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2017

  감독 - 케네스 브래너

  출연 - 케네스 브래너, 미셀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데포, 주디 덴치






  이 리뷰는,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원작이 나온 지 거의 80년이 되어가고 워낙에 유명해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겠지만, 생각해보니 아직 원작을 읽지 않은 세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분들은 알아서 패스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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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오!’하면서 잔뜩 기대했다. 21세기의 감성으로 어떻게 만들어질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고편을 보고는 ‘이게 뭐야!’하고 실망했다. 아무리 ‘포와로’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의 콧수염이라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예고편을 보는 내내 기억에 남는 건, 포와로의 콧수염밖에 없었다. 그것도 멋져서가 아니라, 이상해서! 예고편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 영화를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크리스티와 포와로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깟 이상한 콧수염에 굴복할 수준이 아니었다.



  1934년, 이스탄불에서 런던까지 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폭설과 눈사태로 중간에 탈선을 한다. 기차와 승객 모두 제설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라쳇’이라는 사업가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열차 회사의 간부인 ‘부크’는 오랜 친구이자 우연히 기차에 타고 있던 ‘포와로’에게 사건 수사를 의뢰한다. 라쳇의 객실이 있는 열차 칸에 있던 사람은 모두 13명. 포와로는 그들 중에 범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는 라쳇의 진짜 정체가 몇 년 전 ‘암스트롱’ 집안의 어린 딸 ‘데이지’를 유괴 살해한 ‘카세티’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과연 그를 죽인 범인은, 사업상의 불화를 빚은 이탈리아 갱단일까 아니면 데이지 사건에 관련된 사람일까? 수사를 하던 도중, 포와로는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되는데…….



  처음 우려와 달리, 영화를 보는 내내 포와로의 콧수염은 그렇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 저런 콧수염이 있었지.’라는 생각만 들 뿐,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다. 영화에 몰입해서 그런 걸까?



  그리고 원작 소설이나 1974년 영화, 또는 2010년 영국 BBC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았다. 기본 설정은 그대로 가면서, 몇 가지 변형을 시도했는데 그것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소설이 사건 해결에 중점을 뒀다면, 74년 영화는 약간 코믹한 분위기로 역시 사건 해결에 초점을 맞췄었다. 2010년 드라마는 거기다가 약간 사람들의 죄의식 같은 것을 부각시켰었다.



  이 영화는 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심리에 더 비중을 두었다. 라쳇이라는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비틀리고 엉망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들은 약이 없으면 잠들 수 없거나, 평생 자신을 자책하며 죄의식에 고통 받고,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빛이었던 사랑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심리가 절절하게 느껴지면서, 영화 후반부에는 아주 살짝 눈물이 날 뻔 했다. 세상에나, 포와로가 나오는 작품을 보면서 눈물이 나다니! 영화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통쾌함보다는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먼저 와 닿았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포와로의 액션(?) 장면이 추가되었다. 포와로는 안락의자 탐정의 대표적인 주자인데, 여기서는 용의자를 추격하고 눈밭에서 구르고 넘어지고 심지어 총도 맞는다. 노인네가 체력도 좋다. 그래서일까? 그런 액션 장면을 추가하다보니, 용의자들과의 인터뷰 장면이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건 결말 부분에서 포와로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때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은 좀 아쉬웠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터뷰만 이어지는 내용이니, 사람들이 지루해할까 액션 장면을 넣은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왜 하필이면 포와로가! 더 젊은 부크도 있었구만!



  미셀 파이퍼의 연기는 그야말로 굉장했다. 초반에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수다스럽고 친화력 좋은 중년 여성으로 나오다가, 후반에서는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한 슬픔을 잘 드러냈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객실의 승객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이 사건에서 그녀가 맡고 있는 역할을 잘 알 수 있었다. 예수가 지상에 온 이유는, 사람들의 고통과 죄를 덜어주고 대신해서 희생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다행히도 옛날 유대인들처럼 그녀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고통과 상처투성이인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포와로가 ‘캐서린’이라 불리는 여성의 초상화를 가지고 무척이나 애틋해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 포와로에게 여자라고는 ‘올리버’ 부인과 비서 ‘레몬’양과 백작 부인인가 공작부인밖에 없을 텐데? 그들과는 연애 감정이 아니라, 동업자 관계가 다였을 텐데? 궁금하다.



  라쳇 역을 맡은 ‘조니 뎁’이 일찍 죽어서 무척이나 좋았지만, 회상 장면에 계속 나와서 기분이 별로였다. 포와로의 액션 장면과 더불어 이 영화의 옥의 티 두 가지였다.



  하지만 미셀 파이퍼 누님의 멋진 연기와 원작보다 더 치열하게 죄와 벌, 정의에 대해 해석한 건 마음에 들었다.



  의아한 점 하나! 초반에 ‘스탐불’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스탄불’을 잘못 적은 건지 아니면 내가 눈이 나빠서 ‘이’ 자를 못 본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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