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속의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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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은 엘러리 퀸의 [폭스 가의 살인]과 비슷하다. - 결혼을 앞둔(혹은 이미 결혼한) 살인자의 딸(혹은 아들)이 어머니(또는 아버지)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재조사를 저명한 탐정에게 부탁한다. 딸 쪽이 아들에 비해 어머니의 결백을 좀 더 믿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실은 과거의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중 누구도 그들의 결백을 완전히 믿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범행을 입증하는 기록과 판결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깰 수 있을만한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리고 탐정은 사람들의 불완전한 기억력에 의존하여 과거를 조사해야만 한다. 그 일은 얼핏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듯 비슷한 상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회상속의 살인]과 [폭스가의 살인]을 통해 크리스티와 퀸을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그리고 그것은 결국 크리스티 혹은 퀸의 특징을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퀸은 논리적이고 냉정하며 서스펜스에 좀 더 관심이 있다. 서스펜스라는 현재 진행형일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 따라서 그는 과거의 사건을 되짚어가는 도중에 지금 존재하는 인물들과 상황을 짜 넣기도 하고 탐정에게 적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불친절하고 심술궂은 하위 형사를 생각해 보라). 대신 과거의 사건에 대한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서술을 최대한 자제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과학 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처럼 자제되어 있고 객관적이다.

그에 반해, 크리스티는 [회상속의 살인]이라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관계자들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서술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회상속의 살인]의 과거의 살인사건은 말 그대로 '과거'의 것으로서, 현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마도 그렇기에 [폭스...]와는 달리 [회상...]의 의뢰인인 딸은 처음과 마지막에 잠깐 등장할 뿐이다. 마치 연극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나레이터 처럼 말이다) 물론 포와로는 '현재'에 살고 있는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을 듣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는 그들은 거의 모두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과거로 쉽게 회귀한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에 자신들을 지배했던 기묘하게 어긋나 있던 관계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꼬인 감정을 굿판을 벌이는 무당처럼 읊어낸다. 그 내용은, 물론, 꽤나 로맨틱하다-물론 크리스티 식으로. [회상...]의 결말도 그럴 것임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재미있게도 나는 [폭스...]의 결말에서도 꽤나 퀸 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리스티의 로맨틱한 일면은 종종 약점으로 이야기되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강점이 아닌가 싶다.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소설'적 재미를 갖춤으로서 추리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사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추리소설가나 작품에겐 어느정도의 로맨틱한 일면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크리스티의 그 개성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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