미가 있고, 오락 이상의 그 어떤 재미가 있다. 오락 이상의 그 어떤 재미를 느끼도록 하면서도 생각을 더 하게 하는 말이 잘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바탕은 “거짓말”이 아닌 “정말(진실)”이다.’(李興雨)
 
  具常씨도 ‘말의 감동이란 진실이 없으면 공허하다’면서 말의 진실성을 강조한다.
 
  말과 글은 또한 장황해서도 안 된다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柳根粲씨는 ‘말이든 글이든 생각하는 바 그대로 표현해 내는 것이 가장 잘된 말과 글이다’고 정의하면서 ‘일관성 있는 논리의 전개로, 주제에서 벗어나 방만하게 가지를 뻗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3.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말과 글을 잘하고 잘 쓰기 위해서는 머리 속에 지식이 축적되어 있어야 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는 것. 金炳宗씨는 ‘독서를 많이 하면 말문은 저절로 터지는 법’이라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되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된 동서양의 고전을 읽을 것을 권한다(辛奉承, 崔禹錫)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머리 속에 그만한 지식이 축적되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남의 말을 많이 들어서 지식 축적을 많이해야 한다.’(金埈成)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훈련하는 것이 좋다. 삶의 중심과 근본이 잘못되었다면 그 삶을 반영하는 말과 글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런 전제하에서는 구체적으로 동서양의 인류 고전을 숙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金相賢)
 
  하지만 무조건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깊은 사색이 뒤따라야 한다고 한다.
 
  李相培, 洪思德, 張良守, 정진석씨는 “많이 읽고(多讀), 많이 써보고(多作), 깊이 생각(多商量)하는 외에는 王道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중 깊이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방송인 李淑英씨도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많이 하라고 권하면서 특히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하고 일기 쓰기를 지도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金彦鎬씨도 일기나 편지 쓰기, 크고 작은 모임에 참여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토론 등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낭독 습관
 
  응답자들은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선 일정한 훈련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명문을 많이 읽는다. 자신의 글에 대해 올바른 문법과 단어를 사용했는지 辭典이나 그외 자료를 참조해서 검토해 보고 문장력을 기른다.’(安秉煜)
  ‘좋은 글을 골라서 분석해 보는 훈련이 도움이 된다. 문법적으로 맞는지, 정확한 단어를 골라 썼는지 분석해 보면 그 과정에서 좋은 글이 무엇인지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李相禹)
 
  ‘기본적이면서 모범적인 구문들을 유형별로 정확하게 익혀 생활에 활용한다면 세련되면서도 정확한 언어 활용에 도움이 된다.’(金光雄)
  ‘어떤 책을 읽든 감동적이거나 인상적인 대목은 따로 적어두고, 일기·업무노트·가계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에게 맞는 메모 습관을 들이며, 좋은 詩 몇 편 혹은 아름다운 산문의 몇 구절 정도는 외원둔다.’(金相賢)
 
  ‘자기의 구미에 맞는 글만 읽는다면 편협한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설, 수필,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을 두루 망라하고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좋은 글, 편안하고 쉬운 말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黃樹寬)
  개인적인 노력 외에도 국가적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았다.
 
  ‘우선 학교교육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학생들 서로 간에 토론하는 자율교육 방식이 바람직하다.’(金埈成)
  ‘학교교육에서 말과 글쓰기 훈련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고 발표 수업과 토론 수업, 탐구수업을 크게 늘려야 하며, 교육자들의 말과 글쓰기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李相培)
 
  ‘말을 잘한다는 조건에는 바른 마음가짐과 발음, 알맞은 소리의 크기·속도 등 한국어의 구사 조건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낭독 연습을 하는 게 좋은데, 낭독 연습을 하는 데는 리듬과 톤을 살릴 수 있는 시조가 적합하다.’(金上俊)
 
  ‘말은 노래와 같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사람을 모델로 삼아 흉내내어 보자. 말도 일종의 흉내내기이다. 그러면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李季振)
  ‘날마다 10분씩 소리를 내어 정확한 발음으로 책을 읽는다. 이런 과정에서 잘못된 발음과 부정확한 발음을 교정하고 띄어쓰기와 억양을, 소리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정재환)
  ‘좋은 글은 기록하고 무조건 외우는 수밖에 없다. 어른들도 흘러간 유행가는 잘 해도 좋은 詩(시)나 臺辭(대사), 문장을 사람들 앞에서 읊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李根三)
 
  좋은 聽者(청자)는 좋은 話者(화자)를 만든다는 언론인 宋貞淑씨는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어릴 때부터 완전한 문장을 쓰며 말하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토론에 자주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어 훈련을 하라고 충고한다.
 
  연세대 명예교수 安秉煜씨는 ‘정확한 발음, 적당한 음성, 알맞음 속도감을 의식하여 말을 해볼 것’을 권한다. 공식저인 모임에서 남의 말을 경청해 보고, 토론이나 발표도 직접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연세대 석좌교수이며 문학평론가 柳宗鎬씨는 자신의 말을 녹음기에 녹음을 해서 들어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면 녹음 테이프를 듣는 동안 얼마나 많은 군더더기의 말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테이프를 들으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면 자신감과 용기가 몸에 배게 되고 숫기도 생길 것이라고 한다.
 
  4.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을 추천하고 그 이유는?
 
  각 개인이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는 데 대한 의견이 다양한 만큼, 추천해 주는 인물도 각양각생이었다. 글을 잘 쓰는 부분에서는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에서부터 崔南善(최남선), 함석헌, 홍명희, 李文烈(이문열), 언론인 金大中(김대중) 등 시대나 장르에 구분 없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추천을 해주었다. 말을 잘하는 부분에서는 정치인이 많은 편이었다. 대중 연설을 해야 하고, 자신의 정견을 펼치는 데 있어 말을 잘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감안할 때 이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글을 잘 쓰는 부문에는 金東吉, 李御寧, 李文烈, 박완서, 홍명희, 함석헌, 金大中(언론인), 피천득, 황순원씨가, 말을 잘하는 부문에는 李御寧, 金東吉, 兪萬根, 金東鍵, 李應百, 李珉和씨 등이 여러 번 추천을 받았다.
  특히 金東吉씨와 李御寧씨의 경우에는 말과 글 부분에서 동시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金東吉씨의 글은 말과 똑같은 주장과 판단을 그대로 서술하고, 말은 청중이 동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이끌어 가며 부담없이 듣게 한다는 데 추천 이유를 들었다. 해박하고 설득력 있는 그의 말과 글은 부녀자든 지식인이든 누구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한다.
 
  李御寧씨의 글은 뛰어난 修辭와 활달하고 감성적인 문장, 고전의 현대적 해석력과 설득력 등 다양한 이유로 추천을 받았다. ‘일찍부터 지식과 새로운 창의에 대한 話題를 던지며 지성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이고, 언어의 다양함을 통해 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공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소설가 李文烈씨의 경우는 성실하고 진실한 글쓰기 자세와 자기의 전공 분야 외에도 깊은 조예를 가진 글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감 있는 글, 현학적인 내용도 비교적 쉽게 풀어 쓰는 힘, ‘三國志’에서 보듯 고전을 평이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솜씨 등으로 추천되었는데, 일부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는 극찬을 하기도 하였다.
 
  언론인 金大中씨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논리정연하고 간결한 문체로 주제를 이끌어 간다는 평을 받았다.
 
  피천득씨를 추천한 사람들은 대부분 피씨의 아름다운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과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글 때문에 추천한다고 했다.
  이밖에 함석헌씨는 ‘言文일체의 대표격으로 한문도 거의 없이 아름다운 우리 말을 사용’, 박완서씨는 ‘감성이 풍부한 표현, 독자에 대한 섬세한 배려, 깊이 있는 경험 체계 활용’ 등의 이유로 추천을 받았다.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뽑힌 한국어문회 이사장 李應百씨와 兪萬根씨는 정확한 표준 발음과 차분한 어조, 정성 있게 꾸밈이 없는 자연스런 대화로 상대방을 배려해 말을 한다는 평을 받았다.
 
  아나운서 金東鍵씨는 듣는 사람을 배려한 편안하고 정감 어린 목소리, 정확한 발음 등으로 말 잘하는 사람으로 추천을 받았다.
 
  5.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 좋은 말이라고 생각되는 예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늘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 잘 쓴 글, 좋은 말이라고 한다. 객관적인 기준은 없지만 좋은 글이나 말은 모두 생각을 하게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춘원 李光洙(이광수)의 ‘우덕송’, ‘봉아의 추억’, 셰익스피어의 글과 영어 성경을 추천한 安秉煜씨는 쉽고 재미난 글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黃順元(황순원)의 ‘소나기’ (柳在乾, 崔禹錫)는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 주었다. 李興雨씨는 위당 鄭寅普(정인보)의 삼일절, 제헌절, 개천절 노랫말을 추천해 주었는데, ‘알기 쉽고 뜻이 깊고, 개념이 정확하며 품격이 있고 널리 보편적인 공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金埈成씨는 우리 말 어휘의 보고인 洪命憙(홍명희)의 ‘임꺽정’, 한문적 문장을 우리말로 처음 시도했던 춘원 李光洙, 지방에 남아 있는 순수한 우리말을 복원한 작가 金周榮(김주영)의 ‘화척’을 추천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중복적으로 추천된 글을 보면, 趙芝薰(조지훈)의 詩(洪思德, 김종찬), 崔南善의 기미독립선언문(金上俊, 李啓謚), 백범 金九(김구)의 ‘나의 소원’ (李相培, 洪思德) 들이었다.
 
  극작가 李根三씨는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사기(私記)’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극작가 辛奉承씨는 우리 밑바닥에 깔려 있는 모국어를 너무나도 잘 담아내는 최고의 작품이라며 최명희의 ‘혼불’을 권했다.
 
  姜南周씨는 李炳注(이병주)의 글 ‘조국의 不在’가 역사와 조국을 생각하게 하고 분단의 책임을 느끼게 하는 매우 감동적인 글이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까치글방 대표 박종만씨는 李文烈의 단편과 정운영·신영복의 에세이, 삼성경제연구소장 崔禹錫씨는 성경, ‘三國志’, ‘史記’ 등 고전을 추천했다.
 
  메디슨 회장 李珉和씨는 ‘인생은 자신의 한계를 넓혀가는 과정이다’는 말을 어떤 일이 있든지 가슴에 새겨두고 인생의 지표로 삼는다고 말했다.
 
  정치인 黃樹寬씨는 ‘우리는 운명의 주인이며 우리 앞에 놓인 임무는 운명 안에 있으며 우리의 불퇴전의 의지가 있는 한 승리는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는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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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을 위해서도 살고 싶어요”








2007년 5월22일 오후 12시 엄홍길, 변성호, 셰르파 한 명과 함께 로체샤르 정상능선에 올라선 모상현(牟相賢·34·컬럼비아스포츠웨어코리아 마케팅팀)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발이 무척 시렸다. C4를 구축하기 위해 C3에서 닷새간 텐트 플라이 하나로 비박하며 지내는 사이 발가락에 동상증세가 나타나 물집이 잡혔으나 베이스캠프에서 이틀 쉬면서 가라앉아 괜찮으려니 했으나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선배 두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석 달이 걸렸다 생각하니 그냥 내려선다는 게 너무도 억울하다 싶었다. 이제 두세 시간이면 석 달간의 등반을 끝내고 그토록 염원해오던 로체샤르 8,400m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살려달란 소릴 듣고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산소와 로프는 이미 다 떨어진 상황. 밑에 설치했던 40m 로프 두 동을 거두었다. 평탄하리라 싶었던 설릉은 20~30m 높이의 벽이 3개나 나타나 애를 먹였다. 그런데도 즐거웠다. 설악산 용아장성을 오르는 기분으로 정상에 올라섰다. 모상현과 변성호에게는 석 달간의 등반이었지만 엄홍길 대장은 2001년 이후 네 번 도전 끝에 이루어진 등정이었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단 말이야.’ 모상현은 시계를 쳐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칠흑같은 어둠이 밀려오고, 엄청난 추위와 강풍이 몰아쳤다. 변성호가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며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상에서 캠코더로 파노라마를 촬영하기 위해 잠시 고글을 벗은 게 설맹을 불러일으킨 것. 그런 상태로 안부까지 가는 동안 모두 지쳐갔다. 상현은 C4 도착 이튿날 엄홍길과 변성호가 쉬는 사이 셰르파와 둘이서 400m 로프를 까느라 힘을 쏟아부었던 터라 두 사람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체력이 고갈되어갔다.


“비박하자!”








8,000m 고봉 등반 중 여러 차례 비박을 경험한 엄홍길 대장이 안부에서 밤을 넘기고 내일 하산하자고 했으나 상현과 성호 두 대원은 자신도 없고, 하룻밤 지냈다가는 열 발가락 모두 잘라내는 상황이 생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에 1분 1초라도 빨리 내려서고 싶었다. 너무 정신없이 등반하다보니 배낭 안에 물이 있는데도 마시지 못했고, 떨어진 지 이미 오래인 산소통도 그대로 멘 상태였다.


꽁꽁 얼어붙은 수통과 산소통을 벗어버리고 다시 하산길에 들어섰다. 자일 한 동으로 하강하거나 클라이밍다운하고 고정로프를 만나는 지점에 내려서자 안심이 되었지만 엄홍길과 변성호가 내려오지 않자 초조해졌다. 잠깐 기다리다 마지막 캠프로 향했다. 너무 힘들어 잠시 쉰다 생각하다 깜짝 놀라면 졸고 있었고, 정신이 돌아오면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걱정하다 혹시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살아 내려가야 한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졸음이 쏟아지면 얼어붙은 장갑으로 뺨을 후려치고 머리를 설벽에 처박았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마지막 캠프가 내려다보였다. 살았다 싶었다. 22시간만에 돌아온 캠프였다. 지퍼를 열고 상체를 집어넣는 순간 그대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 눈보라와 깊은 눈을 헤치며 로체샤르 정상을 향하는 모상현씨.



“상현아~, 상현아~. 살려줘~.”


잠결에 성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0여 년 동안 형 동생하며 지내온 변성호의 살려달라는 절규였다. 2003년 탈레이사가르뿐 아니라 국내의 여러 산에서 목숨을 걸고 등반한 사이건만 눈보라가 몰아치는 텐트 밖으로 나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형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튿날이 돼도 변성호의 눈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자 모상현은 그와 함께 C4에서 하루 더 쉬기로 했다. 그런데 지원차 올라온 셰르파와 함께 하산하던 엄홍길은 C4 바로 아래 로프가 끊어져 위에서 줄을 거두어 깔아야한다는 황당한 상황을 알려주었다. 변성호는 눈도 눈이지만 손과 발에 동상이 심해져 몸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처지였다. 때문에 상현은 위에서 회수한 자일을 캠프 아래쪽으로 늘어진 줄과 이었다. 그런데 그게 죽음의 나락으로 잇는 줄이 될 줄이야.


“저희 팀 C4가 80년대 초 체코팀의 캠프 자리였어요. 그래서 주변에 고정로프와 하켄이 눈에 띄었는데, 그 줄에 저희 줄을 묶었던 거예요. 하루 쉬고 난 뒤였는데도 정신이 없었나 봐요. 20년 넘도록 8,000m에 매달려 있던 줄에 이었으니 툭 하는 느낌을 받는 순간 40m쯤 떨어진 것 같아요. 수천m 아래 빙하로 내리꽂나 싶어 순간적으로 끔찍했는데 눈턱에 걸리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거죠.”





▲ 엄홍길 대장(오른쪽)과 함께 올라선 로체샤르 정상. / 로체샤르 등반 후 BC에서 헬기를 기다리며.



어린 시절부터 넉넉하지 못한 채 산을 다니다보니 장비를 소중히 생각했던 상현은 마지막 내려서기 전 캠프에 올려놓은 침낭 2개에 산소마스크 8개와 레귤레이터 2개 등 값이 나가는 장비는 몽땅 챙겨 배낭이 머리보다 높이 올라올 정도로 짊어지고 내려오던 터였다. 눈턱에서 어렵게 멈춰선 상태에서 배낭을 풀러 피켈만 손에 쥔 다음 몽땅 버렸다. 그리고 살얼음 걷듯 설벽을 한 발씩 내려서 고정로프 끝지점까지 내려섰다.


“얼마 뒤 성호형이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왔는데, 눈물이 글썽하지 뭐예요. 너 그렇게 혼자 가버리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냐면서요. 그 전날 새벽 제가 먼저 내려오면서 느꼈던, 수직고 3,000m 벽에 나 혼자만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어렵게 베이스캠프로 내려섰는데, 힘이 너무 드니 도와달라는 무전을 받고 올라온 후배의 입에서는 술냄새가 풀풀 나고, 캠프의 대원들은 철수준비에 정신이 없지 뭐예요. 저희 두 사람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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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1999년 개장한 옥화자연휴양림은 청원군에서 운영한다. 전체 면적 136ha로 수용인원은 하루 112명이다. 시설은 숲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 아래쪽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이 숙박시설로, 4명을 수용할 수 있는 통나무집부터 25명용 대형 산막 등 20여 실을 갖췄다. 숲 속에는 예전에 관리사로 사용하던 통나무집 하나와 계곡을 막아 만든 수영장이 시설의 전부다. 가능하면 숲을 훼손하지 않도록 개발을 최소한으로 줄인 설계가 눈에 띈다.


야영장의 규모 역시 작은 편이다. 휴양림 입구의 관리사 앞 주차장으로 진입하기 직전 왼쪽 아래 보이는 숲 속에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다. 약간 비탈진 곳으로 키 큰 침엽수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사시사철 그늘이 형성되어 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설치된 데크는 큼지막한 돔 텐트도 충분히 칠 수 있는 넓이로 캠핑을 즐기기에 좋은 환경이다.





▲ (좌)목조 데크 위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여가를 즐기고 있는 캠퍼들. (우)야영장 한쪽 귀퉁이에 자리한 화장실과 취수대.



야영장 아래로 보이는 널찍한 공터는 주차장 겸 캠프파이어장으로 쓰인다. 단체 행사 때도 이곳을 자주 사용한다. 공터 안쪽으로는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있다. 취수대와 화장실 시설이 갖춰진 곳으로 야영데크 10개가 있다. 오토캠핑용 텐트를 설치하기에는 조금 좁지만 최소한의 장비로 머물기에는 적당하다.


캠프사이트를 넓게 구축하고 싶은 이들은 오토캠핑장 입구의 넓은 주차장을 이용해도 좋다. 나무 그늘이 거의 없어 뙤약볕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공간 활용은 자유롭다. 그래도 야영장과 맞닿은 곳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야영장은 6월부터 개장하며 산불예방기간에는 이용을 제한한다.





▲ 오토캠핑장에 설치한 야영데크.



부대시설로는 샤워장과 탈의장 시설을 갖춘 야외수영장이 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분위기 좋은 곳에 원두막 4동이 있어, 한낮의 햇살을 피하여 시원한 강바람을 즐길 수 있다. 캠프파이어를 원하면 관리실에 문의해 화목을 구입할 수 있다. 배드민턴장 4면, 배구·족구장 2면 등 체력단련 시설과 삼림욕장이 있다. 휴양림 안에 매점은 없으니 휴양림에서 6km 떨어진 미원면 소재지에서 구입해야 한다.


입장료는 일반(개인/단체) 1,000/500원, 청소년 500/300원, 어린이 300/200원. 산막은 1실당 15인까지 침구 제공이 가능하고, 산막 안에는 샤워와 취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이용료는 수용 인원에 따라 3만~16만5,000원. 야영장은 텐트 1동 당 5,000~7,000원. 오토캠핑장 9,000원. 주차장은 무료다. 주소 충북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 산 61-2번지. 043-297-3424. 홈페이지 http://okhwa.cbhuyang.go.kr





▲ (좌)옥화자연휴양림 산막지구의 숙박시설.(우)한여름이면 차가운 계곡물로 가득 채워질 수영장.



찾아가는 길
청주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20km쯤 가면 청원군 미원면 소재지. 여기서 19번 국도를 타고 5km 가면 운암리 운암휴게소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575번 지방도를 타고 좌회전해 1km 가면 ‘인풍정’ 팻말이 있는 인풍정교 앞이다. 우회전해 인풍정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왼쪽엔 강을, 오른쪽엔 논을 끼고 500m쯤 가면 옥화 자연휴양림이다. 보은에서는 19번 국도를 타고 충주 방향으로 23km 가면 운암리 운암휴게소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부터는 청주에서 접근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간다.








인근 명소  |  초정약수


 청원군 북일면 초정리에 있는 약수. 미국의 샤스터광천, 영국의 나포리나스광천과 함께 세계 3대 광천수의 하나로 꼽는 곳이다. 단순탄산과 중탄산이 함유되어 있고, 각종 미네럴 이온과 천연탄산가스가 풍부하다. 고혈압, 당뇨병, 위장병, 피부병, 안질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초정약수는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신비한 효능이 전설처럼 전해 내려왔다. 특히 세종은 이곳에 행궁을 차리고 60일 동안 초정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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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휴양림은 숲 자원을 활용하는 아주 매력적인 방법이다.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심신을 충전하는 데 이만큼 완벽한 장소는 찾기 어렵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자연휴양림을 여가를 즐기는 장소로 선호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자연휴양림의 대부분이 통나무집과 휴양관 등 숙소 대여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완벽하게 갖춰진 휴양림 속의 주거시설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휴식방법이다. 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휴양림의 숲 자원을 이용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휴양림의 숲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숲에서 머물며 삼림욕을 즐기는 것은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접근법이다.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량한 기운을 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야영장을 이용해 캠핑을 즐기는 것도 좋은 이용법이다. 울창한 숲 속 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야영데크에서 즐기는 캠핑의 묘미가 남다르다. 대형 텐트와 타프를 치고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자동차야영장을 갖춘 자연휴양림도 제법 많다. 산막과는 차별화된 고급스런 아웃도어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휴양림에서 즐기는 캠핑은 숲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나무와 더불어 숨쉬고 잠자며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휴양림 숲길 걷기와 함께하는 오토캠핑을 소개한다.


90년 된 잣나무 숲을 걷다
송홧가루 날리는 5월 초, 숲이 좋기로 이름난 옥화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자리한 옥화자연휴양림은 해발 400m 남짓한 나지막한 산지에 조성되어 있다. 밑에서 보면 고만고만한 산줄기로 둘러싸인 이곳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숲은 충북산림환경연구소의 채종림(採種林)으로 조림용 나무의 종자를 채취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그만큼 숲의 조밀도와 품질이 우수하다.


휴양림 입구의 야영장에 캠프사이트를 구축하고 식사준비를 마쳤다. 산림욕장 내의 임도를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해 여유가 있었다. 간편한 복장에 등산용 스틱과 가벼운 배낭으로 숲길 걷기 채비를 마쳤다. 산행을 앞두고 갖게 되는 비장함 보다 여유와 느긋함이 앞선다.





▲ 산막지구로 이어진 숲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취재팀.



휴양림 입구의 관리사무소 왼쪽으로 산림욕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보인다. 널찍하고 단정한 길은 정면에 보이는 산봉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잠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차단기가 막고 있는 삼거리다. 여기서 오른쪽의 임도로 방향을 잡는다. 초반의 숲길은 하늘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넓다.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임도로 접어들어 완만한 비탈을 치고 오르니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그늘을 찾아 길가를 따라 걷는다. 바람 한 점 없는 초여름 날씨에 초반부터 고전이다. 반바지와 짧은 팔 티셔츠 차림이 그립다.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는 그늘 속에는 여전히 냉기가 묻어난다. 숲 깊은 곳의 봄은 아직도 멀리 가지 않은 모양이다.


계곡을 따라 15분쯤 올라가니 길 왼쪽으로 사방댐이 보인다. 물이 가득 고여 있는 호수 위에도 송홧가루가 노랗게 떠 있다. 소나무의 살아 있음을 알리는 확실한 물증이다. 호수 위에는 옛 관리사가 외롭게 서 있고 그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의 임도는 주능선 부근까지 오르는 임도다. 이 길을 따라 잠시 가다 등산로를 이용해 팔각정이 있는 476m봉으로 오를 수 있다. 산림욕장으로 가려면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른다.


길은 다시 숨을 고르기 좋을 경사로 적당히 가팔라진다. 이제 숲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짙고 빽빽하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의 품질이 다르게 느껴진다. 크게 굽이치며 경사를 높인 숲길은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죽인다. 이 고개 주변에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수령이 90년의 아름드리 ‘스트로보 잣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노랗게 송홧가루가 쌓인 벤치에 앉아 산림의 에너지를 느껴본다.





▲ 낙엽송으로 둘러싸인 옛날 휴양림 관리소.



휴양림에서 ‘야간 산행’ 프로그램 운영
옥화자연휴양림은 남쪽의 440m봉과 팔각정이 있는 남동쪽의 476m봉으로 연결된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다. 북서쪽을 향해 열린 이 U자형 산줄기 안에 조림된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주요 수종은 잣나무와 낙엽송, 편백, 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다. 산림욕장 부근의 잣나무 군락이 가장 오래됐고, 덩치 큰 낙엽송은 40년 정도 나이를 먹었다.


산림욕장을 빠져나와 내리막길을 타고 잠시 진행하니 숲 사이로 연결된 산책로가 눈에 띈다. 임도도 좋지만 산책로를 따라 깊은 숲 속을 걷는 것이 산림욕 효과는 더 높을 것이다. 바닥에 통나무를 깔아 운치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설치한 지 오래되어 나무가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출입을 막고 있어 아쉽다.


급커브의 경사로를 통과해 5분 정도 내려서면 왼쪽으로 두 가닥의 오솔길이 보이는 임도 사거리다. 이 작은 산길 역시 숲을 가꾸기 위해 만든 산림도로로 구 관리소에서 시작된 임도와 이어진다. 호젓한 분위기의 이 임도를 타고 오르는 코스도 숲이 좋다. 경사가 조금 가파른 편이라 운동 삼아 오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임도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돌아서면 산중에 조성한 거대한 사방댐이 나타난다. 새파란 물이 가득 차 있는 호수가 인상적이다. 댐을 지나 300m 정도 내려서면 계곡을 막아 만든 수영장이 나온다. 한여름에도 물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수온이 낮다고 한다. 피서지로 적격인 곳이다. 계곡 건너편에 탈의실과 샤워장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휴양림 숙박객에게 한해 무료로 개방한다.





▲ 오토캠핑장 입구의 넓은 공터에 캠프사이트를 구축했다.



수영장을 지나 250m 정도 내려서면 임도는 다시 두 가닥으로 갈린다. 왼쪽 길은 논을 가로질러 마을로 이어지고, 오른쪽 임도는 휴양림의 산막지구로 연결된다. 느긋한 경사의 임도를 따라 산막 방면으로 걸어간다. 삼거리에서 400m 정도면 산막지구가 나온다. 동네 주민 두 명이 한가롭게 숲길을 산책하며 나물이 뜯고 있다. 자연휴양림다운 평화로운 풍경이다.


옥화자연휴양림에는 총 연장 14km 정도의 등산코스가 있다. 산이 낮아 코스별로 3시간이면 충분히 능선까지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산책하기 좋은 임도 구간은 6km 가량으로 여러 방향으로 코스를 구성할 수 있다. 옥화자연휴양림에서는 ‘숲 체험 야간산행’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한밤중에 산길을 걸으며 숲을 경험하는 이벤트다. 5인 이상 단체가 구성될 때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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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본격적인 창작 수업을 받았지만 누구의 가르침만으로 다 훌륭한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니다. 1984년 졸업 후 취직한 출판사에서 퇴근하자마자 집 앞 독서실에 자리를 얻어놓고 새벽까지 소설을 썼다. 나무 의자에 앉은 채 이희승 국어백과사전에 얼굴을 대고 잔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그렇게 쓴 소설이 <겨울우화>다. 독서실 생활을 꼬박 두 달 한 끝에 탄생한 작품 <겨울우화>를 문예중앙에 보냈다. ‘등단’이란 커다란 기쁨이 돌아왔다. 그게 1985년 그녀의 나이 스물 둘이었을 때였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 4. 소설 <리진>의 무대인 경북궁에서 소설 주인공으로 분장한 배우, 독자들과 거닐며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신경숙씨. 5.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2007년 9월 열린 한중문학좌담회에 참석한 소설가 신경숙, 박완서씨와 중국 여류 작가. 6. 2004년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기차로 횡단할 때 그랜드캐년에서.


초기엔 그녀만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어디 산길에 표지도 없고, 저자 이름도 없는 책이 한 권 떨어져 있어도 문체만 보면 ‘아, 이건 신경숙 소설이네’라고 할 정도의 작품을 쓰려고 했다. 실제로 <풍금이 있던 자리>와 <깊은 슬픔>이 자기문체 중심의 소설이다. 30대에 들어서는 역사와 사회를 내재화하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1990년대엔 모든 사회 분위기가 공동체 중심이었잖아요. ‘공동체가 행복해야 개인도 행복하다’가 모토처럼 전면화되어 있을 때였어요. 난 반대로 생각했어요. ‘개인이 빛이 나야 공동체도 빛이 난다'. 그래서 역사와 사회 속에서 사장된 개인을 발굴해 내는 작업을 했어요. 그런 작품들이 <왼딴방>이나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대표적이라고 봐요. 지금 40대엔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리진>이나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서사가 소설의 중심에 놓여졌어요.

‘소설은 이야기다’라고 본다면 거꾸로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에게 위로받자는 소설이 아니라 엄마를 위로하자는 쪽에 코드가 맞춰져 있는 소설이죠. 엄마 자체도 엄마가 필요할 정도로, 모성이라는 것은 엄마만이 아니라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나아가서 사회 자체가 모성성 덩어리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변화했다고 봐요.”

그녀는 그녀의 소설을 나름대로 시기별, 내용별로 구분했다. 정확히 자신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고, 시대가 배경이다.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시대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인간에 애정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 애정을 가진 인간 신경숙의 앞으로의 방향, 즉 미래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미래의 시간이 어떻게 펼쳐질지 나도 궁금해요.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어요. 작가로서 바람이 있다면 오래전에 쓴 작품이 아니라 방금 쓴 작품으로 소통되는 현재진행형의 작가로 지내고 싶어요. 예전에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예쁘면서도 질투심 같은 게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한없이 예쁘기만 하고, 그들이 꿈을 이뤄가며 잘 지냈으면 해요.

내가 하는 일이 그들에게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도 가득해요.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겠죠. 그리곤 잘 늙으신 분들을 만나면 그분 곁으로 가까이 가서 가만히 바라보게 돼요. 아마 잘 늙고 싶기 때문이겠죠. 작가이니 새로 쓰는 작품들과 함께 잘 늙고 싶어요. 먼 훗날 누군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말이에요.”





▲ 평창동 미술관에서 북한산을 배경으로 선 소설가 신경숙씨.



‘잘 늙은’ 신경숙, 아마 모든 사람이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이미 혼자만의 신경숙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늙기 위해서는 즐겁고 평안해야 한다. 그녀는 요즘 즐겁다. 탈고한 소설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면 작가로서 더 할 나위 없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어려운 시기 혼자만 즐거운 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다.

작품을 탈고했을 때의 순간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와 비슷하다. 힘든 과정을 겪고 나면 성취감과 충만감도 준다. 이보다 더한 이상한 평화가 밀려든다. 정신적 안도감이다.
그녀에게 엄마는 정신적 안식처이다. 엄마는 곧 산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아니 모든 사람에게 그럴지 모르겠다. 산은 항상 새롭고 다시 태어난다. 산은 또한 모든 사연을 간직하고, 들어주고, 품어준다.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이 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지금 일고 있는 ‘모성신드롬’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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