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관의 살인 -하 - 완결
사사키 노리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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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월관의 살인>의 띠지에 붙어있는 문구는 과대광고의 혐의가 짙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적인 작가이고, 사사키 노리코 역시 일본 역대 코믹스 순위 10위권내에 진입한 <닥터 스쿠르>의 작가이긴 하지만 어쨌든 천재 운운은 조금 성급하다. 개인적으로 아야츠지 유키토의 소설을 크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처음 이 책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릎을 탁 쳤다. 사실 아야츠지 유키토는 한계가 뚜렷한 작가라 생각되지만, 그것은 주로 문장이나 묘사가 단조롭다는 문학적 측면에서의 이야기이고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기발한 트릭을 펼쳐놓는 재주는 신본격의 대표주자로 꼽힐 자격이 충분이 있으니까. 그래서 늘, 영상화가 되면 더 볼만한 작품이겠군 이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문장을 쓰는 대신 만화 스토리를 써서 그것도 굴지의 만화가와 함께 책을 낸단다. 이것이야 말로... 아야츠지 유키토에게 적합한 일처럼 보였다.

특히나 함께 하게 된 사사키 노리코는 진작에 전문분야의 세세한 에피소드를 담백한 유머에 녹여내는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선택한 '철광'이라는 소재 역시 왕년의 솜씨대로 능숙히 그려낼 것이다. 그림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물의 표정 묘사라던가 행동 묘사가 어색하다는 평도 있지만 도리어 그 담담함이 추리만화에 잘 어울릴 것도 같았다.

그리하여 나온 결과물은, 어딘지 모르게 '응?'하게 되는 것이었다. 추리과정은 어딘지 모르게 고리 하나가 생략된 듯하고 크게 놀랍거나 대단한 트릭도 없었다. 재독 했다. 이번엔 사사키 노리코에 맞춰서. 아, 역시 그녀의 스타일이다. 철광에 관한 잡다산만한 에피소드들을 잡다산만하게 풀어놓는 재주는, 이미 <닥터 스쿠르>에서 빛을 발했던 그대로였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케 하는 유머들 또한 내가 좋아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고. 그런데 뭔가 찝찝하다. 추리는?

월관의 살인은 전체적으로 보면 볼만한 만화이다. 그러나 추리만화, 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산만하고 무게 중심이 잘못 잡힌 듯 하다. 머릿속에 남는 건 트릭에 대한 찬탄이나 아야츠지 유키토의 장점인 '특이한 배경 만들어내기'에 대한 재확인이 아니라 철광제군들의 기막힌 '철광증명담'뿐이었다. 무엇보다 소녀탐정 소라미는 사사키 노리코 스타일의 '무덤덤한 주인공' 그대로이지만 탐정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추리가 뜬금없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사사키 노리코의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지도 모르지만, 아야츠지 유키토와 추리의 팬에게는 부족한 작품인 것 같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야츠지 유키토의 개성이 사사키월드 에서 길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사사키 월드에도 충격이 있다. 그러니 이 책에 대해서는 그저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 그것만을 추억해야 할 듯 싶다.

그래도 책의 사양이나 빠른 출판들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검은 종이에 인쇄된 작가의 말은 눈이 나쁜 나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고 철광제군들, 영원하길 빈다.

별은 두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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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오늘의 사상신서 157
마빈 해리스 지음 / 한길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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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에겐 자신과 다른 것을 포용하기 보다 배척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인종차별이나 성적 소수자 차별 같은 각종 차별적 행위들, 시쳇말로 '돈 한푼 대주지 않으면서' 타인의 취미나 취향을 '이상하다'고 난도질 하는 행위들, 그리고 타인의 문화를 쉽게 '야만적'이라던가 '비인간적'이란 말로 매도하는 행위들이 그 반대의 행위보다 더 자주, 더 드러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하지만 나는 또한 '나와 다른 타인의 무언가'에 대한 인간의 공격적이고 또한 방어적인 태도는 타인에 대한 이해에 의해 많이 개선될 수 있다고도 믿는다. 이해의 바탕은 '앎'이다. 특히 현상뿐만 아니라 원인에 대한 앎은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타인의 특정한 행동양식이 어디에서 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행동양식적 기반이 자신의 기반과는 어느 부분이 얼만큼 다른지 알고 난 후에도 배타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의 수는 상당할 테지만, 어느 정도의 개선을 기대하기에 사람들은 교육을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 교육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선구적 시각을 가진 어떤 학자들의 연구일 것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3부작'은 (선구적 저작이라고까지 표현되기는 어려울 지 몰라도) 타문화를 이해하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 식인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이 책과 이 책의 저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그는 식인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민족의 끔찍한 본능'이라고 배척 하거나 반대로 '오로지 서양인들의 편견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함으로서 무조건적 부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존재하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안에 감추어진 문화적 배경을 찾아내어 그들이 '식인을 선택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책의 어느부분을 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인들은 왜 소를 숭배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말이나 개의 고기를 먹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벌레를 먹는가? 그리고 왜 한국, 중국,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지금은 먹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유를 먹지 않는가?

특히 우리와 관련하여, 개와 같은 애완동물로 받아들여지는 동물을 먹는 행위와 우유를 먹지 않는 행위의 장이 매우 인상깊다. 지금이야 우리가 우유의 어느 성분을 분해하는 락토우즈 성분이 우유를 주로 먹는 서구인들에 비하여 없거나 적기 때문에 우유를 먹으면 곤란을 겪는다는 점이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등 널리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구인들이 동양세계를 발견(으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그들은 단지 동양의 물이 더럽다던가 동양인들이 물을 끓이지 않아 우유를 먹고 복통을 호소한다고 생각했다. 체질이 다른 것을 '더럽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몰이해 혹은 얕은 이해가 얼마나 편견을 낳기 쉬운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물론 마빈 해리스가 이 책에서 제시한 음식문화에 대한 분석이 모두 진리는 아닐 것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르거나 옳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왜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의 생각이 옳다고 여겨진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나와 같은 독자로서는 그 문화 기반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나름의 음식에는 나름의 문화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만큼 그 문화를 적어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으악! 중국사람들은 불가사리도 먹어, 징그러워~'라고 하기 전에, '이렇게 귀여운 개를 먹는건 야만인이야!'라고 하기 전에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달리 이야기하면 나에겐 불륜으로 보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로맨스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PS ; 쓰고보니 제목이 별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뭐 늘 그래왔지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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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케 3 - 고양이 할멈 샤바케 3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손안의책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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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추리만큼이나, 중국이나 일본풍의 괴담이나 기담을 좋아한다. 그 애매모호한 결말이라던가 환상적이면서도 의외로 현실적이며, 중국문화나 일본문화가 갖는 묘한 이국성에 끌리는 것 같다. (그 묘한 이국성이라는 것도, 서구의 시각을 역수입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동시에 어떤 괴담이나 기담들은 이해되지 않는 가치관이나 씁쓸한 뒷맛 혹은 은근히 오래가는 서늘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 그것이 특유한 맛이려니 해도 가끔씩은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원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샤바케'는 딱이라는 느낌의 시리즈물이다.

샤바케는 괴담이나 기담, 혹은 추리물이나 환상물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요괴가 좀 등장하는 모험소설에 가깝다. 정교한 트릭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도 없고 떼로 출몰하는 요괴들도 한여름밤에 자주 등장하는 녀석들과는 달리 하나씩 엉뚱한 구석이 있는 귀여운 녀석들이다. 모험이라는 것도 주인공 도련님이 워낙 약골이신지라 요괴의 신묘한 능력 경연(이라고는 하지만 자세한 묘사가 자주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이나 도련님의 회색의 뇌세포의 모험(이라고 하지만 도련님의 추리는 자주 독자가 모르는 영도를 걸으시는 듯 뜬금없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마치 장지 너머로 들려오는 옛이야기를 훔쳐듣는 기분으로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한 권이 끝나있는 것이다. 인간과 요괴의 성격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도 밋밋한 듯 아기자기하게 진행된다. 혹자는 조금 밍숭맹숭하다고 느낄수도 있겠지만, 표지부터 괴상하지만 귀여운 것들이 잔뜩 그려져 있으니 책의 분위기에 대한 힌트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시리즈의 첫권서부터 얼마 전 출간된 세번째 권까지, 그러한 특유의 분위기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번 세번째 권도 대단한 기대보다는 '어디 한 번 볼까'하는 편안한 마음으로 덜컥 집어들었고, 역시 아기자기하면서도 호흡이 잘 끊어지지 않는 단편들이 내 기대를 채워주었다. 편하게, 담백하게, 아기자기하게, 일본요리를 앞에 놓은 느낌이랄까. 몇몇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문화라던가 사고방식의 차이까지도 의아함 보다는 귀엽게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ps ; 다만, 시리즈의 세번째 권에 이르러 두 행수인 사스케와 니키치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형님'이 자주 등장하는 데, 일본판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조금 혼동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도련님이 '형님으로 여긴다'고 나와있긴 했었지만...  (알아보니, 일본판에도 형님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별은 세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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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물리학
로버트 어데어 지음, 장석봉 옮김 / 한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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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경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에는 괴상한 공을 던지는 노장 투수가 한 명 있다. 그의 등번호는 49번, 이름은 팀 웨이크필드고 그가 던지는 괴상망측한 공을 이른바 '너클볼'이라 한다. 그 구속은 100km내외. 150km대의 초강속구 투수가 즐비한 그 동네에서, 그가 던지는 공은 어이없을 정도로 쉬워 보인다. 던질때의 폼까지 더하면 왠지 거짓말 같다. 하지만 그는 10년넘게 메이저리그 투수로 활약하고 있고 성적도 크게 나쁘지 않아서 꾸준히 방어율 4점대 중반을 찍어주고 있는 꽤 준수한 투수이다. 경기를 보면 더 기가 막히다. 그 아리랑볼에 천문학적 금액의 몸값을 자랑하는 강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물론, 심하게 쳐맞는 날도 있지만...) 그 미스테리어스함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나는 어느새 웨이크필드의 팬이자 메이저리그의 시청자가 되어 있었다.

물리와 수학을 영원한 주적으로 선포했던 극문과적 학창시절(심지어는 '수학과 물리의 마지막까지 연구한 학자를 찾아내어 삼대를 멸해버리자'라고 했으니...)을 뒤로하고 '야구의 물리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을 찾게 된 것도 우선은 이 책의 차례에서 너클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요술과도 같은 너클볼의 비밀은 공의 회전을 최대한 줄임으로서 공기의 흐름의 영향을 잘 받도록 하여 공의 괴적을 변화무쌍하게 하는 데에 있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명한 물리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펼쳐놓은 너클볼의 비밀은 그보다 오묘했고 논리적이었으며 흥미로웠다. 물론 어렵기도 했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은 물리학 앞에 '교양'딱지를 붙여야 옳겠지만, 사실 물리와 수학을 어쩔수 없이 배워야 했던 때로부터 탈출한지 10주년정도 되는 지금에 읽기엔 다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너무도 친절하게 마치 물리선생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설명해주고 있지만 학교때에도 물리선생님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던 바, 결국 나를 끝까지 붙잡아 둔 것은 야구에 대한 관심이었고 저자가 보여준 야구에 대한 사랑과 그것에 대한 어설픈 동지의식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접하는 사람들 중 아마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야구나 물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테고. 거기에 까지 생각에 이르자, 야구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결국 한권의 책으로 승화시킨 물리학자에 대한 야릇한 존경심과 그런 야구팬을 가진 메이저리그에 대하여 약간의 질투심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만약 우리나라 투수들, 타자들에 대해서 이와 같은 책이 나온다면 어떨까? 선동열 선수의 슬라이더, 최동원 선수의 낙차 큰 커브, 박철순 선수의 말 많은 구질(스큐르볼? 팜볼? 혹은 너클볼?), 그 외에도 배영수, 손민환, 류현진... 그리고 이 책에 혹시 포함되어있을까 기대를 많이 했지만 결국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김병현 선수의 프리즈비 슬라이더까지. 우리나라도 한 때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 야구였고, 위에 언급한 선수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퍼스타들이었으니, 혹 우리 물리학자 중에서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 이러한 책도 역시 기대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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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유희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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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이다. 시마다 소지의 데뷔작에 이어 최근작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되도록 발표된 순서에 따라 대표작들이 몇 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나서 최근작이 출간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나와준것만으로도 고마워'라고 감격하게 된다. (아,직,은!) 날백수에 불과했던 화장실을 깨끗이군(아니, 미타라이 기요시군)이 어떻게 일본도 아니고 스웨덴 대학의 교수가 되었는지 알길 없다는 게 다소 아쉽지만 말이다.

<마신유희>와 이 바로 전에 나왔던 <점성술 살인사건> 사이에는 이십년이 훌쩍 넘은 시차가 자리잡고 있다. 그 동안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미타라이군은 미타라이 교수가 되었고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와 과시하는 능력들도 잡학다식에서 비행기 운전등으로 일취월장하였다. (책 뒤의 소개에 보면 권을 더할수록 미타라이는 점점 수퍼맨이 되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독특한 소재와 그것이 바탕이 된 신비로운 분위기로 독자의 얼을 빼놓으면서 스스로는 분위기에 압도됨이 없이 차분히 모아두었던 트릭과 범인의 단서들을 모아 쫙 펼쳐놓는 그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수법에는 전혀 변함도, 변질도 없다. 소설 중간에 수기가 삽입되는 것도 그 수기가 사건의 핵심요소로 작용한다는 점도 <점성술 살인사건>과 같다. 그것이 두 편 사이의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시마다 소지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특히 국내에도 이미 소개된 올리버 색스 박사의 <화성의 인류학자>를 인상깊게 보았던 독자라면 <마신유희>에도 관심을 가져봄직하다. 독자의 눈을 우선 사로잡는 것은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소개된 어느 독특한 환자의 사례와 비슷한 주인공의 특징이므로. 하지만 주의할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뿐더러 시마다 소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에 휩쓸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그와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소설에선-특히 한가지 트릭이-공정하게 제시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눈치빠른 독자라면 요 트릭또한 능히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때로는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지만, 신본격작품들은 독자를 맞은 편 테이블로 초대한 하나의 추리게임으로서 마치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의 호수와도 같은 배경을 전제로 깔아놓는다. 그것은 섬이나 성같은 심히 제한적인 공간일 수도 있고(요 경우 왜 그런 곳에 떨어지게 되었는지의 핑계가 중요하다. 자칫하다간 김모군처럼 '매일매일이 방학' '영원한 고교생' 무엇보다도 '발길 닿는데마다 시체'인 탐정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혹은 열린 것처럼 보이나 읽는 독자에겐 무척 낯선, 그럼으로서 닫힌 것이나 마찬가지인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공간이든 간에 초대된 독자가 명심할 것은 회색 뇌세포의 움직임을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독자가 이기든 지든 간에 작가와 머리싸움을 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신본격 작품을 읽는 재미의 정수일 것이며, 비록 '읽은 후 남는 게 없다'라던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할지라도, 결코 그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는 이 장르만의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신본격 첫손에 꼽히는 명트릭의 창조자가 바로 시마다 소지이다. 그 명성의 완벽한 재현이라고까지 하긴 힘들지만, 그에 걸맞는 영리하고 깔끔한 작품인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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