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책이다. 창비에서 출간된 창비만화도서관의 두 번째 작품인
『올해의 미숙』은 장미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래서 학창시절 미숙이가 아닌 미숙아라는 이름을 불리며 은근히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는 장미숙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미숙이 언니 정숙과 함께 병원을 찾은 후 간단한 검사를 끝내고 헤어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우울증에 대한 진단을 받은것 같았던 언니 정숙은 미숙에게 정신력을 버티면 된다고 했지만 실상 더
심각한 언니의 병은 정신력으로만 버티기엔 힘든 상태였다. 유전병이기도 한 다발성 골수종. 쉽게 말해 뼈가 녹는 병이다.
괜찮다는 언니의 말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게 된다.
여행이 가고 싶다던 언니는, 아이를 낳고 싶다던 언니는 결국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은 이야기는 이후 3부에 걸쳐서 진행된다. 1부는 미숙의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교 시절까지다. 한 권의 시집을 내고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쫓는 아버지는 경제력이 없다.
결국 어머니가 각종 부엌과 식당 일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고 특히나 딸만 둘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은근히 아들을 바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부모님의 관계는 곧 악화되어 싸우는 일이 잦아지고 언니는 미숙에게 있어서 또다른
보호자가 된다.
부모로부터 제대로된 사랑을 받지 못하는 두 사람, 그런 아버지의 재능을 정숙은 닮고자 하지만 오히려
둘째인 미숙이 더 재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언니가 아버지처럼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에 보였던 글이 일기라는 혹평을 받은 뒤 미숙은 그 꿈을
생각지도 않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음을 붙일곳이 없었던 미숙은 어느 날 전학 온 재이라는 아이를 통해 점차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어딘가 모르게 세상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미숙에게 재이는 딱 그런 존재 같다.
하지만 그런 재이가 어느 날 다른 학생에게 폭력을 가해 학교에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는데...
2부에서는 미숙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재이와 재회하는 미숙은 재이와
더 어울려 다니고 서스럼없이 자신의 집안 얘기도 하게 된다. 그 사이 언니는 점차 반항적으로 변해가고 집안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진다.
그러다 재이가 자신이 들려 준 자기 집안의 이야기로 청소년 문학상에서 소설 분야의 금상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는데...
3부는 재이와의 사건 이후 결국 학교를 그만 두고 검정고시로 졸업한 뒤 취직을 하고 집안에서 독립해
나온 미숙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공부하는 동안 만난 겸재와 연인 사이가 된 미숙은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아버지가 아픈 사실을 알게 되고
그토록 아버지와 싸웠던 어머니는 미숙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간호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삼년을 살고 죽고 이후 언니가 아버지의 병과 같은 병을 앓아 죽게 된다. 미숙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언니가 힘들어하던 그때 언니에게 무엇이 힘드냐고 물었다면 지금 이 결과가 달라졌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쩌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본가는 허물어지고 보상으로 나온 돈을 어머니는 옛날
아버지가 던진 책에 맞아 얼굴에 생긴 흉터를 치료하라며 미숙에게 건낸다. 이젠 아버지도, 언니도 떠난 일상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미숙.
과거 잊고 살았던 재이가 안부를 묻더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지만 딱히 특별한 감흥은 없다. 마치
세상에 통달해버린듯, 아니면 딱히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무감한 표정이 미숙을 감돌아 뭔가 안쓰럽기도 하고 오히려 그녀의 마음 속
스산함을 보여주는것 같아 절제된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것 같기도 한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그런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