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전투, 질로 폰테코르보, 1966.

 

 

(영화의 결말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알제리전투>는 프랑스 식민통치의 지배하에 놓여있던 알제리에,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구성된 1954년부터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직전인 1962년 봉기까지 8년간 민중들이 펼치는 거대한 이야기를 흑백의 다큐멘터리 화법을 빌려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화법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 나온 모든 컷은 일체의 뉴스 릴이나 실제의 사건을 촬영한 영상을 배제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재구성된 장면들만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상당히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명백하게 극영화이다. 이 영화에 극영화의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은 그 서사의 구성방식에 어느 정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인데, 이 이야기는 한 명의 주인공을 행적을 뒤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인물이란 알리 드 쁘왕뜨(브라힘 하쟈드)라는 민족해방전선의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가상의) 지도자인데, 이 영화는 말썽이나 부리는 식민지 청년에 불과했던 그의 각성으로 시작하여 1962년의 독립 2년 전 그가 최후를 맞이하게 될 때까지를 집중하여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그 내용으로 인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1966년의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 직후 프랑스 대표단의 항의를 담은 퇴장 해프닝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정식 개봉되었다.

 

영화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흑백의 미학적인 문제, 흔히 시네마 베리테로 이야기되는 이 영화의 형식적인 면도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다보니 다른 것에 흥미가 간다. 먼저 하나는 이와 같은 극사실주의적인 영화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예를 들어 인물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극단의 리얼리즘에서 결국 인물의 심리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심리라는 것은 결국 작가의 전지적인 시선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미묘한 뉘앙스로도 보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인물의 심리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감독들은 여러 다양한 장치들을 구성하고 시도한다. 그러나 일체의 인위적인 조작이나 특정한 의도를 가진 편집을 배제하는 소위 시네마 베리테의 경우, 이것은 영화의 형식과 자주 충돌한다. 따라서, 인물의 심리를 구체화하는 특정의 시퀀스는 계속 배제되며, 관객은 인물의 심리에게서 계속 멀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생각해볼 때 이 영화는 어느 쪽인가. 과연 그들의 심리를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게 되는가. 여전히 의문이다. 예를 들어 마지막 알리의 마지막과 또다른 지도자인 자파의 최후를 비교해보면 우리는 어떤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가. (혹은 읽어낼 수 없는가.)

 

이것은 물론 프랑스인들의 죽음과 알제리인들의 죽음을 다루는 측면에서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지만, 알제리전투 기간 내내 폭탄이나 총에 의한 테러리즘은 만연했으며, 많은 프랑스 시민들, 그리고 알제리 시민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분명 이 영화는 알제리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기는 하지만, 알제리인들과 프랑스인들의 죽음 모두에 동일한 애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죽은 이들의 모습은 클로즈업되며, 매번 어김없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애도의 스코어가 깔린다. 이것은 프랑스 군대나 경찰이 행하는 폭력적인 억압과 그에 맞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행하는 테러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 모든 희생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프랑스 공수부대를 지휘하는 수장인 메튜 대령에 대한 묘사에서도 같은 기조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적들(민족해방전선)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들이 벌이는 테러나 저항에 고문 등의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맞선다. 일반적으로 상당수의 영화에서 이러한 인물은 거의 악마와 같이 그려지는 반면에, 이 영화에서의 그는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매번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들에게 투항을 요구하며, 투항하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정말 그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즉 공정한 재판을 할 사람처럼 영화는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문은 그것이다. 과연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까. 아니, 테러의 주범들인 이들에게 공정한 재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예를 들어 어떤 판결이 내려져야 공정한 재판이란 것이 되는가. 이들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이들에게 단두대형이 아닌, 교수형을 판결하는 것이 공정한 재판인가. 아니면 이것은 단지 절차적인 면에서의 공정함만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이 영화는 일견 보이는 것처럼 시네마 베리테에 충실한 즉, 일체의 주관적 판단을 제외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즉 이 영화에서라면 이는 그저 극사실적인 사건의 나열들인가, 아니면, 특정의 시선으로 교묘하게 처리된 사건의 나열인가. (한편 서구의 비평가들은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사물에 대해 주관적 판단을 하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만을 담는다는 것에는 이미 인위적인 구도가 가미된 것'이라며 '시네마 베리테'와 같은 시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네이버 백과사전) 물론 이 질문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기는 하다. 그것은 "특정의 시선이 배제된 것이 영화적으로 객관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예를 들어 위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프랑스인들의 죽음과 알제리인들의 죽음에 동일한 애도를 건네는 것이 (영화적으로) 과연 객관적인 것인가. 물론 이 물음은 불편하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은 어떨까. 고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물론 이는 휴머니즘, 인도주의적인 부분과는 다른, 영화에서 다루는 것에 국한한 질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환원된다. 시네마 베리테란 가능한가, 의미가 있는가. 즉 결국 '어떤 특정의 시선이 배제되는 것'은 극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로부터 무엇을 얻는가.)

 

그러므로 내 느낌은 이 영화도 결국 표면상으로는 주관적인 의도를 배제한 사건의 나열이지만, 그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영화에 남아있으며, 보아야 하는 것은 그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그 본질을 프랑스의 경우와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아닐까. 고문의 반인도주의적인 행태와 사르트르의 알제리의 저항에 대한 시선 등을 이야기하는 프랑스 기자들에게 메튜 대령은 일갈한다. 여기에 그렇다면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프랑스 기자도 여기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제국주의적인 정책의 수혜자는 본국의 지배층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일반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비판을 가하는 시민들 역시도, 동시에 그 제국주의의 공범들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현재의 많은 부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운가.) 알제리의 경우라면 혹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아닐까. 영화의 말미, 알리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죽음으로 영화가 끝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으며, 앞으로는 조용할 것이라고 안심한다. 끝날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갑자기 2년 후로 점프한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봉기들과 프랑스인들의 어리둥절한 외침. 왜 갑자기 이러는거야. 그 때 민족해방전선은 완전히 끝났잖아, 왜 지금 갑자기 봉기들이 일어나는거야. 여기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들은 바로 영화 속의 몇 가지 장면들이다. 장면 하나, 막다른 곳에 갇힌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사람들에게 투항을 요구하는 프랑스 군대의 말. 너희들은 졌어, 어차피 다 끝난 것 알잖아, 그냥 나와. 장면 둘, 포기하고 투항하는 자파와 그의 물음. 여기서 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장면 셋, 죽음을 선택한 알리의 컷 다음에 모두 멈춰서서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알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알제리인들.

 

뜬금없이 독립이 된 2년 후로 점프했던 영화처럼 나도 갑자기 뜬금없이 다음의 글을 붙인다. 영화 <마이 백 페이지>를 소개하는 정성일 평론가의 글의 한 대목(경향신문 2012-04-08).

 

1968년 3월11일, 도쿄대는 의과대학의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12명과 연수생 5명을 퇴학시켰다. 이 처분의 철회를 요구하는 의대생들이 6월15일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다. 이틀 후 학교는 기동대를 투입하여 전원을 끌어냈다. 갑자기 이것이 화약고가 됐다. 안보투쟁 중이던 일본 전국학생연맹은 7월2일 다시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고, 전공투(全學共鬪會議)의 ‘학원투쟁’이 시작됐다. 총장이 사임했고, 의대 학장이 처분 철회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공투는 점점 더 강도 높은 요구를 했다. 마침내 이듬해 1월18일 8500명의 기동대가 투입됐고 72시간 동안 헬리콥터와 최루가스를 동원한 진압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원 체포됐다. 이 투쟁을 ‘도쿄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때 야스다 강당의 벽에 남겨진 수많은 낙서 중에는 “지는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덧.

Shining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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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4-2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전손택이 말한 '사진'이 프레임을 담아낸 사진가의 시선인 것처럼, 결국 극사실주의가 아무리 객관적 시선을 유지했다고는 해도, 실제 일어나는 현장을 총체적으로 담지 않으면, 만들어내진 창작물은 100% 객관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는 관심이 있었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영화가 의도하는 것도, 맥거핀님의 의문도 알겠고, 저 역시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로 '불씨'는 아주 작은 하나의 티끌이었는데 폭발하여 번지는 과정을 보면 일파만파라서 이게 과연 처음의 그 작은 불씨 하나 때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요. 불이 번지며 전기코드도 건드리고 가스불도 건드리고 2차,3차 폭발이 계속 되는데요..

명분은 붙이기 나름인 것 같고, 알제리인들도 표면적으로는 끝난 문제를 계속 품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문제는 또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맥거핀 2012-04-23 14:20   좋아요 0 | URL
네..저도 아이리시스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주관적인 의도를 100%로 배제한다는 것은 아마 영화에서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뭐 그렇다면 시네마 베리테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고 끝내버리면 될텐데, 그렇지 못하는 것은 또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편향성, 어떤 의도의 문제를 지적하고는 하거든요. (뭐 대표적인 예로 최근 논란이 되었던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를 예로 들수도 있겠습니다만...) 완전한 허구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실제의 사건을 영화로 다룰 경우 이러한 고민은 계속 반복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일어날 것은 일어난다는 이야기일까요. 예전에 역사가 서중석씨가 '역사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다만 에둘러 돌아갈 뿐이다.'라고 한 말이 갑자기 기억이 나네요.^^

감은빛 2012-04-2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 분이 계셨는데, 여기서 이 영화를 만나다니!
이건 정말 우연일까요?
아니면 혹 맥거핀님이 혹시 제게 영화를 추천한 그 분이실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최근 이 영화가 이슈가 될만한 일이 있었는데,
저만 몰랐던 것일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맥거핀 2012-04-23 14:1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감은빛님.^^ 감사합니다. 뭐..제가 알기에는 최근에 이슈가 될만한 것은 특별히 없고, 다만 최근에 모 영화관에서 '흑백의 미학' 기획전이라고 이 영화와 다른 영화들을 묶어서 상영하고 있는데, 그래서 조금 뉴스에도 나고 그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지금도 상영은 진행중이구요).

저도 이 영화는 추천을 드리고 싶네요. 좋은 정치 영화이기도 할 뿐더러, 또 많은 이들에게 힘을 나누어줄 수도 있는 자체 내공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Shining 2012-04-2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적인 것과 영화는 다른 것인가? 라고 전공시간에 썼던 페이퍼가 생각나네요. 교수님이 흥미롭다며 개인면담을 신청하셔서 졸지에 유명인이 됐다는_-

감정과잉은 무엇인가?와 감정을 정말 배제할 수 있는가?는 사실 같은 질문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를, 혹은 실화가 영화화 될 때 항상 품게 되는 질문입니다. 예컨대 어떤 정치적인 이야기를 가장 비정치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할 때, 그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것으로도 이미 정치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 말이죠.

맥거편님의 페이퍼를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저 너무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군요ㅎㅎ

2012-04-24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4-24 23:37   좋아요 0 | URL
어...그거 재밌어보이는데, 영화적인 것과 영화. 저랑도 개인면담, 아니 개인필담 좀 하시죠.ㅎ 그래서 때로 영화를 보면서, 왜 이렇게 영화가 편향적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를 보는데, 조금 답답한 면도 있어요. 그렇다면 편향적이지 않은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가 말이죠. (예를 들어 저번에 <부러진 화살> 가지고 백분토론 했었는데, 저는 좀 얼떨떨했어요. 이게 백분이나 이야기할 건가..?하는 느낌도 좀 있었고요.)

근데 정말 영화적인 것과 영화는 무엇이 다릅니까?

2012-04-24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hining 2012-04-25 11:26   좋아요 0 | URL
개인필담... 교수님의 면담요청만큼 걱정되는데요?ㅋㅋ

음, 다큐멘터리라면, 사실적인 것과 사실을 그려내는 것은 정말 같은가,에 대한 의문이겠죠.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아닌가. 또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폭력. 폭력은 재현(저는 재현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ㅋ)될 수 있는가. 영화관에서 느끼는 폭력은 어떤 극렬한 것도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영화의 상영이 멈추는 순간 견딜만한 혹은 타인의 것이 되어버리는데 그 폭력의 순간에 감응한다는 것은 영화적인 것인가 사실에 의한 것인가. 영화는 영화적인 것인가 영화 자체인가, 뭐 이런 얘기들^^;

말로 하면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글로 쓰려니 어렵네요ㅎㅎ

음, 허문영 평론가의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혹시 읽어보셨나요? 저는 이 평론집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동조를 많이 했거든요. 제가 느끼던 불편함이나 의문들, 두서없는 말을 그분은 조리있게 핵심만 짚으셨더군요ㅠ 역시 좋은 말은 누가 다 했나봐요ㅎㅎ

2012-04-25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0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4-2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이퍼 제목으로 인해서, 이 페이퍼를 읽기 저어했습니다.
그것도요, 이틀이나요... ^^

마지막 문단을 보니 문득 <선덕여왕>의 미실 죽음 장면이 떠올라요.
화랑들이 부르는 노래라면서 말하는데,

싸우지 못 하면 후퇴하면 되고
후퇴하지 못 하면 항복하면 되고
항복하지 못 하면 죽으면 되네...

대략 이런 내용인데, 너무 찡해서 펑펑 울었거든요.
항상.... 이 부분은 제 딜레마입니다. 저는 용감하지 못 하거든요. ㅠㅠ

맥거핀 2012-04-24 23:43   좋아요 0 | URL
아..그랬군요. 제가 허세있는 걸 좋아해서요.ㅋ

어..저는 사실 그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는데, 말씀하신 노래만 듣고도 왠지 가슴이 뭉클합니다. 화랑들의 계 중의 하나가 '임전무퇴'라고 하는데, 참 생각해보면 잔인한 이야기이죠. 전장에서 물러나지 말라고 하는 것..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닌 최대한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라면 저 같으면 알리 같은 선택은 하지 못했을 듯 싶어요.

에세르 2012-05-0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알제리는 그저 까뮈가 태어난 곳이고, 생전에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아서 비난받았다는 사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아, 무지해서 부끄럽네요)
이렇게 맥거핀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는 듯 합니다.
특히 이글의 제목, 끝부분에 부기하신 야스다 강당의 낙서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맥거핀 2012-05-10 17:2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알제리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런데 독립을 위한 그들의 투쟁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도 오버랩되고,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때로 좋은 영화는 열 역사책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또 책이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을 때로 이야기해주니까요.^^
 

 

 

 

인류멸망보고서, 임필성, 김지운

 

 

(영화의 줄거리 들어있음)

 

 

아무튼 인류는 멸망한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멸망한다. 다른 것은 다 부정한다고 해도 우주에는 시작이 있으므로 아마도 끝이 있을 것이고, 뭐 그렇다면 인류도 별 수는 없다. 인류멸망보고서. 보고를 하는 자들의 시각은 늘 냉소적이다. 보고를 하는 자들이 그 보고의 대상들에게 필요 이상의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 원인과 결과이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멸망하였는지를 고찰하여, 보고를 하는 자들의 멸망을 늦추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임필성. 2008년의 광우병 촛불정국을 직접적으로 비틀고 있는 이 단편은 인류 멸망의 원인이 인간의 지긋지긋한 탐욕에 의해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지긋지긋한 악순환. 인류 멸망의 시작이 한 잉여의 별 생각없는 분리수거 무시의 결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이 유머러스한 시작은 쓰레기 처리과정을 직접적으로 길게 보여주는 몇 가지 컷들로 흥미롭게 이어진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필연적으로 과잉된 쓰레기를 낳고, 과잉된 쓰레기는 동물의 몸을 통하여 다시 인간에게 들어간다. 이것이 인간의 탐욕의 결과임은 처음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는 자들의 면모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데, 아무 생각없이 살며 여자 뒤꽁무니만 쫓는 주인공과 그보다 더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자친구, 그리고 불량청소년, 탐욕스럽게 고기를 뜯고, 클럽에서 그 욕구를 발산하는 사람들, 이들은 이 좀비 바이러스의 기원이 되어 곧 온거리로 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리고 광우병 촛불시위의 비유.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지만 '촛불 좀비'라는 말이 보수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 그 말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킨 자들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촛불 좀비'라는 말의 다양한 변이체들을 이리저리 널리 전파시켰고, 보수언론은 그 말들을 어김없이 받아적고 규정지었다. 그리고 영화. 두 가지의 시사점이 있다. 하나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트려지는 곳은 길바닥이라는 점. 미안하게도 좀비 바이러스는 싼 고기를 먹고, 길거리에서 그 욕망을 분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파된다. 그리고 그들을 좀비라고 규정지은 사람들은 각자의 집 문을 걸어잠그고, 길거리에 쏟아져나온 좀비떼들을 (아마도 곧 좀비가 될, 사실은 좀비와 별다르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는) 전경들이 막아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화 안에서 이 좀비들과 별개인 것처럼 전개되는 무감각한 TV 리포트들. 시시각각으로 페허가 되는 건물들과 별개로 이 TV 리포트는 도대체 어디에서 쏟아지고 있는 것일까. 이 TV 리포트를 하는 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나, 어디에 숨어서 이 공정한 리포트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므로 좀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분별력을 다시금 찾게해줄 사과(선악과)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리로 뛰쳐나오게 해줄 심장과 함께 차갑고 날카로운 이성의 사고이다. 그와 동시에 돌이켜보면 MB 정부의 가장 큰 위기였던 촛불정국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광우병, 소고기 때문에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나를 생각해보게 한다.

멸망 실현 가능성 : 27.2%.

 

 

<천상의 피조물>-김지운. 그렇지만 결국 실패한 좀비들은 로봇이 되었다. 인류의 예정된 노예, 로봇. 앞의 <멋진 신세계>와 이 <천상의 피조물>은 전혀 별개의 작품이지만, 왠지 이 두 단편은 대구를 이루는 듯 하다. 모두 다른 육체지만, 머리가 포맷되어 비슷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좀비, 그리고 그 반대로 모두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다른 정신을 가지게 된 단 하나의 로봇. 단지 절의 가이드 로봇에 불과했던 개체들 중의 하나 RU-4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인명'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창조주이자 소유주인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로봇의 깨달음이란 오작동에 불과한 것이며, 어쩌면 그 오작동을 넘어서 인류에 대한 위협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인명'이라는 개체 하나에 대한 파괴가 아닌, RU-4 모델 전체에 대한 폐기 시도로 이어진다. 기계의 법칙 하나. 개체 중의 하나에서 오작동이 일어나면 반드시 동일한 다른 개체에서도 오작동이 일어난다는 것.)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깨달음을 얻은 로봇이란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인 것, 만약 인간 중에 깨달음을 얻어 신 이상의 어떤 존재가 생겨난다면, 그 존재를 신은 과연 가만 놔둘 것인가.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인간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불교에서도 가장 체제전복적인, 일체의 현상들에게서 전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붓다의 공(空)의 사상이다(여기에 팔을 잘라 법을 구했다는 혜가(慧可)선사의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인간세계 그 모든 것에 대한 비판적인 해체에 가닿아 있는 이 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마지막에서 RU-4, 즉 인명은 스스로 정지를 택함으로써 결국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소멸은 이 체제전복을 스스로 실천, 증명해보인 것으로 아마도 이 이후 로봇들, 즉 노예들의 연대는 시작되고, RU-4들은 개체 멸망에 맞서 인간에게 대항할 것이고, 인간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역으로 말해서 인간이 개체 멸망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지금 행하고 있는 파괴들을 중지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게 가능할까.)

멸망 실현 가능성 : 5.7%.

 

 

<해피 버스데이>-임필성. 세 편 중에 가장 재기발랄한 작품이다. 인류는 어느날 거대한 소행성과의 충돌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이 소행성이란 한 소녀가 자신의 실수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에서 몰래 주문한 8번 당구공인 것. 당구공을 되돌려보내기 위한 필사의 반품 시도는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인류는 예기치 않았던 종말을 맞는다.

 

코믹한 농담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인류의 멸망이란 어쩌면 이렇게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거대한 8번 당구공이 지구에 쓰리쿠션으로 맞을 확률이야 거의 0에 수렴하겠지만, 이들이 멸망을 앞두고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보며, 실제로 멸망이 눈앞에 다가온다면 그것은 비극적이면서도 분명히 코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적어도 할리우드처럼 갑자기 거대한 희생정신과 인류애가 꽃피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결국 모든 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며, 멸망의 마지막에는 철학도 이성도 고찰도 사랑도, 그 무엇도 없다, 오로지 멘탈 붕괴만 있을 뿐. 그러니 그대여, 인터넷 쇼핑 시에는 판매자 확인은 필수, 그리고 빠른 배송에 집착하지 말 것.

멸망 실현 가능성: 가까스로 0에 수렴.

 

 

 

덧.

세 편 모두가 공통적으로 초반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지속시킬 힘이 부족해보인다. 어차피 초반의 아이디어를 넓게 확장시키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더 재기발랄하고, 도발적이고, 폭력적이고, 야했으면 어땠을까. 또 하나, 전체적으로 각각의 단편으로는 흥미로우나 세 가지 이야기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강해,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묶어내기가 마땅치 않다. 세 개 중에 하나의 이야기는 버리고 두 이야기를 조금 더 유기적으로 결합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각 개봉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기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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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2-04-1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듣고 눈썹을꿈틀 했어요. 아니, 이렇게 뻔한 종말론이라니_- 싶었달까요; 투박하고 거칠고 어설프고 힘이 딸리는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고무적인 평가를 주고 싶다는 전문가 평을 읽었어요. 이상하게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어요; 전 이 영화를 볼 것 같지 않아요, 맥거핀님의 글로 대신할래요^^; 임필성 감독은 오랜만이라 반갑군요.

하하, 저 본문 마지막 문단 보고 경비실에 내려갔다왔어요. 택배물 위탁해둔 거 잊어버렸는데 덕분에 생각났거든요, 고맙습니다. 후후후*-_-*

2012-04-13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4-14 13:1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지금 네이버에 가보니 찬반양론이 팽팽히 대결중입니다.(대결중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무시하는 투지만..^^;) 네..그렇죠. 어설프고 힘이 딸리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인정해준다..보는 사람이 그 모순된 말의 앞과 뒤 중 어느 것에 방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평가는 달라질 일이겠지요.

어차피 이 영화를 그나마 볼 축은 젊은 사람들일텐데,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확실히 어설프긴해요. 근데 요즘에는 어설프니까 도리어 좋다는 경우들도 있어서..공감과 비공감은 어차피 한끗차.^^

2012-04-14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4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4-1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이한 영화라 맥거핀님 리뷰도 재밌어요. 김강우 좋아하는데.. 사진에 김강우 없..( '') 있......( '')
그리고 계속 웃음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까스로 0에 수렴ㅋㅋㅋㅋㅋㅋ

저는 한 편으로 지구종말을 간절히 빌고 있어요. 지구오염시키는 자와 못된 자들을 데쓰노트에 적으면서요. 가만보면 저도 한 코미디 하는 듯ㅋㅋㅋ

그나저나 정말로 맥거핀님은 영화를 사랑하시는군요!! 부럽게........^^

맥거핀 2012-04-14 13:18   좋아요 0 | URL
근데 요즘에 못된 인간들 너무 많아서 다 적을래면, 그 영화에 나온 데쓰노트로는 택도 없어요. 그리고 종말이 되면 못된 자들이 더 살아남을 것 같기도 하고..악한 자들이 꾸역꾸역 살아남는 거 아니겠어요.ㅎ

나름 초호화캐스팅..요즘 은교로 화제가 되고 있는 박해일과 김무열도 나옵니다. 위 사진에 잘 찾아보시면 박해일도 있음.
 

 

 

 

 

신과 인간 (Of Gods And Men), 자비에 보브와, 2010 

 

 

우리는 사실,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영화 포스터 뒷면에 있는 영화 배경 설명. "1991년, 알제리 정부와 반정부 이슬람 단체 사이의 무력충돌로 시작된 알제리 내전은 무고한 언론인과 외국인은 물론 민간인들에 이르기까지, 약 2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이었다. 영화의 배경인 1996년은 양 측의 대립이 최고조에 다다른 때로, 무차별적인 테러와 폭력의 난무로 인해 누가 언제 어디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팽배해져 있었고 사건은 바로 그 때 일어났다. 1996년 3월 27일 새벽 1시 15분, 약 20명의 무장 괴한들이 티브히린의 수도원에 침입하여 일곱명의 프랑스 수도사들을 납치했고, 두 달 뒤 메데아의 한적한 길가에서 그들의 수급만이 발견되었다. 영화 <신과 인간>은 실제로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초점을 맞출 질문은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되는가?"는 아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질문은 "왜 그들이 그런 선택, 즉 피신하지 않고 수도원에 남는 선택을 하는가?"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즉 우리가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듣는다해도, 우리가 그 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즉 우리가 그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면, 2시간 동안 그들의 선택에 따른 고뇌를 보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던 수도사들과 마찬가지로 감독 자비에 보브와에게는 한 가지 선택이 필요했다. 그것은 이들을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라는 영화적인 해석의 선택이다. 먼저 그것을 위해서 감독은 몇 가지의 세부적인 곁가지들(그러나 어떻게 보면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일 수 있는 것들)을 쳐낸다. 그 곁가지에 해당하는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알제리 정부와 반군 중 어느 쪽이 선에 가까운가, 어떻게 보면 식민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이들 프랑스 수도사가 여기에 남는다는 것은 어떤 '정치적인' 문제가 있는가, 이 수도사들과 이 마을 사람들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등등의 질문들. 그러나 감독은 영화에서 그런 것을 묻지도, 파고들어 그려내지도 않는다. 대신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하고, 모든 것을 그들의 내면으로 집중시킨다. 수도사들에게 이곳을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누구의 강요나 권유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외부적인 상황에 따른 선택이 아닌, 그들의 내면이 지시하는 선택이다. 즉 간단하게 말해서 그것은 영화의 제목대로 이들에게 신인가, 인간인가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만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부분이다. 영화의 제목은 '신과 인간 Of Gods And Men'이지만 영화의 방점은 내내 인간에 찍혀 있기 때문이다. 몇몇 힌트가 될 만한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첫 시작에 신에게 경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한없이 엄숙하게 표현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영화에서 선택된 장면은 누군가 헛기침을 하고, 하품을 하는 장면이다. 많은 경우의 수 중에 굳이 이 장면의 선택으로 영화의 시작을 여는 것의 의미. 수도사들이 납치범에게 끌려가는 극적인 순간에도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가장 나이든 수도사가 살기 위해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뒤늦게 수도원에 온 수도사가 납치범들에게 나는 오늘 왔다(그러니 나는 잡아가지 말라)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러한 선택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가장 극적이고 대표적인 장면은 그들이 다가올 파국을 예감하고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장면이다. 감독 자비에 보브와의 선택은 이 마지막에서 그들에게 '백조의 호수'를 배경음악으로 들으면서, 어딘가에 고이 숨겨두었던 와인을 꺼내와 마시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백조들의 한맺힌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음악을 들으며, 최후의 만찬을 엹은 미소와 함께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 속 어떤 모습보다도 인간적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에서 꼼꼼한 장면 설계와 엄숙한 카메라워킹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인간적으로 보이면서도, 절대 가벼워서는 안되는, 숭고한 양식미를 갖춘 장면이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샷의 구성도 흥미로워 보이는데,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얼굴 클로즈업 같은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고뇌를 드러내기 위해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관습적인 샷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클로즈업은 부수적이면서도 중요해보이는 다른 효과를 가져오는데, 그것은 그들의 육체성을 드러내보이는 효과이다. 나이든 수도사들의 주름지고 깊게 패인 피부를 그대로 가까이에서 드러내보이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위치를 매번 환기시킨다. 이러한 클로즈업은 그들이 고뇌에 빠졌을 때 자주 활용되지만, 반면 그들이 고뇌를 표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미사를 드리거나, 신에게 경배를 표현할 때는 카메라는 늘 뒤로 빠진다. 이 신에게 경배를 드리는 그들을 뒤에서 보는 이 시선은 누구의 시선인가. 그들을 바라보는 신의 시선인가? 예를 들어 그들이 다가오는 헬리콥터 소리에 겁을 먹고 신에게 경배를 드릴 때, 카메라는 위에서 본 (부감)샷으로 그들과 수도원을 찍는다. 물론 이는 헬리콥터에서 본 시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쩌면 신의 시선은 아닐까. 그리고 헬리콥터는, 아니 신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어디론가로 떠나버린다. 오직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신이 아니라, 그 신에게 경배를 드리는 인간의 고뇌일 뿐이다.

 

 

 

자비에 보브와는 영화의 첫머리에 한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시편 82장 6, 7절. "너희는 신이며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허나, 사람들처럼, 대관들처럼 죽으리라." 이것은 사실 자비에 보브와가 이 영화를 보는 법을 미리 관객들에게 일러두는 것이기도 하며, 그가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처럼, 대관들처럼 죽는 것. 그러므로 이것은 순교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며, 마지막까지 그 죽음에 저항하려고 했다. 그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을 믿고 따르는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의 부담감, 양심의 가책을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며, 어쩌면 어떤 수도사의 고백처럼 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그들이 순교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납치범의 지시대로 그들의 메시지를 순순히 녹음기에 대고 읽어줄 이유가 있을 것인가.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순교는 신이 되려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이든간에 다른 인간에게 '무엇을 위해 죽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로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신일 것이다. 아마도 파괴의 신. 영화 속에서(혹은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혹은 죽음을 강요하는) 이들, 그래서 신에 가깝게 가려는 자들을 늘 조심하여야만 했다. 이들 수도사들은 신이거나, 신에 가까운 무엇인가여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 죽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수도사가 수도사들의 리더인 크리스티앙에게 "이것은 가치 없는 죽음이 아닐까요?"라고 물을 때, 크리스티앙이 아니, 이것은 가치가 있는 죽음이며, 순교라고 말하지 않고, 최후까지 죽음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치 없는 죽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말로, '가치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죽음'이란 없다(고 믿는다). 어떤 죽음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로지 파괴의 신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에서 처음의 질문, - 두시간 동안 이들의 '이해되지 않는 선택'에 따른 고뇌를 보려 애쓸 이유가 있는가 - 에 대한 답을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 이유는 '그 고뇌를 보려고 애쓰는 것'이야 말로 같은 인간인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신은 아마도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선택을 앞둔 고뇌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신만이, 그리고 신에 가까워지려는 인간만이 죽음 앞에서 초연하며, 무엇인가를 위해 죽으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는 적어도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들의 선택을 앞둔 고뇌를 이해할 수는 있으며, 어느 누구도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다고 믿으며,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철저히 인간으로서 선택을 했고,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 이상의 무엇인가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우리에게 그런 편지를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코 그런 죽음을 원치 않았으며, 무관심하게 버려진 자신들은, 모든 이를,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감사를 보내며, 심지어는 그들의 죽음 곁에 가까이 있었던 그들에게마저도 감사를 보낸다고. 물론 그들은 인간이니 결코 그 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까지도 그들이 '사랑하기 위해 애썼다'고 믿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애쓸 수 있으므로, 신은 결코 애쓰지 않으므로.

 

 

 

 

 

덧.

 

이 영화를 보며 자주 들었던 생각은 그 근원에 있는 것들이었다. 종교의 근원에 있는 것. 당신은 왜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 카톨릭 사제이면서도, 코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상대방을 늘 이해하려 애쓰며, 이슬람과 카톨릭을 구분하지 않고, 말끝에 항상 아멘과 인샬라를 빠뜨리지 않는 이들을 보며, 종교의 근원에 있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이는 종교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아니 나는 왜 특정 정당을 지지하며, 어떤 철학을 공부하고, 어떤 소설들을 읽습니까. 그 근원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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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4-0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영화.. 보고싶어요. 종교관련 영화들은 항상 흥미로워요. 종교에 적을 둔 적은 없지만 종교의 근원을 묻는 영화나 종교의 역할에 대한 영화에 항상 끌려요. 생각한 것보다는 더 스토리가 강하네요. 첫 문단은 몰랐던 내용인데요, 제목은 참 별로인 것 같아요. 신..........인간.......... 단조롭고 부담 백배.

주말 잘 보내셨죠?^^

맥거핀 2012-04-09 23:31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오랜만요.^^ 이 영화는 종교인들이 나오는 영화이긴합니다만, 특정 종교색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영화같아요.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선택이란 것의 근원에 있는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리뷰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을 신념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구요.

근데 제목 저는 괜찮은 거 같아요. 단조로운 제목이긴합니다만, 심플하고 단적인 이 제목이 간단하면서도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이리시스님이 한 번 보시고 좋은 제목 추천해보세요.^^
 

1.

주말에는 주로 밀려있는 <씨네21>과 <한겨레21>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씨네21>을 한 권 다 읽고, 다시 <한겨레21>을 한 권 다 읽고, 다시 <씨네21>을 다 읽고, 다시 <한겨레21>을 다 읽고...주간지라는 것을 그렇게 읽어야할 의무란 없을 테지만, 이상하게 집어들면 처음부터 빼놓지 않고 모든 기사를 꼼꼼이 읽어야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생겨난다. 어렸을 때 매일매일 신문을 장시간 읽었었는데, 그러고보면 예전에 신문을 읽을 때에도 나는 신문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차례차례 모든 기사를 읽었던 것 같다. 중간에 있는 경제면들 기사는 정말 재미가 없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읽고나면 이상한 만족감이 생겼고, 뭔가를 많이 알게된 듯한 착각에 휩싸이곤 했다. 뭐 글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주간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다고 해도, 그 중 기억에 남는 꼭지는 몇 개 뿐이지만, 나는 나머지 것들도 어딘가 머리 뒤쪽 잘 안보이는 틈에 조금씩은 들어가게 된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게 단편적으로 기억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 뭔가를 이야기하거나, 글을 쓰게 될 때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럴 때에는 처음 빛나게 기억했던 것들은 모두 그 빛을 잃어버리게 되고, 차곡차곡 쌓인 것들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또 온라인 상으로 많이 글들을 읽게 되니 머리가 점점 다르게 재조직되는 것 같다. 도대체 온라인 상에 있는 글들은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읽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다른 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인지, 사진이 들어간 부분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밑에 댓글부터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반짝반짝하는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들을 먼저 읽어버리게 되고, 글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점점 요원해진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직도 온라인 상에서의 글들을 조직하는 법에 대해 익숙치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PC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나오고, 그리고 그 안에서도 트위터가 있고, 카톡이 있고, 사진으로 말하기(카카오스토리) 같은 것이 있으니 점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질 즈음에 늘 또다른 새로운 것이 나와 그 익숙함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좋은걸까, 나쁜걸까.

 

2.

지나간 <씨네21>을 읽는 것은 늘 힘들게 만든다. 놓쳐버린 좋은 영화들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를 들어 <워 호스>에 대한 평에서 이 영화는 반드시 필름으로 보아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진가를 맛볼 기회를 (잠재적으로) 영원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집에서 DVD나 컴퓨터 파일로 본들, 도대체 그 '진가'라는 것은 알 수가 없게 되버린 것이다. 물론 사실 조금 이해가 안되기는 한다. 필름으로만 맛볼 수 있는 진가란 게 도대체 뭐지? (뭐 예를 들어 MP3로는 절대 체험할 수 없는 극상의 경험이라든가, 수입산 냉동육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맛이라는 글들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 필름으로 보면 디지털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무엇인가가 도대체 무엇일까. 예를 들어 필름으로 보면 말갈기의 미세한 털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고, 그 와중에 그 털들의 오묘한 물결무늬들이 뭔가 깨달음을 주는걸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말갈기의 털 같은 건 디지털로 도리어 더 잘 보일텐데. 아무튼 가까이에는 디지털밖에 없고, MP3밖에 없고, 물론 수입산 냉동육밖에 없다. '그 맛'이나 그 '극상의 경험'은 어떤 몇 사람을 거친 후, 그저그런 언어들로 마모되어 도대체 처음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거친 입자로만 나에게 전달된다.

 

반면 지나간 <한겨레21>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지나간 기사들은 몇 주 후의 전망을 하고 있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는 이미 그 전망이 현실이 되어 도래한 세계에 살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주 후에 와있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몇 주 전의 <한겨레 21>에서는 불법사찰이 김종익 씨나, 남경필 전의원의 경우 등 몇몇 한정된 범위에서가 아니라 보다 큰 범위로 행해졌을 가능성에 대해 미세한 희망을 걸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불법사찰은 보다 대규모로 저질러져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선거 전망도 그런 측면에서는 재미있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 이 전망의 기사들을 보는 것도 꽤나 재밌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간에 나는 아직 어느 정당을 지지할지 정하지 못했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정통민주당 3명의 후보 밖에 없으니 비교적 선택이 쉬운데, 정당의 경우 어느 정당에 한 표를 던질지 고민스럽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녹색당 3당을 놓고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너무 비슷비슷한 이름의 정당들이 많아 계속 헷갈리고 있다. 순전히 이름만 놓고 비슷한 계열로 묶어보면 민주통합당-정통민주당이 있고, 새누리당-한나라당이 있고, 통합진보당-진보신당이 있고, 국민생각-국민의 힘-국민행복당이 있고, 친박연합-미래연합이 있다. (그리고 양쪽 모두가 펄쩍 뛸 일이지만, 기독자유민주당과 불교연합당도 같은 계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뭔지 알 수가 없고, 5호16국 시대를 보는 느낌에 참 애매하고 어지럽다. 이거 뭐 애정남에 질문이라도 올려야 하나.

 

3.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곧 개봉하게 될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 대해 보았더니 매우 흥미가 생긴다. 7년 동안 고이 잠자고 있다가 2012년 지구멸망에 맞춰 지각 개봉하게 된, 마야인이나 꿀벌에게 고마워해야 할 영화. 세 개의 스토리가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인데, 하나는 역시 어김없이 등장한 좀비 이야기이지만 나머지 두 개는 꽤 흥미롭다. 하나는 인터넷으로 정체모를 사이트에서 당구공을 주문했다가 전 지구를 멸망 위기에 빠뜨리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절의 가이드 로봇이었다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무려!) 설법을 하게 되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란다. 나도 매일 설법을 하시는 공자봇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데 어찌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으랴. (예를 들어 트위터의 공자봇이 어느날 공자님 말씀만을 그대로 줄줄이 읊다가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새로운 말씀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최근에 단기적으로 관람 1순위로 놓고 있는 영화는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마이 백 페이지>인데(츠마부키 사토시와 마츠야마 켄이치를 보는 것도 물론 당연히 중요하다. 그거 무시 못한다. 누가 소녀들의 미남 사랑을 욕하랴), 이 영화도 동등하게 올려놓아야 겠다. 이와 별개로 중기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프리퀄 <프로메테우스>이고, 장기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아오야마 신지의 <도쿄 공원>이다. 아오야마 신지의 모든 영화를 최대한 찾아서 봐야겠다..그래야겠다..고 한지가 3년째인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4.

주말에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고, 내친 김에 <하나 그리고 둘>을 보려다가 이것마저 보게 되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257분짜리 영화인 이 영화는 늘 25.7분짜리 영화로 느껴지고, 2570분 후유증이 간다. 

 

5.

<한겨레21>에서 본, 미 앨라모고도 폭격장에서 실시된 인류 역사상 첫 핵폭탄 실험을 참관한 토머스 프랜시스 패럴 미 육군 준장의 당시 상황 보고.

 

"(핵폭발의) 결과는 전례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고, 엄청났으며, 두렵기도 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이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현상을 전에는 본 적이 없다. ...주변의 모든 봉우리와 크레바스와 산등성이에 불이 밝혀졌다. 직접 목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묘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폭발 직후 엄청난 후폭풍이 실험 참관자들에게 불어닥쳤다. 거의 동시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력한 천둥 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심판의 날을 경고하는 듯했다. 우리 나약한 인간들이 신이 독점해온 힘을 탐하는 불경을 저지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탄식 "이제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되고 말았다."

 

(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이어지는 기사의 한 대목.

 

"그해 8월 6일 새벽 2시 45분 에뇰라 게이를 몰고 티니언섬을 출발한 티베츠 대령은 같은 날 아침 8시 15분께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소년'(리틀보이)이란 암호명으로 불린 폭탄을 떨어뜨렸다. 폭탄에는 패럴 준장(주:위의 그 '패럴'이다)이 직접 써 넣은 글귀가 있었단다. '히로히토에게, 사랑을 담아서. T. F. 패럴.'"

 

이 부분을 읽다가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된다.

 

6.

키보드가 문자들을 씹어먹어서 더 이상 길게 쓰지 못하겠다. 특히 'ㄴ'자를 자주 잡아먹는 걸로 봐서 이게 맛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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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4-0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가 좋다' 봤는데 그주에 소개하는 영화가 거의 대동소이하네요.
인류멸망보고서는 잘 만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소재의 신선함을 잘 살리지 못할 확률이 커보여요. 예고편으론 낚이지 않는데 김지운이래니까 동하기도 하고. 은교랑 건축학개론이 보고 싶던데요.

저도 신문이랑 잡지 다 읽으려는 편이에요. 맥거핀님이랑 비슷한 의도도 있고, 실제로 뭔가 남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같기도'가 문제지만. 씨네21에선 김혜리 기자의 영화일기랑 김영진 평론가 글이 참 좋아요.

맥거핀 2012-04-03 21:24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이거 잘 살리면 정말 괜찮은 영화- 흔히 말해서 철학적이고 우주적인 세계관을 담았다고 하는 -그런 영화가 나올듯도 한데요.^^ 저는 건축학개론은 영 마음이 동하지가 않지만, 은교는 보고 싶기는 해요.

전 씨네21에서라면 정한석이나 김도훈 기자, 남다은 평론가 글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사람들 글을 읽으면 이름을 보지 않더라도 아..이 사람이 썼군, 하고 알 수 있을 것 같아요(뭐 하다못해 배우 인터뷰 같은 걸 해도). 김혜리 씨도 본인만의 특징적인 글쓰기가 있는 편이죠.

2012-04-0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이 글 재밌어요. / 신문을 첨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 한시간 반 ~ 두시간 걸리던데... 매일 이렇게 읽으면 뭘로든 도통할 것 같아요. / 필름으로 영화보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극상의 체험같은 건 혼자 해봐야 외로움의 극치일 뿐이라 자랑은 커녕 자괴의 대상이더라구요. 예를 들어 시사회 당첨되어 혼자 봤는데 넘 재밌었던 어떤 영화는(나의 아름다운 비밀인가 하는 제목인데..) 이후 개봉을 안 해서 시사회장의 소수 낯선이들과 수입업자, 이렇게만 본 영환데요. 이런 경험 극상으로 해봤자 허무 쓸쓸만 합디다. 영화는 어쨌든 소통과 공유가 최고던데요?! 아니, 필름에서만 보이는 말갈기 빛깔에 깨달음이 숨어있을지 모르지요..ㅎㅎ

맥거핀 2012-04-03 21:31   좋아요 0 | URL
그래요? 아무도 잘 모르는 영화보면 좋을 것 같은데..시사회에서 보고, 결국 개봉하지 않은 영화..어째 멋있지 않나요? 소통과 공유의 재미도 좋지만, 혼자서만 알게 되는 비밀 같은 거도 좋아요. 아..근데 시사회는 어째 혼자서 못가겠더라구요. 표 줄 때 물어보잖아요. 그 때 1장이요, 그러면 왠지 민망해서.

예를 들어 시사주간지를 매주 한권씩 정독하면,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의 상식들을 갖추게되기는 하는 것 같아요. 시사주간지는 정치에 경제에, 외교에, 문화에 조금씩 조금씩 다 다루기는 하니까. 뭐 딱히 써먹을 데가 없어서, 술자리에서 구라+썰을 풀 때 뿐이라는게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워 호스>를 보게 되면 말갈기를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Shining 2012-04-0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볼 수 있는 영화 중- 보고 싶은 영화는 <디어 한나>. 시네테크에서 상영중인데
다음주 주말에 갈 수 있음 보는데 그날 놓치면 못봐요ㅠ 그제는 <만추>를 다시 봤습니다.
전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좋을까요?-_-

필름2.0 폐간의 충격 이후 영화잡지를 통 안 봤네요. 지금이라도 재창간 안될까요ㅠ

2012-04-03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3 11:57   좋아요 0 | URL
동시에 이 글을 보고 있었군요-ㅎㅎ 저도 필름2.0 이후론 영화잡지구독계에서 길을 잃었져.. 씨네는 가끔 사서 봐도 재미가 없어요~.

맥거핀 2012-04-03 21:35   좋아요 0 | URL
저도 <만추>가 좋아요. 아..근데 이거 DVD나 IPTV에 나왔나보군요. 요즘에 <만추>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는 거 보면. 1년이 넘도록 DVD가 안나와 도대체 안나오는 이유가 뭐냐면서 많은 분들의 애를 태웠던 영환데.

저도 필름2.0도 보고, DVD2.0도 (부록 좋을 때만) 사서 보고, 아주 가끔은 스포츠2.0도 봤어요. 필름2.0이든 키노든, 뭐 다른 거든 좋으니, 영화담론을 다루는 잡지들이 많아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Shinging님이 나중에 재창간을 직접 추진해 보심 어떨지..)

2012-04-03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4-0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사인과 한겨레 신문 구독자입니다만,
이 즐거운 시기에 제대로 읽지 못 하고 수북하게 쌓여있는 중입니다. 아쉬워라...
예전에 시네21과 한겨레21도 같이 구독했는데 도저히 다 읽지 못 하겠고, 시네21이 당최 저랑 맞지를 않아서 포기했답니다. 책이랑 영화는 다른건가봐 이렇게 결론내리구요. ^^

집에 못 본 DVD가 몇장인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필름으로 본다, 음, 꼬옥 집에 장비 마련할만한 돈을 버셔서, 집에서도 보실 수 있기를.
맥거핀님의 리뷰와 열정으로 볼 때,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시니까요.
저에겐,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지만 말이죠... 아하하.

맥거핀 2012-04-03 21:46   좋아요 0 | URL
저도 시사인과 한겨레21을 놓고 조심스레 저울질을 했었는데요. 시사인이 탈락된 것은 그 크기 때문이에요. 웃기죠, 별것도 아닌 크기가 이유라니. 근데 그 어정쩡한 크기는 보관하기가 너무 애매해서요. 시사인은 표지가 마음에 들 때 가끔 사봐요.

글쿤요. 하긴 요즘 너무 바쁘셔서 책 볼 시간도 많이 없으실 것 같아요. 그래도 글에 쓰신대로 가끔 릴렉스하시고 여러 것들도 좀 즐기시고..물론 DVD도 와구와구.

필름은 정말 돈이 많이 드는 물건이니 제가 필름으로 볼려면 제가 로또가 2번쯤 되야할듯..ㅋㅋ 지금으로서는 괜찮은 홈씨어터 장비만 있어도 감지덕지입니다. 하기는 괜찮은 홈씨어터 장비와 룸을 갖추려면 돈을 꽤 벌어야 할테고, 그 정도 돈을 벌려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이 안날 수도 있으니 이거 참 딜레마군요.

반딧불이 2012-04-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미있는 페이퍼네요. 저는 그냥 맥거핀님에게서 종종 잠이 달아나기를 바라겠어요.

오펜하이머의 저 말이 저는 E=mc2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좀 이해가 되었는데 한편 짠하더라구요.

맥거핀 2012-04-03 21:51   좋아요 0 | URL
네..반딧불이 님의 기대에 부응해드리는 차원에서 오늘도 커피를 잔뜩 마셨습니다만, 어제 무리했더니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아요.ㅋ

아..저도 저 책 본 기억이 납니다. 상대방이 먼저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펜하이머 씨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만, 인류가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그의 책임이 꽤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인류의 특질 중의 하나는 '사용법을 잘 알지도 모르는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것 아닐까요. 그 대표적인 게 바로 핵무기일 것이고,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인류는 아직 파멸 가까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12-04-0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그렇게 좋나요~. 중국여행 갔다가 불법복제 디비디로 사왔는데 아직 안 봤어요. 빨리 봐야겠네요. 그래봐야 본가에 내려가야 볼 수 있지만...

맥거핀 2012-04-05 18:57   좋아요 0 | URL
좋다고 해야하나..마음이 복잡해지는 영화입니다. 음악도 좋고..왕가위 감독 영화들에 나왔던 장첸의 어린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긴 시간을 투자해볼만한 영화입니다.

프레이야 2012-04-0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맥거핀님, 마이백페이지는 패스하면 후회할까요? ㅎㅎ
봄이긴 한데 바람이 차가워요.
목련은 또 왜그래 초췌하게 져버렸대요.
허접한 사랑이야기처럼.

맥거핀 2012-04-05 18:59   좋아요 0 | URL
마이백페이지는 놓치면 아쉬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계속 시간이 지독하게 안맞네요.(지금 서울에서도 개봉하는데가 1군데 뿐이라..) 저도 지금이 봄인가 계속 되묻고 있어요. 이러다 갑자기 봄은 건너뛰고 여름이 오지 않을까 싶고..서울은 오늘 바람이 심한 날입니다. 그나마 있던 꽃잎들도 다 떨어지겠어요.

cyrus 2012-04-0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랑 비슷하네요. 요즘 신문을 보수, 진보 진영 번갈아 읽고 있는데
항싱 다 읽고나면 신문 속 모든 내용을 다 아는듯한 생각(or 착각)에 빠질대도 있거든요.
그리고 요즘에는 온라인 글들은 핵심적인 내용만 읽는 편이에요. 하루에 두 세 분 이상
글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것도 힘드네요. 한번은 새벽에 알라딘 블로그에 글 읽다가
깜빡 졸뻔하기도 한 적도 있었어요. 너무 컴퓨터 앞에서 글 읽으니 눈이 더 침침해지게
되고요. ^^;;

맥거핀 2012-04-05 19:04   좋아요 0 | URL
알라딘 글들은 가볍게 읽을 글들도 있지만, 감성과 이성이 필요한 글들이 있어서요. 저도 되도록 시간이 좀 날때만 들어와서 차분히 읽으려고 합니다만, 요새 들어서 글이 잘 안들어오는 것도 사실이네요.

저도 요새 이것저것 생각해요. 선거와 관련해서도 그렇고..보수니 진보니 반MB니 반노무현이니 하는 그런 것 보담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택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때이겠구요. 그럼에도 요새 여러 정당에서 현란한 레토릭들을 사용해서 쉬이 현혹되곤 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보 과잉이 차분한 생각을 가로막고 있는다는 생각도 있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독립영화, 인디영화를 주로 (유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인디플러그' 사이트에서 영화 <Jam Docu 강정>을 이례적으로 무료로 공개중입니다. (인디플러그에 감사드립니다.) 해군기지 건설과 그에 따른 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경계 도시>의 홍형숙 감독, <레드 마리아>의 경순 감독, <오월愛>의 김태일 감독 등 총 8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각각 카메라에 담아낸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입니다.

 

아래의 곳으로 가시면 되고, 회원가입만 하시면, 결제과정 없이 고화질로 다운 가능합니다.

 

http://www.indieplug.net/movie/view.php?cat=1&sq=1616

 

여야 모두가 선거니, 공천이니 정신없게 만드는 와중에 구럼비는 계속 파괴되고 있고, 강정은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강정에 대해 다시 한번쯤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덧.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시면 제 시덥잖은 리뷰를 참고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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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3-2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전부터 보고 싶었고 맥거핀님 리뷰보고 더 보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독립 영화 상영하는 곳이 있군요.

맥거핀 2012-03-29 22:33   좋아요 0 | URL
^^ 반갑습니다. Arch님. 이런 영화는 보다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찬성이나 반대를 떠나서 일단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차분히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네요.

2012-03-2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2-03-29 22:34   좋아요 0 | URL
즐감하셔용. (물론 보는 도중에 마냥 즐겁지는 않겠습니다만..^^;)

cyrus 2012-03-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보를 제가 자주 드나드는
온라인 카페에도 알리고 싶은데 퍼가겠습니다. (퍼간다는 단어가 좀 어색하네요 ^^;;)

맥거핀 2012-03-31 00:02   좋아요 0 | URL
불펌, 무한펌 환영합니다.^^

리처드 2012-04-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상 최대의 멍청하고 억지스러운 쓰레기 영화군요.

또 근거없이 감성이나 팔아대려는 낌새가

방금 막 내린 멧되지의 뜨끈뜨끈한 설사가 뿜어내는 갈색빛 김처럼 뿜어져 나오네요.

지금 저렇게 근거없는 비방 하시는 분들이 몇년전에는

뭐 개 줘 까튼 광우병 좀비라고 대가리에 닭 동맥같은 핏줄 새워가며

했겠지마는 그 인간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아직도 저러는게 참...

맥거핀 2012-04-21 01:00   좋아요 0 | URL
표현은 재밌습니다만(방금 막내린 멧돼지의 설사라..^^ 뭐 저는 그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제가 독해력이 떨어지는지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광우병 좀비는 무슨 맥락이신지..;

다락방 2012-04-2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맥거핀님.
저도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독립영화, 인디영화를 주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사이트라니, 저는 이런게 있는줄도 몰랐거든요. 방금 막 링크 따라가서 즐겨찾기 추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겐 정말 유용한 정보에요.
:)

맥거핀 2012-04-26 22:19   좋아요 0 | URL
네..안녕하세요.^^ 아무래도 요새 인디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인디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들은 여전히 부족한데요, 그런면에서 최근 화제가 된 인디영화들이 어느정도 망라되어 있는 사이트라고 생각해요. 다운로드 받으면 또 그 금액중 일부가 민간 독립영화전용관 기금으로 마련된다고도 하구요.^^ (뭐 이번에 인디스페이스가 재개관한다고는 합니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면, 저 또한 즐겁습니다.

열매 2012-04-2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방금 알라딘 페이퍼를 쓰다가 잼 다큐 <강정> 포스터를 찾으려고 검색하던 중에 맥거핀님의 서재에 들어오게 됐어요. 전 이 영화 이미 봤는데요, 주소 복사해가서 제 서재에 올려도 될까요?? 3월에 읽은 책 목록 밑에 영화 포스트 사진과 주소 올려 놓고 싶어서요.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저는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서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는 책을 읽은 후에 이 영화를 함께 봤었는데, 돈 내고 봤답니다^^;;

맥거핀 2012-04-29 00: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물론 좋으실대로 퍼가셔도 됩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도록 무료로 배포할텐데, 저도 일조할 수 있으면 좋죠. 그만큼 보고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보구요. 아..그리고 보니까, 네이버에서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더라구요. (아마도, 다른 합법다운로드 사이트들에서도 무료배포일듯 한데, 확인해보진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