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늦은 저녁 10시를 넘어서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전화한적이 없는 누나이기에 무슨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국민일보에 가족 사랑 수기공모가 있는데 네가 편지 보낼 생각없니? 엄마 진찰도 받아보시고 수술 할 수 있다면 수술도 하셨으면 좋겠는데... 네가 누나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저는 속으로 금방 마음의 결정이 났습니다. 다른 일은 해도 이런 글은 쓸 수가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술에 대한 나쁜 편견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술후 완쾌 되거나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수술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머니가 원하시면 전 하늘에 별을 따다가 달라시면 별을 따드릴 수 도 있고 불구덩이 속을 들어오라면 들어 갈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술만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누나에게는 차마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은 하지않고 생각하고 내일 답변을 준다고 했습니다.

 30분을 넘게 생각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아들로써 얼마나 아들노릇을 했고 과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자식된 도리를 했으며 어머니의 무륲진찰과 수술을 하지않는 것만이 진정 어머니를 위하는 자식의 솔직한 마음인가, 어머니를 위한 자식의 진정한 효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뭉클한 것이 느껴지며 어린날 어머니와 저와 같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니 몇가지 생각이 납니다. 무슨 단어로도 표현 못할 내 소중한 어머니와의 몇가지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 형제중에서 제가 가장 어머니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아프면 심하게 아팠고 꾀병을 동반하여 잔병치레도 많이 해서 바쁘고 힘드신 어머니를 마음아프게 했습니다.
감기가 걸리면 심하게 걸렸고, 몸살이 나면 불덩이처럼 열이 나서 면내에 있는 약국까지 어머니등에 업혀서 몇번을 갔는지 모릅니다. 초등학생의 어린 몸이지만 어머니께서 얼마나 무거우셨을가요?
아프면서도 어머니 그 등이 얼마나 따숩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마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나은게 아니고 어머니의 품속의 사랑으로 낳았을 겁니다.

 중2때에는 두번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기브스를 한몸으로 집과 학교를 오가며 5개월 동안 요강에 대소변을 항상 치워주시며 병간호를 해 주셨습니다. 중3때는 친구와 심하게 다투어 2번이나 코뼈와 이가  부러져 전주에 있는 종합병원에 쾌 다녔습니다. 병원에 다니던 중 어머니와 여인숙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어머니는 저를 어루만져 주시며 아무런 야단을 치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아들 아파서 어쩌나... 하시며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 바쁘신 농사철에 한번도 거르지 않으시고 치료받는 것을 지켜주셨습니다.

 
고교때는 시골 촌놈 도시로 와 까불다가 사고를 몇번 쳐 어머니께서 학교로  몇번을 오셨습니다. 한번은 이렇게 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 일은 절대 안했는데 누명을 썼습니다. 입장이 난처해지신 어머니께서 첫차를 타고 익산 학교로 오셨습니다. 검정 비닐 봉투에 빵과 우유를 넣어 가지고 오셨습니다. 네가 안그랬지. 네가 안그랬지. 하시며 연신 빵과 우유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그리 먹고 싶지 않던 빵을 계속 먹으라 하시면서 저를 눈물 짓게 만들었습니다.

 어린시절과 가정을 가지고 성인이 된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온통 일한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린날에는 외딴집에 살면서 어른들도 힘들다는 온갖 농사일 다했습니다. 논농사,담배농사, 자갈밭을 옥토로 만드는 힘든 농사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 했습니다.어린이날이라도 한번 놀고 싶었는데 항상 일,일 일  그 일, 뿐이었습니다. 몇년전까지 제 형제들의 소원은 휴가나 주말에 시골에 가면 제발 일 한번 안하고 노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놀아보는게 소원이었습니다.손자가 중학생인데도 지금도 예전 몸처럼 생각하시고 또 들 일,밭 일 입니다.

 68세.지금도 어머니는 시골에서 지금도 일을 많이 하십니다.
몇년전부터 무릎이 너무 아프시다고 걷기도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일을 하십니다. 시장 한번 다녀오시는데 몇번을 쉬시고,병원에도 다리가 아프셔서 많이 다녔습니다.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를 뵈면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누구를 위하여 일하시고 누구를 위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여쭈어 봤습니다. 그래요. 자식들을 위하여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쌀이며 고추라도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그런거 안 주셔도 되고요. 소 일 삼아 조금 운동삼아 하시는 것은 좋은데 너무 젊으셨을 때처럼 하시니 제발 일을 줄이시라고요.
어머니 그저 일 안하시는게 저희 자식들 도와주시는 것이라구요.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깊이 생각하니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군요. 그래도 항상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지 않은가? 그나마 도와드렸으니까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았는가? 어머니라고 일 자체가 좋아서 하셨겠는가?
그나마 어머니가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다른 어른들보다 더 건강하시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닌가...

 이 글을 마치는 이 시간에 어머니에게 희망의 끈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래. 어머니께서 그렇게 원하시는대... 그래 정확하세 한 번 진찰을 받아보게 해드리자.  수술 안 해주면 당신이 이번 고추 농사지신 돈으로라도  하시겠다는데... 그래 그렇게 소원하시는데 한번 진찰 받게 해드리자.
어머니에겐 비내리고 폭풍치는 여름과 매섭과 차가운 바람과 서리의 찬겨울만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따스한 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진정 내 어머니의 이름으로 된 그 포근하고 따뜻한 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제가 의사를 해야하나 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 걱정부터하는 못난 아들이었습니다. 전문가인 의사선생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되는데 해보지도 않고 걱정만 하는 아들이니까요.
올해 봄에는 화상을 입으셔서 3개월을 고생하시고 여름에는 인삼밭에서 일하시다가 넘어지셔서 어깨와 허리를 아프셔서 한달을 입원하신 안쓰러운 어머니십니다.
어머니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무릎 치료 받으시면 이제 예전처럼 일 많이 안하시기로 말입니다.
지금도 저는 38살 먹은 철부지 아들입니다.그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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