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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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박범신

 

 

 

 

 

  책을 읽고 며칠 동안 텅 빈 한글창만 노려보았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 얘기와 저 얘기는 모순되지 않을까, 그 부분을 넣으면 너무 생뚱맞지 않을까 등등. 이렇게 고민을 하면서 감상문을 쓴 건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은 작가인 ‘나’이다. 작가로 살아온 자신의 삶과 글에 대한 철학 그리고 우연히 연락이 닿은 대학 시절 제자인 ‘ㄱ’의 얘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녀는 학교 다닐 때 꽤나 인상 깊은 단편 소설을 썼지만, 이후 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남들과 다른 세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써보리라 생각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혼자 사니 참 좋아’로, 자신이 살던 집 우물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바람에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 ‘ㄱ’의 과거 회상과 현재를 다루고 있다. 갑작스런 사고로 오빠와 부모님을 연달아 잃게 된 그녀. ‘남자 1’과 결혼을 했지만, 사랑이라 생각했던 그의 모든 행동들이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혼자 살던 중, 우연히 갈 곳이 없던 ‘ㄴ’과 ‘ㄷ’에게 잘 곳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둘이 사니 더 좋아’는 ‘ㄴ’의 이야기이다. 앞에서 시체로 발견된 그가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다.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그는 아버지와 형을 잃고, 어머니마저 실어증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후 폭도 집안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공장에서 일하던 그의 유일한 위로는 기타였다. 하지만 새로운 의미가 되었던 밴드에서 불화가 생겨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중, ‘ㄱ’을 만나게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셋이 사니 진짜 좋아’는 예상대로 ‘ㄷ’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ㄱ’에게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주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서 ‘ㄱ’의 회상도 같이 들어있다. 탈북자였던 ‘ㄷ’은 다행히 조선족의 집에서 머물게 되지만, 그 대가로 그의 성폭력을 견뎌야했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 그녀는 길을 떠돌다가 ‘ㄱ’과 ‘ㄴ’이 살고 있는 집으로 오게 된다. ‘ㄴ’이 죽은 후, 그곳을 떠나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서 일하고 있다.

 

  이후 ‘ㄱ’은 소설을 탈고하지만 스승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는 문장으로 그를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인터넷을 보니, 출판사에서 하는 책 광고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은교』에서 이루지 못한 새로운 사랑 이야기! 불가능한 가능한, 사랑. 한 남자와 두 여자, 정확히는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한다. 도대체 이런 사랑도 가능한 것일까?’

 

  광고만 보면 마치 남자 하나에 두 여자가 나오는 그런 AV 비디오가 연상된다. 어쩌면 내가 음란 마귀에 씌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이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데, 왜 그 부분만 부각시켰는지 알 수가 없다.

 

  세 사람은 각각 다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ㄱ’은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환멸을 느끼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녀는 자기 마음에 있는 가시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포용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 가시에 찔리는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연이어 나타난 ‘ㄴ’과 ‘ㄷ’으로 인해, 혼자 사는 것도 좋지만 둘, 셋이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그녀는 두 사람에게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묻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인다. ‘ㄴ’과 ‘ㄷ’ 역시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좋아하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하고,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의 배경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보이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나누고 보듬어주며,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외설스러운 부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게 표현했다. 아, 이게 예술과 외설의 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작가가 사용한 어휘와 표현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단어와 문장들은, 지금까지 내가 주로 읽었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함축적이고 비유적이었으며 은유적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시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쩐지 글을 읽어주는 화자가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어투였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남자인 ‘ㄴ’이 들려주는 형식인데, 그 부분도 마찬가지로 여성스러웠다. 혹시 세 이야기 다 ‘ㄱ’이 화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뺀 나머지는 ‘ㄱ’이 쓴 소설이 아닐까하는 추측까지 하게했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느낌이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슬아슬함도 느껴졌다. 셋 다 애정에 목마르고 뭔가 한두 개 잃어버린 사람들이었기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빈자리나 공허함을 채울 수는 있지만, 그게 100% 전부는 아니었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그 순간, 그들은 속으로 불안해했다. 언젠가는 이 편안함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ㄷ’이 가장 행복할 때 같이 죽어야한다고 울부짖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연장선으로 ‘ㄴ’은 그런 선택을 했던 걸지도…….

 

  편안한 울타리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울타리 밖으로 나가볼 것인가. 전자는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고, 후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다. ‘ㄷ’은 전자의 길을 택했고, ‘ㄱ’은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들 셋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것일지 모르겠다. 그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어쩌면 세 사람의 사랑은 단순히 연인 같은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고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의미였던 것 같다. 작가의 표현대로 아픈 기억이 가시였다면, 셋이 나눈 사랑은 그 가시를 무디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더 이상 남을 아프게도 하지 않고, 자신을 찌르는 일이 없게 말이다.

 

  물론 완벽하게 다듬지 않아서 셋은 여전히 가시를 품 안에 가득 가지고 살아야한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덜 아플 것이다. 그들은 추억, 그러니까 숨구멍을 찾았기 때문이다.

 

  문득 왜 하필이면 셋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아무래도 삼각형이 사각형보다 굴리기 쉽기 때문일까? 넷이면 둘씩 짝을 이루어 분리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삼위일체?

 

  하지만 난 책에 나온 세 사람처럼 사랑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애인님은 나 혼자 독점하고 싶으니까. 작가는 ‘고귀한 소유의 적합성을 결혼이 비천한 지배에의 욕망으로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p.53’고 했지만, 음란마귀에 쓰인 비천한 욕망덩어리가 나의 일부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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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별 2015-04-30 12:21   좋아요 0 | URL
전 나이가 들어도 독점할래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