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정신 분석
월터C.랑거 / 솔출판사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아돌프 히틀러란 누구인가? 그는 역사적으로 널리, '악인'으로 합의가 된, 흔치않은 인물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없다는 것이 분위기를 넘어선 공론으로 되어 있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히틀러'라는 이름은 '금기'다.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일은 굉장히 불쾌한 짓거리다. 그는 괴물이고, 악의 화신이며, 금수같은 인간이었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기도 하는 것 같지만)

이 책은 전시중에 쓰인 '바로 그 히틀러'에 대한 보고서이다. 내용은 줄일 것도 말할 것도 없다. 지은이 랑거 박사는 여러 증거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히틀러라는 인물을 재구성한다. 이 책의 논조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히틀러는 정신질환자 였으며, 변태 성욕자였고, 이상 성격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일으킨 전쟁과 그가 벌인 모든 짓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히틀러를 재평가하자는 일각의 주장에는 물론 찬성하지 않지만-대개 그 재평가의 의도가 심히 의심되는 일각이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한창 열나게 전쟁중인 상대의 시각이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우선 들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 본 히틀러 전기 영화가 자꾸 생각난 까닭도 있다. 그 영화에서 그는 질녀에게 정도 이상의 애정을 품는 영 밥맛없는 정신병자였는데,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는지 그 천편일률적인 묘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웬지 승전국의  흘러간 레파토리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물론 그 정도로 인민재판 식은 아니고, 내내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선 너무 심하게 달려간 게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 나타난 히틀러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히틀러의 미래'라는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나처럼 남 잘 안 믿는 후세인(그 후세인이 아니다 ^^;;)들의 신뢰를 단번에 회복한다. 그는 히틀러의 마지막을 마치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쉽게 읽히는 것이었다니...

그럼, 그렇게 이상한 사람을 아무런 의심없이 믿고 따랐던 그 독일 국민들은 도대체 뭐였을까? 그것은 실수였을까, 아님 원래 게르만족들이 그런 인종일까? 혹은 인간 집단 자체의 약점일까?

사실, 독일 국민들 뿐이랴. 읽는 내내, 저기 태평양 건너에 있는 누군가가 자꾸 떠올랐다. 덧붙여 그 누군가를 '하나님의 사도'로 칭하며 그 사람이 일으킨 전쟁을 '성전'이라 하는 정신나간 지지자들도 더불어 생각나고. 독일국민들도 히틀러를 성배를 든 기사로 묘사하곤 했었다지. 아니, 사실은 나와 우리 사회도 그들과 증상과 정도는 다르지만 같은 병인으로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지나간 일을 재구성하고, 재평가하고, 그것에 '역사'라는 이름을 붙여 끊임없이 보고 듣고 읽는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은 '찬란한 우리문화'를 기억하여 '빛나는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함'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니, 다시는 그런 참담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후세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 다시는 저렇게 이상한 사람의 뒤를 따르는 이상한 집단들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남 뒷다마 까기 위해, 아님 과거의 추억에 젖기 위해, 혹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내심 정당화 하기 위해 히틀러가 악인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은 낭비다. 체력이나 종이나 잉크의 낭비가 아니라, 그의 광기에 휘둘려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값의 낭비다. 히틀러와 제3제국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역사들이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세상이 (발전이 아닌) 최대한 오래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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