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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인형
게이비 우드 지음, 김정주 옮김 / 이제이북스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살아있는 인형'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한지같은 재질 위에 예쁜 인형의 모습을 꽃분홍색으로 곱게도 그려넣은 표지도 그렇고... 덕분에 나는 이 책의 성격을 완전히 착각하고 말았다. 솔직히 예쁘고 신기한 자동인형의 세계를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했었던 것이다. (사실 모 주간지의 책 소개글도 나의 착각을 부채질했다 -_-;)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형' 이다. 즉,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자동인형 자체를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대신 인형에게 움직임을 부여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느끼고 생각하는 인형, 나아가 영혼과 생명까지 지닌 인형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왜 살아있는 인형을 만드려고 했을까? 어째서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물건에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고자 욕망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욕망은 어떻게 변화하고 표현되고 있을까?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꿈꾸는 것처럼 생명과 영혼과 지성을 가진 살아있는 인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그런 살아있는 인형들과 인간을 구분짓는 건 무엇일까?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인형'은 바로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구하려 애쓰고 있다. 결국 자동 인형이라는 흥미롭고도 독특한 소재를 보편적이라면 보편적일 수 있는 문제를 바라보는 수단으로 삼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움직이는 자동 인형을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하고 소개하는 대신 배설하는 인형(보캉송의 오리)과 체스두는 인형(체스두는 터키인 인형)등을 소개하는데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고 있다. 배설과 체스는 생명과 지성, 그리고 의지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단순한 인형이 아닌 인간을 닮은 무언가의 존재-책에서 초반에 잠깐 설명하고 있는 안드로이드?-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의 말하는 인형과 움직이는 인형의 한 발전형태로서 움직이는 그림, 즉 영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살아있는 인형' 그 자체로서 활동했던 소인(난쟁이) 가족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소인을 다루고 있다는 작가의 다른 저작에도 흥미가 갔을만큼 잘 쓴 장이긴 했지만, 솔직히 책 전체의 취지와는 잘 맞지 않아 보였다. 대신 책 앞뒤에 잠깐 소개되어 있는 키스맷같은 로봇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사실 직립보행만큼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이동방법은 없다고 하는데, 왜 인간은 굳이 두 발로 걷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하는지를 다루었어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진중권씨의 신간 '놀이와 예술의 상상력' 을 읽다가 참고문헌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진중권씨의 책을 읽고 보캉송의 오리나 체스두는 터키 인 같은 인형에 대한 묘사와 비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살아있는 인형'을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이 외에도, 진중권씨의 책에 소개된 몇몇 자동인형에 대한 이야기들은 '살아있는 인형'에 더욱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두 책은 그 방향이 다른 듯 싶다. 단순히 무슨 자동인형이 있고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진중권씨의 책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왜 잘 돌아가는 기계 이상의 것인지, 그리고 왜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살아있는 인형'도 괜찮을 것이다. 명확한 결론이나 새로운 생각과 접할 수 없을지라도, 굉장히 독특한 출발점 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