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평강건설기업에서 70만 큰 계약을 성사시켰다. 사장님이 호탕하고 미남이셨다. 나이를 드셨는데도 젊어보이고 멋졌다. 안양 로타리클럽 회장이란다. 안양에서 방뀌쾌나 뀌는 분이시란다. 

카센타에서 75000원주고 오일,카바를 고쳤다. 아내와 명학역 설치를 하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그리고 7시를 넘어서 인천 구월동으로 향했다. 이 인천 물건을 꼭 낙찰받고 싶어서였다. 구월동까지는 30분도 채 안걸렸다. 구월동 외곽에 위치한 빌란데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었다. 가보니 사람이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터였다. 동네 아줌마에게 여쭈어보니 봄에 5000천만원에 거래가 됐단다. 그런데 감정가가 2100만원, 거저라는 얘긴데 이거 입찰가가 문제다. 처음에는 2530만원 들어가려고 했는데 떨어질 것이 분명한 금액이고 두번째 금액이 2800만원도 이거 아니올시다고 ..   3133만원을 지금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데 이거 머리가 아프다. 부동산 업자들 말로는 무진장 사람이 왔다갔다는데... 문제가 있을 법도 하다던데..  

정말 인천 물건은 하나 꼭 낙찰받고 싶은데 입찰가가 떠오르지 않는구나. 2833만원이냐? 3133만원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3133만원이면 꼭 낙찰 받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 밤  좋은 꿈꾸고 내일 결정하자. 내일은 아내 생일인데 정말 기쁘게 사랑해주고 맛난 것 먹으러 가야지...   아! 고민 고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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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날 임장했다. 천안을 다녀온 후 3일만에 다시 입찰을 한 물건이다. 

감정가는 5000천만원인데 시세가 장난이 아니다. 9000천만원이다. 요즘은 1회 때 유찰되는 물건도 많지만 이 물건은 경쟁이 치열할 것을 예감했다. 집주인 인 듯한 노인이 한마디 하셨다. 이거 다 물건 값 다치루었다 하신다. 나중에 그말의 뜻을 알았다. 아마 부인의 동생인 사람이 대리입찰을 하여 낙찰을 받은 것 같다. 낙찰자가 거의 이름이 비슷했다. 

경쟁이 치열했다. 19명이 입찰을 했다. 나는 5700만원에 입찰했는데 최고가 매수인은 8700만원이었다. 대리입찰을 한 주인의 승리였다. 그저 시세대로 산 셈이다. 다른 경쟁자들도 7000만원을 넘겼다.  

결론- 인천은 아마 6번째 입찰을 했는데 한번도 낙찰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기는 게다. 일단 인천 빌라를 낙찰받아보고 여러 다른 물건들을 욕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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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임장하고 입찰을 한 물건이었다.  

임장하는 데 걸린 시간을 따져보면 많은 정성을 쏟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웬지 이상하리만큼 정이가는 물건은 아니었다. 5년간에 가격시세가 거의 없는 물건이다. 하여 낙찰이 된다해도 몇번을 오가고 치루어야할 명도와 나머지 작업이 불분명한 물건이었는데 15.330.000원에 입찰하였다. 낙찰은 16.560.000원에 낙차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씁쓸한 마음은 없었다. 

결과-   성과는 없지만 꾸준히 물건을 보고 임장하고 실천의 내공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임장하고 입찰한다. 올해부터는 이 경매투자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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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나는 한 독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 홈페이지에 참여한 게시문이기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리곤, '그건 꿈이야' 라고 단정짓습니다. 저 역시 평범한 사람 속에 속해있습니다. 현재하는 일에 만족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나이먹고 이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설 자리를 잃게되는 불안감과 경제적으로 부디치게되는 현실을 외면할수 없기에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듭니다. '변화라는 것. 어느정도 여유있는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행복한 비명아닐까하는.....' .평범한 혹은 평범치도 못한 사람들에게 변화란 어쩜 무서운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생각에 감히 내가 무얼하고 싶은지도 까마득히 잃어버리고 사는것이 곧 현실이고, 바로 저 자신입니다. 내 꿈이 무엇일까요. 내가 하고 싶은것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과연 내게도 변화가 허락이나 될까요. 돈이 곧 행복이 될 수 있다는것이 실감되는 요즘에 망설여지는 질문입니다. "

저는 이 편지 속에서 많은 진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들은 이 평범한 진실 속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강력한 의지와 결단을 가지고 있는 영웅이 아닙니다. 운명을 개척하는 초인들도 아닙니다.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적당히 타협하고, 물러서고, 그런 자신이 보기 싫어 번민하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 그저 소주 한잔에 평화로운 일상으로 회기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작은 일로 마음을 쓰고 사소한 일 때문에 울고 웃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가 변화할 수 있을까요 ?

오늘 여러분은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 몇을 골라 그들의 과거를 한 번 들춰 보기 바랍니다. 몇몇 천재들을 제외하면 아마 대부분 유명해 지기 전에는 상점의 점원이었거나, 외판원이었거나, 평범한 말단 직장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자기를 평범하거나 그 만도 못한 신통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희망과 좌절 사이를 오락가락 했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 입니다. 평범과 비범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평범에서 부터 비범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평범과 비범 사이에 존재하는 변곡점이 바로 우리가 찾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같은 사람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생에 대한 태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그 순간 부터 우리는 승리하기 시작합니다.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체험으로 부터 배웁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내는 순간 부터 그들은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자기가 모든 근본적 변화의 시작입니다. 돈에 투자하면 딸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투자하면 절대로 잃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투자 한다는 말은 하고 싶은 일에 한 두 시간 시간을 내는 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오늘 부터 하고 싶은 일에 한 두시간 쯤 별도의 시간을 내기 바랍니다. 사회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매일 3년 쯤 하다보면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됩니다. 선택당하는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는 것 - 이것이 바로 성공의 시작입니다. 준비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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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늦은 저녁 10시를 넘어서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전화한적이 없는 누나이기에 무슨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국민일보에 가족 사랑 수기공모가 있는데 네가 편지 보낼 생각없니? 엄마 진찰도 받아보시고 수술 할 수 있다면 수술도 하셨으면 좋겠는데... 네가 누나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저는 속으로 금방 마음의 결정이 났습니다. 다른 일은 해도 이런 글은 쓸 수가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술에 대한 나쁜 편견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술후 완쾌 되거나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수술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머니가 원하시면 전 하늘에 별을 따다가 달라시면 별을 따드릴 수 도 있고 불구덩이 속을 들어오라면 들어 갈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술만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누나에게는 차마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은 하지않고 생각하고 내일 답변을 준다고 했습니다.

 30분을 넘게 생각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아들로써 얼마나 아들노릇을 했고 과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자식된 도리를 했으며 어머니의 무륲진찰과 수술을 하지않는 것만이 진정 어머니를 위하는 자식의 솔직한 마음인가, 어머니를 위한 자식의 진정한 효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뭉클한 것이 느껴지며 어린날 어머니와 저와 같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니 몇가지 생각이 납니다. 무슨 단어로도 표현 못할 내 소중한 어머니와의 몇가지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 형제중에서 제가 가장 어머니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아프면 심하게 아팠고 꾀병을 동반하여 잔병치레도 많이 해서 바쁘고 힘드신 어머니를 마음아프게 했습니다.
감기가 걸리면 심하게 걸렸고, 몸살이 나면 불덩이처럼 열이 나서 면내에 있는 약국까지 어머니등에 업혀서 몇번을 갔는지 모릅니다. 초등학생의 어린 몸이지만 어머니께서 얼마나 무거우셨을가요?
아프면서도 어머니 그 등이 얼마나 따숩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마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나은게 아니고 어머니의 품속의 사랑으로 낳았을 겁니다.

 중2때에는 두번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기브스를 한몸으로 집과 학교를 오가며 5개월 동안 요강에 대소변을 항상 치워주시며 병간호를 해 주셨습니다. 중3때는 친구와 심하게 다투어 2번이나 코뼈와 이가  부러져 전주에 있는 종합병원에 쾌 다녔습니다. 병원에 다니던 중 어머니와 여인숙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어머니는 저를 어루만져 주시며 아무런 야단을 치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아들 아파서 어쩌나... 하시며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 바쁘신 농사철에 한번도 거르지 않으시고 치료받는 것을 지켜주셨습니다.

 
고교때는 시골 촌놈 도시로 와 까불다가 사고를 몇번 쳐 어머니께서 학교로  몇번을 오셨습니다. 한번은 이렇게 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 일은 절대 안했는데 누명을 썼습니다. 입장이 난처해지신 어머니께서 첫차를 타고 익산 학교로 오셨습니다. 검정 비닐 봉투에 빵과 우유를 넣어 가지고 오셨습니다. 네가 안그랬지. 네가 안그랬지. 하시며 연신 빵과 우유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그리 먹고 싶지 않던 빵을 계속 먹으라 하시면서 저를 눈물 짓게 만들었습니다.

 어린시절과 가정을 가지고 성인이 된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온통 일한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린날에는 외딴집에 살면서 어른들도 힘들다는 온갖 농사일 다했습니다. 논농사,담배농사, 자갈밭을 옥토로 만드는 힘든 농사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 했습니다.어린이날이라도 한번 놀고 싶었는데 항상 일,일 일  그 일, 뿐이었습니다. 몇년전까지 제 형제들의 소원은 휴가나 주말에 시골에 가면 제발 일 한번 안하고 노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놀아보는게 소원이었습니다.손자가 중학생인데도 지금도 예전 몸처럼 생각하시고 또 들 일,밭 일 입니다.

 68세.지금도 어머니는 시골에서 지금도 일을 많이 하십니다.
몇년전부터 무릎이 너무 아프시다고 걷기도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일을 하십니다. 시장 한번 다녀오시는데 몇번을 쉬시고,병원에도 다리가 아프셔서 많이 다녔습니다.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를 뵈면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누구를 위하여 일하시고 누구를 위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여쭈어 봤습니다. 그래요. 자식들을 위하여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쌀이며 고추라도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그런거 안 주셔도 되고요. 소 일 삼아 조금 운동삼아 하시는 것은 좋은데 너무 젊으셨을 때처럼 하시니 제발 일을 줄이시라고요.
어머니 그저 일 안하시는게 저희 자식들 도와주시는 것이라구요.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깊이 생각하니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군요. 그래도 항상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지 않은가? 그나마 도와드렸으니까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았는가? 어머니라고 일 자체가 좋아서 하셨겠는가?
그나마 어머니가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다른 어른들보다 더 건강하시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닌가...

 이 글을 마치는 이 시간에 어머니에게 희망의 끈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래. 어머니께서 그렇게 원하시는대... 그래 정확하세 한 번 진찰을 받아보게 해드리자.  수술 안 해주면 당신이 이번 고추 농사지신 돈으로라도  하시겠다는데... 그래 그렇게 소원하시는데 한번 진찰 받게 해드리자.
어머니에겐 비내리고 폭풍치는 여름과 매섭과 차가운 바람과 서리의 찬겨울만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따스한 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진정 내 어머니의 이름으로 된 그 포근하고 따뜻한 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제가 의사를 해야하나 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 걱정부터하는 못난 아들이었습니다. 전문가인 의사선생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되는데 해보지도 않고 걱정만 하는 아들이니까요.
올해 봄에는 화상을 입으셔서 3개월을 고생하시고 여름에는 인삼밭에서 일하시다가 넘어지셔서 어깨와 허리를 아프셔서 한달을 입원하신 안쓰러운 어머니십니다.
어머니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무릎 치료 받으시면 이제 예전처럼 일 많이 안하시기로 말입니다.
지금도 저는 38살 먹은 철부지 아들입니다.그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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