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6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추영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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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기는 덮었으되, 첫장을 막 펼쳤을 때와 전혀 달라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열흘동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가면서 읽었는데... (그 고생을 생각해보니 정말 울고 싶어진다) 사실은 막 출간되었을 즈음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한 번 도전했다가 진절머리를 내며 때려치운 적이 있기 때문에, 다시 이 책을 손에 들겠다고 결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이 괴서에 손을 대겠다고 결심했을 때의 높은 기개와는 달리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돌아가서 읽는 헛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기도 했다... 물론 처음에나...) 마지막엔 완전히 나가 떨어져 순전히 오기로 붙들고 있었다. 그런 상태였으니까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도 참 어이없다든지, 뒷통수를 단단히 맞았다든지, 놀랍다든지 하는 감상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오직 하나... "다 읽었다!"라는 헛된 성취감만이 허무하게 마음에 떠돌 뿐.  

내 이해력이 보통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추를 비롯한 현학적인 내용으로 악명높은 책들도 나름 즐거워하면서 봤고(물론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른바 '덤비는 책'-즉 난해하다고 소문난 책을 일부러 찾아 즐기는 변태기질도 좀 있기 때문에, 현학적인 문체나 내용에는 어느 정도 맷집이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해왔다.

근데, 맷집은 무슨 맷집... 나는 전혀 준비가 안 되어있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일생일대의 적수가 짠 하고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딱 다섯페이지를 읽었는데 그랬다. 

처음에는 번역의 문제인 줄 알았다. 아마,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그렇다! 다 읽었다면서 내용조차 파악을 못 하고 있다!)에 여기저기를 뒤져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번역자 탓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허나, 추리소설 고수님들의 증언과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이걸 번역해서 책으로 낸 거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분위기만큼은 꽤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용감하게 책을 내준 분들께 격려의 메세지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옛티가 심하게 나는 단어나 문투라던가 뒤죽박죽인 외래어의 표기를 조금 손을 본다면 훨씬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일본어 원본을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개정판이 나와준다고 해도 별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건 자체는 꽤 흥미롭다. 흑사관이라 불리는 성에 사는 괴상한 사람들이, 괴상한 방법으로 하나하나씩 살해당한다. 여기서 '괴상하다'가 그냥 '좀 특이하군'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가 최대한으로 돋구어질 것이다. 허나, 돋구어진 대로 만족을 시키는 건... 그야말로 쓰레빠 신고 히말라야 최고봉에 오르는 일이다. 우선 가장 큰 장벽은 탐정역인 노리미즈의 말이다. 온갖 문헌과 신비주의적인 에피소드들, 그리고 괴상한 비유를 섞는 것만으로도 읽는 이의 진을 빼게 하는데, 게다가 말씀 참 길게도 하신다. 현학적인 탐정하면 제일 첫손에 꼽히는 파일로 반스 조차도, 이 노리미즈란 탐정과는 십분간의 대화도 나누지 못할 것 같다. 아마 신경질을 버럭 내면서 자리를 뜨겠지.  

게다가 다른 등장인물들도 다를 바가 없어서, 심지어는 꼽추 고용인이나 비서까지도 반스의 뺨을 두다스는 칠만한 현학적인 대사들을 줄줄줄 잘만 읊어댄다. 등장인물의 대사가 이러할진대, 묘사가 평범할 리 있겠는가. 사실 글의 묘사는 참으로 참신한데다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어 작가의 대가다운 솜씨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허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치 책 전체가 자신은 천재에 의해 쓰여졌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 같다. 좀 미친 과학자 류 같긴 해도, 오구리 무시타로는 그런 자랑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단순히 현학적인 분위기에 어쩌다 휩쓸려간 감상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줄줄줄 늘어놓긴 해도 문장의 밀도는 상당히 높고, 분위기를 유지해 나가는 솜씨가 신묘하다.

그러나 감탄은 감탄이고... 감상은 감상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내게 남은 건 한 권을 순전히 오기로 끝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놈은 내게 전혀 읽히지 않았다는 현실이었다. 언젠가는 이 놈을 다시 한 번 더 손에 쥘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벌벌 떨고 있다는 건 보너스인가?  하지만 그건, 독서라기보다 극악한 체험에 다름 아니었던 열흘간의 기억 때문이 아니다. 어쩐지 중독되어 버릴 거 같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니까, 중독이 되서 이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겠다고 이것저것 뒤지고 다니면 끝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이 정도 내용을 이렇게나 늘어놓을 수 있는 작가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일반적인 의미와는 많이 다르지만, 나름 정말 좋은 미스터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한테 제대로 싸움을 걸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꽤 장기전을 말이다. 뭐, 독자편에서 기권할 가능성이 너무너무 높아 보이긴 해도...

(별을 안 주면 등록이 안 되서... 그냥 줬습니다. 별은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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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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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모르지만, 미스테리 소설은 여러 하위 장르로 구분된다고 한다. 각 장르 마다에는 다른 종류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과 개성이 있고, 소설의 맛을 최대한 느끼기 위해서는 그 장르에 알맞는 방법으로 독서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알맞는 방법'이란 표현이 다소 마음에 안 들긴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방법'이란 서양 테이블 매너처럼 복잡한 것이 아니다. (나는 포크에서 늘 실패하기 때문에, 누가 뭐라하든 서양 테이블 매너는 복잡하다!)  그냥 긴장을 풀고, 각 장르의 분위기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퍼즐 미스테리라면 '어디 나를 속여봐'라는 기분으로 덤벼 드는 게 옳겠지만, 하드보일드의 경우에는 그런 각오는 살짝 치워두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말이다.

언젠가, 하드보일드는 '뽕'의 장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 상당히 거친 표현이지만, 유머스러운 걸 좋아하는 나는 이 표현을 마음에 들어한다. '뽕'이란 히로뽕의 그 뽕이 아니라 좋지 않은 말로 '가다' '간지'라고도 하는, 한 마디로 분위기 한번 제대로 잡는 장르라는 의미이다. 퍼즐 미스테리가 독자와의 두뇌게임을 유도하는, 그리하여 한 편의 소설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형식이고, 그 형식만으로 소설의 미학이 거진 완성되는 부류라면 하드보일드는 절대 그렇지 않다.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뽕을 위해 형식의 아름다움을 잠시 제쳐두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챈들러가 하드보일드의 대표 작가가 된 이유는 이런 의미에서 독보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말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빅 슬립'은 하나의 문제가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근데 나는 뒤의 설명을 읽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퍼즐미스터리라면 상당한 감점 요인이다. 허나, 레이몬드 챈들러와 그의 탐정 필립 말로에게는 사소하다고 해도 좋을 구멍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필립 말로가 담배를 피고 칵테일을 마시고 아름다운 여자들과 정중하나 날카로운 말장난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매력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퍼즐 미스터리에서 독자와 작가(탐정)은 사건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다면, 하드보일드에서 독자는 탐정 뒤를 졸졸 쫓아 다니면서 어둡고 칙칙하고 은근한 분위기를 한껏 즐긴다. 퍼즐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나는 돌 굴러가는 소리;;; 를 듣곤 하지만, 챈들러를 읽으면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배경으로 깐 재즈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소리나 나름의 맛이 난다. 미스테리의 어느 장르든지, 나름의 맛을 가지고 있듯이.

사실 내가 구구절절 쓸데없이 늘어놓은, 그러나 양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사용설명서(?)는 정작 챈들러를 펴게 된다면 소용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챈들러와 그의 탐정 말로의 활약은 사용설명서고 하위 장르고 분위기고 뽕이고를 단숨에 날려버리고 자기 뒤를 천천히, 엇박자 스텝으로 따라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피지도 않은 담배 냄새가 손가락에 배여 있고 마시지도 않은 칵테일 향기에 취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탐정 반을 창조해낸(이건 책 뒤표지의 설명에서 따왔다) 필립 말로의 매력에 담뿍 빠져 있을 것이다. 손가락 끝으로 필터까지 태워 없앤 담배 꽁초를 튀기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 필립 말로...

갑자기 위에 썼던 표현 하나를 수정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수정해야 할 건 산처럼 많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하드보일드를 '뽕'의 장르라고 했을 때 그 뽕은 히로뽕의 뽕이 아니라고 했던가? 바로 그 부분을 고치고 싶다. 하드보일드는 그런 의미에서도 '뽕'의 장르이다. 매력, 아니 마력의 장르인 것이다. '빅 슬립'은 당장이라도 어둠이 내린 보도위를 두터운 구둣발 소리를 내며 뛰어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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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도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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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명탐정에게 늘 이름이 걸리는 할아버지로 유명한 탐정 킨다이치 코우스케.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해 낸 아케치 고고로와 함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대표하는 탐정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간 '킨다이치'라던가 '아케치' '고고로'라는 이름은 추리만화에도 등장하는 등 꽤 여기저기서 들어 볼 수 있었고 그들의 명성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정작 그들의 활약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이 주어지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는 옥문도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동서미스테리북스의 [혼징살인사건]에서 킨다이치 코우스케의 활약상을 접하고 빠져 버렸던 터라, 더 없이 기뻤음은 물론이고.

[혼징 살인사건]에서 킨다이치 코우스케는 한 눈에도 칠칠맞아 보이고 꽤 너저분한 스물 네살의 청년으로 첫 등장한다. 물론 비듬이 눈처럼 쏟아지는;;; 그 머리통 속에는 복잡하고 기괴한 살인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논리적인-말 그대로 '탐정의 두뇌'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혼징 살인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한 뒤,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다. 그리고 종전 후, 전우의 유언을 안고 돌아오자마자 더욱 더 기괴한 사건에 맞딱드리게 된다.

특히 [옥문도]의 사건이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공간적 배경이 섬이라는 사실이다. 섬은 사방 물로 가둬진 땅이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세계 어디든 섬의 문화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또한 섬 주민들간의 유대는 공고하다. [옥문도]에서도 나오지만 경찰이나 기타 사법기관의 도움이 필요없을 정도로 분쟁이 알아서 해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섬은 대개 평화롭다. 허나, 반대로 생각하면 많은 진실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모습을 감추기도 그만큼 쉽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표면으로 드러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때때로 유령이 된다. 금기가 된다. 그리고 특별히 병적인 상황에서는 망령이 된다. 또한 분쟁의 해결에 있어 외부의 도움을 빌리지 않는 다는 것은 그만큼 암묵적으로 약속된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방법은 나라의 법보다 때로는 도덕보다 강한 힘과 권위를 부여 받기도 한다. [옥문도]는 섬의 이 두가지 특징을 잘 이용하고 있다. 특히 [옥문도]의 배경이 되는 섬은 과거 유형지로 설정되어 있어,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비밀스럽고 봉건적인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일본 자체가 섬나라라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소설을 읽기 전에는 섬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그닥 특이하게 제시된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는데, 섬이 많아 그런가 도리어 섬이라는 공간적 배경의 특징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짜낸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생각을 해 보면,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폐쇄적인 배경으로 산골이 많이 활용되는 것 같다.)

이에 일본 전통문화 - 하이쿠나 전통 의상, 종교 등 - 를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중요하게 또한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어 옥문도라는 공간적 배경이 기틀을 잡아 놓았던 기괴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는 느낌이다. 일본 전통문화에 기괴하고 으스스한 면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통문화에 의례 따르는 일종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훌륭히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수수께끼는 그 어느 소설 이상으로 기괴하고 기묘하다. 그것이 킨다이치 코우스케의 두뇌안에서 논리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너무 직관적이 아닌가 라고 생각될 정도로 묘하게 풀려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다보니, 어느새 섬과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에 휩쓸려 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결말이나 사건의 추이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추리소설 리뷰는 이래서 어렵다;;;), 특히 마지막에 남는 여운은 근래 읽은 미스테리 소설 중 최고였다.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해 준 소설이었다. 허나, 주책스런 노파심으로, 이 작품은 또한 더 없이 '일본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영미로 대변되는 서양의 추리소설이 한 편의 잘 짜여진 게임이라면,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일종의 연극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분위기의 차이는 취향의 차이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옥문도]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분위기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소설중 하나로 꼽히므로, 일본 미스테리 특유의 분위기가 불편하게 느껴져 왔다면 각오를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쓸데없는 감상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의 팬인 나의 경우에는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시공을 초월한 살인, 아니(;;;) 추리 대결이라는 측면으로도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할어버지와 손자의 닮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요건 보너스였다고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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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인형
게이비 우드 지음, 김정주 옮김 / 이제이북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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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인형'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한지같은 재질 위에 예쁜 인형의 모습을 꽃분홍색으로 곱게도 그려넣은 표지도 그렇고... 덕분에 나는 이 책의 성격을 완전히 착각하고 말았다. 솔직히 예쁘고 신기한 자동인형의 세계를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했었던 것이다. (사실 모 주간지의 책 소개글도 나의 착각을 부채질했다 -_-;)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형' 이다. 즉,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자동인형 자체를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대신 인형에게 움직임을 부여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느끼고 생각하는 인형, 나아가 영혼과 생명까지 지닌 인형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왜 살아있는 인형을 만드려고 했을까? 어째서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물건에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고자 욕망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욕망은 어떻게 변화하고 표현되고 있을까?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꿈꾸는 것처럼 생명과 영혼과 지성을 가진 살아있는 인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그런 살아있는 인형들과 인간을 구분짓는 건 무엇일까?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인형'은 바로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구하려 애쓰고 있다.  결국 자동 인형이라는 흥미롭고도 독특한 소재를 보편적이라면 보편적일 수 있는 문제를 바라보는 수단으로 삼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움직이는 자동 인형을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하고 소개하는 대신  배설하는 인형(보캉송의 오리)과 체스두는 인형(체스두는 터키인 인형)등을 소개하는데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고 있다. 배설과 체스는 생명과 지성, 그리고 의지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단순한 인형이 아닌 인간을 닮은 무언가의 존재-책에서 초반에 잠깐 설명하고 있는 안드로이드?-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과 움직이는 인형의 한 발전형태로서 움직이는 그림, 즉 영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살아있는 인형' 그 자체로서 활동했던 소인(난쟁이) 가족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소인을 다루고 있다는 작가의 다른 저작에도 흥미가 갔을만큼 잘 쓴 장이긴 했지만, 솔직히 책 전체의 취지와는 잘 맞지 않아 보였다. 대신 책 앞뒤에 잠깐 소개되어 있는 키스맷같은 로봇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사실 직립보행만큼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이동방법은 없다고 하는데, 왜 인간은 굳이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하는지를 다루었어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진중권씨의  신간 '놀이와 예술의 상상력' 을 읽다가 참고문헌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진중권씨의 책을 읽고 보캉송의 오리나 체스두는 터키 인 같은 인형에 대한 묘사와 비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살아있는 인형'을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이 외에도, 진중권씨의 책에 소개된 몇몇 자동인형에 대한 이야기들은 '살아있는 인형'에 더욱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두 책은 그 방향이 다른 듯 싶다. 단순히 무슨 자동인형이 있고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진중권씨의 책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왜 잘 돌아가는 기계 이상의 것인지, 그리고 왜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살아있는 인형'도 괜찮을 것이다. 명확한 결론이나 새로운 생각과 접할 수 없을지라도, 굉장히 독특한 출발점 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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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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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아닌, 일반(?) 작가가 쓴 우울증에 관한 책이라... 솔직히 반쯤은 도박을 건다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책 선택에 있어선 재능(?)보다 운(??)이 강한 편이고, 그 운도 절대평가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닌 관계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실패의 경험이 많다. 그럼에도 겁도 없이 이만 오천원짜리 도박을 하게 된 데에는 집에서 급히 나오느라(???) 짐을 간단히 쌌던 관계로 읽을 거리라고는 무비위크 한 권 밖에 없었던 상황과, 막 시작된 불면증의 도움이 있었다.

그리고 사흘동안 무기로 써도 좋을 정도로 두꺼운 책을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먹어치운 후, 불면증에 감사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빈약한 책장과 불면증이 없었다면, 추천은 물론이요 누가 쓴 것이든 리뷰조차 읽어 본 적 없는 이 책을 무수한 실패의 역사를 사뿐히 무시하고 선택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우울증에 관해서 여러 측면-원인, 증상, 여러 치료 방법, 역사, 그리고 우줄증에 걸린 사람-의 고찰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소화가 어려울 정도로 딱딱하지도, 읽는 재미를 앗아갈 정도로 반듯하지도, 그리고 질려버릴 정도로 전문적이지도 않다. 아니, 도리어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히 빠져들게 한다. 그것은 자신의 개인사와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는 지은이의 용감한 방법 때문인 것 같다. 책에서 보여지는 지은이의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고백 수준인데('이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니'라고 놀랄 정도였다), 그것은 내게 그가 하는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의식적으로 '한 사람의 우울증 환자'이상의 시각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우울증의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섣부른 동료의식을 내세우지도, 그들을 쉽사리 판단하거나 규정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우울증 환자들의 투병기나, 한 개인의 경험담에 머물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해서 여러 측면으로 꽤 진지하고 깊은 고찰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를 다소나마 교정해주려는 노력 또한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게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지은이의 솔직한 고백과 여러 경험담들은, 그 내용은 편안한 기분으로 받아들일만한 것이 아니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지은이의 의도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촉매제인 셈이다.

물론 나는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의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의 무식쟁이이다. 때문에, 이 책이 안고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을 미처 알아차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한 사람의 '읽는 이'로서, 우울증 환자들과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하나의 사례나 현상으로 다루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리고 그가 가진 '문제들 중의 하나'로 다루고자 하는 이 책의 자세는 굉장히 인상깊었고 좋았다. 만약, 내게 우울증의 문제가 생기거나, 내 주위의 사람이 그런 문제를 가지게 된다면 아마 이 책에서 읽은 것들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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