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사이러스 (혹은 키루스)님의 글을 읽고 쓰다 말다 하면서 오늘까지 보관했던 글을 정리했습니다.
어제 사이러스님의 글을 읽고나서, 밤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오늘까지도 '헌책방'과 '중고책방'에 대하여, 그리고 서점에서 책을 파는 것 외에도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복합문화공간을 꾀하는 것,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지금의 중소규모서점들이 지향하게 된 모습에 대한 고찰...까지는 아니고. 그냥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서점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같은 서점에 대한 것들고 꽤 많이 있기에 주로는 긍정적인 눈으로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내지는 업종다양화를 바라본 것 같다.
그런데, 실상 좀더 행간을 짚어보면 이와 같은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혹은 서점의 '탈서점'화나 복합문화공간지향성은 훨씬 더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사이러스 (혹은 키루스)님의 글을 읽으면 몇 가지로 이들이 압축되는데 다음의 내용으로 정리해보았다.
1. '헌책방'의 '중고서점'화 혹은 지향성:
헌책방이란 말 대시 중고서점이란 말을 쓰는 것으 politically correct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몇 번인가 책이나 블로그에서 접하고 호의적으로 반응을 했었다. 헌책방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낡고 오래된 듯한, 아니 무엇보다 '헌책'이라는 표현보다는 같은 말이라도 '중고'책이라는 표현이 더 나은 것이라는 의견이 골자인데, 일견 말이 되는 듯 했다. 사실, 깊이 생각해보았다기 보다는 그저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책과 이를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가장 기본적인 단어의 취사선택에서라도 개선한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상 보면 '헌책방'이라는 표현이 그리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중고'나 '헌'책이나 결국은 비슷한 의미인데, 굳이 '중고서점'이라는 표현을 좀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인정해야만 할 논리적인 스탠다드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일종의 말장난에 다름 아닌 것이난 생각도 든다. 굳이 헌책방이 중고서점으로 바뀌어 불려야 하는가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은데, 헌 책 보다는 중고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소규모 영세업자의 영역의 헌책방을 중고서점으로 바꾸어 부름에 따라 보다 대형화되고 조직화된 자본의 시장침투가 용이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2. '중고서점'이 쓰고 있는 '헌책방'의 탈:
앞서 말했지만, 헌책방에서 오는 어감도 그렇고, 아무래도 헌책방은 소상공인의 영역이고, 보다 더 가벼운 주머니의 사람들이 좀더 좋은 가격에 책을 구하기 위해 second hand로 거래되는 책, 남이 보다 넘긴 책들을 찾는 공간이다. 규모에 있어서나 고객층에 있어서나 전통적으로 헌책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낮은 곳에 위치만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frequented되는 공간이라고 생각되고 마켓 자체도 그런 태생적 feature가 있다고 보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것이 차별이나 다른 형태로 헌책방 업계를 얕잡아 볼 수 이유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실상이 그렇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출판과 유통이 모두 변한 책 마켓의 특성상 좀더 다른 의미, 다른 구조, 또는 다른 사용자들과 업계와 섞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는 일종의 틈새마켓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서점업계와 유통구조가 인터넷을 만나고, 이후 다시 책읽는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시대가 되어 전체적인 책시장 자체의 규모가 줄어들고, 마진의 pie가 줄어든 지금 슬그머니 이 영세시장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자본세력이 들어오면서 이들이 '중고서점'이라는 말로 '헌책방' 마켓에 들어온 것 같다. 이 역시 별 생각이 없이 그냥 깨끗한 헌책방이 생겨서 좋다는 정도로만 봤는데, 실상을 놓고 보면 이들이 파는 건 '헌책'이 아닌 말 그대로 '중고'새책인 듯 싶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깨끗한 책을 덜 주고 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헌책방에서 유통되는 건 이런 새 '중고'책보다는 새책시장과는 다른 별개의 마켓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들이고 이를 되파는 등 보다 더 산발적이고 비조직화된, 서점마다 각각의 캐릭터와 주력분야 및 주인의 전문성을 갖춘 헌책방과 중고서점과는 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헌책방의 경우, 특히 오래 영업해온 서점은 주인의 전문성이나 종류의 특화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아가서 기업형 편의점의 잠식도 모자라서 포화상태에 이른 소상공마켓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서점운영은 한 가정이 중산층 수준의 삶, 설사 그보다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손 벌리고 기본임금과 격무에 시달리지 않고서도 도시근교의 삶을 보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중고서점'의 경우, 오너는 모두 회사로, 구성원은 모두 시급알바로 기본적인 책의 전문성보다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사의 재고를 recycle하는 수준 (조금 비약이 심하지만)이 아닌가 싶다. 책의 종류도 무엇도 모두 구조화되어 회사의 필요와 상품성에 의해 결정되는, 하지만 '헌책방'의 추억과 보다 더 현대적으로 자본적인 예쁜 장식이 이 현실을 포장하여, 우리 모두를 둔감하게 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이라면 어느 정도의 깨인 마음과 머리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이들까지도 이런 facade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3. 탈서점화, 또는 복합공간화
이건 조금 어렵다. 대형서점까지도 사라져가는 시대에 작은 개인서점이나 헌책방을 꾸려가려면 정말 많은 꼼수와 차별화가 필요한 건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마치 헌책방이나 개인서점이 가야할 미래의 길이라고만 보는 건, 그 칭찬일색의 평가만큼이나 불편하고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각종 안전망이나 시스템 수준의 보호가 사라진 현대의 헬조선에서 무엇이 과연 옳고 그른가를 논하는 것, 특히 먹고사는 문제를 기본으로 놓고 이야기 하는 경우,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정답은 없다고 결론이 나오면서도, 무엇인가 불편하고,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다. 나의 의견이 전부도 아니고 다 맞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부터, 아니 사실 이 글을 쓰던 그 날부터의 결심이지만, 나는 오늘부터 중고서점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용어에서 오는 negative한 또는 positive한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이 말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헌책방은 헌책방으로 부르는 건 내 자유이거니와, 이게 지금의 나에겐 최선의 저항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