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의 비밀
루스 렌들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유니스 파치먼은 글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미스테리 소설 리뷰를 하면서 결론을 말하는 건 엄청난 범죄행위에 해당됨을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놀란 마음 진정시키셨으면 한다. 이 글귀는 책에 나오는 가장 첫 문장을 옮긴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지, 고려원 미스테리 편집부의 글 다음에 시작되는 1장의 첫문장이다. 그리고 소설은 유니스가 커버데일 일가를 만났을 때로 돌아가 유니스가 커버데일 일가를 죽이기까지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미스테리 소설로서는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운 일이다. 범인과, 피해자와, 범행의 종류와, 동기가 모두 미리 밝혀져 있는 것이다.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맛의 반 이상, 아니 대부분이 떨어져 버릴 법하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미스테리 소설이 지적 게임이나 기발한 트릭의 전시장이 아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장 적나라하고도 심도있는 탐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떨어지기는 커녕 내 읽는 속도를 원망스럽게 만들었던 재미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속에 오래동안 남아 있는 뒷 맛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스테리 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의 뒷맛은 통쾌하거나 작가의 기발함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정말 무겁고, 답답한 심정을 남긴다. 잘 쓴 범죄 실화가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나는, 이 이야기가 루스 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픽션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유니스의 범죄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혹은 커버데일 일가가 살 길은 없었는지를 한참을 고민하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이 소설은 엄청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다. 단지 겉모습이 리얼하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겉모습만 보자면 과연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하기 까지 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의 유니스가 처한 상황이나 그녀가 커버데일 일가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의 '본질'이 어디선가 있을 진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 미스테리나  현대 미스테리나 글 자체의 리얼리티는 중요하다. 읽는 이가 빠져 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밖으로 나와서까지 독자를 괴롭히는 리얼리티를 가진 미스테리 소설은 다소 드물지 않나 싶다. 많은, 특히 현대 미스테리 소설들은 대형 조직 범죄나 마약, 성범죄 같은 우리가 뉴스만 봐도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리얼리티를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범죄의 현상 내면에 있는 본질에까지 리얼리티를 찾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읽고 나면 다들 영화같은 이야기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 다르다. 결말이 특히 그렇다. 우리는 유니스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어떤 가족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떤 수퍼 히어로도 유니스만은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니스의 뒤에는 음모도 거대 조직도 없지만, 음모나 거대 조직보다 더 복잡하고 더 해결 불가능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 소설을 읽은 후에 나는 우리 사회 자체를,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들여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 소설의 리얼리티는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따라서, 범죄 실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소설에서도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고전미스테리 류의 재미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빗나간 소설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티의 팬이고 고전 미스테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나는 1960년대 이후의 하드보일드 류는 거의 보지 않는다-이 소설을 무척 즐길 수 있었다. '즐겼다'는 말에 단순한 즐김 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근데, 어라, 그새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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