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 마이클 베이든의 법의학 이야기
마이클 베이든 지음, 안재권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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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와 유영철 사건이 사람들의 법과학과 수사기법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 점은 사실인 듯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이에 관한 책들은 찾아 보기도 힘들었고, 대부분은 전문가 용이었으며, 어렵게 출간되더라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해와 작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인 여러권의 책들이 새로 출간되거나 재출간의 기회를 맞았고 예전보다는 확실히 많이 읽히고 있는 듯 하다. 대표적으로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라는 새이름을 달고 나온-하지만 사진 자료들을 몽땅 빼먹은 채로 출간된- 로버트 레슬러의 < FBI 심리수사관>이나 그리고 표지만 바꿔 새로 찍은 법곤충학에 관한 책인 <파리가 잡은 범인>등이 있다. 작년 봄엔 우리나라 DNA감식 전문가가 쓴 <대한민국과학 수사파일>이라는 책도 나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겨우 6년 전인 1999년에 출간된 FBI 수사관 존 더글라스의 <마음의 사냥꾼>은 현재 절판상태인데 말이다.

베테랑 법의관인 마이클 베이든의 <죽은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원제는  Dead Reckoning인데 어쩌다가 기억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긴 데다가 약간은 경박해 보이기까지 한 제목을 달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은 법과학분야의 교양서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다. 제목이 다소 하수상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결론적으로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법의관으로서의 경력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도 유명하다는 저자는 법의학에 대한 여러 흥미로운 주제들을 마치 TV다큐멘터리를 보듯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전문 법의관이 법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살인자들의 인터뷰>나 <파리가 잡은 범인>보다는 과학 칼럼리스트 메리 로취가 쓴 <스티프>에 더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살인자..>나 <파리가...>가 준 입문서 정도의 수준으로 다소 무겁다면, <죽은자들은...>은 그보다는 가볍다. 또한 다루고 있는 내용들도 조금 더 광범위하다. 차가운 검시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 뿐만 아니라, '혈액학교'나 '벌레학교'같이 다른 법과학분야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고,  책에서 쓰레기 과학이라 지칭된 잘못된 길을 간 법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법의학을 중심으로 법과학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서술의 태도도 일관적으로 진지한 대신, 검시실에서 주고 받는 농담들을 넣거나 검시실이나 교육현장들을 유머스럽게 스케치 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책이 조금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별 하나를 깎았다;;)  하지만, 편한 마음으로 법과학 전반을 둘러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법과학에 대한 책들이 조금씩이라도 나와주고 있다는 것이 어딘가. 한 연쇄살인범이나 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들도 많이 출간되는 미국처럼은 되기 힘들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인들을 위한 법과학서라도 앞으로 많이 접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나라도 과학수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물론 전문가의 양성이 시급하겠지만 이런 책들을 통해 처음 법과학의 세계를 접한 누군가가 법의학자나 법과학자의 꿈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고 수사직에 관심이 많은 누군가가 최소한의 교양을 갖출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 출간되는 법과학서들은 아직 양이나 질에 있어서는 아쉽지만 반갑다. <죽은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들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도 그래서, 이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반가운 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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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월드 1 - 마법의 색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테리 프래쳇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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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월드]는 [멋진 징조들]을 닐 게이먼과 함께 썼던 테리 프래쳇의 소설이다. [멋진 징조들]을 이야기 할 때, 닐 게이먼의 보다는 테리 프래쳇의 영향이 많이 느껴진다고들 하던데, [디스크 월드]을 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별 다섯개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저런 쓰잘데기 없는 설명을 다 집어 치워버린다 해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다.  - 이 책은 확실하게 재미있다! 더군다나 나는 판타지 장르를 무척 버거워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겁게 이 책을 즐길 수 있었다.

[디스크 월드]는 [멋진 징조들] 이상의 창조적인 농담의 퍼레이드며 유쾌하게 낄낄댈 수 있는 풍자의 장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디스크 월드]는 판타지로서의 재미도 함께 갖추고 있다. 물론 (분명 의도적이었겠지만) 난장판 1보 직전으로 그려놓은 세계관이나 마법을 전혀 못 배운 마법사-그러나 마법적으로 운이 좋은-  주인공 린스윈드등 우리가 아는 장엄한 판타지의 세계와는 무언가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법사도, 요정도, 트롤도, 왕족과 갖가지 기괴한 존재들과 심지어는 '투명 드래곤'까지 등장한다!  각종 패러디가 난무하는 책 내용에 머리가 가난한 내 자신을 저주했을지라도, 그 것 마저도 더 없이 즐겁고 유쾌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았으면 한다. 아래에 마이 리뷰 남기신 분의 말씀처럼, 2권도 3권도 계속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나 혼자 알고만 있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이 리뷰라는 것을 거의 처음으로 써 보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두 번째일지도)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오래'  뒤죽박죽의 세계 디스크 월드로의 여행을 즐겼으면 좋겠다.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을 좀 주-욱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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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 - 한일 법의학자가 말하는 죽음과 주검에 관한 이야기
우에노 마사히코.문국진 지음, 문태영 옮김 / 해바라기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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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법의학자가 만나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었다. 하지만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대중적이며, 사실 법의학의 기술적(?)측면 보다는 사회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굳이 말하자면, 법의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죽음'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좀 더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것을 원한다면 약간 미진함을 느낄 것이다. 적어도 CSI와 같은 자극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법의학에 관심이 있는 대중을 위한 교양서로는 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소개되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흥미진진하고, 두 대가는 그런 사건들에서 말초적이거나 엽기적인 흥미를 넘어선 죽음과 법의학에 관한 통찰을 이끌어낸다.  '백 마디 말 보다 한 번의 경험'이랄까, '노장의 지혜'랄까.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법의학의 시스템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많은 부분에서 발전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 그대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어주도록 노력하는 일은 한 인간(혹은 인간이었던 존재)에 대한 최후의 배려이자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의 외침을 가볍게 흘러듣고 있거나, 부당하게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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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관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용태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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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추리소설가인 크리스티이지만, 물론 단점도 없을리 없다. 바로 난데없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는 점이다. 추리소설이 독자와의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크리스티는 공정한 플레이어로 손꼽힐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바닥에 A페어를 깔아놓은 채로 10원페어를 들고 징징대는 사람처럼 보일때가 있다. (그리고 꼭 히든은 에이스를 받는다. 상대는 그녀가 풀하우스를 쥐었다는 걸 알 도리가 없다) 그렇게 그녀는 사건의 열쇠를 혼자만 간직하고, 가짜 범인이나 사소한 증거들을 넘칠만큼 뿌려놓는다. 다 즈려밟고 가시라고. 가시다가 꼭 미끄러지시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꺼내놓는 세 장의 에이스를 황당한 심정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에서 세 장의 에이스의 단서를 포착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사실이 그렇게 거창하게 발전할 줄은 그녀만이 알고 있을 때가 있다.

[삼나무 관]은 법정물이지만, 사실 본격적으로 법정물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은 아니다. 법정에서 크리스티는 아무것도 내어놓지 않고 가짜 증거들과 사람들에 대한 로맨틱한 서술을 늘어놓기에 바쁘며, 사건은 법정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진행된다. 사실 이 작품에서 법정은 포와로가 자신의 멋진 추리를 펼쳐놓는 또 다른 무대로 활용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열 장을 읽기 전에, 우리는 누가 범인인지 절대 알 수 없다. (물론 순전 감으로 찍을 수는 있다. 크리스티의 성향으로 보아 범인이 절대 아닐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다.)

앞에서 장황히 말했듯이, 이 작품에서 크리스티가 쥐고 있는 세장의 에이스는 너무 꽁꽁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게임에 능하지 못한 나의 투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감상을 솔직히 말하자면, 납득은 하되 이해는 할 수 없고, 범인이 누군지는 찍었되 그 사람이 왜 범인이 되었는지는 떠 주는 대로 받아 먹어야 되는 상황에 처했달까. 그리하여 포와로 영감이 탐정이라기 보다는 커플 매니저가 아닌가, 크리스티가 쓴 것이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로맨스 소설이 아닌가 하고 쓰잘데 없이 툴툴 거리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게임의 공정성이고 세 장의 에이스고 간에, 소설이 재미있었다는 사실에 심술이 나는 것이다.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으니. 결론은 이거다. 그리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크리스티의 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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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속의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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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은 엘러리 퀸의 [폭스 가의 살인]과 비슷하다. - 결혼을 앞둔(혹은 이미 결혼한) 살인자의 딸(혹은 아들)이 어머니(또는 아버지)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재조사를 저명한 탐정에게 부탁한다. 딸 쪽이 아들에 비해 어머니의 결백을 좀 더 믿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실은 과거의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중 누구도 그들의 결백을 완전히 믿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범행을 입증하는 기록과 판결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깰 수 있을만한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리고 탐정은 사람들의 불완전한 기억력에 의존하여 과거를 조사해야만 한다. 그 일은 얼핏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듯 비슷한 상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회상속의 살인]과 [폭스가의 살인]을 통해 크리스티와 퀸을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그리고 그것은 결국 크리스티 혹은 퀸의 특징을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퀸은 논리적이고 냉정하며 서스펜스에 좀 더 관심이 있다. 서스펜스라는 현재 진행형일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 따라서 그는 과거의 사건을 되짚어가는 도중에 지금 존재하는 인물들과 상황을 짜 넣기도 하고 탐정에게 적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불친절하고 심술궂은 하위 형사를 생각해 보라). 대신 과거의 사건에 대한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서술을 최대한 자제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과학 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처럼 자제되어 있고 객관적이다.

그에 반해, 크리스티는 [회상속의 살인]이라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관계자들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서술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회상속의 살인]의 과거의 살인사건은 말 그대로 '과거'의 것으로서, 현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마도 그렇기에 [폭스...]와는 달리 [회상...]의 의뢰인인 딸은 처음과 마지막에 잠깐 등장할 뿐이다. 마치 연극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나레이터 처럼 말이다) 물론 포와로는 '현재'에 살고 있는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을 듣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는 그들은 거의 모두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과거로 쉽게 회귀한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에 자신들을 지배했던 기묘하게 어긋나 있던 관계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꼬인 감정을 굿판을 벌이는 무당처럼 읊어낸다. 그 내용은, 물론, 꽤나 로맨틱하다-물론 크리스티 식으로. [회상...]의 결말도 그럴 것임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재미있게도 나는 [폭스...]의 결말에서도 꽤나 퀸 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리스티의 로맨틱한 일면은 종종 약점으로 이야기되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강점이 아닌가 싶다.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소설'적 재미를 갖춤으로서 추리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사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추리소설가나 작품에겐 어느정도의 로맨틱한 일면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크리스티의 그 개성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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