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감독 - 토미 위르콜라

  출연 - 누미 라파스, 윌렘 데포, 글렌 클로즈, 로버트 와그너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인구 증가는 거의 모든 자원의 부족을 가져온다. 결국 정부는 한 가정 당 한 명의 자녀만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한다. 이에 이미 태어난 아이들까지 정부에 의해 끌려가는 가운데, 한 집안에 무려 일곱 쌍둥이가 태어난다. 할아버지인 ‘테렌스’는 아이들을 몰래 기르기로 결정한다. 그는 각 아이들에게 요일 이름을 붙이고, 해당 요일에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일곱 명의 아이들은 ‘캐런’이라는 한 이름으로 바깥에서 활동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공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먼데이’가 회사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남은 여섯은 도대체 먼데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하는데…….



  주연을 맡은 ‘누미 라파스’가 무척이나 고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1인 7역이라니……. 영화를 다 본 지금도 사실 누가 먼데이고 ‘웬즈데이’인지 구별을 못하겠다. 그냥 머리 긴 애, 염색한 애, 짧은 애로 구별했다. 그래서일까?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누가 잡혔고, 누구와 누가 다투고, 누가 희생되었는지 헷갈렸다. 집에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밖으로 나오면서는 비슷하게 옷을 입어서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게 가능했으면 후반을 더 즐겁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한정된 자원과 늘어만 가는 인구에 관련된 이야기는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소재이다. 전쟁이 난다거나 계층이 나뉘어서 빈익빈부익부의 암울한 사회를 다룬 것만 봤는데, 여기서는 인구 수 조절을 시도한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는 이미 태어난 아이들까지 계획에 포함시킨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부모에게서 떨어져 강제로 끌려간 아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몰랐던 걸까? 그냥 정부에서 자손을 낳지 못하도록 강제 시술 정도만 하고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이라 생각한 걸까? 그 법안을 만들었을 때, 이미 아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래서 후반부에 그 법안을 내놓은 의원에게 사람들이 보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20년이 넘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순진한 모양이다. 아니면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은 일이라 여기는 사람인 걸지도. 어쨌든 그들은 끌려가지 않고 집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살아남은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다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캐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곱 쌍둥이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공유해야 했다. 그 날 친구들과 나눈 대화라든지 행동, 있었던 일 등등. 그래야 다음날 다른 아이가 위화감 없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데이가 사라진 다음,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에게는 다른 자매와 공유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다른 여섯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어쩌면 너무도 능숙하게 몇 십 년을 살아왔기에, 경계가 느슨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리 쌍둥이라지만, 감정이나 성향, 취미, 그리고 사고방식이 같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비호감인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는 호감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일 수도 있었을 테고 말이다.



  쌍둥이는 흔히 모든 것이 비슷하거나 똑같다고 여겨지지만, 다른 존재이다. 그러니 쌍둥이가 아닌 사람들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요즘은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몰아붙이거나 배척하고,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그 다름 때문에 일곱 쌍둥이는 위험에 처하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하나가 아니라, 온전한 자기 자신을 선택했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개별적인 인격체가 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원제 - A Quiet Place , 2018

  감독 - 존 크래신스키

  출연 - 에밀리 블런트, 존 크래신스키, 노아 주프, 밀리센트 시먼즈






  거의 폐허가 된 마트에서 한 가족이 물건을 챙기고 있다. 아빠, 엄마, 십대 초반의 두 아이와 대여섯 살로 보이는 막내로 이루어진 그들은 맨발로 하얀 흙이 뿌린 길만 걷는다. 그런데 맨 뒤에 있던 막내가 커다란 소리가 나는 우주선 장난감을 작동시킨다. 아빠는 아들을 막아보려 달려가지만, 괴생명체가 나타나 아이를 공격한다. 찢긴 신문에 적힌 헤드라인에는 그것은 소리에 반응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남은 네 사람은 여전히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전과 똑같지만, 내적으로는 많이 달라져있다. 큰딸은 동생을 챙기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아빠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이를 임신했고,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빠는 청각장애를 가진 큰딸을 위해 보청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큰아들은 장남으로 가져야 할 책임감에 버거워하며 집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한다. 어느 날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엄마의 양수가 예정보다 빨리 터지는데…….



  포스터와 카피만 보고 몇 년 전에 개봉한 ‘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 2016’ 류의 영화가 아닐까 추측한 작품이었다. 예고편을 보니 인류가 멸망에 처한 이후를 그린 것 같았다. 어쩐지 기대가 되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는 만족감을 갖고 극장을 나왔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교훈은 역시 이과를 전공해야 세상이 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극중에서 아빠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연구까지 해가면서 딸의 보청기를 만들고, 괴생명체의 약점을 찾아낸다. 게다가 집 주변에 CCTV까지 다 설치하여 여러 개의 모니터로 감시도 하고, 틈나는 대로 소리 나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자주 다니는 길에 고운 흙까지 뿌려놓는다. 그뿐일까? 아이가 태어나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지하에 방음장치까지 만들고 있었다. 저 아빠, 분명히 이과 그것도 기계 분야를 전공한 게 틀림없다. 부부의 출산 준비는 너무도 꼼꼼해서, 보는 내내 놀랍기만 했다. 처음에 엄마가 산소 호흡기를 준비하기에 왜 그럴까 했는데, 나중에 보고 ‘우와’하고 감탄했다. 굳이 그 상황에서 아기를 갖고 싶었을까 생각했지만, 막내를 그렇게 잃고 나서 내린 선택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나나 애인님이나 둘 다 문과인데 큰일이다!



  소리를 낼 수 없는 주인공 가족들처럼, 보는 내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른 공포 영화였다면 깜짝 놀라면서 ‘헐!’ 내지는 ‘으악!’하는 소리가 나왔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소리가 나오는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전에 ‘맨 인 더 다크’를 볼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비슷했다. 내가 작은 소리라도 내면, 그걸 듣고 괴생명체가 주인공을 공격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가족들을 하나둘씩 위기로 몰아넣었다. 마치 관객에게 ‘이래도 소리 안 낼래?’라고 시험하는 분위기 같았다.



  특히 집에 혼자 남은 엄마에게 닥친 시련은 너무 치명적이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소리가 나는 건 당연하다. 갓 태어난 아이의 특징이라면 우렁찬 울음소리이고, 엄마 역시 출산 시 엄청난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 위기 상황을 어떻게 넘길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두근거리고, 설마 하는 불길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영화는 각기 밖에 있던 가족들이 집으로 달려오는 장면과 아이를 낳는 엄마를 교차편집해서 보여준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괴생명체가 돌아다니면서 때려 부수는 소리밖에 없었지만, 어쩐지 가족들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90분 정도 되는 상영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 내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물론 가족들이 말 대신 수화로 하기에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안 되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초반 상황을 보여줄 때 빼고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빠른 속도의 교차편집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도 있었지만, 신파라고 ‘에휴’하기보다는 비장미가 느껴졌다.



  영화는 ‘마이클 베이’가 제작에 참여한 것치고, 건물이 폭발하고 자동차나 폭탄이 펑펑 터지는 장면은 없었다. 그 말은 즉, 괴생명체와 벌이는 대규모 전투 장면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 걸 예상했던 사람들에게는 결말이 조금 뜬금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믿고 성장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폭발 장면이나 전투 장면이 없어도 감동적이고 훌륭했다.



  대사 하나 없이 고통을 표현하는 걸 보고, ‘에밀리 블런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전에 보았던 영화 ‘걸 온 더 트레인 The Girl on the Train , 2016’에서 알코올 중독자 역할을 진짜 술 취한 사람처럼 잘 한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는데, 여기서 보여준 표정 연기는 그보다 훨씬 엄청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감독 - 정범식

   출연 - 위하준, 박지현, 오아연, 문예원





  3월이 되기 전, 결심을 하나 했다. ‘3월에는 책도 안 읽고 리뷰를 하나도 안 쓸 거야!’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3월에는 가끔 영화만 보고 게임만 열심히 했다. 그렇다고 렙이 많이 오른 건 아니지만, 무척 열심히 했다.



  유튜브에서 방송을 하고 있는 ‘하준’을 중심으로 모두 일곱 명의 사람들이 곤지암에 있다는 폐건물로 공포 체험 생중계를 하기 위해 떠난다. 일행은 최첨단 장비로 무장을 하고, 건물 탐사를 시작한다. 여러 가지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 일행은 미심쩍은 물건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유료 시사회라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으로 개봉 전에 본 영화다. 말이 유료 시사회지, 그냥 편법 개봉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 작품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곤지암에 있다는 폐건물이 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도 정직하게 그냥 곤지암이다. 세 사람이 모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옛말을 증명하는 좋은 예로, 익명성과 빠른 전파력이라는 특징을 가진 인터넷 덕분에 유명해진 곳이다. 진짜로 뭔가가 나왔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허세와 거짓말과 선동이 만들어냈는지 모르지만, 폐건물 특유의 분위기 덕분에 담력시험을 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어버렸다. 거기다 미국의 CNN에서 소름끼치는 곳 중의 하나로 선정하는 바람에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영화는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거의 모든 외계인 음모론 영화는 드라마 ‘X 파일 The X-Files, 1993’의 아류라 불리고, 거의 모든 파운드 푸티지 영화는 영화 ‘블레어 위치 The Blair Witch Project , 1999’의 아류라고 불리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영화 ‘그레이브 인카운터 Grave Encounters, 2011’의 한국 버전이라 불리는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장면에서는 ‘그레이브 인카운터에서 본 거랑 비슷한 구도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감독의 전작인 ‘기담 Epitaph, 奇談, 2007’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었다.



  페이크 다큐나 파운드 푸티지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설정이 있다. 뭐나면 위험에 빠진 인물들이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카메라를 놓고 달리면 더 빨리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점을 보완했다. 바로 카메라를 몸에 부착시킨 것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영상이 찍힌다고 해도 억지스럽지 않았다.



  또한 배우들이 다 신인이었기에, 진짜 일반인이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신선했다. 물론 그 와중에 짜증나는 성격의 캐릭터도 있었고, 연기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주는 배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그리고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장면에서 한 박자 내지는 반 박자 쉬었다가 놀라게 하는, 조였다 풀었다하는 흐름도 좋았다. 문제는 그런 것도 여러 번 나오면 예측가능하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뭔가 보일 듯 말듯하면서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귀신들의 등장도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영화를 본 상영관에서는 귀신의 엉뚱한 짓 때문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 상황이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일어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의도한 것이라면, 상당히 영리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긴장을 완전히 내려놓게 한 다음에 놀라게 하는 게 효과가 더 좋을 테니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다른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장면으로 찍고, 이 소품은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교본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이런 장르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스토리적인 면에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탐사가 목적이었기에,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였다. 아이들이 남의 사유지에 몰래 들어갔다가 갈등을 겪고, 하나둘씩 위험에 빠지는 게 다였다. 솔직히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었다.



  팝콘을 흘릴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원제 - Better Watch Out, 2016

   감독 - 크리스 펙코버

   출연 - 리바이 밀러, 올리비아 드종, 에드 옥센볼드, 알렉스 미킥







  캐럴 ‘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의 첫 소절 ‘You better watch out’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불이 활할 타는 벽난로 앞의 처참한 광경. 딱 보자마자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살인극이라는 사실을.



  ‘루크’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봐주던 베이비시터 ‘애슐리’를 짝사랑한다. 크리스마스이브, 둘만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남자다움을 어필하려고 했지만 애슐리에게 그는 어린 동생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주문하지 않은 피자가 배달되고, 누군가 창밖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 와중에 루크의 친구인 ‘개럿’까지 놀러왔다가 위험에 처하는데…….



  예전에 영화 ‘나 홀로 집에 Home Alone, 1990’에서 꼬마 ‘케빈’이 만든 함정을 현실적으로 분석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말하길, 현실에서 도둑들이 케빈의 함정에 빠졌다면 아마 서너 번은 죽었을 것이라 했다. 이 영화는 아마 그 부분에 착안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진짜로 그런 함정을 설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예로 ‘나 홀로 집에’의 꼬마 케빈이 던진 페인트 통을 맞은 도둑들은 금방 깨어났지만, 이 영화에서 페인트 통을 맞은 사람은 얼굴이 박살나서 죽어버렸다.



  영화의 초반은 베이비시터가 나와 위험에 처하는 기존의 다른 작품들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중반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베이비시터가 등장하는 영화와는 전혀 다른 범인의 정체 때문에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살인마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 흔들리면서, 초반의 재미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가 그런 일을 벌인 이유가 애슐리에 대한 짝사랑 때문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하는 짓이나 내뱉는 말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 세운 계획에서 벗어나는 사건의 연속 때문에 당황하고 결국 광기에 젖어드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건의 뒷수습을 하는 걸 보면, 계획적인 범행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지문을 흉기에 묻힌다거나, 유서를 준비시키는 치밀함은 그 순간에 생각해내기에는 너무 꼼꼼했다. 그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건, 애초에 그녀에게 자신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사건을 벌였다는 주장과는 맞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할 속셈이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 뜻하지 않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당황한 처음과 다 죽여 버리겠다는 후반의 연결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아니면 그가 모든 사람을 속여 넘길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였다는 설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윌리엄 마치의 소설 ‘배드 시드 The Bad Seed, 1954’가 떠올랐다. 어쩐지 소설의 주인공인 ‘로다’의 오빠 버전을 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로다보다는 순진함이라든지 카리스마 또는 청순함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하긴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의 카리스마를 이길 존재가 있을 리가…….



  사람들이 그에게 너무 쉽게 당한다는 어이없음을 빼고는 적당히 잔인하고 적당히 반전을 줬다.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그는 그에게 그토록 헌신적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의 그는 다른 두 사람을 가리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리화나를 피워서 판단력이 흐려진 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원제 -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2017

  감독 - 케네스 브래너

  출연 - 케네스 브래너, 미셀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데포, 주디 덴치






  이 리뷰는,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원작이 나온 지 거의 80년이 되어가고 워낙에 유명해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겠지만, 생각해보니 아직 원작을 읽지 않은 세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분들은 알아서 패스하시길!




-------



  처음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오!’하면서 잔뜩 기대했다. 21세기의 감성으로 어떻게 만들어질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고편을 보고는 ‘이게 뭐야!’하고 실망했다. 아무리 ‘포와로’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의 콧수염이라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예고편을 보는 내내 기억에 남는 건, 포와로의 콧수염밖에 없었다. 그것도 멋져서가 아니라, 이상해서! 예고편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 영화를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크리스티와 포와로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깟 이상한 콧수염에 굴복할 수준이 아니었다.



  1934년, 이스탄불에서 런던까지 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폭설과 눈사태로 중간에 탈선을 한다. 기차와 승객 모두 제설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라쳇’이라는 사업가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열차 회사의 간부인 ‘부크’는 오랜 친구이자 우연히 기차에 타고 있던 ‘포와로’에게 사건 수사를 의뢰한다. 라쳇의 객실이 있는 열차 칸에 있던 사람은 모두 13명. 포와로는 그들 중에 범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는 라쳇의 진짜 정체가 몇 년 전 ‘암스트롱’ 집안의 어린 딸 ‘데이지’를 유괴 살해한 ‘카세티’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과연 그를 죽인 범인은, 사업상의 불화를 빚은 이탈리아 갱단일까 아니면 데이지 사건에 관련된 사람일까? 수사를 하던 도중, 포와로는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되는데…….



  처음 우려와 달리, 영화를 보는 내내 포와로의 콧수염은 그렇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 저런 콧수염이 있었지.’라는 생각만 들 뿐,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영화에 몰입해서 그런 걸까?



  그리고 원작 소설이나 1974년 영화, 또는 2010년 영국 BBC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았다. 기본 설정은 그대로 가면서, 몇 가지 변형을 시도했는데 그것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소설이 사건 해결에 중점을 뒀다면, 74년 영화는 약간 코믹한 분위기로 역시 사건 해결에 초점을 맞췄었다. 2010년 드라마는 거기다가 약간 사람들의 죄의식 같은 것을 부각시켰었다.



  이 영화는 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심리에 더 비중을 두었다. 라쳇이라는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비틀리고 엉망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들은 약이 없으면 잠들 수 없거나, 평생 자신을 자책하며 죄의식에 고통 받고,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빛이었던 사랑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심리가 절절하게 느껴지면서, 영화 후반부에는 아주 살짝 눈물이 날 뻔 했다. 세상에나, 포와로가 나오는 작품을 보면서 눈물이 나다니! 영화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통쾌함보다는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먼저 와 닿았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포와로의 액션(?) 장면이 추가되었다. 포와로는 안락의자 탐정의 대표적인 주자인데, 여기서는 용의자를 추격하고 눈밭에서 구르고 넘어지고 심지어 총도 맞는다. 노인네가 체력도 좋다. 그래서일까? 그런 액션 장면을 추가하다보니, 용의자들과의 인터뷰 장면이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건 결말 부분에서 포와로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때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은 좀 아쉬웠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터뷰만 이어지는 내용이니, 사람들이 지루해할까 액션 장면을 넣은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왜 하필이면 포와로가! 더 젊은 부크도 있었구만!



  미셀 파이퍼의 연기는 그야말로 굉장했다. 초반에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수다스럽고 친화력 좋은 중년 여성으로 나오다가, 후반에서는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한 슬픔을 잘 드러냈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객실의 승객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이 사건에서 그녀가 맡고 있는 역할을 잘 알 수 있었다. 예수가 지상에 온 이유는, 사람들의 고통과 죄를 덜어주고 대신해서 희생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다행히도 옛날 유대인들처럼 그녀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고통과 상처투성이인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포와로가 ‘캐서린’이라 불리는 여성의 초상화를 가지고 무척이나 애틋해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 포와로에게 여자라고는 ‘올리버’ 부인과 비서 ‘레몬’양과 백작 부인인가 공작부인밖에 없을 텐데? 그들과는 연애 감정이 아니라, 동업자 관계가 다였을 텐데? 궁금하다.



  라쳇 역을 맡은 ‘조니 뎁’이 일찍 죽어서 무척이나 좋았지만, 회상 장면에 계속 나와서 기분이 별로였다. 포와로의 액션 장면과 더불어 이 영화의 옥의 티 두 가지였다.



  하지만 미셀 파이퍼 누님의 멋진 연기와 원작보다 더 치열하게 죄와 벌, 정의에 대해 해석한 건 마음에 들었다.



  의아한 점 하나! 초반에 ‘스탐불’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스탄불’을 잘못 적은 건지 아니면 내가 눈이 나빠서 ‘이’ 자를 못 본 건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