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월드 2 - 환상의 빛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테리 프래쳇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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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다. 1부 [마법의 색] 마지막에 린스윈드는 떨어졌다... 어디로?

'어디'라는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1부의 독자분이시여,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시라. 나 역시 그랬지만, 작가는 디스크 월드 2부 [환상의 빛]에서 린스윈드를 그 자신의 기대(?)나 독자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생각치도 못한 곳으로 떨어뜨려 놓는다. 여기서 그 '어디'를 밝히면 책의 재미가 반감될 터이니, 입 다물고 있겠다. 하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우리의 관광객 '두송이꽃'과, 그의 재산이자 디스크 세계의 최강 전사이자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액션 스타인 그의 '짐짝'의 팬들께선 걱정하실 필요가 없으시겠다. 서로간의 인연이 오뉴월 햇볕에 내 놓은 엿가락처럼 끈끈하게 들러붙어 있는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짐짝'은 2부에서도 독자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모험을 함께 하니까.

디스크 월드 2부 [환상의 빛]은 -역자의 말을 옮기자면 '디스크 월드 시리즈 중에서는 드물게 전권과 연결되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전편'의 '후편'이라는 느낌과 함께 '연작의 두번째'라는 느낌-1부와는 다소 독립적인-도 함께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린스윈드와 두송이꽃의 모험은 1부에 이어 계속이기도 하지만 1부와는 별 상관없이 진행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2부도 역시 1부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시시껄렁한 농담과 그들이 살고 있는 판타지 세계에 대한 풍자를 축으로 해서 조금 덜컹거리기는 하지만 잘도 굴러간다. 개인적으로는 1부의 기발함에 익숙해졌던지 2부에선 턱관절이 1부보다는 아주 약간, 아주아주 약간, 덜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테리 프래쳇 특유의 포스가 어디 갈 리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신이 '마법사 비스무레한 뭔가' '일지도 모른다' 라는 사실을 증명한 린스윈드와 '대충은' 환율사정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를' 두송이꽃에게 축하를 보낸다. 사실, 그들이 앞으로, 마법사 답지는 않을지라도 '마법 쪼가리'를 쓸 수'나' 있게 되는지, 혹은 환율차이를 정확히 알고 주점 '깨진 북'의 주인에게 적정한 술값을 지불할 수 있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둘 다 어쩐지 글러먹은 듯 보인다)

정신없는 리뷰를 끝내며 덧붙이자면, 나는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이들의 모험이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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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장이 너무 많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24
렉스 스타우트 지음, 김우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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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스타우트의 작품 중 내가 접해본 번역본은 모두 세 권이다. 동서 미스테리 북스의 <요리장이 너무 많다>와 해문의 <독사> 그리고 전설의 시그마 북스에서 나온 <챔피언 시저의 죽음>이다. 이 중 렉스 스타우트 특유의 재미와 개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요리장이 너무 많다>이다. 제목부터 먹는 것에 집착하는 뚱땡이 탐정 네로 울프와 제격이라는 느낌 아닌가.

특히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 시리즈는 특유의 비비꼬인 유머와 '울프-굿윈' 콤비의 만담이 한 마디로 '끝내준다'.  말 할 때마다 낳지도 않은 자식들 숫자가 늘어나는 우리의 아치 굿윈 조수는 그야말로 홈즈의 와트슨과는 반대의 의미로 조수의 귀감이 될 법하며, '대장' 울프는 이름 그대로('네로') 폭군형이지만 사실은 살짝만 봐도 더없이 귀여운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권 만으로도, 울프-굿윈 콤비에 중독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쉽게 중독이 되기엔 엄청난 장애가 있는데, 바로 번역 문제이다. 특히 아치 굿윈의 이죽대는 유머와 달변을 번역자는 전혀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번역에 민감한 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역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만약 중역을 못견뎌 한다면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해외 미스테리 소설 거의 대부분을 못 읽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번역 상태에 나는 굿윈의 페이스에 말려 힘들어하는 번역자 만큼이나 괴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스타우트의 유머를 날려버리는 건 그렇다 쳐도, 문장이라고 쳐 주기도 어려운 상태가 곳곳에 보이는 데에는 질리고 말았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 꼭 읽어봐야 하지만 번역 때문에 정말 권하고는 싶지 않다. 그래서 별이 두개나 깎였다. 제발,  개정판을 내라 동서 출판사여! 걸고 넘어지자면 한 두권이 아니지만, 제발 이 소설 만큼은 퇴고정도는 다시 한 개정판이 보고 싶다. (아니면, 시그마북스를 다시 내라,  s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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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의 비밀
루스 렌들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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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스 파치먼은 글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미스테리 소설 리뷰를 하면서 결론을 말하는 건 엄청난 범죄행위에 해당됨을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놀란 마음 진정시키셨으면 한다. 이 글귀는 책에 나오는 가장 첫 문장을 옮긴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지, 고려원 미스테리 편집부의 글 다음에 시작되는 1장의 첫문장이다. 그리고 소설은 유니스가 커버데일 일가를 만났을 때로 돌아가 유니스가 커버데일 일가를 죽이기까지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미스테리 소설로서는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일이다. 범인과, 피해자와, 범행의 종류와, 동기가 모두 미리 밝혀져 있는 것이다.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맛의 반 이상, 아니 대부분이 떨어져 버릴 법하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미스테리 소설이 지적 게임이나 기발한 트릭의 전시장이 아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장 적나라하고도 심도있는 탐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떨어지기는 커녕 내 읽는 속도를 원망스럽게 만들었던 재미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속에 오래동안 남아 있는 뒷 맛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스테리 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의 뒷맛은 통쾌하거나 작가의 기발함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정말 무겁고, 답답한 심정을 남긴다. 잘 쓴 범죄 실화가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나는, 이 이야기가 루스 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픽션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유니스의 범죄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혹은 커버데일 일가가 살 길은 없었는지를 한참을 고민하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이 소설은 엄청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다. 단지 겉모습이 리얼하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겉모습만 보자면 과연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하기 까지 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의 유니스가 처한 상황이나 그녀가 커버데일 일가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의 '본질'이 어디선가 있을 진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 미스테리나  현대 미스테리나 글 자체의 리얼리티는 중요하다. 읽는 이가 빠져 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밖으로 나와서까지 독자를 괴롭히는 리얼리티를 가진 미스테리 소설은 다소 드물지 않나 싶다. 많은, 특히 현대 미스테리 소설들은 대형 조직 범죄나 마약, 성범죄 같은 우리가 뉴스만 봐도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리얼리티를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범죄의 현상 내면에 있는 본질에까지 리얼리티를 찾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읽고 나면 다들 영화같은 이야기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 다르다. 결말이 특히 그렇다. 우리는 유니스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어떤 가족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떤 수퍼 히어로도 유니스만은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니스의 뒤에는 음모도 거대 조직도 없지만, 음모나 거대 조직보다 더 복잡하고 더 해결 불가능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 소설을 읽은 후에 나는 우리 사회 자체를,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들여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 소설의 리얼리티는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따라서, 범죄 실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소설에서도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고전미스테리 류의 재미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빗나간 소설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티의 팬이고 고전 미스테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나는 1960년대 이후의 하드보일드 류는 거의 보지 않는다-이 소설을 무척 즐길 수 있었다. '즐겼다'는 말에 단순한 즐김 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근데, 어라, 그새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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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여자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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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자면, 애거서 크리스티를 소위 '고전 미스테리 작가' 분류에 우겨넣어서 생각하고 있다. 별로 깔끔하거나 논리적인 분류는 아니고 말 그대로 '자의와 편견으로 가득차서' 코난 도일이나 앨러리 퀸과 함께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좁은 런던 골목길, 마차, 샤넬라인 스커트, 펠트 중절모 등도 떠올리곤 한다. 한 마디로 크리스티는 내게 1920년대의 이미지인 것이다.

사람이 어떤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평면상의 이야기이다. 때문에 그 둘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모순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의 이미지에 대한 나의 '사실'과 '느낌'의 차이는 코미디 소재나 무식한 인간의 표본으로 삼아도 좋을만큼 어긋나고 있다.  아니 분명 크리스티 여사는 1920,30년 경에도 활동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크리스티의 작품 중 많은 수가 1950년대, 60년대 심지어는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정말 단순무식한 인식라고는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때문에 나는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에서 자동차, 마약, 청바지, 록큰롤, 비행기, 그리고 전후라는 말이 나오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세 번째 여자' 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나 이 작품은 거의 풍속소설 분위기가 날 정도로 시대배경이 자주 묘사되고 있으므로 더욱 심했던 것 같다. '비틀즈'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니! (게다가 해문 문고판에는 그 옆에 역주도 달려있다. 1960년대 영국의 유명한 록그룹, 이던가 해서)

그리고 이런 시대 배경-크리스티 여사로 치면 상당히 후반기인-은 외적인 부분에 뿐만 아니라 소설 내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심령술과 심리에 대한 관심은 마약과 사회악으로 옮겨가고, 연극적이기까지 했던 제한적인 배경과 정적인 사건진행은 하드보일드 장르와는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긴 해도 도시와 모험속으로 뛰어든다. 그 속에서 크리스티 여사는 변하는 시대를 바라보며, 과거로의 향수와 추억에 젖어들곤 한다. 아마 크리스티 여사를 내가 1920년대의 서구사회의 분위기와 연결시킬 수 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콧수염을 가다듬고, 초컬릿 차를 즐기는 포와로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1920,3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가 택시를 불러서 타든, 비행기를 타든, 비트세대와 마약거래의 한 가운데 휩쓸리든 간에, 그는 제국주의와 브루조아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바로 그 때 그 사람인 것이다. 크리스티 여사가 그러하듯이. 노인네 고집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크리스티의 후반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과거에 대한 향수는 내겐 일종의 로맨틱함으로 다가온다.  

덧붙여, 정말 사소하고 사적인 감상을 남기고 싶다. 우선은 추리소설계의 일등급 커플 매니저 포와로라지만 이번 작품에서의 그의 커플 매니저로서의 활약은 조금은 난데 없었던 것 같다. 결말에 가서 맺어지는 두 사람이 저렇게 얼렁뚱땅 난데없이 맺어져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굉장히 쓸데 없는 걱정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올리버 여사의 활약이 무척 반가웠다는 점이다. <테이블 위의 카드>와 <창백한 말>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읽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수다와 '여자의 직감!'을 만날때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지낸 친구를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물론, 올리버 여사가 스벤 저슨(올리버 여사가 쓰는 추리소설의 핀란드인 탐정이다)을 살짝 깔아 뭉갤때마다 혹시 우리의 포와로가 크리스티 여사에게 그랬던 것인가 싶은 기우에 고개를 흔들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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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정신 분석
월터C.랑거 / 솔출판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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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란 누구인가? 그는 역사적으로 널리, '악인'으로 합의가 된, 흔치않은 인물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없다는 것이 분위기를 넘어선 공론으로 되어 있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히틀러'라는 이름은 '금기'다.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일은 굉장히 불쾌한 짓거리다. 그는 괴물이고, 악의 화신이며, 금수같은 인간이었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기도 하는 것 같지만)

이 책은 전시중에 쓰인 '바로 그 히틀러'에 대한 보고서이다. 내용은 줄일 것도 말할 것도 없다. 지은이 랑거 박사는 여러 증거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히틀러라는 인물을 재구성한다. 이 책의 논조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히틀러는 정신질환자 였으며, 변태 성욕자였고, 이상 성격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일으킨 전쟁과 그가 벌인 모든 짓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히틀러를 재평가하자는 일각의 주장에는 물론 찬성하지 않지만-대개 그 재평가의 의도가 심히 의심되는 일각이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한창 열나게 전쟁중인 상대의 시각이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우선 들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 본 히틀러 전기 영화가 자꾸 생각난 까닭도 있다. 그 영화에서 그는 질녀에게 정도 이상의 애정을 품는 영 밥맛없는 정신병자였는데,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는지 그 천편일률적인 묘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웬지 승전국의  흘러간 레파토리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물론 그 정도로 인민재판 식은 아니고, 내내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선 너무 심하게 달려간 게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 나타난 히틀러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히틀러의 미래'라는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나처럼 남 잘 안 믿는 후세인(그 후세인이 아니다 ^^;;)들의 신뢰를 단번에 회복한다. 그는 히틀러의 마지막을 마치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쉽게 읽히는 것이었다니...

그럼, 그렇게 이상한 사람을 아무런 의심없이 믿고 따랐던 그 독일 국민들은 도대체 뭐였을까? 그것은 실수였을까, 아님 원래 게르만족들이 그런 인종일까? 혹은 인간 집단 자체의 약점일까?

사실, 독일 국민들 뿐이랴. 읽는 내내, 저기 태평양 건너에 있는 누군가가 자꾸 떠올랐다. 덧붙여 그 누군가를 '하나님의 사도'로 칭하며 그 사람이 일으킨 전쟁을 '성전'이라 하는 정신나간 지지자들도 더불어 생각나고. 독일국민들도 히틀러를 성배를 든 기사로 묘사하곤 했었다지. 아니, 사실은 나와 우리 사회도 그들과 증상과 정도는 다르지만 같은 병인으로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지나간 일을 재구성하고, 재평가하고, 그것에 '역사'라는 이름을 붙여 끊임없이 보고 듣고 읽는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은 '찬란한 우리문화'를 기억하여 '빛나는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함'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니, 다시는 그런 참담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후세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 다시는 저렇게 이상한 사람의 뒤를 따르는 이상한 집단들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남 뒷다마 까기 위해, 아님 과거의 추억에 젖기 위해, 혹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내심 정당화 하기 위해 히틀러가 악인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은 낭비다. 체력이나 종이나 잉크의 낭비가 아니라, 그의 광기에 휘둘려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값의 낭비다. 히틀러와 제3제국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역사들이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세상이 (발전이 아닌) 최대한 오래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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