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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문도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시공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소년 명탐정에게 늘 이름이 걸리는 할아버지로 유명한 탐정 킨다이치 코우스케.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해 낸 아케치 고고로와 함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대표하는 탐정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간 '킨다이치'라던가 '아케치' '고고로'라는 이름은 추리만화에도 등장하는 등 꽤 여기저기서 들어 볼 수 있었고 그들의 명성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정작 그들의 활약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이 주어지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는 옥문도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동서미스테리북스의 [혼징살인사건]에서 킨다이치 코우스케의 활약상을 접하고 빠져 버렸던 터라, 더 없이 기뻤음은 물론이고.
[혼징 살인사건]에서 킨다이치 코우스케는 한 눈에도 칠칠맞아 보이고 꽤 너저분한 스물 네살의 청년으로 첫 등장한다. 물론 비듬이 눈처럼 쏟아지는;;; 그 머리통 속에는 복잡하고 기괴한 살인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논리적인-말 그대로 '탐정의 두뇌'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혼징 살인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한 뒤,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다. 그리고 종전 후, 전우의 유언을 안고 돌아오자마자 더욱 더 기괴한 사건에 맞딱드리게 된다.
특히 [옥문도]의 사건이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공간적 배경이 섬이라는 사실이다. 섬은 사방 물로 가둬진 땅이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세계 어디든 섬의 문화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또한 섬 주민들간의 유대는 공고하다. [옥문도]에서도 나오지만 경찰이나 기타 사법기관의 도움이 필요없을 정도로 분쟁이 알아서 해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섬은 대개 평화롭다. 허나, 반대로 생각하면 많은 진실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모습을 감추기도 그만큼 쉽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표면으로 드러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때때로 유령이 된다. 금기가 된다. 그리고 특별히 병적인 상황에서는 망령이 된다. 또한 분쟁의 해결에 있어 외부의 도움을 빌리지 않는 다는 것은 그만큼 암묵적으로 약속된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방법은 나라의 법보다 때로는 도덕보다 강한 힘과 권위를 부여 받기도 한다. [옥문도]는 섬의 이 두가지 특징을 잘 이용하고 있다. 특히 [옥문도]의 배경이 되는 섬은 과거 유형지로 설정되어 있어,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비밀스럽고 봉건적인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일본 자체가 섬나라라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소설을 읽기 전에는 섬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그닥 특이하게 제시된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는데, 섬이 많아 그런가 도리어 섬이라는 공간적 배경의 특징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짜낸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생각을 해 보면,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폐쇄적인 배경으로 산골이 많이 활용되는 것 같다.)
이에 일본 전통문화 - 하이쿠나 전통 의상, 종교 등 - 를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중요하게 또한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어 옥문도라는 공간적 배경이 기틀을 잡아 놓았던 기괴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는 느낌이다. 일본 전통문화에 기괴하고 으스스한 면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통문화에 의례 따르는 일종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훌륭히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수수께끼는 그 어느 소설 이상으로 기괴하고 기묘하다. 그것이 킨다이치 코우스케의 두뇌안에서 논리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너무 직관적이 아닌가 라고 생각될 정도로 묘하게 풀려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다보니, 어느새 섬과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에 휩쓸려 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결말이나 사건의 추이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추리소설 리뷰는 이래서 어렵다;;;), 특히 마지막에 남는 여운은 근래 읽은 미스테리 소설 중 최고였다.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해 준 소설이었다. 허나, 주책스런 노파심으로, 이 작품은 또한 더 없이 '일본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영미로 대변되는 서양의 추리소설이 한 편의 잘 짜여진 게임이라면,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일종의 연극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분위기의 차이는 취향의 차이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옥문도]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분위기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소설중 하나로 꼽히므로, 일본 미스테리 특유의 분위기가 불편하게 느껴져 왔다면 각오를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쓸데없는 감상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의 팬인 나의 경우에는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시공을 초월한 살인, 아니(;;;) 추리 대결이라는 측면으로도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할어버지와 손자의 닮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요건 보너스였다고 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